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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64화 (64/230)

〈 64화 〉 4. 유성 그룹(8)

* * *

“안녕하십니까, 상무님.”

“네. 손님을 모시고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에아임.”

“아닙니다. 이것도 당연한 업무의 일환인데요.”

“당연한 일이라고 고마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아, 그쪽에 앉으세요.”

책상에서 일어난 서령이 사무실 내에 비치된 소파를 가리키며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그를 본 에아임이 반사적으로 움직이려 했지만 서령은 멀리서 오신 손님이니 제가 대접할게요, 라며 그것을 말렸다.

불편하게 자리에 앉은 에아임을 뒤로하고 서령이 물었다.

“손님은 커피가 좋으세요, 아니면 다른 차?”

“나? 나는 커피.”

그녀의 물음에 거침없는 반말이 돌아왔다. 애, 애쉬 씨…! 에아임의 낮춘 목소리가 손님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에아임도 놀란 모양이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여태껏 겪어본 적 없는 태도에 살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세 잔의 커피를 타 손님과 에아임이 기다리는 소파로 향했다.

커피를 내려놓고 자리에 앉은 그녀는 그제야 손님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눈에 들어왔던 신비한 잿빛 은발과 진한 청색의 눈동자. 거친 일이라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 같이 하얗고 깨끗한 피부.

그 귀족처럼 잘생긴 외견만 봐서는 어디 귀한 집 도련님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지만 그녀를 보며 웃고 있는 남자가 자연스럽게 품고 있는 분위기는 차라리 야생의 그것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거친 느낌이었다.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더 미인이네, 아가씨.”

말투도 마찬가지였고.

“…애쉬 씨, 상무님께는 실례를 끼치지 않기로 했잖습니까.”

“왜?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내 윗사람도 아닌데.”

난 고용주한테도 존대는 안 해. 남자, 애쉬가 주저 없이 말했다. 에아임이 그런 그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애쉬 씨….”

서령은 그런 둘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어쩐지 얼마 보지도 않았을 격식없는 손님과 에아임의 사이가 친근해보였다.

작게 미소 지은 그녀가 흔쾌히 애쉬의 반말을 허락했다.

“괜찮아요, 에아임. 손님이 편하신 대로 하세요.”

“하지만….”

“아가씨도 괜찮다잖아. 고마워, 아가씨.”

“풋, 아니에요.”

잔뜩 피곤해 보이는 에아임의 얼굴에 결국 살짝 웃어버린 그녀였다. 그녀와 애쉬, 에아임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향긋한 커피 한 잔과 함께 통성명을 하며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얘기를 시작하는 듯 했다.

애쉬가 날카로울 정도로 직설적인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아가씨, 다른 핏줄들 때문에 목숨이 위험하다며?”

“…네?”

“애쉬 씨!”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작게 미소 짓고 있던 서령은 그 한 문장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에아임이 왜 말을 그렇게 하냐는 듯 애쉬를 불렀지만 그는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사실이잖아. 그쪽은 오는 길에 습격까지 받았으면서.”

“습격…이요?”

“애쉬 씨. 그건 아가, 아니, 상무님께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일입니다!”

당황하는 에아임의 반응. 습격이란 단어를 들은 서령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에아임을 바라봤다.

에아임은 그런 서령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별 것 아닙니다, 상무님. 그냥 오는 길에 작은 일이 하나 있어서….”

“별 게 아니야? 명백히 그쪽을 노린 습격이었는데?”

어떻게든 얼버무리려는 에아임이었지만, 애쉬는 그런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목숨의 위협이 별 게 아니면 대체 뭐가 별 건지 궁금하네.”

“애쉬 씨….”

끝까지 변명을 봉쇄하는 애쉬를 보며 에아임이 작게 탄식하듯 그를 불렀다.

에아임이 고개를 돌려 서령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안 그래도 수많은 압박에 힘들어하던 그녀였기에 자신에 대한 걱정까지 더해주고 싶지는 않았는데.

서령을 본 에아임의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서령은 그런 에아임을 뒤로하고, 거침없이 입을 열고 있는 애쉬에게 물었다.

“습격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말 그대로야. 오는 길에 이 아저씨를 노린 습격이 있었거든.”

애쉬는 전 날 이곳에 오는 길에 있었던 습격을 설명했다.

무장한 괴한들이 뒤따르던 일, 차를 세운 애쉬가 직접 그들을 처리한 일 등.

그의 입이 열리자 에아임이 어쩔 줄 몰라하는 게 보였지만, 애쉬는 서령이 원하는 것처럼 전 날 있었던 일들을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런 그의 설명이 이어질 때마다 서령의 표정은 점점 더 침울해졌다.

“벌써부터 그런 일이….”

“내가 없었으면 아마 이 아저씨는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걸?”

그런 애쉬의 설명을 들은 서령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조부이자 유성 그룹의 회장인 유진혁 회장이 자신의 직계 혈족들에게 후계 경쟁의 시작을 선언한 지 불과 한두 달 정도가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그간은 업무적인 차원에서나 들어오던 방해가 지금은 이렇게 직접적인 위협으로까지 발전했다.

‘이대로라면 정말….’

한 번 벌어진 일은 반드시 또 벌어진다. 이번에는 에아임이었지만 다음번에는 다른 비서, 혹은 그녀 자신이 그 목표가 될지도 몰랐다.

그녀의 조부 대에 일어났던 일이 그녀의 대에 다시 한번 일어나는 것이다.

그녀로서는 원치 않는 일이었지만, 다른 경쟁자들은 그런 서령을 가만히 두지 않으리라.

“…에아임.”

서령은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 숙인 채 기다리는 자신의 수석 비서를 불렀다. 그에 에아임이 고개 숙인 채 대답했다.

“예.”

“이렇게 중요한 일을 왜 숨기려고 했던 거예요….”

“상무님께 걱정을 더해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게….”

그게 무슨 말이냐, 혹은 오히려 그게 더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지 않겠느냐 말하려던 서령이었지만, 그녀는 에아임의 목소리에서부터 느껴지는 자신을 향한 걱정과 안타까움에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부모처럼 자신을 위하는 그의 마음이 너무도 잘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령은 차마 뭐라 하지 못하고 에아임에게 당부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있으면 꼭 말해줘요, 에아임. 에아임이 절 생각하는 만큼 저도 에아임을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에아임이 대답했다.

대화를 주고받는 둘에게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침울한 분위기가 잠깐 사이 사무실 전체를 가라앉게 만들었다.

‘숨 막혀 죽겠네.’

잠시 그런 둘을 지켜보던 애쉬가 생각했다.

후계 경쟁인지 뭔지가 시작되고 어제 처음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분위기는 벌써 무슨 초상집이다.

질척한 늪에 빠져드는 것 같은 기분. 애쉬는 이런 패배자들의 기운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가 입을 열어 끼어들었다.

“이봐, 누가 보면 벌써 하나 죽은 줄 알겠어.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그래서 제가 중간에 말렸잖습니까.”

“나도 이 정도로 침몰해버릴 줄은 몰랐지.”

무슨 심해까지 가라앉은 기분이다.

에아임의 소심한 타박에 애쉬가 가볍게 대답했다. 그냥 있던 일을 알린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팍 죽어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 애쉬의 말에 서령이 사과했다.

“죄송해요, 손님을 두고 무슨 추태인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갈까요?”

“그래.”

애쉬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 서령은 애써 침울한 분위기를 걷어내며 물었다.

“아까 통성명 하고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뭐, 듣자하니 외부 경호 업체의 협력도 막혔다며?”

애쉬가 거침없이 묻는 말에 서령이 다시 움찔하고 반응했다.

분위기를 환기시켜볼까 해서 본론으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도 애쉬의 말은 서령 홀로 싸매고 있던 아픈 부분들을 푹푹 찔러온다.

그 통증은 그녀가 잠시 잊고 있던 현실을 다시 일깨웠다.

서령은 그 아릿한 통증을 꾹 참고 대답했다. 상대방은 일단 그녀를 돕기 위해 온 협력자였다.

“…네. 그래서 애쉬 씨를 초청한 거예요.”

“그래. 그래서 내가 왔지. 의뢰는 받기로 결정했고.”

서령의 말에 애쉬가 긍정을 표했다. 하지만 거기서 말을 끝내지 않고 계속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

“…궁금한 거요?”

“그래. 목적이 명확하지 않단 말이야.”

“목적이… 명확하지 않다고요?”

서령이 되물었다. 그녀는 애쉬가 무엇을 말하는 건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에아임에게서 모든 보고를 받았고 의뢰서 작성 내역까지 확인했다. 그녀의 의뢰는 그녀 자신을 후계 경쟁 종료 시점까지 호위할 것.

그러니까 그녀의 안전이 목적이었다.

호위 대상의 안전. 그보다 명확한 목적이 뭐가 있단 말인가.

서령이 감을 못 잡는 듯하자 애쉬가 추가로 설명했다.

“모르겠어? 내가 말하는 건 이 의뢰가 아니라 아가씨의 목적을 말하는 거야.”

“제 목적….”

애쉬의 말을 듣고 한 차례 중얼거린 서령이 입을 닫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 목적은 뭐지?’

그저 후계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

아니면 후계 경쟁의 최종 승자로서 그룹을 잇는 것?

애쉬의 물음에 지금 와서 되돌아보니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일에 치이고, 타인의 기대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던 삶이다.

그런 그녀에게 목적이라고 할 것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당장의 위기를 벗어나고 일을 처리하는 것은 목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긴 서령이 말문을 열지 못하자 애쉬가 고개를 저으며 얘기를 그냥 넘겼다.

“잘 모르겠으면 됐어. 그 후계 경쟁이라는 것도 금방 끝날 일은 아니니까 천천히 잘 생각해보라고, 아가씨.”

그의 말대로였다. 유성만한 그룹의 후계를 정하는 일이 그렇게 순식간에 끝날 일은 아니다. 아무리 적어도 두어 달 이상은 더 걸릴 것이었다.

서령은 자신에게 던져진 애쉬의 물음을 잘 기억해두기로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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