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4. 유성 그룹(5)
* * *
남자들과 대치한 애쉬는 그들을 살폈다.
통일되지 않은 복장. 대놓고 무기를 꺼내들고 있는 두어 명을 제외하곤 외투의 가슴께가 살짝 볼록한 것이 품 안에 권총이나 단검 같은 무기를 넣어두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어중간한 숫자로 몰려다니는 것을 보면 그냥 양아치보다는 갱일 확률이 높았다.
한 마디로 여기서 그냥 처리해버려도 상관없는 쓰레기들이라는 뜻이다.
애쉬는 대놓고 그들을 도발하기 위해 농담 던지듯 조롱했다.
“여어, 무슨 일이야. 발정난 개새끼 마냥 뒤꽁무니나 쫓아다니고. 안타깝지만 여기에 너희가 원하는 암캐는 없는데?”
발끈해서 달려들면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다. 도발의 실제 효용보다는 재미로 놀리는 것이 더 컸으니까.
그러나 남자들은 애쉬의 조롱에도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보고 더 침착해진 느낌.
“…….”
“뭐야. 벙어리들만 왔나?”
애쉬가 아무 반응 없는 그들을 다시 한번 놀리자 조롱을 무시하던 남자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조롱에 대한 대답이 아닌 애쉬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었다.
“…애쉬 론모어. 네가 왜 그 차에서 내리는 거지?”
“음? 그게 중요해?”
어차피 돈이나 털러 온 거면서 이상한 것을 다 묻는다.
애쉬는 그런 그들의 태도와 남자의 물음에서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
‘일반적인 갱은 아닌 것 같은데.’
척보니 한눈에 자신을 알아본 모양인데, 어째 저 남자들이 보이는 반응은 평소 보던 그것이랑 조금 다르다.
그를 알아본 갱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부분 둘 중 하나였다.
그냥 도망치거나, 아니면 자존심 때문에 주제도 모르고 달려들거나.
보통은 도망치는 일이 많고, 가끔가다 달려드는 놈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 녀석들은 침착하게 대화를 시도하고 있지 않나.
놈들 중 하나라도 일반적인 반응을 보였다면 그냥 군기가 잘 잡힌 갱단에 속한 녀석들인가 보다 했겠지만, 지금 보이는 모든 것들은 일반적인 갱이라기엔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우린 너와 부딪히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럼 그냥 날 보자마자 도망갔어야지.”
애쉬가 남자의 말에 대충 답하며 다시 한번 그들 전체를 살폈다.
새 옷을 입은 듯 깨끗하고 주름하나 없는 차림새.
잘 정리된 머리칼과 손톱처럼 사소한 것부터 애쉬 자신을 앞에 두고도 긴장 없이 차분한 기색 하나하나까지도 괜히 툭툭 걸렸다.
대충 지나쳤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자세히 보니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갱이라기보다는 갱인 척 하고 있는 군인이나 용병 따위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의심이 쭉쭉 뻗어나가 에아임, 그리고 그가 모시는 의뢰인이 속한 유성 그룹에까지 이어졌다.
‘설마 그쪽 경쟁자가 저 아저씨를 처리하려고 보낸 놈들인가?’
애쉬는 직감적으로 그게 맞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확인삼아 한번 자신과 대화하는 남자를 찔러보기로 했다.
마침 기회는 찾아왔다.
“저 차만 넘겨다오. 그럼 그냥 물러가겠다.”
“저 차만? 거기에 타고 있는 남자가 아니라?”
“….”
“이거 정답이구만.”
툭 찔러본 말에 남자가 입을 다문다. 그 노골적인 반응을 확인한 애쉬가 확신했다.
처음엔 돈 냄새에 꼬인 일반 갱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에아임이라는 특정 인물을 노리고 온 놈들이었다.
아마 이곳 73구역 출신도 아니겠지. 외부에서부터 따라온 놈들이 현지의 갱인 척하고 처리하려다 딱 걸린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상대와 얘기할 것도 없었다. 남자들은 이미 품속에서 무기를 꺼내기 시작했고, 애쉬도 허리춤에 매달린 검에 손을 가져갔다.
“상대는 슬럼에서 꽤나 유명한 해결사다. 하나라고 방심하지 말도록.”
“예.”
한 남자가 얘기하자 다른 남자들이 대답했다. 애쉬는 자신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이 분명함에도 겁 없이 싸움을 선택한 그들을 보며 씩 웃었다.
“나 아는 거 아니었어? 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네.”
도망이나 칠 것이지.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애쉬의 말을 들은 남자들이 그를 비웃었다.
“쓰레기통에서 이름 좀 날린다고 기고만장하군.”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이지. 혼자 거대 갱단을 무너뜨렸다고? 그딴 헛소리를.”
남자들은 용병이었다. 그것도 꽤나 수준 높은.
그들 또한 전투를 생업으로 삼은 이들이었기에 애쉬 론모어라는 인물에 대한 소문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 잘 알았다.
오늘 뒷세계의 커뮤니티, ‘게이트’에서도 나름 유명하던 ‘애쉬 론모어’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방심하진 마라. 한 명한테 당하면 고개도 못 들고 다닐 테니까.”
아군에게 하는 경고인지, 아니면 애쉬를 놀리는 건지 모를 남자의 말을 마지막으로 남자들의 총구가 애쉬를 향했다.
*
탕!
“…!”
차 안쪽까지 들려오는 총성에 에아임이 몸을 움찔 떨었다. 그러나 첫 총성은 어디까지나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것에 불과했다.
타앙! 타앙! 타앙!
투다다다!
단발성으로 울리는 격발음과 연발로 드르륵 갈기는 소리.
그중 일부는 에아임이 숨어있는 차체에까지 닿았는지 간헐적으로 팅, 하고 탄환이 튕겨나가는 소리도 들려왔다.
차량에 손상이라도 간다면 그 수리비도 엄청나게 깨지겠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애쉬와 남자들의 전투는 에아임의 눈으로도 쉽게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다.
이…!!
총구에서 불을 뿜으며 무어라 외치는 적. 어느새 애쉬는 그의 정면에 나타나 검신이 온통 새까만 칼을 들고 있었다.
촤아악! 뒤이어 허공에 검은 궤적이 그려졌다.
검을 휘두르는 소리는 분명 차 안쪽까지 들려올 정도로 큰 소리가 아니었을 것이나 에아임은 그런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아아악!!
애쉬의 검이 그려낸 궤적 사이에 끼인 적의 팔이 뚝 떨어지고 피가 흩뿌려졌다. 그의 비명 소리가 차 안쪽까지 명확하게 들려왔다.
에아임은 그 소리를 들으며 몸을 떨었다. 현장이 아닌 차 안에서 보다보니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현실성이 없었지만, 저런 비명을 들으니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그 영상은 진짜였군.’
에아임이 쏟아지는 피보라에서 억지로 눈을 돌리며 생각했다.
총탄을 피하며 적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러 팔을 잘라내는 해결사. 저런 움직임을 현실에서 보일 수 있다니.
영상은 전문가들이 장담했던 것처럼 조작이 없는 현실이었다.
에아임이 차 안에서 진행되는 싸움의 양상을 살피는 중에도 애쉬는 차근차근 적을 하나씩 줄여갔다.
“악마…. 언젠가 전장에서 본 적 있어! 저런 움직임을 보이는 놈들은 ‘악마’ 놈들밖에 없다고!!”
“그, 그럴 리가! ‘악마’가 어째서 이런 곳에…!”
에아임에게 과시하기 위해 느긋하게 움직였음에도 이미 두 명이 시체가 되어 바닥을 굴렀고, 하나는 잘린 팔을 잡고 비명을 내질렀다.
사실상 여덟 중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애쉬는 별다른 감흥 없이 헛소리를 삑삑 내뱉어대는 나머지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뭔 헛소리야.”
실력은 어지간한 갱들 이상이었지만, 정신이 덜 돼먹었다.
겨우 이 정도로 패닉에 빠질 놈들이 대체 자신에 대한 소문을 듣고도 무슨 배짱으로 덤볐는지.
그러나 그들 중에서도 멀쩡한 놈은 있었다. 한 남자가 혼란한 동료들에게 외쳤다.
“진정해! 놈이 ‘악마’라도 한 명이야! 지금이라도 침착하게 공략한다!”
“하지만…!”
“그럼 도망치기라도 할 거냐!!”
“…….”
도망칠 거냐는 외침에 입을 다무는 동료. 그들 용병에게 계약과 신용은 목숨과도 같았다.
전투가 힘들어진다고 당장 내빼는 용병 따위를 누가 쓰겠는가.
게다가 이번 경우에는 실제로 그들의 목숨이 걸려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유성 그룹’의 최고위직에 속한 고용인은 임무를 성공하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도망친 그들을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죽든, 도망친 뒤 정리당하든 똑같아. 차라리 여기서 놈을 처리한다.”
“젠장.”
남자의 말에 동료들이 욕지거릴 내뱉으며 다시 무기를 들었다. 이제 멀쩡히 서있는 사람은 다섯 밖에 없었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싸운다.
그들이 마음을 다잡은 듯하자 가만히 기다려주던 애쉬가 삐딱이 서서 물었다.
“잡담은 끝났냐?”
“…그래. 기다려줘서 고맙군.”
이미 한 차례 애쉬의 실력을 겪은 그들에게 방심의 기색은 없다. 처음의 비웃음과 달리 긴장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그렇게 그들의 태도가 진지해지자 애쉬도 이제야 조금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며 검을 들었다.
과연 에리히 영감이 만든 검답게 두 명의 목과 한 명의 팔을 떨어뜨린 검은 칼날에는 핏방울 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그럼 간다.”
“뭘 예고까지.”
남자의 진지한 목소리에 애쉬가 픽 웃으며 말했다. 용병들이 겨눈 총구가 다시 불을 뿜었다.
“너흰 화망을 깔아! 내가 조준사격한다!”
“알겠어!”
투다다다!!
멀쩡한 다섯 중 넷이 총기를 난사해 회피 각을 좁히고 사격에 뛰어난 하나가 조준사격.
이미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듯 실력이 부족한 여럿이 뛰어난 한 명을 사냥하기에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숫자가 워낙 부족한데다 심지어는 그중 둘의 무장이 권총이었기에 아무런 엄폐물 없이 휑한 도로에서도 큰 위협은 되지 못했다.
애쉬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총탄을 바라보며 발끝을 튕겨 몸을 쏘아내듯 움직였다.
이 정도면 굳이 옆으로 몸을 피할 것도 없다. 저들이 겨우 네다섯 정도의 숫자로 형성하는 탄막은 허술하기 짝이 없어서 정면으로 뚫고 가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탓, 정면으로 향하던 몸을 비켜서며 두어 발의 탄을 피하고, 다시 한발 앞으로 내딛으며 몸통을 향하는 탄환들을 걷어낸다.
티잉!
맑은 소리와 함께 검신이 울리며 걷어낸 총탄이 튕겨나갔다. 확실히 좋은 강철로 만든 검이라 그런지 무언가를 베거나 이렇게 탄환이 부딪혔을 때의 감각이 달랐다.
“어딜!”
애쉬가 내심 에리히 영감의 작품에 만족하며 정면의 하나에게 다가설 때였다. 그의 목표가 된 남자가 들고 있던 권총을 내던지며 양팔을 들어올렸다.
옷에 감싸여 있음에도 그 두터움이 보이는 두 팔. 설마 저걸로 자신의 검을 막으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직전에 썰린 한 남자의 팔도 강도가 꽤나 좋은 기계 신체였다. 그걸 보고도 같은 실수를 할 생각인가.
다행히도 남자는 애쉬의 예상보다는 똑똑한 편이었다. 팔을 들어 올린 그는 곧장 손바닥을 애쉬에게로 향했다.
애쉬의 시야에 활짝 펼쳐진 손바닥 내부가 들어왔다.
미약한 기계음과 함께 손목에서부터 이어진 손바닥 아래 부분이 개방되는 게 보인다.
거기엔 총구로 추정되는 작은 구멍이 여럿 뚫려있었다.
‘뱀파이어’ 사건, 땅거미 부대를 상대할 때도 봤던 타입의 개조 파츠였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땅거미 부대 쪽은 무소음에 바늘처럼 얇은 투사체를 쏘아내는 암살용이었다면, 이쪽은 대놓고 상대방을 벌집으로 만들려는 듯한 총기였다는 것.
타다다당!!
처음부터 애쉬가 다가오길 노린 것일까. 권총과는 연사 속도가 비교도 되지 않는 체내 총기가 불을 뿜으며 탄환을 쏘아냈다.
그 구경이 여타 총탄보다는 작은 편이었지만, 일단 맞추기만 하면 인간을 죽이기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래, 맞추기만 한다면.
하지만 애쉬는 손바닥에 있는 총구를 보자마자 상체를 숙이며 쏟아지는 탄환을 피했고, 그대로 앞으로 치고나가며 검을 쭉 그었다.
허리가 토막 난 상대방의 상체가 팔에서부터 쏘아지는 총탄의 반동에 뒤로 무너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