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4. 유성 그룹(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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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물음에 에아임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유진혁 회장님은 이전의 후계 경쟁에서 친족 둘을 묻고 자리에 오르신 분입니다. 본인의 직계들인 만큼 어느 정도의 정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분의 도움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지요.”
“흠….”
“이쪽에서는 제법 유명한 얘기입니다. 유성 그룹의 후계 경쟁은요.”
후계 경쟁 대대로 하나 이상은 반드시 사고사로 떠나보냈다는 것이 에아임의 설명이었다. 당연히 말 그대로 사고사는 아닐 것이다. 대충 위장했겠지.
“그러니까 인간 숫자도 한참 딸리고, 사내 위치도 딸리는데다 최우선 목표로 찍힌 아가씨를 나보고 지켜달라는 거지?”
“……예.”
“필사적일만도 하네.”
애쉬의 말에 에아임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이렇게 늘어놓으니 정말 암담한 모양이었다. 애쉬는 그 모습에 픽 웃었다.
‘괜찮을 것 같긴 해.’
일단 일이 재밌어 보인다.
지켜야 할 호위 대상의 외모도 취향이었고, 애쉬가 유성 그룹만 한 대기업의 기술력이 적용된 사이보그나 강화인간들과 마주칠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들을 직접 보고 겪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유성 그룹 내부에 직접 들어간다면 ‘회사’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을 것 아닌가.
여러모로 조건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가능하다면 당장 받아들이고 싶을 정도로.
그러나 애쉬에겐 무엇보다 큰 결격 사유가 하나 있었다.
“근데 어쩌냐? 난 신분이 없어서 도시 안쪽에는 발을 들이지도 못하는데.”
다른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이게 가장 큰일이었다.
웨인 시는 시 전체를 73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관리했으며, 도시의 중심인 1구역으로 갈수록 보안도 철저해졌다.
15구역 안쪽은 일반 서민들이 사는 구역을 지나 최소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지역이었고, 이번 의뢰 대상자가 거주하는 1~3 구역은 말 그대로 천상계라는 말이 어울린다.
시 전체를 주름잡는 대기업의 재벌, 임원들, 시 의원들까지.
그런 이들이 많이 사는 곳이니만큼 치안의 빡빡함도 정도가 달랐다. 몰래 들어간다고 해도 몇 분 지나지 않아 벌떼처럼 날아드는 치안 드론들과 몰려든 경찰, 무인병기들에 의해 쫓기게 될 것이다.
예전에 애쉬가 도시 중심부를 구경하려다 낭패를 본 곳도 겨우 20구역 정도였다.
그런데 호위 대상의 거주지인 1~2 구역에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애쉬의 문제점은 에아임도 미리 생각해뒀던 것이었다.
“빈민가에 신분이 존재하지 않은 이들이 제법 있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미리 그 방법도 준비해뒀죠.”
“오, 진짜?”
“예.”
그걸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애쉬의 기대에 찬 눈빛에 에아임은 서류가방에서 묵빛 팔찌를 하나 꺼내들어 건넸고, 애쉬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별다른 문양이 없는 심플한 디자인. 안쪽까지 꽉 찬 듯 묵직하다.
“이게 신분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예. 그걸 차고 있으면 팔찌에서 나오는 신호가 저급 AI 정도의 탐색은 피할 수 있게 해줄 겁니다. 아직 추가 제작 결정도 나지 않은 물건인데, 그룹의 실험실에서 어렵게 구해온 겁니다.”
“오….”
“물론, 경찰의 검문에 직접 걸리거나 하면 방법이 없겠습니다만….”
이후 에아임이 덧붙인 말은 애쉬의 귓가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쪽 분야에 문외한이다시피 한 애쉬는 그게 무슨 원리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정말 대단한 물건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기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이 팔찌 하나면 신분이 없는 그라도 도시 중심부를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좋네.”
솔직히 처음에는 그냥 거절해버릴까 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이것을 보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런 것까지 받을 수 있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도시 중심부의 높으신 분들이 갖고 노는 로봇 장난감들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호위 대상도 미인이라 지킬 맛이 날 것 같았다.
애쉬는 혹여나 거절당할까 자신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에아임에게 마지막으로 하나 물었다.
“호위 대상의 성격은?”
“아, 아직 어리시지만 굉장히 성숙하신 편입니다. 걱정하시는 것처럼 폐를 끼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단 거지.”
“예.”
애쉬가 걱정하던 마지막 사항을 깔끔하게 해결해준 에아임. 애쉬는 그 대답을 듣고 결정을 내렸다.
“좋아. 까짓 거, 한번 해보지.”
“저, 정말입니까?”
“어.”
에아임은 어쩌면 자살행위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의뢰를 받아줬다는 것에 놀라 되물었고, 애쉬는 다시 한번 확답을 줬다. 그의 대답에 에아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른 것 때문이 아니었다. 안도감에 북받쳐 오르는 감정 때문이었다.
“크흑, 정말…. 정말 다행입니다. 이번에도 실패했다면…….”
애쉬는 고개 숙인 에아임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이곳저곳에서 차이며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에아임도 감정을 추스를 즈음. 애쉬는 문득 떠오르는 것을 물었다.
“아, 그런데 초과달성 수당 같은 건 없나?”
“예, 훌쩍, 예?”
애쉬의 갑작스런 물음에 울먹이던 에아임이 반응했다. 애쉬는 자신을 바라보는 에아임에게 대답했다.
“그 아가씨, 지키는 걸 넘어서 회장으로 만들어주면 보상 더 없냐고.”
예를 들면 뭐, 신분 생성이라던가.
“그,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애쉬의 말에 에아임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울먹이던 그의 목소리는 전에 없던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아가씨가 회장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 그게 가능하다면 더 이상의 결과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애쉬는 설렌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에아임에게 담담히 대답했다.
“그거야 모르지. 아는 게 없는데.”
“아….”
그렇다. 상대방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무어라 확답을 내놓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확신을 주는 것은 사기꾼이나 허풍쟁이밖에 없었다.
애쉬는 에아임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무슨 대기업 엘리트라고 하더니 이상한 걸 다 묻는다는 듯이.
어디 슬럼의 갱단 같은 수준이라면 굳이 보지 않고도 장담할 수 있었겠지만, 유성은 도시 전체에서도 손에 꼽는 대기업이었다.
에아임도 반사적으로 그것이 가능하겠냐고 물었던 자신이 창피해 얼굴을 붉혔다.
애쉬의 태도가 말하듯 당연한 것이었다. 애쉬는 이쪽도, 저쪽도 잘 모르는데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 리 없다.
다만 에아임은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만약, 정말로 만약에. 그가 모시는 아가씨께서 후계의 자리에 오른다면….
“아가씨께서 회장이 되신다면, 한 사람의 신분을 만들어주는 것 정도는 손쉬울 겁니다.”
유성 그룹이 지닌 힘은 시 정부에까지 큰 영향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막대했다. 신분 정도야 열이든 백이든 만들어 줄 수 있을 정도로.
그런 확신이 담긴 에아임의 대답에 애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잘 해보자고, 아저씨.”
“…예,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애쉬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에아임은 그것을 맞잡아 악수했다.
아직 어떤 것도 보여주지 않은 애쉬였으나, 에아임은 그것만으로도 왠지 든든해지는 것 같았다.
“계약 조건 조율은?”
“의뢰 대금을 지불하시는 분이 아가씨이시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힘들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뵈고 하시는 게….”
에아임이 그렇게 대답하며 애쉬의 눈치를 봤다. 혹시라도 마음이 변할까 그런 것 같은데, 애쉬는 마음을 한번 정하면 바꾸는 법이 좀처럼 없었다.
“그래? 그럼 바로 가자.”
“…예?”
“급한 일 아니야? 뭐 저번 달에 시작했다더니 아직은 안 급한가보네.”
애쉬의 마음이 변할까 가슴 졸이던 에아임이었지만, 오히려 돌아온 그의 말에 당황하고 말았다.
의뢰를 받기로 결정 내리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행동이 너무 빠른 게 아닌가.
“그래도 준비는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준비? 뭐, 따로 챙길 게 있나?”
에아임의 물음에 애쉬가 잠시 생각했다.
에리히 대장간에서 받아온 검 한 자루는 벽에 걸려있으니 그냥 들고 가면 된다. 그 외에는…….
“아.”
생각해던 애쉬가 챙겨야 할 것을 떠올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마워. 깜빡할 뻔했는데 덕분에 기억했네.”
“아, 예.”
에아임에게 인사하고 일어선 애쉬는 잠시 위층에 올라갔다 다시 내려왔다.
여전히 그의 주변에 옷가지를 담은 짐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대체 뭘하고 내려온 걸까.
에아임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애쉬는 샤인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건넸다.
손가락 두어 개를 합친 것 만한 얇은 무언가. 크레딧 카드다.
“샤인. 이거 받아.”
“네, 사장님.”
“이번 일은 조금 길어질 것 같으니까 사무실 문은 닫아도 돼. 식사는 그걸로 먹고.”
“네. 사장님이 안 계시는 동안 잘 지키고 있을게요.”
“오냐.”
샤인에게 식비를 담은 크레딧 카드를 넘긴 애쉬.
그가 위층에서 가져온 것은 그게 전부였다. 애쉬는 여전히 자리에 앉은 채 자신을 멀뚱멀뚱 바라보는 에아임을 보고 말했다.
“뭐해? 안 가?”
“짐은 따로 안 챙기십니까?”
“그런 걸 왜 챙겨 귀찮게.”
애쉬는 짐 덩이를 달고 다는 걸 별로 안 좋아했다. 옷 같은 건 도시 중심부 구경도 할 겸 적당히 사 입으면 된다.
그런 애쉬의 말에 에아임은 주춤주춤 일어섰다.
정말로 이대로 가도 될까.
“한번 가보자고. 도시 중심이 어떤 지도 궁금하네.”
안내해야 할 에아임이 뒤따르고 길도 모르는 애쉬가 앞장선다.
악수할 때까지만 해도 느껴지던 안정감은 어디 갔는지, 에아임은 이 사람에게 아가씨의 안전을 맡겨도 될까 하는 걱정을 품고 길을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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