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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77화 (77/230)

〈 77화 〉 5. 후계경쟁(1)

* * *

외부의 손길이 닿은 비서에 대한 처분은 금방 정해졌다. 반 년 간의 정직 처리.

그게 전부였다.

하다못해 자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반 년 쉬고 오라고 휴가나 보내준 셈 아닌가.

에아임은 솜방망이라는 말도 아까운 그 일처리에 한숨을 내쉬었지만 어쩌겠는가. 그가 모시고 있는 유서령이 그렇게 정한 것을.

에아임은 애쉬에게 뭐라고 좀 해보란 듯 쳐다봤지만 애쉬는 그녀의 처분에 굳이 무어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 어중이떠중이들이 실제로 자신에게 위협이 됐던 것도 아니고, 억지로 해고라도 시키자 밀어 붙여 봤자 속까지 깊이 납득할 것 같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애쉬를 향한 공격과 비서에 대한 처분이 있던 날이 지나고, 시간이 흘렀다.

“다녀왔습니다….”

서령이 힘 빠지는 목소리로 인사하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에아임이 말없이 뒤따랐다.

둘 다 회의 시간이 몇 시간은 더 길어져서 그런지 잔뜩 지친 느낌이다.

사무실에서 기다리던 애쉬는 그런 둘을 반겼다.

“좀 늦었네.”

“네…. 부사장님이 쓸데없이 물고 늘어져서요….”

“또 그 인간이야?”

“네….”

지난 번, 애쉬를 향한 공격이 있던 날 이후로 이런 날이 많아졌다.

그때의 수작질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 서령을 향한 공격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물리적인 공격은 없었지만 정치적인 공격들이.

애쉬와 베일라를 비롯한 경호원들은 그저 서령의 주변을 지키면 됐지만, 서령과 비서들은 경우가 달랐다.

늘어난 근무 시간, 밥 먹듯 하게 되는 야근과 온갖 정치 공작에 대한 방어까지. 특히나 지난번의 일로 비서가 하나 줄었기에 그 업무가 더 과중해졌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본래 오후 다섯 시에 끝날 것으로 정해져있던 회의가 오후 일곱 시까지 늘어진 것이다. 그만큼 비서들과 서령의 수고도 늘어났다.

다른 경쟁자에게 포섭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성 미래전자의 부사장 탓이었다.

성격 좋은 서령이었지만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자 애쉬에게 하소연하며 뒷담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자주 들었던지 애쉬도 그 부사장의 나쁜 버릇과 사내에 떠도는 소문 따위를 모두 알고 있을 정도.

에아임이 기운이 빠져 늘어진 서령을 위로했다.

“기운 내십시오, 상무님. 어차피 내일은 휴일이고, 이제 외식도 가야지요. 예약 시간이 곧 입니다.”

“아, 그랬죠…. 빨리 가야지.”

서령은 맛있는 걸 먹고 힘내겠다는 듯 늘어져있던 상체를 세웠다. 애쉬는 그런 서령을 보고 피식 웃었다.

며칠 전부터 미리 잡아놨던 외식. 애쉬를 포함한 경호원들, 그리고 비서들까지 다 모이는 외식이다. 힘없이 가서 맛없게 먹을 수는 없지.

없는 힘을 억지로 끌어낸 서령이 퇴근을 준비했다. 에아임과 애쉬도 자리를 정리했다.

“자, 그럼 어서가요.”

“예.”

서령과 에아임이 앞장서고 애쉬가 느긋하게 뒤따랐다. 셋은 베일라를 비롯한 경호원들과 합류해 예약한 레스토랑으로 향했고, 한동안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

“그럼, 이번 주도 수고 많으셨어요!”

“이사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희보단 이사님과 비서 분들이 고생하셨죠.”

일전에 다시는 술을 안 마신다던 서령도 분위기를 타서 조금 마셨는데, 알코올이 들어가서 그런지 텐션이 오른 상태다. 서령의 밝은 마무리 인사에 경호원들이 화답했다.

오늘은 애쉬에게도 나름 즐거운 자리였다. 그간 직접 보고 얘기할 일이 거의 없던 경호원들의 얼굴도 익혀둘 수 있었고.

경호원들 사이에 있던 베일라가 그들과 떨어져 애쉬 쪽으로 왔다. 이제 집으로 갈 시간이다.

“그럼 가시는 길까지 모시겠습니다.”

“아니에요! 베일라 씨랑 애쉬 씨가 있으니까요.”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지막까지 의무를 다하려던 경호원들이 서령의 만류에 결국 먼저 자리를 떠났다.

서령과 애쉬, 베일라도 에아임이 기다리고 있는 차량에 올라탔다.

“흐흥♪ 그럼 노래나 하나 들으면서 갈까요?”

서령이 오디오를 조절해 신나는 노래를 하나 틀었다. 금세 차량 안이 빵빵한 스피커의 볼륨으로 가득 찼다.

술이 얼마나 약한지 양주까지 가지도 않았건만 도수 낮은 와인 몇 잔에 조금 취한 것처럼 보인다.

에아임은 그런 서령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으며 운전대를 잡았다. 그런 에아임을 서령이 막았다.

“에아임도 술 마셨으니까 운전은 그냥 자율주행으로 해요!”

“예? 저는 얼마 안 마셔서 괜찮습니다만….”

“그러다 검문에 걸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요!”

“…예, 그렇긴 합니다만. 알겠습니다.”

서령의 강경한 태도에 에아임이 운전대에서 손을 때고 자율주행 모드로 변경했다. 곧 차량 스피커에서 AI의 딱딱한 목소리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차량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목적지를 향해 출발합니다.

창밖의 세상이 빠르게 지나간다. 이런 걸 보면 정말 편리한 세상이긴 했다.

인간이 굳이 차량을 조종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러운 운행.

어디선가 주워들은 기사에 따르면 자율주행 AI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난 뒤 교통사고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하던가.

원래 세계에서는 본격 도입은커녕 실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자율운행이었는데, 이 세계에서는 이미 도입 후 수십 년이 지났다.

도로를 달리는 차량의 대부분이 자율주행을 따르는 차량들인 것이다.

“애쉬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게 창밖을 보며 잡생각을 하던 애쉬의 귓가에 서령의 질문이 들려왔다.

딴 생각을 해서 좀 전까지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애쉬는 듣고 있지 않았다는 걸 숨기지도 않은 채 태연히 물었다.

“뭘?”

“…요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요.”

뚱한 표정의 서령이 설명했다. 애쉬는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었으니까, 하는 표정이다.

애쉬가 그런 서령의 표정 공격을 가볍게 무시하고 대답했다.

“글쎄. 얘기 들어보니까 원래는 더 심했다는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양호하지 않나?”

“아니, 그런 거 말구요. 아까 말했잖아요. 이번에 언니한테 사고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것 같다구요.”

“그랬나? 안 듣고 있어서 몰랐네.”

“진짜아….”

애쉬의 대답에 서령이 뾰로통해졌다. 저번에도 느꼈는데 알코올이 들어가면 이렇게 감정 표현이 더 짙어지고 표정도 풍부해지는 편인 것 같다.

아니, 변하는 게 아니라 어쩌면 원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걸지도. 워낙에 매인 게 많은 아가씨니.

그런 식으로 잡담이 오가며 시간이 조금 지났다. 서령과 베일라의 잡담에 귀 기울이던 애쉬가 약간의 지루함을 느낄 정도의 시간이. 애쉬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바깥을 바라봤다.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어둑어둑하고 살풍경한 도시의 모습이다.

“….”

잠깐 창밖을 바라보던 애쉬는 바깥의 모습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아까 레스토랑으로 갈 때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니 이제 슬슬 목적지인 펜트하우스 근처에 왔어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바깥의 모습은 어째 1구역이라기엔 조금 개발도가 떨어져보였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빌딩들로 빼곡해야 할 거리가 보다 낮은 층의 건물들로 짜여있다.

애쉬는 바깥을 보며 조금은 낮아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잠깐.”

“예?”

“여기가 어디지?”

“그야….”

애쉬의 말에 뒤늦게 에아임이 창밖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이 굳는다.

에아임은 다급히 차량의 어느 버튼을 눌러 홀로그램 화면을 펼쳤다. 애쉬의 목소리와 에아임의 행동에서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은 서령과 베일라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에아임?”

서령이 조심스럽게 굳은 표정의 에아임을 불렀다. 그는 부름에 대답해야한다는 것조차 잊고 홀로그램 화면을 터치해 무언가를 펼쳤다.

모두의 눈에 그 홀로그램 화면. 도로와 거리가 거미줄처럼 엮인 지도가 들어왔다.

지명을 나타내는 지도의 상단에는 ‘7구역’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나타나있었다. 목적지인 1구역의 중심에서 벗어난 걸 넘어 정반대 방향이다.

모두가 그것을 깨닫고 긴장에 몸을 굳혔다.

“어, 어떻게 된 거죠?”

갑작스런 상황에 술기운이 가신 서령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었던 탓에 더 긴장감이 흘렀다.

그녀의 언니에게 일어났던 사고가 인위적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여태껏 멀쩡했고, 고장 사례가 거의 없는 자율주행 AI가 후계 경쟁 기간에 맞춰 고장이 나는 일은….

“델림, 운행을 멈춰!”

에아임은 급히 자율주행 AI에게 정지를 명령했지만 AI는 명령에 대한 반응도 없이 오히려 여태껏 유지했던 속도를 높였다. 70, 73, 75….

점차 높아져만 가는 속도계의 숫자. 그것을 본 애쉬는 이 사태가 단순 사고든 누군가의 수작이든 차량을 멈추거나 차량에서 내려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대로 계속 속도가 높아져 최고속도에 도달한 채 어디에 들이받기라도 하면 아무리 그라도 위험할 수 있었다.

애쉬가 침착한 목소리로 에아임에게 말했다.

“아저씨, 일단 문 잠금부터 풀어.”

“예? 하, 하지만.”

애쉬는 더 이상 잔말 않고 그를 바라봤다. 당황한 에아임이었지만 곧 그도 당장 차량을 멈출 방법이 없다면 어떻게든 내리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알겠습니다.”

수동 조작으로 문의 잠금을 푼다.

탁. 다행히 잠금 해제까지 막히진 않았는지 작은 소리와 함께 문고리의 잠금이 풀렸다.

일단 첫 단계는 잘 풀렸다. 하지만 느긋하게 있을 시간은 없다.

속도계의 숫자는 어느새 100을 넘겨 110까지 치달아있었다.

“아가씨.”

“네, 네?”

애쉬가 문을 열어 고정했다. 콰아아아! 거친 바람소리가 문을 떨어뜨리기라도 할 것처럼 울렸다.

“에…? 자, 잠깐, 잠깐만요! 잠깐!!”

애쉬는 주저하지 않고 곧장 서령을 안아들었다.

애쉬가 자신을 품에 안고서야 무슨 짓을 하려는지 눈치 챈 서령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자신을 안고 뛰어내리려는 것이다. 그것도 11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는 차량 안에서!!

애쉬는 그런 서령의 발버둥을 무시하고 베일라를 바라봤다.

“에아임 아저씬 그쪽한테 맡긴다?”

“…예.”

안전벨트를 풀고 몸을 일으킨 베일라가 대답했다. 멀쩡히 내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이 상태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대답을 들은 애쉬는 서령을 안은 채로 차의 문턱에 걸쳐 섰다. 강하게 몰아치는 바람이 머리칼을 휘날렸다. 품에 안긴 서령은 거의 울기 직전의 상태다.

“애, 애쉬씨이!!”

“오빠 믿지?”

공포에 눈가가 젖은 서령이 애쉬의 웃기지도 않은 말에 그를 노려봤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말ㅇ…!!!”

꺄아아아악!!!

서령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애쉬가 발끝을 가볍게 튕겨 몸을 쏘아냈다. 그와 서령의 몸이 차량을 크게 벗어나며 바람에 휩싸였다.

귓가를 울리는 비명소리도 잠깐의 바람 소리에 묻힌다.

공중을 부유하는 자유감과 낙하할 때의 스릴. 그의 표정에는 호위 의뢰를 받은 이후 어느 때보다도 진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아, 역시 이런 게 진짜 인생이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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