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60화 (60/230)

〈 60화 〉 4. 유성 그룹(4)

* * *

­ 삐빅.

“오….”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작은 알림음과 함께 차량의 문이 부드럽게 열린다. 애쉬가 그것을 보며 감탄했다.

깔끔한 유리창과 공기역학적으로 잘 빠진 동체. 바퀴가 달리지 않은 차량은 자체적으로 내뻗은 받침대로 지지되고 있었다.

척 봐도 엄청난 가격을 자랑할 것 같은 무륜 호버카(Hovercar). 이 슬럼에서는 정말로 희귀하게 볼 수 있는 차량이다.

애쉬가 호버카의 매끈한 동체를 살피며 말했다.

“좋은 차 타네.”

“제 차량은 아닙니다. 아가씨께서 업무용으로 대여해주신 거죠.”

그에 에아임이 대답했다. 이런 호버카는 정말 상상이상으로 비싼데다 그 유지비가 말도 안 되게 많이 나갔기에 유성 그룹이란 거대 기업의 비서직인 에아임도 쉽게 살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래?”

“예. 호버카는 제 월급으로도 유지하기가 조금 벅찬 면이 있어서요.”

“하긴. 비싸다곤 들었어.”

과거 개인 차량을 타고 다닐 때의 애쉬도 이쪽에 흥미가 있어 찾아본 적이 있었다. 호버카. 바퀴 없이 공중에 떠다니는 차량이라니 멋지지 않은가.

잠시 호버카를 바라보던 애쉬가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걸 타고 잘도 왔네.”

“무슨 말씀이신지….”

“생각해 봐. 슬럼에 오면서 이상한 걸 못 느꼈어? 도로에 차량이 좀 적다던가, 상태들이 다 안 좋다던가.”

“그건….”

애쉬의 영문을 알 수 없는 물음에 에아임이 천천히 기억을 돌아보았다. 빈민가는 그가 있던 도시 중심부보다 지저분하고 시설도 멀쩡하지 않은 게 많았다. 그리고 그것은 차량도 마찬가지.

분명 길거리를 다니는 차량들의 대부분은 겉으로 보일 정도의 손상들이 제법 많았었지.

그것을 떠올린 에아임이 대답했다.

“…확실히 그랬던 것 같긴 합니다만. 빈민층이 많은 슬럼에서는 그런 게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당연하긴. 호위도 없이 온 것 같은데, 운 없었으면 오다 다 털리고 지금쯤 어디 뒷산에 묻혀있었을 걸.”

“예?”

이래서 도시 중심부 촌놈들이란.

조심성 없는 에아임을 보며 애쉬가 쯧쯧 혀를 찼다.

여태껏 안전한 도시 안쪽에서만 살다가 외곽으로 나오다보니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인 것 같은데, 자신을 지킬 힘이 없는 놈들이 빈민가에서 이런 값비싼 차량을 타고 다니는 건 말 그대로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빈민가라고 돈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지는 않다. 어딜 가나 상위 1% 안쪽의 자산가들은 있기 마련이니까.

당장 해결사 일을 하며 거액을 벌고 있는 애쉬만 해도 호버카 정도는 몇 대나 살 수 있을 재력이 있었고, ‘뱀파이어’의 보스인 레이라도 같았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값비싼 호버카 따위를 끌고 다니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슬럼이 어떤 곳인지 모르네.”

슬럼에는 인생이 막장인 놈들이 가득했기에 남들이 잘사는 것만 보면 일단 머리부터 박고 보는 놈들이 많았다.

그들의 맹목적인 분노는 상대가 갱단의 보스든, 애쉬 론모어라는 해결사든 가리지 않는다.

이 세상에 떨어진 직후에는 어떻게든 차량을 구해 타고 다니던 애쉬였으나, 지금의 그에게는 아무런 차량이 없는 이유도 그것 때문.

과거, 정신 나간 놈들에게 차량이 박살나고 그것을 찾아 보복 및 경고하길 십여 번.

그러나 아무리 보복을 하고 뭘 해도 그런 놈들은 끊이질 않았다.

결국 먼저 포기한 것은 애쉬였고, 길거리로 나가면 보이는 차량 중 대부분에 이상한 손상 따위가 있는 이유도 그와 같았다.

어차피 고쳐봐야 얼마 가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포기하고 순응한 것이다.

레이라처럼 부하를 써서 24시간 차량을 관리할 게 아니라면 차라리 택시를 타고 다니는 게 나았다.

그렇게 애쉬나 레이라처럼 힘 있는 이들도 관리해야 할 판인데, 처음 보는 외부인. 그것도 에아임이 타고 나온 차량처럼 값비싼 차량은 어떻겠는가.

애쉬로서는 에아임이 여기까지 무사히 온 게 신기할 정도였다.

“…저도 모르는 사이 위험했군요.”

그런 애쉬의 설명에 에아임이 표정을 굳혔다. 슬럼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은 워낙 많이 들었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까지 문제가 될지는 몰랐다.

“뭐, 그래도 무사히 왔으니 됐지. 다음부터 슬럼에서 이런 차는 타고 다니지 마.”

“알겠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같이 일할 사람이라고 해주는 충고에 에아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차를 타고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니. 최악의 치안을 자랑하다는 슬럼은 정말 에아임의 상상이상이었다.

“어디.”

에아임이 애쉬의 충고를 되새기는 사이 애쉬는 활짝 열린 차문을 통해 뒷좌석에 탑승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감탄했다.

“오, 진짜 좋은데?”

슬럼에서는 타고 다니면 안 되는 것과 별개로 호버카의 내부는 과연 비싼값을 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괜찮았다.

엉덩이와 등허리를 부드럽게 감싸는 시트와 널찍한 내부. 적갈색으로 치장된 기타 조작 기기들까지.

그 모든 것은 자신들이 이런 슬럼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고급품이라는 것을 알리듯 고풍스런 분위기를 흘린다.

그냥 시트에 앉기만 해도 이 정도인데, 출발하면 어떨까.

안 그래도 호버카는 그 승차감이 무척이나 뛰어나기로 유명했다. 애쉬가 기대감에 찬 얼굴로 뒤늦게 차량에 오른 에아임에게 말했다.

“그럼 빨리 출발하자고. 나도 어디 대기업 사장이 된 기분 좀 느껴보게.”

“하하, 예.”

에아임이 장난스런 애쉬의 태도에 작게 웃고는 차량에 시동을 걸었다. 그의 마음을 짓누르던 중압감도 애쉬 론모어라는 해결사를 영입하며 조금은 덜어졌다.

이제는 그가 기대한 만큼의 모가치를 하길 바라며 믿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 슈우우우.

“오오….”

공기가 배출되는 작은 소음과 함께 차량이 부상했다. 에아임은 계속되는 애쉬의 감탄을 들으며 차량을 움직였다. 이곳에 향할 때보다는 한층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드라이빙이었다.

*

73구역을 떠나는 길. 애쉬와 에아임은 잡담을 떠들었다.

“그래? 뭐 드라마에서 나오는 그런 건 없나?”

“하하,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픽션일 뿐입니다. 실제로도 그런 일이 있지는 않습니다.”

“지금 유성 그룹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있는데, 그런 일이라고 없으라는 법은 없잖아.”

“아…. 그것도 그렇긴 합니다만…….”

애쉬의 말에 에아임이 살짝 당황해 대답했다. 확실히 애쉬의 말이 맞았다.

같은 핏줄끼리 목숨을 거두기도 하는 후계 경쟁도 있는데 드라마와 같은 장면이 현실에 없을 이유도 없지 않은가.

오히려 현실은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틱할 때가 있었다.

“프흐, 그렇다니까.”

“그래도 아가씨께선 드라마에 나오는 악역 같은 분은 아닙니다.”

“나도 그러길 빌어.”

안 그러면 내가 직접 정신 머릴 직접 뜯어고쳐줘야 할 테니까.

애쉬가 뒷말을 삼키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속도를 꽤 내고 있는데도 구름을 떠다니는 것 같이 기분 좋은 승차감은 역시나 호버카 중에서도 최고급 라인업에 속한 물건이라고 할 만 했다.

‘그나저나.’

창밖을 보던 애쉬는 몸을 쭉 틀어 고개를 차의 뒤로 향했다. 에아임과 떠들며 승차감을 즐기는 건 좋았으나 아까 전부터 계속 신경 쓰이던 것이 있었다.

그의 사무실에서 몇 분 정도 벗어나자마자 따라붙기 시작한 두 대의 차량.

벌써 30여 분 째 계속해서 따라오고 있다. 저 치들은 나름 티 나지 않도록 잘 미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애쉬의 예민한 눈썰미는 한참 전부터 저들의 존재를 눈치 채고 있었다.

‘귀찮은 게 붙었네.’

사무실에서부터 30여 분을 달린 지금. 그들이 위치한 곳은 슬슬 73구역의 최외곽에 가까웠다.

안 그래도 치안이 좋지 않은 슬럼에서 최외곽이라는 것은 상당한 우범지역이라는 것을 뜻했다. 아마 계속해서 따라오던 놈들도 이곳에서 일을 치기 위해 달려들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을 알고 있는 애쉬가 입을 열어 말했다.

“역시 슬럼에서 이런 차는 타고 다니면 안 된다니까.”

“예?”

“슬슬 올 것 같으니까 마음의 준비나 하고 있어.”

“그, 그게 무슨…?”

“저기 검은 차 두 대가 아까부터 따라오고 있잖아.”

에아임의 의문에 애쉬는 자세한 설명 대신 뒤를 가리켰다. 검은 차량 두 대가 그들의 뒤를 계속해서 따라붙고 있는 것을.

그들은 이 차를 보고 돈 냄새를 맡은 갱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애쉬가 가리키는 곳을 보고 그들을 발견한 에아임의 표정이 굳었다.

운전을 하면서 몇 번 보이긴 했지만 길이 겹치다 뿐이지 이쪽을 따라오는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도시 내부의 상식으로는 굳이 의심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애쉬에게 슬럼의 위험성을 경고 받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설마 진짜로 그런 이들을 만나게 될 줄이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역시 도망을….”

불안감을 느낀 에아임이 운전대를 꽉 잡고 물었다. 그에 애쉬가 픽 웃으며 대답했다.

“도망은. 그냥 길 가다 적당한 곳에 차 세워. 그리고 안에 숨어 있으면 돼.”

저들도 이 값비싼 차량에 흠집을 내고 싶지는 않을 테고, 차를 멈추면 뒤따라 그들도 멈출 것이었다.

그럼 자신이 알아서 처리하겠다.

그런 애쉬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도 에아임은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괘, 괜찮겠습니까…?”

"괜찮다니까."

애쉬의 실력이야 그 영상을 통해 봤기에 어느 정도 믿을 수 있었지만, 당장 자신에게 이런 위험이 찾아왔는데도 아무렇지 않다면 그게 이상할 터다.

게다가 혹시라도 여기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가 모시는 아가씨는 어떻게 되겠는가.

자신의 안위, 아가씨에 대한 걱정 등 생각이 에아임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채웠다.

애쉬가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에아임을 보며 말했다.

“마침 잘 됐잖아. 검증해달라고 했었지? 이참에 봐둬.”

상대는 기껏해야 일반 갱들일 가능성이 높았기에 간단한 요깃거리 정도밖에 되지 않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애쉬 론모어라는 해결사가 어떤 인간이며, 그를 영입한다는 선택이 얼마나 훌륭한 판단이었는지를.

‘이 기회에 이것도 좀 써보고.’

애쉬는 옆자리에 대충 풀어놓았던 검을 들었다.

땅거미 부대에게서 회수한 단검들을 녹여 만든 에리히 영감의 최신작.

받아온 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검도 이 기회에 시험해볼 생각이었다.

“…그럼 말씀하신대로 슬슬 멈추겠습니다.”

“어.”

애쉬가 검을 드는 것을 확인한 에아임이 말했다. 애쉬는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에아임이 가속 페달에서 발을 서서히 뗌과 동시에 차량이 느려지기 시작한다.

느려지던 차량은 곧 갓길에 받침대를 내리며 완전히 멈춰 섰고, 그를 뒤따르던 두 차량도 같이 멈췄다.

“역시.”

애쉬의 예상대로 그들은 에아임의 차량을 따라오던 것이다.

그들이 멈추는 것을 본 애쉬가 문을 열며 말했다.

“그럼 기다리고 있어.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 철컥. 스르륵.

주행 중 걸어뒀던 안전 잠금이 풀리고 문이 부드럽게 열린다. 긴장한 에아임의 귀에는 그런 작은 소리조차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그렇게 애쉬가 문을 열고 내리자마자 맞추기라도 한 듯 그들을 미행하던 다른 두 차량에서도 수 명의 인원들이 내려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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