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5. 후계경쟁(5)
* * *
골든 캐니언은 드러난 상대를 향해 더 이상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물론, 포기한 건 아니다.
그저 이 거리에서 쏘는 총알들은 낭비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뿐이다.
상대방과의 거리는 불과 이십여 미터.
이 거리에서 쏘는 총알에 반응하고 가볍게 피하거나 쳐내는 녀석은 과연 수 미터 이내, 서로의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도 반응할 수 있을까?
그의 승부처는 거기였다.
카우보이들의 엄호 사격을 받아 최대한 상대방의 움직임을 견제하며 체력을 빼거나, 반대로 상대방이 자신을 노리고 다가 왔을 때.
그때 놈을 역으로 잡아낸다.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이 될지 모를, 아니 그렇게 될 가능성이 더 높은 도박. 이런 그림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장면으로는 썩 나쁘지 않았다.
긴장을 숨긴 그가 다가오는 상대방을 보며 여유로운 척 미소 지었다.
자, 와라.
*
타앙!
후방의 카우보이들이 동시에 쏟아낸 일점 사격이 팔, 다리, 머리, 가슴의 전신 곳곳을 노린다.
몸을 크게 움직이며 그것들을 피한 애쉬가 생각했다.
‘제법.’
심상치 않은 복장을 하고 있는 놈들답게 그 실력도 심상치 않았다.
어지간한 총잡이들은 비교를 불허하는 정확도와 과감한 판단. 그리고 제대로 된 전술 훈련을 받았는지, 거슬리기가 여간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정면, 십여 미터를 두고 대치하고 있는 저 총잡이, 골든 캐니언.
놈의 실력은 여태껏 애쉬가 보았던 총잡이들 중에서도 단연 첫손가락에 꼽을만했다.
저런 엄청난 대구경의 리볼버를 사용하면서도 반동을 완벽하게 잡아내고 있었으며, 눈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그의 움직임을 놓치는 법이 없다.
터어엉!!
엄청난 격발음과 함께 다시 한번 금장 리볼버가 불을 뿜는다.
탄속이 느린 것도 아닌데, 총탄이 날아가는 게 일반인의 눈에도 보일 정도로 탄환의 크기가 무지막지했다.
저런 건 막거나 쳐내면 무조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시간만 넉넉했어도.’
애쉬가 대기를 찢으며 날아오는 탄환을 피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일행이 쫓기고 있어 시간이 촉박한 상황만 아니었다면 저들을 상대로 재미를 좀 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최대한 빨리 끝낸다.’
탄환을 피한 애쉬의 발끝이 몸을 고무줄처럼 튕겼다. 발을 크게 구르지도 않았으나, 그의 몸이 쏜살처럼 날아갔다.
이대로 정면으로 파고들어 놈, 골든 캐니언의 목을 떨어뜨리면 끝이었다. 나머지 카우보이들도 금방 정리하고 일행의 뒤를 따를 수 있으리라.
그러나 애쉬가 골든 캐니언의 정면에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그의 눈에 상대방의 표정이 들어왔다.
‘웃어?’
놈은 웃고 있었다. 마치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타다다당!!
애쉬가 사정권 안에 놈을 가둔 순간 후방에 위치한 카우보이들의 일제 사격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를 노리는 게 아니다.
움직임을 제약하려는 듯 그와 골든 캐니언의 주변을 메우는 탄환들의 세례.
그리고 메인은 역시나.
터어엉!!
골든 캐니언이 들고 있는 거대한 리볼버가 굉음을 터뜨렸다.
그에 애쉬가 순간적으로 검을 치켜들며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
잡았다!
애쉬가 자신의 정면에 나타난 순간, 골든 캐니언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서로간의 거리는 불과 2미터 안팎.
후방의 카우보이들이 총탄을 아끼지 않고 쏟아 부으며 형성한 탄막은 상대방의 움직임을 확실히 제약하고 있었고, 이 정도의 거리에서의 사격이라면 그가 두려워하면서도 존경하는 아버지, 그 괴물 늙은이가 와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골든 캐니언이 노린 것은 이런 구도 하나가 전부가 아니었다.
‘간다.’
끼리릭, 방아쇠가 당겨지는 미세한 감각을 느끼며 그는 여태껏 쓰지 않은 기술을 선보였다.
한 손으로는 방아쇠를 당기며 반대 손을 그림과 같이 움직인다.
리볼버의 해머가 탄환을 격발시키는 것과 함께 총구의 위치를 살짝 틀며 반대 손으로 해머를 원위치. 그리고 재격발.
찰나의 순간에 그것을 두 번 더 반복했다.
그의 손놀림을 따르지 못한 소리가 뒤늦게 울렸다.
터어엉!!
총 4 번의 격발이 있었고, 네 발의 탄환이 줄지어 나갔으나, 들려오는 격발음은 겨우 한 번뿐이다.
그가 20년 이상 연습해온, 누가 봐도 감탄할 수밖에 없을 4 연속 리볼버 패닝이었다.
죽음이 지척에 닿았기 때문일까. 어느 때보다도 완벽하게 펼쳐진 기술은 그것을 시전한 골든 캐니언 자신조차도 놀랄 정도로 완벽했다.
머리, 가슴, 배, 사타구니.
네 발의 탄환은 말 그대로 동시에 나갔다고 해도 틀릴 게 없었으나, 각기 노리는 곳조차도 다르다.
검으로 막는다고 해도 물리력을 이기지 못하고 깨질 것이었고, 몸으로 맞는다면 관통이 아니라 몸이 터져버릴 터.
그야말로 체크메이트였다.
‘이것까지 받아낸다면 패배를 인정하마.’
그런 게 가능할 리는 없을 테지만.
골든 캐니언이 무리한 탓인지 덜덜 떨리는 손을 억지로 고정시키며 생각했다.
후방 지원중인 카우보이들과의 완벽한 합에 완벽한 타이밍, 완벽한 기술까지 어우러진, 이 이상이 있을 수 없는 최고의 한 수였다.
만약 이것조차 받아낸다면 정말 이 자리에 있는 전력으로는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 애쉬 론모어는 검을 들어 올렸고 골든 캐니언은 집중력이 절정에 접어들어 시간이 느려진 것 같은 세상 속에서 그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측면으로 선 채 검을 치켜 올린 평온한 모습.
그러나 그 진청색 눈동자에서 보이는 눈빛은 칼날처럼 예리하게 느껴진다.
골든 캐니언은 그런 애쉬 론모어와 눈을 마주치고는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다.
‘설마.’
사방이 탄막에 막힌 이상 어디에도 피할 곳은 없었다. 그런데도 상대방에게서는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믿기 힘들지만 무엇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어릴 적 그의 아버지, 괴물 같은 늙은이가 자신을 내려다보며 보였던 그런 분위기가.
애쉬 론모어는 검은 칼날을 들어올려,
그대로 1자로 날아오는 네 발의 총탄을 향해 부드럽게 내려베었다.
그리고 그 뒤 일어난 일을 본 골든 캐니언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뜨였다.
슥, 스슥.
엄청난 운동량을 내포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 탄환이, 애쉬 론모어의 몸을 사이에 두고 깨끗하게 반으로 갈라져 날아가고 있었다.
골든 캐니언은 후속 조치를 취할 생각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 *
“후우….”
추적을 따돌린 것일까, 잠시 여유가 생긴 사이 멈춰선 일행.
“…베일라, 괜찮아요?”
“예. 이 정도로는 이상 없습니다.”
자신의 품에서 내려온 서령의 걱정스런 목소리에 베일라가 대답했다. 그녀의 어깨와 팔 쪽에는 몇 발의 총탄 자국이 난 상태였는데, 다행히 신체를 개조한 부분이라 큰 부상은 없었다.
둘이 서로의 안위를 살피는 사이 주위를 둘러본 에아임이 돌아왔다.
“…좋지 않습니다, 몰이사냥을 당하는 느낌이에요.”
“에아임…. 그보다 에아임은 괜찮아요?”
“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다 같이 도망칠 때 서령은 분명 에아임이 총에 맞고 몇 차례 휘청하는 걸 봤었다. 아무리 안에 방탄복을 입었다고 해도 전신을 다 막아주는 건 아니었기에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다는 듯 살짝 미소 지어 보인 에아임이 자신의 안위보다 더 중요하다는 듯 다시 얘기를 꺼냈다.
“이대로 가면 조만간 녀석들에게 포위당할 것 같습니다. 시가지 쪽으로 가는 길목은 거의 뚫는 게 불가능합니다.”
“…그 남자가 절반이 넘는 숫자를 붙잡아 뒀는데도 이 정도군요.”
베일라가 중얼거렸다. 이곳은 도로 주변에 조성된 작은 숲. 밤이라 잠깐 따돌리는데 성공하긴 했지만, 상대방의 열댓 명밖에 되지 않는 숫자로도 샅샅이 뒤지기에 충분하다.
시가지 쪽으로 도망간다면 상대방도 추격이 힘들어질 테지만 이미 막힌 상태.
에아임의 말대로 이대라면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아직도 외부로 연락이 안 됩니까?”
“예. 아직 이 일대에 재밍을 뿌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베일라의 물음에 휴대폰을 들여다 본 에아임이 대답했다. 추적이 시작된 곳에서 30분을 넘게 도망쳤는데, 여전히 전파가 막힌 상태다.
아무리 직선으로 움직인 건 아니라지만 이 정도 시간을 움직였는데 재밍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걸 보면 자신들을 지금 추적하고 있는 이들 중의 누군가가 광범위 재밍 기기를 들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
외부의 지원을 바랄 수도 없고, 자력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 가능성도 낮다. 특히 전투에 있어서 도움을 바랄 수 없는 보호 대상이 있기 때문에 더욱.
베일라는 잠시 애쉬의 얼굴을 떠올렸지만 아무리 자신 있어 보이는 그라도 자신의 수십 배나 되는 숫자를 상대로 무사히 이곳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그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베일라가 그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나서서 시선을 끌어볼까, 하는 생각을 떠올릴 때였다.
“어이! 거기 누구야!”
“…흡.”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그들을 발견한 듯 들려왔다. 서령이 숨을 삼키고 베일라가 잠시 기대어 있던 나무에서 몸을 세웠다. 에아임이 서령의 앞을 막아설 때쯤 두셋 정도 되는 수풀 밟는 소리가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찾았다! 바로 무전…컥!”
“뭐, 뭐야!”
“발포해!”
탕! 총성과 함께 소리치던 남자가 꼬꾸라졌다. 당황한 남자의 동료들이 총을 들어올림과 동시에 총성이 울렸다.
“이사님!”
“베일라 씨!”
총구를 내린 베일라가 다급히 서령의 손을 잡아끌었고, 에아임이 그 뒤를 따랐다. 다시 목숨을 건 추격전의 시작이었다.
“여기는 C2! C2! 목표물을 발견했다!”
확인했다. 그쪽을 중심으로…….
뒤쫓는 남자들의 무전 소리가 들렸다. 베일라는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되면 자신이 나서서 시선을 끌어보겠다는 방법도 막힌 셈이다.
이제 방법은 포위망의 한 곳을 뚫는 일점 돌파밖에 없는데, 보호 대상을 데리고 그게 가능할까?
베일라가 반쯤 끌려오듯 달리고 있는 서령을 돌아봤다. 잔뜩 지친 모습은 얼마 달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녀를 데리고 이곳을 뚫는 건…….
아니. 베일라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해도 무조건 가능하게 해야 한다.
설령 그녀와 에아임 수석비서, 둘의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그게 그녀와 수석비서의 책임이자 의무였다.
베일라가 목숨을 버릴 각오까지 다지며 대강의 계획을 짤 때였다.
“억!”
투다다! 연속된 총성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뒤를 지키며 달리던 에아임이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에아임!!”
쓰러지는 그를 본 서령이 비명처럼 소리쳤다. 쓰러진 그의 등에는 십여 발은 될 피탄 자국이 나 있었다. 일행의 가장 뒤를 지키며 사실상 총알받이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서령과 베일라가 다급히 쓰러진 그에게 다가갔다.
“에아임! 괜찮아요?!”
“하, 하하. 아가씨, 저는 괜찮습니다….”
서령이 눈물을 글썽이며 그의 안색을 확인하는 사이 베일라는 그의 상처를 살피고 침음을 흘렸다.
“이건….”
총탄 십여 발의 총탄 자국은 지금 막 생겨난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전에 생긴 듯 흐른 핏자국이 있는 것도 많았다. 어떻게 신음소리 한 번 안내고 기적처럼 이곳까지 달려올 수 있었는지 이상할 정도.
당장 쓰러져도 어쩔 수 없을 부상이었으나 에아임은 다시 기어코 자리에서 일어나보였다.
“제 부상보다 일단은. 자리를 피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에아임이…!”
“괜찮습니다, 저는.”
서령이 휘청거리는 에아임을 보며 말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무언가 망설였지만, 그런 그의 망설임에 결정이 내려지기도 전에 불청객이 들이닥쳤다.
“찾았다, 이 쥐새끼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