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63화 (63/230)

〈 63화 〉 4. 유성 그룹(7)

* * *

“오오…! 아저씨! 이건 뭐야?”

제 5구역 내의 어느 번화가. 호위 대상과의 만남이 다음날로 미뤄진 애쉬는 곧장 숙소로 잡은 호텔에 박히지 않고 에아임을 끌어들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건 그냥 게임기입니다만…. 애쉬 씨, 조금만 목소리를 낮춰주면 안되겠습니까?”

에아임은 여기저기 둘러보며 감탄하고 있는 애쉬에게 작게 대답하며 속삭였다.

그는 안 그래도 보기 힘든 외모와 옷차림, 칼을 허리춤에 매단 특이한 모습으로 시선을 끌고 있었는데, 도시에 처음 와보는 사람처럼 호들갑을 떨며 이곳저곳 기웃거리니 관심이 안 쏠리려야 안 쏠릴 수가 없다.

길을 가는 누군가는 무슨 이벤트라도 하는 사람인가? 하고 사진까지 찍고 있었다.

아무리 이곳이 유성 미래전자 본사가 위치한 2구역이 아니라지만 시선을 끄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애쉬처럼 신분이 없는 것을 속이고 있는 상황에서는 말이다.

잘못해서 경찰이 붙기라도 한다면 큰 낭패였다.

하지만 애쉬는 그런 에아임의 걱정을 깡그리 무시한 채 눈길가는 대로, 발길가는 대로 마음껏 움직였다.

그도 그럴 게, 무려 사이버펑크 게임 속 세상이다.

원래 이 세계에서 살지 않았던 애쉬에게는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건물 전체를 뒤덮는 거대한 홀로그램부터 시작해서 길거리를 오가며 청소하는 소형 로봇.

길거리를 가는 사람들의 몸에는 신경 인터페이스의 패스가 개개인의 개성이 담긴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고, 게 중에는 대놓고 홀로그램을 영사하며 누군가와 통화하거나 영화 따위를 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지구와 비슷한 개발 수준의 슬럼에서는 느끼지 못한 사이버펑크의 감성.

이 거대도시, 웨인 시의 중심에 한없이 가까운 제 5구역에서는 미래 도시의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 슈우우.

“와, 저게 저렇게 움직이네.”

애쉬가 길을 거닐던 중 인터넷에서 보았던 것 같은 물건을 발견하곤 중얼거렸다. 언젠가 그가 구매할까 고민했던 보드다.

그것은 호버카와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는 고가의 물건이었는데, 역시나 잘 사는 동네라 그런지 어느 성인 남성이 그것에 올라탄 채 지나가고 있었다.

“저것도 살까?”

“…조금만 자제해 주십시오. 벌써 둘 다 양손이 가득하지 않습니까.”

애쉬의 목소리를 들은 에아임이 그를 만류했다.

애쉬는 장난감 가게에 온 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거리를 돌아다녔는데, 단순히 돌아다는 것뿐이 아니라 온갖 잡다한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사들였다.

덕분에 애쉬는 물론이고 뒤따르던 에아임의 양손까지 각종 물건들로 가득 찬 상태. 아마 둘이 들고 있는 물건의 값만 크레딧으로 다섯자리 수에 가까울 것이다.

정말이지 파멸적인 충동구매였다.

하지만 애쉬는 아직도 만족하지 못했는지 아쉬움을 보였다.

“흠…. 호텔로 그냥 보낼걸 그랬나?”

“어차피 내일이면 아가씨를 뵙고 다시 숙소를 옮기셔야 할 텐데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것도 그렇지.”

어느새 짐꾼이 된 에아임의 기운 없는 목소리에 애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짐이 너무 많아지면 귀찮지. 이제 그만 돌아갈까 싶다.

“휴우….”

에아임은 슬슬 탐방을 멈추려는 그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여유만 있었다면 얼마고 더 계속했을 기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먼저 들어가서 쉬었을 텐데….

애쉬야 즐겁게 거리를 탐방하고 있었지만, 에아임은 따라 나온 것을 후회했다.

무슨 사고라도 칠까 불안해서 따라 나온 것이 이제는 짐꾼 취급을 당하며 실컷 부려 먹히고 있다. 근무 시간도 아닌데 이게 무슨 고생인지.

에아임은 애쉬와 짐을 나눠들며 오늘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다음부터는 따라다니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보고 들어갈까?”

“예.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애쉬의 물음에 에아임이 화색을 띄며 대답했다.

둘이 이곳을 돌아다닌 지도 세 시간.

날은 진작 어두워졌고, 시간은 오후 9시에 가까웠다.

수 시간이나 운전을 계속했으며 그 뒤에도 곧장 애쉬의 짐꾼으로 움직인 에아임의 정신은 피로에 잔뜩 젖어서 휴식을 바랐다.

“그래, 그럼 돌아가지 뭐.”

애쉬는 여전히 아쉬운 모양이었지만, 둘은 구입한 물건들을 차량에 싣고 미리 잡아놓은 호텔로 향했다.

“아, 재밌었다. 아저씨만 아니었어도 더 사는 거였는데.”

괜히 눈치 줘서 못 샀네. 뒷좌석에 탄 애쉬가 입맛을 다셨다.

“…….”

그게 눈치를 보던 거였다고? 에아임은 거기에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

그리고 평소에는 수동으로 하던 운전도 자율주행 모드로 변경해놓고 의자에 몸을 기단 채 말했다.

“다음부터는 혼자 다니시는 게 어떨지….”

“혼자?”

“…예.”

애쉬의 물음에 에아임의 힘없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어지간히도 지친 모양이다.

운전에 뭐에 피곤할 만도 했지만, 애쉬는 괜히 그런 에아임을 놀리고 싶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내가 사고라도 치면 어쩌려고?”

“……그야 어떻게든 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장난에 태연한 척 대답은 하지만 역시나 불안한 목소리가 돌아온다.

애쉬는 그 목소리를 듣고 킥킥 웃었다. 애초에 그럴만한 일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잠시 조용하던 에아임은 최악의 경우에까지 생각이 닿았는지 여전히 불안한 목소리로 말을 바꿨다.

“아, 아니, 역시 같이 다니는 게 좋겠습니다. 수배라도 떨어지면…….”

“프흐, 됐어.”

“다음에 외출하실 때도 불러주시면 언제든지 가겠습니다….”

“됐다니까, 사고 안 쳐.”

“그래도….”

그렇게 장난을 치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자율주행 AI가 속도를 줄이며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주차 모드로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아니, 수동모드로 전환.”

­ 수동 모드로 전환합니다.

잠시 시트에 몸을 기대며 쉬던 에아임이 AI에게 대답해 주행 모드를 전환했다. 그리고 차를 멈추고는 트렁크를 열었고, 애쉬는 내려 자신이 구매했던 물건들을 챙겼다.

그가 물건을 챙기는 것을 돕던 에아임이 말했다.

“그럼, 애쉬 씨. 내일 오전 10시에 찾아뵙겠습니다. 너무 늦지 않게 준비해주십시오.”

“오케이.”

대답을 들은 에아임은 다시 차에 탑승한 채 자신의 집으로 떠났다. 애쉬도 호텔에 위치한 자신의 방으로 움직였다.

“어서 오십시오. 짐을 들어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그럼 고맙지.”

애쉬가 호텔 내로 들어서자 숙박객인 그를 알아본 경비가 물어왔고, 애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몇 시간 전 호텔에 처음 들렀을 때는 애쉬가 차고 있는 검 때문에 그를 막아섰던 경비였지만, 다시 돌아온 지금은 제대로 알아보고 짐을 나눠들어 이동을 도왔다.

애쉬와 경비는 짐을 들고 이동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리 잡아둔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시기 바랍니다.”

“그쪽도.”

예의바르게 인사하는 경비에게 대답한 애쉬가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사온 물건들을 대충 늘어놓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푹신한 침대 시트가 부드럽게 그의 몸을 받았다.

‘덕분에 재밌게 구경했네.’

에아임과 함께 한 도심 구경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에는 ‘달의 꽃’이나 유흥가에 가는 게 아니면 잘 돌아다니지도 않던 그가 이렇게 신이 나서 움직였던 게 얼마만이던가.

애쉬는 자신의 팔을 들어 손목에 차고 있는 검은 팔찌를 바라봤다.

그가 이렇게 도심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던 것은 모두 에아임에게 받은 이 팔찌 덕분이었다.

애쉬가 아는 해커 중 가장 뛰어난 빌헬름도 시 정부 중앙 데이터베이스의 보안을 뚫고 신분을 제작하는 일에는 고개를 저었기에 도심 구경은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런 팔찌 하나로 가능하게 되다니.

그 존재를 걸리기만 해도 최소 징역형에 처할 물건이었지만 애쉬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이 물건으로 할 수 있는 일만이 중요할 뿐.

“내일 계약 마치면 밤거리나 구경하러 가볼까.”

다시 팔을 내린 애쉬가 중얼거렸다.

도시 중심부에 가까운 5구역이었기에 외부 구역의 대규모 유흥가처럼 본격적이진 않겠지만, 나름의 맛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다음 날 할 일을 정한 애쉬는 일적으로도 떠오르는 몇몇 생각들을 정리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 * *

“네, 그럼 그쪽은 마케팅 쪽과 연계해서 처리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나이 지긋한 부장이 그녀에게 인사하고 방을 벗어났다. 그녀는 책상에 앉은 채 ‘상임이사 유서령’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고급스럽게 음각된 명패를 바라봤다.

여전히 그녀에게는 그 명패가 무겁게만 느껴졌다.

“하아….”

그녀의 나이도 이제 스물셋. 일 년 전, 상임이사의 자리에 앉아 현재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작년, 그녀가 상임이사의 자리에 앉았을 때는 수많은 반발이 따랐다. 기존에 임원직에 자리하고 있던 이사, 상무들을 비롯한 전무까지.

사장과 부사장은 회장인 조부의 사람이었기에 별다른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도 내심 불편했을 것이다.

고작 스물둘. 어린 여자애가 그들과 같은 위치에 뚝 떨어진 것이다. 그저 회장의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은 사실 그녀, 유서령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과한 인사가 맞았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회장의 직계 손자, 손녀인 다른 핏줄들조차 이 정도로 빠르게 상임이사를 달지는 못했었다. 그것도 유성 그룹의 주력이자 가장 중심이 되는 유성 미래전자에서 말이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회장의 손녀라고 해도 불만이 없을 수가 없었다.

기존의 이사들이 회장이라는 천외천의 존재에게 그런 불만을 표출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은 대신 자신들의 앞에 뚝 떨어진 상임이사, 만만한 유서령에게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어차피 그녀의 형제자매들은 이미 각 계열사의 사장, 부사장이 되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겨우 스물둘, 상임이사에 불과한 그녀가 회장의 자리에 앉을 수는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때부터는 지난 일 년 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조부인 회장이 참석하는 그룹 총 임원 회의에서까지 그녀의 발언을 은근히 무시하거나 어린 나이를 언급하며 깎아내리는데, 계열사 내에서만 진행하는 회의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처음에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셀 수 없이 했다. 나이도 자신의 두 배 이상 되는 이들이 그녀를 압박하고 무시하니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회사의 주춧돌들이고 자신은 어디선가 굴러들어온 돌.

사내에 자신의 편이라곤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녀의 자랑, 조부인 유진혁 회장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는 편이 맞았다.

대기업 말단에 겨우 걸쳐있던 유성을 30년 간 이끌어 최고를 다투는 자리까지 끌어올린 거인.

그런 조부의 선택이 틀렸을 리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런 각오로 움직인 유서령은 일 년 동안 자신의 실력과 세 명의 비서의 도움으로 온전히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었고, 이제는 필사적으로 움직이던 날개를 접어 잠시 쉬어가려던 때였다.

하지만 며칠 전, 갑작스런 회장의 잠정 은퇴와 후계 경쟁 선포라는 거대한 일이 그녀를 덮쳤다.

이제야 겨우 자리를 잡고 제대로 된 회사 생활을 시작하려는데 후계 경쟁이라니….

지난 일 년 간의 적이 다른 임원들이었다면 이제는 그보다 높은 타 계열사의 사장, 부사장들.

그녀의 형제자매들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최근 의기소침하고 기운이 없는 상태였다.

그녀는 딱히 회장 자리에 대한 욕심도 없고, 같은 피를 이은 이들과 싸우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녀의 형제자매들은 다를 것이었다. 관심이 없다는 그녀의 말을 들어줄 것 같지도 않았고.

그녀는 자신의 명패를 잘 닦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 그녀의 사무실에 띠링, 하고 맑은 벨소리가 울렸다.

서령은 책상 위에 있는 벨에 불이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응답 버튼을 눌러 그것을 받았다.

­ 상무님, 에아임 수석 비서가 손님과 함께 도착했습니다.

“…네, 들여보내세요.”

­바깥을 관리하는 비서의 연락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서령은 고개를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고급스런 아날로그 시계의 바늘이 슬슬 오전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에아임이 초청했다는 손님과 만나기로 했던 약속 시간이 가깝다.

그녀의 입장 허락이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똑똑, 하고 사무실의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님과 수석 비서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들어오세요.”

­ 실례하겠습니다.

스르륵. 에아임 수석 비서의 목소리와 함께 잘 관리된 문이 부드러이 열렸다. 열린 문 너머로 익숙한 얼굴, 에아임과 그녀로서는 처음 보는 손님이 들어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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