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67화 (67/230)

〈 67화 〉 4. 유성 그룹(11)

* * *

­ 뻐어억!

“커헉!”

인간이 인간을 친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큰 타격음과 함께 링 위의 한 명이 바닥을 구른다.

그것을 구경하던 다른 소속의 경호원들이 감탄했다.

“와. 방금 움직임 봤어? 진짜 장난 아닌데?”

“그 덴슨이 완전히 쪽도 못쓰는구만.”

“어디서 온 녀석이지?”

쓰러진 쪽은 유서령 상무의 경호원 중 하나인 흑인 남성, 리미드 덴슨이었고 멀쩡히 서서 그를 내려다보는 쪽이 이번에 새롭게 합류한 애쉬 론모어였다.

애쉬의 상대, 리미드 덴슨은 이곳에 위치한 경호원들 중에서도 유독 그 체격이 크고 타격과 레슬링에 일가견이 있는 남자였다.

그런데 자신 덩치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애쉬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다 무릎 꿇은 것이다.

아무리 강화인간, 사이보그끼리의 싸움이라고 해도 체급과 리치의 차이는 싸움에 충분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기에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애쉬는 첫 번째로 도전하고 그대로 무릎 꿇은 리미드 덴슨을 흘깃 내려다보고는 글로브를 벗지도 않은 채 스파링을 구경하던 타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다음.”

자못 건방져 보일 수 있는 말투와 태도.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직접 지적할 수 없었다.

겨우 한 번의 스파링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수준의 차이를 제대로 보여준 것이다.

“이봐, 나도….”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다른 소속의 경호원이 신이 나서 링 위로 올라가려 할 때였다. 무뚝뚝한 여성의 목소리가 그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앞서 애쉬에게 간단히 무릎 꿇은 리미드 덴슨과 마찬가지로 서령의 경호원 중 하나인 금발의 여성, 베일라 로엘이었다.

먼저 나서려던 경호원은 그런 그녀를 발견하고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같은 소속인데 복수는 해야지. 먼저 해.”

“감사합니다.”

금발의 여성 경호원, 베일라가 글로브와 보호 장구를 끼고 링 위로 올랐다.

“…망할. 조심해, 보통이 아니야.”

“예.”

그에 먼저 도전했던 흑인 남성, 리미드 덴슨이 아픈 곳을 부여잡고 자리를 비켜주며 그녀에게 조언했다.

그녀도 리미드 덴슨이 무릎 꿇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지켜봤기에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링 위에 올라오자 미지근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저 잿빛 은발의 남자가 어중간한 실력자가 아니라는 것은.

애쉬가 앞선 도전자와 달리 보호 장구를 모두 착용하고 올라온 그녀를 보며 말했다.

“오, 그래도 다 차고 나와서 다행이네. 여자한테 손대는 건 괜히 찜찜하단 말이지.”

보호 장구를 찼으니 적어도 죄책감은 좀 덜어질 것 아닌가.

그런 뜻을 담고 명백히 그녀를 얕보는 듯한 애쉬의 말에 베일라가 대답했다.

“저는 전직 군인입니다. 전장에서는 여자도 남자도 없습니다.”

애초에 사이보그, 강화인간이 된 순간부터 거기에 성별은 의미가 없어진다. 모두가 사람 하나쯤은 쉽게 쳐 죽일 수 있는 인간병기가 되니까.

앞서 그녀의 동료인 리미드 덴슨을 상대로 보였던 실력은 인정하는 바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저런 말까지 용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애쉬는 그녀의 말을 듣고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을 알았지만 굳이 거기에 부연설명을 더하지는 않았다.

대신 도발했을 뿐이다.

“뭐, 그런 말이 아니긴 한데. 그쪽은 앞으로 특별히 자주 볼 사이니까 살살 할게.”

“가능하다면 얼마든지요.”

베일라가 대답하며 들고 올라온 머리 쪽 보호 장구를 썼다. 곧 스파링이 시작될 것을 알아챈 링 밖의 서령이 그녀를 응원했다.

“베일라 힘내요!”

­ 툭.

그리고 이어지는 글로브 터치. 글로브 하나만을 찬 애쉬와 전신에 보호 장구를 두른 베일라의 스파링이 시작됐다.

베일라는 먼저 상대방을 살폈다.

한 차례의 스파링을 거쳤음에도 숨이 찬 기색, 지친 기색 하나 보이지 않는 애쉬.

그는 격투기를 배우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그조차도 그녀를 상대하는 데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인지 가벼운 스텝도 밟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언제까지 저런 여유를 부릴 수 있을지.’

베일라가 몸을 가볍게 통통 튕기며 리듬을 탔다. 그녀는 서령의 경호원들 중에서도 타격기로는 상대가 없는 최고의 테크니션이었다.

아무리 리미드 덴슨을 손쉽게 쓰러뜨린 상대라고는 해도 그녀의 기술조차 쉽게 파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애쉬는 스텝을 밟으며 몸을 튕기는 그녀를 보며 씩 웃었다.

“먼저 들어와.”

“…그럼 사양 않고.”

탓. 베일라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과 동시에 폭발적으로 쏘아져나갔다.

그녀의 팔과 다리는 유성 그룹의 실험실에서 제작된 첨단 사이보그 의체. 전투용으로 만들어진 의체가 낼 수 있는 속도는 평범한 인간의 그것을 한참은 뛰어넘었다.

단숨에 날 듯 뛰어든 베일라는 곧장 몸을 돌리며 오른 주먹을 뻗어 깔끔한 스트레이트 곡선을 그렸다.

­ 슈확!

그러나 그 주먹이 목표했던 상대방의 얼굴에 닿는 일은 없었다.

가드조차 올리지 않은 채 서있더니 언제 반응했는지 상체를 뒤로 빼며 피한 애쉬.

글러브가 살벌한 소리와 함께 그의 뺨 근처를 스치고 지나간다.

애쉬는 예리하게 찔러 들어왔다가 마찬가지로 빠르게 회수되는 팔을 보며 생각했다.

‘제법 빠른데?’

애쉬는 직전에 상대했던 덩치보다 이쪽의 속도가 한참은 빠르다. 단순히 체격에 의한 차이라고 하기는 그 격차가 너무 컸다.

아마 앞에 상대했던 덩치도 이런 링 같이 활동이 제한된 공간이 아니라면 눈앞의 여자, 베일라에게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다 끝이 났을 것이다.

“흡.”

애쉬가 생각보다 빠른 스피드에 놀란 사이 베일라가 연달아 몸을 앞으로 밀어 넣으며 주먹을 뻗어왔다.

라이트에 이은 레프트, 발사되는 훅.

사이보그의 의체는 인간의 몸으로는 불가능한 움직임을 한계 이상으로 빠르게, 쉴 새 없이 계속할 수 있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그러면서도 하나하나의 예리함을 잃지 않은 펀치들이 쏟아졌다.

따로 격투기를 배우지 않은 애쉬도 수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러쉬.

‘전직 군인이라고 하더니.’

군인이 아니라 무슨 격투기 선수였던 것 같은 느낌이다.

어지간한 녀석들은 몇 번 피하다가도 하나 둘 히트당하고, 결국에는 몸을 바닥에 눕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상대가 좋지 않았다.

계속되는 러쉬에 밀려나며 코너와 로프가 등 뒤에 닿기 직전. 애쉬도 마주 움직였다.

격투기를 배우지도 않았고, 호흡이나 스텝,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대처법을 공부해 본 적도 없는 애쉬였지만 그의 감각과 신체능력만으로도 대처하기엔 충분했다.

바디 쪽을 향해 뻗어오는 주먹을 가볍게 밀어내며 균형을 흩트리고, 오른다리를 채찍처럼 휘감아 찬다.

­ 촤악!

반사적으로 가드를 위해 내린 베일라의 팔과 애쉬의 정강이가 쫙 달라붙으며 요란한 소리를 발생시켰다.

전력을 다한 것도 아닌 발차기 한 번에 베일라의 몸이 살짝 뜨는 게 보였다. 그녀의 놀란 표정도.

‘이제 내 차례지.’

애쉬는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며 픽 웃고는 그녀가 했던 것에 발차기까지 더해 되돌려주었다.

오른발, 오른손, 왼손, 다시 오른손에 이은 왼발.

스트레이트 훅이니 그런 게 뭘 말하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애쉬는 자신의 감각에 의존해 무엇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 퍼억! 팍!

일부러 상대방이 가드를 할 수 있을 정도로만 움직이고 있었지만, 하나하나를 막을 때마다 몸이 크게 흔들리는 게 보인다.

가볍고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때는 여성의 작은 체구가 좋았지만, 이렇게 몰리고 있을 때는 오히려 그 반대다.

베일라는 보호 장구 위에 꽂히고 있음에도 묵직하게 몸 전체를 흔드는 충격에 정신을 못 차렸다.

­ 파앙!

“크읏.”

오른 주먹에 곧장 이어지는 오른 다리의 충격. 통쾌할 정도로 시원한 소리와 함께 보호 장구가 터질 듯이 울린다.

베일라는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애쉬의 움직임에 반사적으로 가드를 올리거나 몸을 뒤로 빼는 등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격투기를 배웠다면 일부러 숨기지 않는 이상 모든 움직임에서 그런 기색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상대방의 움직임에서는 정말로 아무런 특징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가 러쉬를 감행할 때도 모든 것을 똑똑히 보고 반응하는 듯 상, 하체를 멋대로 움직이며 피했고, 공격을 하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비효율적인 듯하면서도 재빠른 연계. 분명 찌를 틈은 넘쳐나는데 그곳을 노리려 하면 어느새 사라져버린다.

베일라는 애쉬의 움직임에 끝도 없이 말려들어갔다.

그러다.

틱. 차가운 무언가가 그녀의 등에 닿았다.

‘언제 여기까지.’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밀어 넣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코너에 몰린 것이다.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고, 이런 식으로 몸이 기대어지면 충격을 해소할 방법도 사라진다.

여기서 더 공격을 받았다간 끝이다. 무리해서라도 코너에서 빠져나가야 했다.

­ 퍼억!

애쉬는 그런 그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가드를 두들겼고, 기회를 노리던 베일라는 곧 빠져나갈 최적의 순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른발에 의한 미들 킥.

상대방도 코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 몸통 쪽을 주로 견제했지만 발차기는 필시 동작이 커지기 마련이다.

가드 안에 고개를 박고 있던 베일라는 곧장 미들 킥을 받아내며 그 진행 방향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 뻐억!

‘어…?’

다음 순간 그녀의 눈앞에 링의 바닥이 위치하고 있었다.

“……일라 씨!”

삐이이. 귓가의 이명음 사이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그녀의 호위 대상인 유서령 상무의 것이다.

2, 3 초 정도 멍하니 쓰러져 있던 베일라는 그제서야 자신이 바닥에 쓰러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녀는 분명 미들 킥을 시기적절하게 막아내고 코너에서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눈을 뜨니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일순간 정신을 잃은 것이다.

베일라는 휘청거리는 팔로 자신의 몸을 억지로 세워 앉혔다. 그녀의 정면에서는 애쉬가 글로브를 벗어던지고 있었다.

곧, 이명 소리가 점차 가라앉고 초점이 뚜렷하게 잡힌다.

글로브를 모두 벗은 애쉬도 그녀가 제정신을 차렸다는 것을 알았는지 물어왔다.

“이봐, 괜찮아?”

스파링에서 일시적으로 혼절까지 올 정도로 친 게 미안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베일라는 그런 그의 물음에 대답하기도 전에 물었다. 자신이 무엇에 당한 건지를.

“어떻게, 된 겁니까.”

“응? 뭐, 빠져나가려다 한 대 제대로 맞은 거지.”

애쉬가 대충 대답하며 자신의 왼손을 들어보였다.

오른 미들 킥을 막아내고 그대로 코너에서 빠져나가려던 그녀의 턱에 번개같이 꽂힌 레프트.

그게 결정타였다. 베일라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고, 애쉬는 더 볼 것도 없이 글로브를 벗었다.

베일라는 그 대답을 듣고 허망한 눈으로 애쉬를 바라봤다.

“그런….”

분명 빠져나가는 타이밍은 완벽했다.

가벼운 펀치도 아니고, 제대로 힘을 실은 미들 킥. 그것을 제대로 막아내는 동시에 움직였다.

발을 뻗고 막힌 직후. 흐트러진 자세에서 나온 레프트가 인지도 못할 정도로 빠르고 완벽하게 턱에 꽂혔다고?

그건 신체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천부적인 감각의 차이였다.

힘을 싣는 감각, 주먹을 뻗는 감각, 균형을 잡는 감각 등등.

격투기를 배운 것 같지도 않은 움직임을 보이던 이 남자에게 졌다니…….

“살살 친다는 게 나도 조금 힘이 들어간 모양이네. 다음부터는 조심할게.”

베일라는 웃고 있어서 사과하는 건지, 아니면 놀리는 건지 모를 그의 얼굴에 이상하게 열이 받는 것을 느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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