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54화 (54/230)

〈 54화 〉 3. 빌헬름 메이젤(막간)

* * *

­ 우적우적, 꿀꺽.

“크으, 아니, 아무튼 저 진짜 죽을 뻔 했다니까요.”

53구역 어느 패스트푸드점. 열심히 씹던 햄버거를 꿀꺽 삼키곤 탄산음료를 빨대로 쪼옥 마신 빌헬름이 이제는 긴박감 하나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그에 애쉬가 타박했다.

“그래서 내가 미리 위험할 거라고 말했잖아, 멍청아.”

“멍청이라니, 도와드리려다가 이렇게 된 건데….”

“됐고, 오늘 수고비는 의뢰금에서 깐다.”

“네? 아, 진짜 너무하시네.”

빌헬름은 자신의 말과 달리 서운해보이지도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분명 창고인지 뭔지 모를 곳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나올 때까지만 해도 죽을상이던 녀석이었지만, 지금은 얼마나 지났다고 몇 년 지난 일이라도 얘기하듯 떠들어댄다.

애쉬가 빌헬름을 찾았을 때는 정말 위험한 상태였다. 사방에는 검은 양복의 보안 요원들이 깔려있질 않나, 대형 스캐너를 가져와 잠긴 건물들을 투사해서 살피고 있질 않나.

몇 시간 동안 자신들의 서버를 해킹한 빌헬름을 찾지 못한 요원들이 공권력까지 불러들이려고 하던 상황이다.

다행히 애쉬가 먼저 빌헬름을 찾아 데리고 빠져나왔지만, 자칫 잘못하면 제대로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아무리 도시 외곽에 위치한 지사라고 해도 츠미모토만한 초거대 기업이 경찰을 호출한다면 일반 경찰이 아니라 특공대 수준의 정예들이 몰려들었을 것이다.

잘못하면 뉴스에서나 보던 대 테러용 기갑병기 따위를 상대로 칼부림을 해야 했을 수도 있었다.

당연히 빌헬름 자신도 그런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이렇게 뻔뻔한 얼굴을 보면 대단하긴 한 놈이다.

‘에리히 영감이 날 볼 때 이런 기분이었나.’

빌헬름을 바라보며 에리히 슈만과의 알 수 없는 공감을 느낀 애쉬였다.

“근데 지도상 위치는 좀 떨어져 있던 걸 보면 휴대폰도 두고 오신 것 같은데, 저는 어떻게 찾으신 거예요?”

애쉬가 에리히 영감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사이 햄버거를 모두 해치우고 감자튀김을 입에 가져가던 빌헬름이 물었다.

애쉬는 그 흔한 베이스 신경 인터페이스조차 이식하지 않은 순수 인간이었다.

빌헬름도 그것을 알았기에 애쉬의 위치 추적은 항상 그의 개인 휴대폰으로 하고 있었는데, 휴대폰을 두고 움직였다면 휴대폰의 메시지로 실시간 전송되는 빌헬름 자신의 위치를 알 방법이 없지 않았겠는가.

빌헬름의 질문에 애쉬가 간단히 대답했다.

“내껀 홀로그램 해상도가 안 좋아서 좀 빌렸지.”

“그, 옆에 앉으신 분한테요?”

“어.”

빌헬름이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애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옆자리에는 아까부터 턱을 괴고 빌헬름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는 대단한 미인, 레이라 플로리스가 있었다.

“…….”

“하하….”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친 빌헬름은 괜히 멋쩍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그녀가 미인이라서 쑥스러움을 탄다거나 하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보들보들한 감정과는 거리가 먼, 두려움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저만한 미인은 길을 가다 스쳐지나가도 쉽게 잊히지 않기 마련이었는데, 심지어 그 정체가 거대 갱단의 보스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대체 ‘뱀파이어’의 보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외부 활동이 많지 않은 레이라였으나, 슬럼에서 정보상의 일도 하는 빌헬름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빌헬름도 남자인 만큼 미인은 좋아했지만, 그 미인의 정체가 거대 갱단의 보스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저런 가벼운 시선조차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점점 속이 아파올 정도로.

자칫 저 여자한테 잘못 보이면 어느 날 그는 눈을 뜨지 못할 지도 모른다.

애쉬는 워낙 두려울 게 없는 사람이라 편하게 대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빌헬름은 전혀 아니었다.

그가 레이라의 시선에 부담감을 점점 더하고 있을 때, 애쉬가 그녀의 시선을 알아채곤 물었다.

“저 녀석은 왜 그렇게 쳐다봐?”

“뛰어난 해커라더니, 생각보다 멀쩡해서.”

애쉬의 질문에 레이라가 간단히 대답했다.

‘회사’를 찾는 일에 협력 중인 해커를 도우러 간다는 말에 궁금증을 갖고 함께 온 그녀였지만, 빌헬름을 보고는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애쉬에게 들으며 상상했던 이미지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많이 쳐줘야 20대 초반. 좀 어리게 보면 10대 후반으로까지도 볼 수 있을 앳된 외모에 뿔테 안경을 쓰고 있는 검은 머리칼, 눈동자의 청년.

햇볕 한 번 받지 않은 것처럼 창백한 피부는 그녀의 상상대로였지만, 그 외에는 전부 예상 밖이었다.

해커라고 하면 보통 더 음침하고 삐쩍 마르거나, 완전히 뚱뚱한 사람을 떠올리기 마련이었으나, 빌헬름은 적당한 체형에 나름 귀염상의 소유자.

솔직히 겉모습만 보면 뛰어난 해커라는 느낌보다는 어디 대학에 다니고 있을 학생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그런 레이라의 대답을 들은 빌헬름이 중얼거렸다.

“아니, 생각보다 멀쩡하다니….”

대체 그와 다른 해커들의 이미지를 어떻게 잡고 있었단 말인가.

겁 때문에 차마 크게는 말하지 못하고 혼자 투덜거린다.

밝은 귀로 그것을 들은 애쉬가 픽 웃으며 말했다.

“그게 왜. 칭찬 같은데.”

“…그게 칭찬이라구요?”

“해커들이 전부 음침한 방구석 폐인인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그렇잖아. 너는 아니라는데 고맙게 생각해야지.”

“해커들이……. 아니, 아니에요.”

애쉬의 일반화에 빌헬름이 무어라 말 하려다 그것을 삼켰다. 괴물 같은 애쉬나 거대 갱단의 보스인 레이라에게 대놓고 불만을 내비칠 용기는 없었고, 어차피 말해봐야 생각이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빌헬름의 반응을 보며 웃은 애쉬가 레이라에게 말했다.

“어려 보여도 실력은 있는 녀석이니까 이번 일에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래?”

“적어도 내가 아는 해커들 중에는 최고야.”

“크흠흠.”

앞에선 놀리는 듯 하다가도 시작된 애쉬의 치사에 빌헬름이 작게 헛기침하며 시선을 내렸다.

애쉬의 말은 전부 사실이긴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칭찬하면 아무리 뻔뻔한 빌헬름이라도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입에 감자튀김을 밀어 넣는 빌헬름을 잠시 바라보던 레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츠미모토를 건든 것 같던데, 당장 잡히지 않았다는 것만 봐도 실력이 있는 건 알겠어.”

츠미모토 그룹은 웨인 시 전체를 뒤져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초거대 기업이다. 어중간한 실력의 해커였다면 그 보안 외벽을 뚫기도 전에 머리통에 바람구멍이 나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을 것이다.

당장 여기에 멀쩡하게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실력을 증명했다.

그런 레이라의 말을 듣고서야 빌헬름이 침투하던 곳이 츠미모토라는 것을 알아챈 애쉬가 물었다.

“츠미모토? 거기가 ‘회사’야?”

“아뇨, 그냥 의심되는 후보 중 하나에요.”

애쉬의 물음에 빌헬름이 대답했다. 츠미모토는 어디까지나 의심되는 곳 중 하나일 뿐이지,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빌헬름은 계속 말하라는 듯이 바라보는 애쉬에게 설명했다.

“제가 지금까지 스물 좀 넘는 기업들의 외부 지사를 털어봤는데, 아직까지 ‘회사’일 거라고 의심되는 곳은 없었어요. 그냥 평범한 기업들이 대부분이었죠.”

당장 서버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보이는 비리들이 몇 있긴 했지만, 그건 빌헬름이 찾아 헤매던 ‘회사’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다.

그가 찾으려는 것은 그 회사들의 더러운 짓거리가 아니라‘회사’의 존재였으니까.

빌헬름이 계속했다.

“사실 저도 그런 곳에서는 처음부터 기대도 안 했어요.”

츠미모토 이전에 털었던 곳들은 사실 완전한 대기업이라고 하기도 뭐한, 중견기업과 대기업의 사이에 위치한 곳들이었다.

겨우 그 정도 규모의 기업이 애쉬에게 들은 것들을 만들거나 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그저 그들 중 ‘회사’라는 집단에 속해있는 기업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털어본 것뿐.

그리고 털어보니 나온 결과는 빌헬름의 예상대로였다. 그 중 ‘회사’나 ‘회사’에 속해있을 것이라 의심되는 곳은 없었다.

“사실 그런 곳들도 본사를 털어보지 않는 이상 확신할 수 없는 거긴 한데, 적어도 제가 보기엔 특별한 점은 없었어요.”

‘회사’는 슬럼에서 일을 벌였으니 그곳과 관계가 있다면 슬럼에서 가장 가까운 외곽 지사들에 그 흔적이 보일 것이었으나, 그동안 털었던 곳들에서는 아무런 이상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한 마디로 별다른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중견기업들을 모조리 털어본 빌헬름은 다음 타겟으로 츠미모토를 잡았고, 그 결과 오늘의 일이 벌어졌다.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쉽게 뚫고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좀 바보 같긴 했어요.”

좀 더 제대로 준비할 걸.

빌헬름이 작게 웃으며 얘기했다.

지금이야 이미 지난 일이라 이렇게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애쉬가 다른 일 때문에 전화를 받지 못했거나 했다면 정말 이승을 하직할 수도 있었다.

자조인지, 농담인지 모를 소릴 하며 웃는 빌헬름에게 애쉬가 물었다.

“제대로 털긴 했어?”

“중간에 걸려서 완전히는 못 털었어요. 한… 60%?”

“그래도 다행이네. 수고한 결과물은 있어서.”

“진짜 다행이죠.”

빌헬름이 동의했다. 목숨을 건 숨바꼭질을 하다가 진짜 죽을 지경이었는데, 이것도 못 털었다면 억울하지 않았겠는가.

빌헬름은 단말기를 전자 테이블에 연결하며 말했다.

“이게 오늘 구해온 그거예요.”

직후 테이블의 홀로그램 패널을 통해 츠미모토의 독립 서버에서 받아온 정보들이 떠올랐다. 떠오른 홀로그램 창에는 복잡한 숫자와 글자 등이 가득했다.

그 조심성 없는 행동을 본 레이라가 급히 지적했다.

“잠깐, 이런 곳에서 펼쳐도 되는 정보야?”

현재 셋이 있는 패스트푸드점은 오가는 사람도 없이 무인 계산대의 저급AI만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내부에는 cctv가 존재했다.

녹화된 것을 누군가. 혹시라도 츠미모토 측에서 확인하면 어쩔 것인가.

애쉬와 레이라, 빌헬름의 얼굴 모두가 수배서에 오르는 것은 순식간일 테고, 그러면 그들 모두 앞으로의 인생이 평탄치 못할 것이었다.

레이라의 타당한 지적에 빌헬름은 대답 대신 테이블 밑에 내리고 있던 왼손을 슬쩍 들어 올려 보였다.

그의 손목에서는 한 줄기의 선이 늘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일행이 위치한 전자 테이블까지 이어져서 현재 전자 테이블에는 단말기의 연결선 외에도 빌헬름의 신경 인터페이스 단자가 함께 꽂혀 있었다.

빌헬름이 레이라를 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당연히 cctv라면 진작 처리해 뒀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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