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80화 (80/230)

〈 80화 〉 5. 후계경쟁(4)

* * *

­ 터어엉!

나머지를 정리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뒤쪽에서 울린 거대한 격발음.

애쉬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일 뻔했지만, 격발음과 함께 발사된 탄환이 노리고 있는 곳은 그의 등 뒤가 아니라 일 미터 정도 떨어진 위치의 바닥이었다.

그 한 발로 애쉬를 어떻게 해보려는 게 아니라 그의 움직임을 잠시 제지하기 위해 쏜 것이다.

퍽! 하고 쏘아진 탄환에 직격당한 도로의 일부가 패여 나갔다.

그것을 확인한 애쉬는 천천히 뒤로 돌아 거대한 격발음의 진원지로 시선을 향했다.

거기에는 특이한 행색의 남자가 화약 연기를 풀풀 뿜어내는 리볼버 한 자루를 들고 서있었다.

“이거 내가 좀 늦은 모양이구만.”

갑자기 나타난 남자가 중얼거렸다.

카우보이모자와 멋들어지게 기른 콧수염. 독수리가 그려진 적갈색 케이프까지.

외모만 본다면 나이는 대충 서른 정도 됐을까.

서부극 한복판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차림의 남자가 뒤에는 비슷한 복장의 남자들 몇을 거느리곤 그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이봐, 잠깐 멈추지 그래.”

“허.”

이건 또 뭐하는 놈이지?

남자의 굵직한 목소리를 들은 애쉬가 감탄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복장뿐 아니라 어지간한 기관단총만한 금장 리볼버를 손아귀에서 휘릭 돌려 보이는 모습이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크기가 저 정도 되니 아까 전과 같은 격발음이 나올 수 있었던 거겠지.

총구를 보니 사용되는 탄환의 구경도 어지간한 중기관총보다 훨씬 커보였다.

“넌 뭐냐?”

그를 한 차례 훑어본 애쉬가 툭 던지듯 물었다.

웃기지도 않은 꼴을 하고는 갑자기 나타난 남자.

서령과 일행들에게 합류하려면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게 없지만, 지금 나타난 이 남자는 그냥 무시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애쉬는 아직 이 도시가 게임 속 세상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게임 속 중요 인물들은 대체로 다른 캐릭터들과 구별되는 특이한 모습으로 나오곤 했다.

마치 지금 그의 앞에 서있는 저 카우보이모자의 남자처럼.

그런 것을 따져봤을 때 눈앞의 저 남자는 원작 게임 속 스토리에 등장하는 네임드 캐릭터였을 확률이 높았다.

그것이 플레이어의 적이든, 아군이든 말이다.

정체를 묻는 애쉬의 말에 남자가 대답했다.

“나는 ‘총잡이들의 여명’ 소속의 골든 캐니언이라고 하는데, 그쪽은?”

“애쉬 론모어, 무소속.”

남자의 물음에 애쉬가 순순히 대답했다.

골든 캐니언이라는 별명인지 뭔지 모를 촌스런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그의 생각 이상으로 진지했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네임드 캐릭터라는 것을 알리듯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부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꾸민 놈이 믿는 게 저 녀석이었군.’

골든 캐니언, 저 남자는 애쉬가 여태껏 봐왔던 이들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실력자임이 틀림없었다.

“오면서 봤는데, 솜씨가 심상치 않아. 정말 무소속이 맞나? 너 같은 실력자는 들어본 적이 없어.”

“뭐, 믿기 싫으면 믿지 말던가. 그런데 나랑 떠들러 여기까지 온 거냐?”

다른 볼일이 있어서 왔으면 다물고 그거나 해라.

심드렁한 표정의 애쉬가 대화의 흐름을 뚝 끊었다.

겉으로야 여유로운 척 티내지 않았지만, 여기서 적과의 담소나 나누며 시간 끌고 있을 생각은 없다.

쫓기고 있는 베일라와 에아임, 그리고 서령을 빨리 찾아가야 했다.

그런 애쉬의 반응에 남자는 약간의 실망과 아쉬움을 내보였다.

“그래? 대화에 생각이 없다니, 아쉽군.”

“털이 북슬북슬한 사내놈이랑 가만히 담소나 나누는 취향은 없어서.”

“하하, 그건 나도 마찬가지긴 해.”

우리 같은 녀석들은 말이 아니라 총칼로 대화를 나누는 법이지.

애쉬의 우스갯소리를 가볍게 받은 남자, 골든 캐니언이 리볼버의 실린더를 한 차례 부드럽게 돌리곤 애쉬를 쳐다봤다.

“마음 같아선 그쪽과 1:1로 결투라도 해보고 싶지만, 이쪽도 일이 있다 보니. 여럿이 덤비는 건 이해해 주겠지?”

골든 캐니언이 피에 젖은 분위기에 맞지 않게 능청을 떨었다. 그에 애쉬도 픽 웃었다.

“얼마든지.”

“거, 고맙구만.”

그렇게 말한 골든 캐니언이 자신의 거대한 금장 리볼버를 들어올렸다.

이번에 총구가 향하는 곳은 도로 바닥이 아니라 애쉬 자신. 애쉬는 몸의 근육을 한껏 긴장시키며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준비를 했다.

끼리릭. 집중한 애쉬의 귓가에 리볼버의 방아쇠가 움직이는 소리가 잡혔다. 그리고.

­ 터어엉!

굉음과 함께 총구가 불을 뿜으며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던 전투가 다시 시작됐다.

*

대체 어디서 이런 녀석이 튀어나온 거지?

카우보이모자의 남자, 골든 캐니언이 입술을 짓씹었다.

“아아악!!”

진청색 안광이 빛나며 검은 양복 하나가 더 썰려나갔다. 반사적으로 총격을 가해보지만 상대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감각으로 그것을 피하거나 쳐낸다.

사각에서 쏘아진 총탄을 베어낼 때부터 느낀 거지만 정말 괴물 같은 녀석이었다.

신경 삽입은 아직 미개발된 기술 아니었나? 인간의 감각으로 저런 게 가능하다고?

“젠장! 대체 어떻게 된 놈이야!!”

“한 대만 좀 맞아라…!”

‘총잡이들의 여명’에서 함께 나온 동료, 부하들이 떠드는 소리가 그의 마음을 대변해주었다.

하지만 이렇게 가만히 있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상황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만 했다.

“로프를 꺼내!”

골든 캐니언이 소리치며 품속에서 항상 들고 다니는 물건을 꺼내 들었다.

로프라고 하기는 조금 가는 금속 와이어.

카우보이의 로망을 맞추기 위해 항상 들고 다니는 물건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전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총잡이들의 여명’에서 특수 제작한 이 와이어는 어지간한 충격에는 끄떡도 안하는 견고함을 자랑했으며, 날붙이 따위로 잘라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닿은 대상에게 원하는 만큼의 전류를 흘려 감전시킬 수 있었으니 상대방을 직접 묶지는 못하더라도 그 움직임을 어느 정도 제약하기엔 좋은 물건이었다.

카우보이 컨셉을 살린다며 만들고, 또 연습했던 기술들이 이렇게 사용될 줄이야. 정말 세상일은 모르는 것이다.

“던져!!”

­ 휘익!

골든 캐니언의 외침과 함께 몇 개의 로프들이 하늘을 날았다. 그 무게감을 실었기에 날아가는 속도도 무척이나 빨랐지만, 상대방은 그것보다도 빠르다.

당연히 맞아줄 리가 없다.

로프들은 허망하게 상대방의 사방에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그들도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상대방을 직접 맞추고 묶을 생각이 없었다.

“가동!”

골든 캐니언의 호령을 들은 카우보이들이 동시에 로프의 기능을 가동시켰다.

­ 파지지직!!

전류가 흐르는 소리와 함께 로프들이 꿈틀 거렸다. 카우보이들이 따로 조작을 한 게 아니다.

로프의 기능 중 하나. 로프는 전류를 흐르게 하며 강한 자성을 띄게 할 수도 있었는데, 그것을 잘 이용하면 지금처럼 사방에 떨어진 로프들로도 하나의 커다란 함정을 만들 수도 있었다.

바로 이렇게.

“응?”

갑자기 전류를 뿜어내며 꿈틀거리기 시작한 애쉬가 의문을 표하는 순간, 촤악! 하고 사방에 펼쳐진 로프들이 채찍처럼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성이 뒤섞인 중심, 그가 서있는 곳을 향해서.

상상치도 못한 함정. 처음부터 골든 캐니언과 카우보이들은 이것을 노리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타앗!

전류가 흐르는 와이어들이 날아드는 가운데 서있던 애쉬의 신형이 강한 발구름과 함께 공중으로 치솟았다.

못해도 8미터에 가까운 높이.

전류가 흐르는 로프들은 뒤늦게 그의 신형이 있던 곳을 덮치며 한데 얽혀 붙었다.

전류가 흐르는 로프를 베어내는 것에는 위험이 따르는 만큼 몸을 공중으로 띄워 피한 것이다.

“망할!”

골든 캐니언의 옆에서 한 카우보이가 욕지거릴 내뱉었다. 이런 것까지도 피한다고?

공중으로 뛰어오른 뒤 가볍게 착지한 칼잡이는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끄윽!”

검은 양복 하나의 목숨이 더 끊어진다. 목을 베였는지 피가 쏟아지는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렇게 목숨을 거둘 때마다 가로등과 차량의 전조등에 언뜻언뜻 드러나는 칼잡이의 모습은 지옥의 저승사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몇 안 남았던 검은 양복들이 거의 다 바닥에 늘어지고, 그 시선이 골든 캐니언과 카우보이들을 향한다.

쉬운 것들부터 먼저 정리한 뒤는 그들의 차례라고 예고하는 것만 같았다.

“흐, 미치겠군.”

골든 캐니언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직 제대로 붙어보지도 않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상대방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사각에서 쏘아진 총알을 정확히 베어내고, 불식간에 만들어진 함정을 가볍게 피하는 괴물을 이런 총 몇 자루로 어떻게 상대하란 말인가.

그 자신과 같은 실력자가 몇 더 있었다면 모를 일이었으나, 함께 나온 카우보이들조차 그에게 비하면 부족함이 컸다.

상대방은 이제 곧 그와 '총잡이들의 여명'의 카우보이들을 향해 달려들 것이다.

긴장에 등골이 젖은 것을 느낀 골든 캐니언은 한 차례 눈을 꾹 감았다가 번쩍 떴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단 한번의 실수, 혹은 단 한번의 행운으로도 끝날 수 있는 게 전투.

그 자신과 카우보이들이라면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었다. 그렇게 믿었다.

골든 캐니언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질린 표정의 다른 카우보이들에게 말했다.

“내가 정면에서 붙어볼 테니 엄호부탁하지.”

“뭐? 아무리 너라도….”

“방법이 없는데 어쩌겠나.”

골든 캐니언은 다른 카우보이의 만류에도 아랑곳 않고 앞으로 나섰다.

때마침 상대방은 마지막 남은 검은 양복의 목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섬찟한 예기를 뿜어내는 검은 칼날과, 달빛을 받아 빛나는 잿빛 은발.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환히 드러나는 것 같은 진청색 안광까지.

적이지만 정말….

“젠장…, 더럽게 멋있군.”

감탄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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