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53화 (53/230)

〈 53화 〉 3. 빌헬름 메이젤(막간)

* * *

­ 아직 이 주변일 테니까 찾아!

­ 이 쥐새끼들이.

수많은 발걸음들이 바쁘게 뛰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전등하나 켜져 있지 않은 어둡고 좁은 창고.

검은 머리칼과 검은 눈동자의 청년, 빌헬름은 창고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긴장한 채로 전화를 계속했다.

­ 그래서 지금 어딘데.

“53구역 외곽이요. 위치는 메시지로 보내드릴게요.”

­ 기다려. 금방 갈 테니까.

“네… 진짜 감사해요.”

­ 어.

속삭이는 목소리로 답하자 상대방도 나올 준비를 하는지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며 전화가 끊겼다.

연락을 마친 빌헬름은 곧장 손목 아래에서 신경 인터페이스 연결 단자를 뽑아 Liddell 사에서 제작한 최신예 단말기에 연결했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홀로그램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외부 접근이 감지되었습니다.]

[모델명 : Liddell – S04 – 113657890a]

[접근을 허가하시겠습니까?]

[Y/N]

그가 연결한 단말기의 모델명과 코드가 맞다. 빌헬름은 바로 수락의사를 통해 Y를 체크했고, 다시 한번 그의 눈앞에 다른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Loading…….]

[33…66…99%/100%]

[접속 완료 되었습니다.]

접속 완료 메시지와 함께 시야 한편에 단말기의 창이 떠오른다.

빌헬름은 곧장 그것을 조작해 자신의 위치를 지도에 띄운 뒤 전화를 했던 상대, 애쉬 론모어에게 전송했다.

[전송 중….]

[30…80…100%/100%]

[상대방에게 위치를 실시간으로 전송합니다.]

“후우…. 제발 잡히기 전에 오시면 좋겠는데.”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를 확인한 빌헬름이 자리에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지금 그가 숨어 있는 곳은 어느 좁은 창고의 상자들 사이였다. 먼지가 자욱한 창고 안은 오랫동안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은 듯 보였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추적자들은 계속해서 그를 찾아다닐 것이었고,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것을 노려 숨은 이곳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이 들이닥칠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 당장은 추적자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마저도 얼마 가지 않으리라.

“에, 엣취! 으…. 어쩌다 이런 꼴이 됐는지.”

먼지를 들이키고 소리죽여 재채기한 빌헬름이 신경 인터페이스를 통해 애쉬의 위치를 확인하곤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애쉬는 이제 막 71구역에서 출발했는지, 움직이고 있긴 했지만 이대로라면 두어 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

‘그냥 안전하게 가는 건데, 바보같이 흥분해서는.’

그, 빌헬름 메이젤(Wilhelm Maisel)은 분명 뛰어난 해커였다. 해킹뿐 아니라 온갖 프로그램을 다루는 실력까지 대단한 진짜배기.

그는 여태껏 단 한번을 제외한다면 해킹을 한 뒤에 누군가에게 걸려본 적도, 잡혀본 적도 없었으며 그나마 단 한번 있던 것도 타인의 실력에 의해 발각된 게 아니라 본인의 얼빠진 실수 하나에 의해 잡힌 것이었다.

그런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빌헬름.

그런 그가 왜 지금 이런 허름한 창고에 숨어 들키진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는가하면, 그것은 그의 알량한 자존심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 너 혹시 ‘회사’라고 아냐?

­ 아니, 모르면 됐어. 위험하니까 신경 꺼.

어느 날 먼저 전화를 걸어온 애쉬의 질문과, 그에 모른다고 답하자 뒤에 따라온 저 한 문장의 말.

그것은 어찌 보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자신의 실력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빌헬름에게는 너무나도 불편한 반응이었다.

아직 20대 초반에 불과한, 한창 치기 넘칠 시기의 나이와 뛰어난 실력. 그리고 그에 부족하지 않은 자존심까지 가진 빌헬름이다.

그런 그가 애쉬의 저 말에 발끈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만일 애쉬가 그런 반응을 노린 것이라면 정말 효과적인 행동이었다.

빌헬름은 애쉬가 지칭하는 ‘회사’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하지만 자신의 자존심을 챙기기 위해 약간의 정보들만을 기반으로 반드시 그 정체를 밝혀내 보겠노라 호언장담을 하곤 전력으로 작업에 착수했다.

뒷세계의 다크 웹, ‘게이트’부터 시작해서 도시 전체에 깔린 일반 네트워크까지 헤매길 몇 주일.

이쯤 되면 아무리 꽁꽁 숨은 조직이라도 털끝 정도는 보이기 마련이었는데, 놀랍게도 애쉬가 말한 ‘회사’라는 키워드에 대한 정보는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그래서 처음 빌헬름은 자신이 못 찾을 리가 없으니 애쉬가 명칭을 잘못 알고 있거나, 혹은 그가 말한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닌 지까지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빌헬름은 곧 그런 생각들을 집어 던지고 자신이 직접 그 ‘회사’라는 조직을 찾아 나섰다.

방구석에서 일반 네트워크를 통해 찾아볼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일반적인 네트워크는 어디까지나 외부와 통하는 문이 있는 곳만 갈 수 있었으니까.

한 마디로 진짜 비밀이 숨겨진 독립 서버에는 접속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빌헬름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직접 ’회사‘일 것이라 의심되는 곳들을 찾아가 그 내부 서버에 침투해본다.’

실제로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혹은 의뢰를 통해서라도 몇 번이나 해본 적 있는 일이다.

빌헬름은 지금부터 자신이 할 일이 여태껏 해왔던 일들과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 착각했고, 그것은 돌아보면 정말 무식하고도 오만한 생각이었다.

애쉬는 그 ‘회사’라는 집단이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초고위의 기술력과 재력을 지녔을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그 조사 대상이 될 곳들도 모두 일정 이상의 규모를 지닌 곳밖에 없다.

당연히 그런 곳들의 보안은 빌헬름의 상상이상으로 뛰어났다.

그렇게 고생하길 몇 번. 처음 어중간한 몇 곳은 성공적으로 털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웨인 시에서도 손에 꼽는 초거대 기업이자, 빌헬름이 ‘회사’가 아닐까 의심하고 있는 유력한 의심지 중 하나.

‘츠미모토 그룹’

츠미모토 그룹의 보안은 웨인 시 중심부의 본사가 아니라, 도시 중심지에서 한참은 벗어난 외부 지사였음에도 그동안 그가 거쳐 왔던 곳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빌헬름이 츠미모토 그룹 53구역 지상 건물 외부의 회로를 까고 내부에 접속하길 불과 이십여 분.

독립 서버의 데이터를 복사하던 그는 어느 순간 츠미모토의 내부 보안팀에서 그의 침투를 알아챘다는 것을 깨닫고 곧장 자리를 피했다.

지금까지 기술적으로는 단 한번도 들키지 않은 그의 작업이 불과 이십여 분 만에 발각된 것이다!

원하던 독립 서버의 데이터는 상당수 캐내는 데 성공했지만, 정말로 위험한 상황.

츠미모토의 보안팀은 그의 침투를 알아챈 즉시 보안 요원들을 출동시켰고, 순식간에 사위가 그들에 의해 통제됐다.

그리고 빌헬름은 허겁지겁 도망쳐 이렇게 허름하고 비좁은 창고에 숨어들었다.

그것이 빌헬름이 지저분한 상자들 사이에서 처량하게도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숨어있는 까닭이었다.

“아…. 제발.”

몸을 웅크리고 먼지를 뒤집어 쓴 빌헬름이 애쉬의 위치를 보여주는 홀로그램 지도를 바라보며 빌었다. 애쉬의 위치는 실시간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츠미모토 보안 요원들의 수색망도 점차 좁아지고 있을 것이었다.

과연 애쉬가 도착할 때까지 안 들키고 계속 숨어있을 수 있을까?

이 창고의 문에는 암호키 하나가 달려있긴 했지만, 그건 다급한 상태의 빌헬름도 몇 초만에 뚫을 수 있을 정도로 저급한 물건.

상대방도 마음먹는 순간 순식간에 해체하고 들어올 수 있다.

그는 전투요원이 아니라 일개 해커에 불과했다. 애쉬가 도착하기 전에 발각된다면 적이 단 한 명일 지라도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끌려갈 것이다.

하물며 하나도 아니고 수십이 돌아다니는 지금은 어떻겠는가.

‘진짜 인생 종칠 수도 있겠다….’

빌헬름은 끔찍한 상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잡히면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츠미모토 정도 되는 초거대 기업의 힘이라면 슬럼의 해커 하나 흔적도 없이 묻어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살아서 돌아오기는커녕 끔찍하게 죽지 않기만을 바라야 하는 상황.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점점 빌헬름의 긴장감도 커졌다. 어쩐지 주변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도 많아진 것 같다.

­ 대체 어디……!

­ 찾으면 가만…….

뚜벅뚜벅. 비교적 얇은 문 너머로 보안 요원들의 구두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잔뜩 벼르고 있는 목소리는 그가 숨어있는 창고에서 멀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까워지고 있다.

빌헬름은 숨소리조차 죽인 채 시야 구석 지도에 찍히는 애쉬의 위치를 확인했다.

구원을 요청한 지 시간이 제법 지난 지금. 애쉬의 위치는 현재 빌헬름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찍히고 있었다.

다만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인지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이 아저씨는 왜 멈춰 있는 거야!’

빌헬름은 다른 곳으로 돌지 않고 계속해서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듣고는 속으로 외쳤다.

일 분 정도 제자리에 멈춘 걸 보면 혹시 츠미모토의 보안 요원들과 맞닥뜨린 걸까?

뭔가 다른 문제가 생긴 것이든, 보안 요원들에게 제지당한 것이든 지금의 그에게는 최악이었다.

물론 빌헬름은 애쉬의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뚫고 들어올 것을 믿었지만, 그 전에 당하는 것까지는 막을 방법이 없지 않은가.

­ 가능하면 생포, 도주 가능성이 보이면 사살도 괜찮다고 하니까 일단 보이면 다리든 몸이든 총부터 갈겨.

­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히익….”

빌헬름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기겁하곤 숨을 더욱 죽였다. 상대방은 자신이 보이기만 하면 당장 쏴죽일 생각 만만인 것 같다.

‘제발 그냥 지나가라.’

발걸음과 목소리가 창고 앞에 다다르자 빌헬름은 곧장 단말기의 화면을 끄고 고개를 박았다.

저들이 혹시라도 여길 확인하면 그 순간이 생의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

보안 요원들의 발소리가 창고의 입구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빌헬름은 자신의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쿵쾅 뛰는 것을 느꼈다.

바깥까지 들리지는 않을지 걱정될 정도로.

­ 하, 망할. 곧 퇴근 시간인데.

­ 뚜벅. 뚜벅.

느릿한 구두 소리가 천천히 움직인다.

그리고 마침내…….

­ 어이, 아직도 못 찾았어?

­ 흔적도 안 보이는데. 그쪽은?

­ 이쪽도.

뚜벅, 뚜벅. 다른 요원의 부름과 함께 빌헬름이 숨은 창고까지 입구까지 다가왔던 요원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지자 빌헬름은 깊디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계절은 가로수에 낙엽이 지는 가을.

빌헬름은 바깥보다 비교적 서늘한 창고임에도 불구하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인생을 건 숨바꼭질의 긴장감은 심장을 쥐었다 폈다, 들었다 놨다 하며 갖고 노는 것 같았다.

“진짜 죽는 줄 알았네…. 그나저나 이 아저씨는 왜 안 움직여.”

가슴을 쓸어내린 빌헬름이 다시 지도를 확인하곤 중얼거렸다.

여전히 애쉬의 위치를 나타내는 붉은 점은 움직일 생각을 않았다. 진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빌헬름이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 쿵!!

“……!!”

그가 숨어있는 창고의 문이 크게 울렸다. 순간 빌헬름은 간이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 어떻게. 발소리도 없었는데…!’

고개를 다시 박았다. 잠시 긴장을 풀었던 심장이 다시 터질 듯 뛰었다.

‘제발 그냥 지나가줘 제발….’

빌헬름이 속으로 빌었다. 그러나 이번 술래는 그냥 지나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 쿵쿵쿵!

다시 한번 바깥에서 문을 두드렸다. 그에 빌헬름이 직감했다.

상대방은 자신이 여기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좆됐다.’

결국 빌헬름은 품속에서 작은 권총을 한 정 꺼냈다. 호신용으로 들고 다니는 물건이었다.

이제 더 이상 피할 곳은 없다. 그렇다면 맞서 싸워야 했다.

빌헬름이 떨리는 손으로 입구를 향해 총을 겨눴다. 지금 당장 문을 강제로 열거나 잠금을 푸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상대방이 들어오면 바로 쏠 생각이었다.

그럼 상대방을 제대로 맞추든 못 맞추든 사격 소리를 들은 보안 요원들이 모여들 것이고, 그 뒤에는…….

“씨발….”

답도 없는 상상에 빌헬름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총을 겨눈 상태에서도 필사적으로 애쉬의 위치를 확인해보지만 여전히 제자리.

애쉬도 제자리에 멈춰 있는 이상 여기서 게임오버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호위라도 고용하는 거였는데….’

빌헬름이 뒤늦게 후회했다. 그러나 후회는 언제 해도 늦다고 하던가.

그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절망하여 떨리는 손으로 총을 겨누고 있길 몇 초.

­ 안에 없냐?

…이상하네, 여기라고 찍히는데.

자신이 잘못 찾은 건 아닌지 헷갈려하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

문 밖에서 들려온 그 목소리는 빌헬름의 긴장이 탁 풀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챈 빌헬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 있어요! 여기 있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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