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55화 (55/230)

〈 55화 〉 3. 빌헬름 메이젤(막간)

* * *

“이런 걸 보면 알 수 있단 말이지.”

“네. 그런데 워낙 양이 많은데다 마구잡이로 받아오다보니 분류하고 확인하는데 하루 정도는 시간을 투자해야 할 걸요.”

“하루나 걸려?”

“츠미모토가 얼마나 큰 기업인데요. 하루 만에 끝나는 것도 다행이죠.”

심지어 그렇게 하루를 투자해도 구해오지 못한 40%로 인해 맞는지 아닌지 구분이 힘들 수 있다.

그렇게 설명하는 빌헬름과 듣고 있는 애쉬.

레이라는 놀라고 있는 자신이 이상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둘을 바라봤다.

‘대체 언제?’

애쉬와 빌헬름, 레이라 셋의 일행이 이 패스트푸드점에 도착한 지는 불과 십여 분 정도가 지났을 뿐이다.

게다가 와서 한 행동이라곤 빌헬름의 식사를 구경하며 그가 구원을 요청한 사정을 듣고 있던 것이 전부.

작업에 집중하는 기색이라곤 보이지도 않았는데, 언제 이곳의 보안을 뚫었단 말인가.

레이라, 그녀도 넷 워커(Net Walker)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은 갖추고 있었기에 눈앞의 빌헬름이 아무렇지 않게 보인 해킹이라는 게 얼마나 복잡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외부 지사라지만 그 츠미모토 그룹의 보안을 뚫었다는 얘기만 들어도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는데, 지금 또 이렇게 아무런 전조도 해치우는 것을 보면 그냥 뛰어나다는 말로는 부족한 실력자 같다.

‘회사’와 관련된 일 이전에 일단 친분을 쌓아두면 좋을 인재. 아직 어리기까지 하니 더 발전할 가능성도 남아있었다.

“만약 여기도 아니면 뭐, 좀 더 알아봐야죠.”

“다음에 또 이러면 안 도와준다.”

“그래서 다음엔 저도 준비 좀 제대로 하고 가려고요.”

이번엔 마음만 앞서서 이렇게 됐지만, 다음번엔 겨우 외부 지사 정도에서 걸리지 않겠다.

씩 웃으며 당당하게 재범을 예고하는 앳된 청년.

친분을 쌓아두면 좋을 인재라는 생각이 든 레이라가 그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이름이 빌헬름 메이젤이라고 했던가?”

“네? 아, 네….”

애쉬와 대화 중 갑자기 레이라가 말을 걸자 당황한 듯 움찔, 하고 반응하는 빌헬름.

몇 번 볼 일이 없을 거라 여겨 아직 통성명도 않은 둘이었지만, 빌헬름은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듯 첫 만남부터 저런 느낌이었다.

굳이 말을 걸지도 않고, 최대한 시선을 피하려 한다.

그것을 분명히 느낀 레이라였지만, 친분을 쌓아두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내린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거리감이 있든 없든 업무적으로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을 테니까.

레이라는 우물쭈물하는 빌헬름에게 먼저 말했다.

“연락처 좀 주겠어?”

“어…. 연락처를요?”

“응.”

“그건 왜…요?”

빌헬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와, 아니, 정확히는 그녀를 비롯한 갱과 얽히고 싶지 않다는 듯 명백히 꺼리는 태도.

다른 갱단에 비해 훨씬 일반인 친화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뱀파이어’였지만, 외부인들 눈에는 여전히 다른 갱들과 비슷하게 비치는 모양이다.

레이라는 자신이 그토록 탈피하고자 했던 갱단 = 쓰레기통의 이미지를 벗어나긴 아직 멀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며 대답했다.

“나중에 일이라도 같이 하고 싶어서.”

“아….”

그런 그녀의 대답을 들은 빌헬름이 고민했다.

‘저쪽이랑은 얽히기 싫은데….’

빌헬름은 갱, 그리고 갱단이라는 것들을 싫어했다.

그냥 싫어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 갱단에 원한이 있어 무너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면 무급으로 도와줄 생각이 조금은 있을 정도로.

그의 스물 남짓한 짧은 삶에서도 갱이라는 것들한테 당한 게 한둘이 아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레이라 플로리스도 결국에는 갱이었다. 그것도 밑에는 수천에 달하는 무법자들을 두고 있는 갱단의 보스.

그녀가 이끄는 ‘뱀파이어’가 비교적 온건한 성향의 갱단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생리적인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절하자니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아, 근데 또 애쉬 씨랑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

그녀가 애쉬와 친분이 꽤나 깊어 보이는 것이 문제였다.

애쉬는 오늘을 뿐 아니라 이전에도 몇 번이나 빌헬름의 목숨을 구해준 장본인이었으며, 과거 그를 노예처럼 부리던 ‘오마르의 망치’를 괴멸시켜준 은인이었다.

그런 은인의 지인이라면 이렇게 직접 부탁하는 것을 거절하기가 뭐해진다.

그래서 빌헬름은 잠시 대답하길 미루고 간절한 눈빛으로 애쉬를 바라봤다.

‘제발 제 대신 거절 좀 해주세요.’

애쉬도 빌헬름이 갱을 혐오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눈빛으로 마음을 전하면 이 곤란한 상황에서 도와주지 않을까?

빌헬름은 자신과 애쉬 사이에 쌓인 유대감을 믿으며 마음을 전했지만…….

“괜찮네. 이 녀석 어지간한 건 다 할 수 있으니까 잘 해봐. 너도 필요할 때면 저쪽에 요청하고.”

‘아, 망했다.’

애쉬의 입에서 나온 말에 빌헬름이 고개를 뚝 떨궜다.

대신 거절해주길 바라는 그의 눈빛을 보지 못한 건지, 아니면 알고도 그러는 건지 애쉬의 입에서 오히려 둘의 협업을 거드는 말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어때?”

그런 애쉬의 말을 들은 레이라가 다시 빌헬름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에겐 그 눈빛이 설마 거절하진 않겠지? 하고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마지막 동아줄조차 놓친 빌헬름이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네…. 그럼 연락처 교환이나 할까요….”

“그래.”

“인터페이스는 삽입 하셨죠?”

힘이 축 빠진 빌헬름의 목소리에 레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빌헬름이 늘어진 채 손목을 내밀었고, 레이라가 거기에 잠시 자신의 손목을 맞댔다 땠다.

[타인의 고유 번호가 등록 되었습니다.]

[CDP83619275 ­ 레이라 플로리스]

빌레이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연락처 교환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일련의 과정을 구경하던 애쉬는 새삼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둘을 바라봤다.

“언제 봐도 신기하네, 그 신경 인터페이스라는 건. 그렇게 하면 이제 연락도 되는 거지?”

“…네.”

빌헬름이 애쉬의 물음에 대답했다.

가장 기본적인 신경 인터페이스는 기기를 총 두 곳에 삽입했다. 중추신경계와 맞닿은 목 뒤, 그리고 사용편리성을 위한 손목.

방금 레이라와 빌헬름이 잠깐 손목을 맞댄 행위는 그곳에 위치한 단말을 통한 일종의 연락처 교환이었다.

그 간단한 행위만으로 마음만 먹으면 아무런 보조 기기 없이 연락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베이스도 삽입하지 않은 순수주의자였지.”

레이라가 신기해하는 애쉬에게 말했다. 애쉬와 잠자리를 가졌던 레이라는 그가 신체에 손을 전혀 대지 않은, 심지어는 그 흔한 B(Base) 타입 신경 인터페이스조차 삽입하지 않은 순수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직접 보았던 그의 뒷덜미에는 아무런 인터페이스의 흔적이 없었으니까.

아무리 고위 시술을 받더라도 신경 인터페이스는 삽입하는 순간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뭐? 난 순수주의자는 아닌데.”

“…아니었어?”

애쉬가 자신을 순수 주의자라 지칭하는 말을 부정하자 레이라가 물었다.

그녀는 여태껏 애쉬가 몸을 과학으로 바꾸는 행위를 혐오하는 이들, 예를 들면 강화 시술이나 사이보그 개조 수술, 심지어는 간단한 신경 인터페이스 삽입까지도 거부하고 순수한 인간으로 남기를 선택한 순수주의자 중 하나인 줄만 알았다.

그게 아니라면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간단한 시술 하나로 삶의 질이 달라지는 신경 인터페이스 삽입을 아직까지 하지 않은 게 이상하지 않은가.

정말 값비싸고 다양한 기능을 달고 있는 신경 인터페이스는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 뒷덜미와 손목에 삽입할 인터페이스 단말기 외에도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망막에 홀로그램을 띄울 인공 안구, 외부 장치를 연결할 단자가 장착된 신체 개조 파츠 등.

레이라 자신도 몸을 완전히 기계로 바꾸는 것에는 거부감을 갖고 있었지만 가장 기본적인 신경 인터페이스 정도는 사용하고 있었다. 아마 그녀 외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었다.

“그런데 신경 인터페이스는 왜 안 쓰는 거야?”

“그냥 익숙하지 않아서.”

레이라의 오해 섞인 질문에 애쉬가 대답했다.

그는 레이라의 생각처럼 사이보그나 신체 개조 등을 막 혐오하거나 하는 편은 아니었다.

신체 개조 기술이 없는 곳에서 살다 몇 년 전부터 이 게임 속 세상에 떨어졌기에 자신의 몸을 기계화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있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타인에게 까지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슬럼의 잡다한 갱들이 그렇듯 무분별하고 지저분한 신체 개조는 물론 싫어한다. 그건 그냥 외관 자체가 혐오스러웠으니까.

하지만 이전에 봤던 땅거미 부대처럼 제대로 된 사이보그들은 오히려 흥미를 갖고 보는 편이었다.

변신, 합체, 로봇 등등 이런 것도 남자의 로망 중 하나 아니겠는가.

특히나 레이라가 말한 순수주의자는 특정 사상을 지닌 이들 중에서도 유난히 그 성향이 극단적인 이들.

애쉬는 가끔 뉴스에서 떠들어댔던 폭력 시위 등의 주체가 순수주의자들이라던 것을 떠올렸다.

“그럼 여태껏 날 그 테러리스트들이랑 동급으로 보고 있던 거야? 실망인데.”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순수주의 비슷한 사상을 갖고 있는 줄 알았어.”

장난식으로 실망했다는 뉘앙스를 표한 애쉬의 말에 레이라가 솔직히 대답했다.

요즘 세상에 돈이 없는 빈민이 아니고서야 신경 인터페이스 하나 삽입하지 않은 이들은 대부분 순수주의자들이었으니까.

아니, 그 순수주의자들 중에서도 신경 인터페이스만큼은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을 지경이었다.

“저도 처음엔 순수주의자가 아닌가 했는데, 애쉬 씨가 진짜 순수주의자였으면 저랑 같이 일을 할 리가 없잖아요.”

애쉬와 레이라의 대화에 뒤늦게 빌헬름이 끼어들었다.

빌헬름은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는데, 그 자신의 말대로 빌헬름은 안구를 비롯한 팔과 기타 몇 곳을 개조한 반쪽짜리 사이보그다.

기능을 위해 신체를 개조한 빌헬름의 겉모습은 척 보기만 해도 감출 수 없는 특이성이 보였다.

당장 안구만 해도 뭔가 보고 있는지 눈동자에 홀로그램이 비쳤고, 목 주변에는 신체 말단까지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패스가 쭉 펼쳐져 있다.

“그 멍청한 반지성주의자들이 애쉬 씨 같은 힘을 갖고 있었으면 전 이미 이 세상에 없었을 걸요.”

“…그렇긴 해.”

그 말은 레이라도 인정했다. 그 치들이 하는 짓을 보고 있자면 힘이 생겼을 때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을 신체 개조자라는 이유만으로 박살내도 이상할 게 없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