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79화 (79/230)

〈 79화 〉 5. 후계경쟁(3)

* * *

‘정말 마음에 드는 선택이야.’

애쉬가 서령에게 자신의 코트를 덮어주며 생각했다.

그녀가 어떤 선택을 했든 간에 다른 셋은 저들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설령 저 서류에 서명을 했다고 하더라도.

저들이 자신들의 배후를 얘기하고도 그것을 들은 자들을 멀쩡히 보내줄 리가 없지 않은가.

서령 정도는 그룹에서 쫓아내는 정도로 눈감아줄 수 있었겠지만, 아랫사람에 불과한 나머지의 중요성은 한참 떨어졌으니.

어차피 싸워야 할 일이었지만, 서령이 저항하길 포기했다면 정말 기운 빠지는 일이 됐겠지.

그렇게 되지 않아 정말로 다행이다.

애쉬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또 기대했다.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전초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규모가 이 정도.

슬럼에서는 보기 힘들 수준의 사이보그와 강화인간이 잔뜩 섞인 수십 명의 무장 병력.

그렇다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은 그를 얼마나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

‘회사’에 대해 알아보는 것 이전에, 그런 사실만으로도 이번 일을 받아들인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몸을 푸는 애쉬의 귓가에 재수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리석어도 너무 어리석군요. 유감입니다, 유서령 이사님.”

절대로 놓치지 말고 전부 여기서 처리하세요.

명령하고 돌아서는 안경잡이의 뒷모습이 검은 양복들 사이로 사라졌다.

그리고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품에서 제각기 무기를 꺼내들었다.

가볍게는 권총 한 자루를 꺼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휴대하기 편하도록 준비된 조립식 무기인 듯 무언가를 결합시키는 놈도 보인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겉으로 티가 나지 않도록 어떻게든 챙길 수 있는 대인무기들이었다.

그나마 자동소총 같은 건 거의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하나?

이곳은 사방이 탁 트인 도로 한복판이었다. 수십 명이 자동소총을 쏴재끼면 애쉬는 그렇다 쳐도 서령을 포함한 다른 셋의 안전이 문제였다.

그가 받은 의뢰는 어디까지나 적을 처리하는 게 아니라 호위대상을 지키는 것이었으니 제법 곤란했을 것이다.

자동권총 따위가 제법 보이는 것도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아무래도 소총에 비해서는 위력이 부족하니 괜찮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애쉬가 코트를 뒤집어 쓴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서령을 툭 뒤로 밀어냈다.

“아….”

“멍하니 있다 총 맞는다. 저 둘이랑 이곳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애쉬가 씌워준 코트는 방탄, 방검 기능을 지닌 값비싼 물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몸을 빈틈없이 막아주는 건 아니었다. 잘못해서 코트에 가려지지 않은 발목 같은 곳에 한 발 맞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진다.

서령은 그런 애쉬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물쭈물하다가도 작게 그를 향해 당부했다.

“그, 조심하세요….”

“핫, 날 걱정하는 거야?”

겨우 이 정도로?

애쉬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기껏해야 자동권총이나 몇 개 안되는 이상한 무기들로 무장한 놈들이다.

저 숫자로 진짜 위협이 되려면 군용 병기 정도로는 무장해서 왔어야지.

애쉬의 미소를 본 서령이 결연한 표정으로 한 발짝, 또 한 발짝.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검은 양복들이 그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며 다가왔다. 그에 애쉬가 검을 뽑아들었다.

“놓치지 마!”

“쏴!!”

­ 타앙!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들려온 총성.

그것이 신호탄이라도 되는 듯 겨우 넷에 불과한 일행을 향해 수십의 검은 양복들이 달려들었다.

“들어와.”

다른 셋이 뒤를 보이고 도망갈 때, 애쉬는 홀로 그들의 정면에 서서 웃었다.

검은 칼날이 달빛을 받아 번뜩였다.

*

‘귀찮긴 한데, 생각보다 별 거 없는데?’

애쉬가 속으로 생각했다.

쇄애액! 찌릿하는 느낌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었더니 직전까지 오른 눈이 있던 곳을 총탄이 꿰뚫는다. 예리한 사격이었다.

“젠장! 이걸 또 피해?”

어떤 놈의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애쉬의 귓가에까지 흘러든다.

가끔 이렇게 실력이 괜찮은 놈들이 있긴 했지만, 그 외에 대부분은 그렇게 뛰어나지도, 나쁘지도 않은 애매한 놈들이다.

상황은 괜찮았다. 겨우 이 정도 실력, 이 정도의 숫자는 몇 분 내에 정리를 끝내고 서령의 뒤를 쫓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애쉬는 거기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왜지?’

유선혁이라는 놈도 제대로 된 정보통이 있다면 최근 애쉬에게 일어난 일과 그로 인해 정직처리를 당한 비서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따로 은폐공작을 하지도 않았으니 조금만 파보면 금방 나왔을 터.

그런데 어째서 겨우 이런 전력으로 일을 강행한 것일까. 정말 그에 대한 정보를 모르고 있는 건가?

애쉬는 언젠가 에아임에게서 들었던 서령의 형제자매들의 얘기 중 유선혁에 대한 평가를 떠올렸다.

‘유성 증권의 사장이신 유선혁 님께선 이사님의 첫째 오빠이자 이번 후계경쟁의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분입니다. 무척이나 철저하기로 유명하신 분이죠.’

그런 간단한 조사도 하지 않는 놈이 수십 년은 더 먼저 기반을 쌓은 제 아버지를 제치고 후계경쟁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불리고 있다고?

그건 절대 아닐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유성 그룹만한 거대 기업체다.

비서들 또한 도시 전체를 둘러봐도 찾기 힘들 인재들로 가득할 것이었고, 본인도 그만한 교육을 받아왔을 텐데 그런 놈이 정보의 중요성을 간과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애쉬 자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놈은 왜 겨우 이 정도의 전력만을 보낸 것일까.

“크아악!!”

애쉬는 그런 고민에 빠진 채 달려드는 셋의 모가지를 그대로 날려버렸다.

이대로 끝난다면 결국 아무런 문제도 없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가능성이 컸다.

서령 쪽을 쫓아간 놈들이 좀 신경 쓰이긴 했지만, 나름 실력이 뛰어난 베일라와 1인분은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에아임도 있었으니 어느 정도의 시간끌기는 되겠지.

그럼 재빨리 이쪽을 처리한 애쉬가 뒤따라가 도우면 되는 것이다.

­ 촤악!

애쉬가 빈틈을 타 외곽에서 돌던 한 놈의 몸을 부드럽게 갈라냈다. 이것으로 열 셋.

남은 숫자는 이제 열댓 명 정도인가? 슬슬 적의 눈동자에 공포가 깃드는 게 보였다.

분명 적은 눈앞에 있는데 총을 쏴도, 칼을 휘둘러도, 뭘 해도 닿질 않으니 귀신을 상대하는 기분이겠지.

“이봐, 이게 끝이야?”

“…….”

애쉬의 도발하는 것 같은 말투에도 적은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그에게 겨눈 총구를 겨누고 있을 뿐이다.

‘설마 저쪽에 다른 뭔가가 준비돼 있기라도 한가?’

그런 반응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보면 애쉬를 붙잡고 있기 위해서 시간을 끄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만약 정말 그를 붙잡아두고 서령 쪽에 뭔가 수를 쓴 것이라면 매우 곤란해질 수 있었다.

이쪽의 승리 조건은 어디까지나 적을 모조리 처치하는 게 아니라 서령을 지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대답 없는 상대의 반응에 애쉬가 그냥 고민하길 그만두고 최대한 빨리 서령의 뒤를 쫓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였다.

“지금!”

탕! 타당!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열 정이 넘어가는 총이 불을 뿜었다.

애쉬는 총구에서 불꽃이 튀는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몸을 움직였다.

지들 딴에는 도망칠 틈이 없도록 탄막을 형성한다고 해본 것 같았지만, 그런 걸 겪은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이 정도는 가볍게 피할 수 있었다.

한발, 두발, 세발. 애쉬는 묘기를 부리는 것처럼 몸을 완벽하게 통제했다.

수 초 동안 백여 발도 넘게 쏟아진 총탄은 그의 몸에 단 하나도 닿지 못했다.

‘응?’

그렇게 총탄들을 다 피했는데, 뭔가 이상하다. 느려질대로 느려진 세상 속에서 그의 감각이 무언가를 경고했다. 애쉬는 본능에 따라 들고 있는 검을 휘두르며 빙글 돌았다.

스륵. 칼끝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뭐지?

시선을 향하니 회색빛 총탄이 반으로 갈라지며 튕겨나가는 게 보였다. 뒤쪽에 남은 놈은 없었을 텐데?

“허.”

뒤를 돌아본 애쉬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 지었다.

이런 게 저놈들의 비장의 수였나?

어깨부터 반대쪽 갈비뼈까지 썰린 산송장이 총구를 겨누고 있다. 약한 전류가 흐르고 있는 단면이 눈에 들어왔다.

저런 꼴이 되어서도 아직까지 움직이고 있는 걸 보니 머리를 제외한 전신을 개조한 놈인 것 같았다.

그야말로 인간의 심리와 물리적 사각을 완벽하게 노린 공격이었지만, 애쉬에겐 12레벨에 달한 신체능력과 숙련도가 선사하는 초감각이 있었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있는 한 사각은 없다.

아마 이곳에 있는 게 그가 아니었다면 누가 당해도 이상치 않았을 기습이었지만, 그 목표 대상이 애쉬였다는 게 적에게는 크나큰 불행이었다.

“뭐, 시도는 좋았어. 결과는 아니었지만.”

“안, 돼…. 컥.”

애쉬는 그들의 마지막 시도에 유감을 표하며 벌레 같은 꼴로 바닥을 기고 있는 사이보그를 처리했다.

“저게 무슨….”

“뒤에서 쏜 총알을…베어냈다고?”

허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멀쩡히 서있는 나머지 검은 양복들은 애쉬가 보인 모습을 보고 거의 전의를 상실한 것 같았다.

그러나 애쉬는 그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그가 먼저 간 이들이 외롭지 않도록 나머지 검은 양복들도 함께 보내주기 위해 다가갔다.

그리고.

­ 터어엉!

핸드캐넌이라도 쏜 것 같은 격발음이 그의 발걸음을 멈췄다.

* * *

“계속 쫓아!”

“혹시 모르니 민간 쪽에는 못 가게 막도록!”

멀리서 그녀와 일행을 쫓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서령은 여태껏 살면서 이렇게까지 뛰어봤을까 싶을 정도로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헤엑…! 헥!”

“후욱….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괘, 흐으…, 괜찮아요!”

서령은 자신을 돌아보는 에아임에게 터질 듯한 심장을 누르곤 대답했다. 사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원래도 운동과는 거리가 먼 그녀였는데, 애쉬가 덮어준 코트의 묵직한 무게는 그런 그녀에게 더없이 큰 부담이 됐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버릴 수는 없는 게, 벌써 뒤에서 쏟아진 몇 발의 총탄을 그것이 막아줬기 때문이다.

애쉬가 넘겨준 코트가 아니라면 벌써 서령의 몸에는 몇 개의 바람구멍이 뚫렸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애쉬의 코트가 총알을 막아줬다곤 해도, 아무런 타격이 없을 순 없었기에 몸 곳곳이 욱신거렸지만 서령은 어떻게든 고통을, 두려움을 참고 달렸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죽을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에아임과 베일라, 다른 동료들에게 부담을 넘길 수는 없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달렸지만 한계는 곧 찾아왔다. 달리다 다리에 힘이 풀린 서령이 바닥을 굴렀다.

“흐읏!”

“아가씨!”

놀란 에아임의 외침이 서령의 귓가를 맴돌았다.

아프다….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목은 얼마나 메말랐는지 침을 삼키는 것마저 고통스럽게 느껴질 정도고, 산소 부족에 시달리는 몸은 구역질을 호소했다.

서령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다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선택한 상황이 싫고, 무서워서가 아니다.

그녀 자신이 너무도 무력했기에, 그녀의 선택에 따라 목숨을 걸고 돕는 이들에게조차 짐덩이 밖에 될 수 없었기에.

그런 분함에 곧 죽을 듯 헐떡이면서도 눈물이 흘렀다.

“이사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진 그녀를 여전히 멀쩡한 기색의 베일라가 안아들었다.

“죄송, 흐윽, 죄송해요…. 베일라, 흐으, 에아임….”

그리고 애쉬….

서령은 자신의 무력함과 분함, 뒤에 남겨두고 온 애쉬를 떠올리며 계속해서 눈물 흘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