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4. 유성 그룹(6)
* * *
전투는 그렇게 길지 않았다.
적의 숫자는 적었고, 그들과 애쉬의 실력차는 말할 것도 없었다.
다른 남자들을 통솔하던 한 명의 허리가 잘려나가며 쓰러지자, 그들은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애초에 그들에게 희망이라곤 없었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애쉬가 미행인들을 모조리 처리한 것을 확인한 에아임이 차에서 내려 물었다.
사위는 여덟 구의 시체와 피로 인해 엉망이 되어 있었다.
애쉬는 바닥을 구르는 시체들이 운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도로 밖으로 던져버리며 대답했다.
“멀쩡해.”
투욱.
애쉬의 대답대로 그의 몸에는 상처는커녕 쏟아지는 피 한 방울조차 튀지 않은 상태였다. 다시 차를 타고 몇 시간은 이동해야 하는데 피가 묻어있으면 불쾌하지 않겠는가.
그만큼이나 가뿐한 전투였다.
애쉬의 신상을 살피고 정말로 아무런 상처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에아임이 감탄했다.
“…정말 대단하시군요.”
“뭘 이 정도 가지고. 이건 그냥 몸풀이지.”
저 정도의 용병들 몇 상대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대답한 애쉬가 웃으며 에아임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감상이 어때? 이 정도면 좀 믿을 만한가?”
“예, 충분히요.”
에아임이 대답했다. 차 안에 있었지만 그는 애쉬가 전투를 시작하고 끝내는 과정 전부를 지켜볼 수 있었다.
그의 움직임은 눈으로 따라잡기조차 힘들 정도로 빨랐고, 그의 손에서 휘둘러지는 칼은 영상에서 봤든 무엇이든 베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총탄을 피하고 쳐내는 것을 볼 수 있다니….
에아임은 애쉬 론모어라는 해결사를 찾아오기로 결심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럼 다시 가자고.”
“예, 그런데 여기는 그냥 이대로 두고 가도 되는 겁니까?”
애쉬가 시체들은 적당히 던져버렸지만, 여전히 바닥은 피범벅인데다 그들을 미행하던 두 대의 차량이 멈춰서있다.
그것을 가리키며 묻는 말에 애쉬가 간단히 대답했다.
“그냥 두면 경찰이나 도로 공사 쪽에서 알아서 치울걸.”
“…그렇습니까?”
“여기선 이런 게 거의 일상이야.”
애쉬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슬럼에서도 사람이 많은 중심부 쪽은 그나마 조금 안전했지만, 이런 외곽은 정말 매일같이 인간이 죽어나가는 곳이었다.
강도, 원한에 의한 살인, 갱들 간의 싸움 등등. 괜히 공권력도 포기한 구역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직접 겪으니 제가 얼마나 성급했는지 알겠군요.”
애쉬의 말을 들은 에아임이 자책했다. 마음만 급해 아무 생각 없이 찾아온 곳이 이렇게나 위험한 곳일 줄이야. 만일 애쉬가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면 어찌 됐겠는가.
그 자신의 목숨부터, 크게 보면 그가 모시는 아가씨의 안위까지도 흔들릴 수 있었다. 그건 에아임으로서는 상상도 싫은 일이었다.
“아, 그런데 이놈들 그냥 갱이 아니던데?”
“예? 그럼?”
애쉬의 말에 창백해진 표정으로 피 흩뿌려진 도로를 바라보던 에아임이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그에 쭈그려 앉아있던 애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외부인들이던데. 놈들은 처음부터 그쪽을 쫓아온 거야.”
“…다른 분들께서 손을 쓴 모양이군요.”
“그 아가씨의 경쟁자들?”
“예. 슬슬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는 것 같습니다.”
유성 그룹의 후계 경쟁이.
지금은 후계 당사자의 주변인에 불과한 에아임에게 마수가 뻗혀왔지만 언젠가는 그가 아니라 그가 모시는 아가씨, 유서령에게 일이 닥쳐들 것이었다.
“그럼 다시 가보자고. 그 아가씨 얼굴이나 보러.”
“예.”
애쉬와 에아임은 다시 차량에 탑승해 움직였다. 멈추기 전과 달리 뒤편에 총탄 자국이 몇 개 난 호버카였지만, 아무런 이상 없이 부상해 움직였다.
*
“…….”
“…….”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지 수십 분. 아직 목적지인 1구역에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다.
에아임을 노린 놈들과의 싸움 이전까지만 해도 조금의 잡담이라도 오가던 차량 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했다.
에아임은 혹여나 한 차례의 전투로 예리해진 애쉬의 신경에 거슬리지 않도록 먼저 말을 걸지 않았고, 애쉬도 굳이 그런 에아임에게 상관하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해서 이동하던 중, 긴장이 조금 풀린 것일까. 에아임은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애쉬는 전에 봤던 영상에서도, 그리고 오늘도 칼 한 자루만을 들고 싸웠다.
검 한 자루로 총탄을 쳐내며 합금으로 이뤄진 사이보그의 개조 신체를 베어내던 그 모습은 그를 아군으로 두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로 든든할 정도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게 가능했던 것일까.
칼로 쇳덩이를 베어내는 일은 아직 유성 그룹의 실험실에서조차 제대로 답을 찾지 못한 단분자 커터라도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닌 이상 설명할 수 없었다.
“…….”
에아임은 그런 궁금증에 슬쩍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의 애쉬를 바라보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뜨끔한 에아임이 눈을 피했지만, 애쉬가 그에게 물어왔다.
“왜? 할 말이라도 있어?”
“아닙니다. 한 차례 싸우고 오셨는데 귀찮게 해드릴 수는 없죠.”
“뭐, 별 것도 아니었는데.”
에아임의 조심스런 말에 애쉬가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 앞선 싸움은 제대로 된 전투라고 하기도 뭐한 것이었다.
아무렇지 않으니 굳이 배려할 필요 없다는 애쉬의 말에 에아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쓰시는 칼이 단분자 커터 같은 물건입니까?”
“이거? 그냥 검인데.”
스륵. 에아임의 질문에 애쉬가 검을 살짝 뽑아보였다. 그의 검은 온갖 특수 공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단분자 커터와 같은 물건이 아니라 그냥 제련을 통해 만든 일반적인 검이었다.
“나도 궁금한 게 있는데 진짜 단분자 커터가 상용화 될 수 있을 만큼 개발된 거야?”
에아임에게 검날을 보여준 뒤 다시 집어넣은 애쉬가 오히려 그에게 물었다. 그에 에아임이 대답했다.
“아직 저희 유성 그룹에서도 개인용 단분자 커터의 상용화는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공업용으로 만들 수는 있긴 한데 다루기가 워낙 까다로워서….”
유성 그룹이 가진 기술력이면 단분자 커터의 날 정도는 돈만 들이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을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느냐는 조금 다른 문제였다.
단분자 커터의 특성상 날은 반드시 얇아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바람만 조금 강하게 불어도 찢어질 정도라 그 한계가 명확했다.
현재의 기술력으로 만들 수 있는 물건은 여타 검이 그렇듯 강하게 휘두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설명한 에아임은 애쉬가 보였던 칼날을 다시 떠올리고는 물었다.
“아니, 그럼 단분자 커터 같은 물건을 사용하시는 것도 아니면서 그런 걸 하실 수 있는 겁니까?”
애쉬는 분명 검을 휘둘러 사이보그의 개조 신체를 베어냈었다. 그럼 그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그런 에아임의 의문에 애쉬가 간단히 대답했다.
“그냥 되던데?”
“…예?”
에아임이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에 애쉬가 약간의 부연설명을 더했다.
“그 뭐라고 해야 하지? 결 같은 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결… 말씀이십니까?”
“어.”
애쉬의 말에 에아임은 여전히 황당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지만, 애쉬는 진심이었다.
이 세계에 떨어진 뒤로 그는 그냥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 저게 어디를 베면 저게 잘리겠구나. 아, 저건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구나.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결을 따라 검을 휘두르면 단번에 자르지 못하는 게 거의 없었다. 한 번에 베어내지 못하는 것도 몇 번이면 얼마든지 깨뜨리거나 베어내는 게 가능했고.
적어도 여태까지는 말이다.
그것은 게임 속 스킬이 현실이 된 결과물이었기에 본능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애쉬도 타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무어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음… 알겠습니다.”
에아임은 애쉬의 이해할 수 없는 말에 그냥 밝히지 못할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그가 들고 다니는 칼도 그 날이 검었던 것으로 보아 보통 물건이 아닌 것 같았다.
“아, 아저씨. 도착까지 얼마나 걸려?”
“음, 지금 같은 속도로는 네댓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오래도 걸리네. 운전은 그냥 자율주행 AI한테 맡기고 나랑 게임이나 하지?”
“괜찮습니다. 자율주행은 편하지만 조금 불안해서….”
“재미없구만.”
그런 대화로 시작해 조금 풀린 분위기에서 에아임은 운전을 계속했고, 애쉬는 아직 한참 남은 시간에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 * *
……주세요.
“예, 상무님.”
고생하셨어요. 오늘은 푹 쉬시고 내일 그분과 같이 출근해주세요.
“아닙니다. 모두 같이 고생하고 있는데 어떻게….”
괜찮아요. 진짜 시작은 아직이니까요. 그때가 되면 쉬고 싶어도 못 쉴 테니 각오 단단히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끊을게요.
“예, 고생하십시오.”
뚝. 에아임은 전화를 끊었다. 백미러로 뒷좌석을 슬쩍 비춰보니 해결사, 애쉬 론모어는 검을 안은 채 눈을 감고 있다. 깨어나면 시간이 늦어 만남을 다음날로 미뤘다는 것을 알려야겠다.
에아임은 잠시 통화를 위해 자율주행 모드로 바꿔뒀던 것을 수동으로 전환시켜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에아임은 자신이 데려가는 저 해결사가 아가씨를 확실히 지킬 수 있는 방패가 되어주길 빌었다.
후계 경쟁의 결과는 어디까지나 그 다음이다.
유성 그룹 회장의 자리 따위보다는 어릴 적부터 모신 아가씨의 안위가 수백, 수천 배는 더 소중했으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