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82화 (82/230)

〈 82화 〉 5. 후계경쟁(6)

* * *

“찾았다, 이 쥐새끼들.”

“하, 여깄었네.”

세 명의 검은 양복. 베일라가 하나를 쏘고 따돌린 셋과는 또 다른 녀석들이다.

베일라가 다시 총을 꺼내들었지만.

부스럭. 이곳에 가까워지고 있는 발소리들이 더 들려왔다. 곧 발소리의 주인들이 수풀을 헤치고 나타났다.

“크으, 망할 년.”

“이번에 안 놓친다.”

베일라가 쏴 맞춰 꼬꾸라뜨렸던 남자와 그의 동료 둘. 총에 맞았던 남자가 치명상은 아니었는지 가슴께를 쓰다듬으며 나타났다.

순식간에 여섯의 검은 양복들에게 따라잡힌 일행. 베일라가 그들을 경계하며 빠르게 훑어봤다.

완전무장한 게 셋에 권총 따위의 가벼운 무장에 셋. 보호대상만 없었다면 혼자서도 어떻게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수준이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쫓기다 완전히 포위될 수는 없다. 차라리 지금 그녀가 이 여섯과 다른 무리들을 유인하는 게 낫겠지. 그게 그나마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확률이 높은 방법이다.

이 이상 무리가 모인다면 그녀로서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베일라가 힘겹게 일어나고 있는 에아임을 바라봤다.

그의 부상은 분명 심각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써줄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생각해야 할 것은 그저 유서령 이사를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하는 것뿐.

베일라가 에아임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사님과 함께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하, 하. 불가능해도 가능하게 해보겠습니다.”

“몇 분이라도 좋습니다. 이사님을 데리고 도망치십시오.”

더 이상 이사님과 함께 하는 게 불가능해지면 최대한 시간이라도 끄는 겁니다.

그런 베일라의 말에 에아임이 고래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곧 따라가겠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 이사님을 지키십시오.”

“그건 굳이 말하지 않으셔도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베일라, 안돼요. 그래도 같이…!”

냉혹하다싶을 정도로 차가운 판단이었지만, 에아임은 당연한 것을 말한다는 듯 의지를 보였다.

서령은 그럴 수는 없다면 둘을 쳐다봤지만 그녀의 의지가 어떻든 이미 정해진 일이다.

“슬슬 끝내자고.”

“이쪽도 지쳤다니까. 그쪽도 힘들잖아?”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다가오며 총구를 겨누었다. 그들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던 베일라가 속으로 숫자를 카운트다운했다.

3, 2, 1.

“지금!”

타다당! 외친 베일라가 순식간에 총을 꺼내 쐈다. 에아임이 서령을 억지로 안고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악!”

“이런 씨발!”

“베일라 씨!”

“실례하겠습니다!”

총에 맞은 검은 양복 남자들의 비명소리와 서령, 에아임의 목소리가 뒤섞였다.

총소리와 고함 소리, 거친 발소리가 멀어진다. 에아임은 심각한 부상상태에서도 어디서 힘이 나오는지 품에서 벗어나려는 서령을 억지로 안은 채 뛰었다.

최대한 서령을 안전한 곳까지 데려가겠다는 일념 하에.

“에아임, 내려줘요! 에아임!!”

“죄송합니다. 총소리가 울렸으니 곧 다른 놈들까지 몰려올 겁니다.”

그러니까 절대로 내려줄 수는 없다. 에아임이 결연한 목소리로 자신의 각오를 전했다.

계속해서 자신을 내려달라며 발버둥 치던 서령이었지만, 곧 흐느끼며 에아임의 어깨에 축 늘어졌다.

에아임은 그런 서령을 데리고 필사적으로 달렸다. 얼마나 더 서령을 데리고 도망칠 수 있을까.

총소리가 울린 이상, 적은 사방에서 모여들 것이었고 도망치던 중 그들과 마주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만약 마주친다면 그 자신이 뒤에서 시간을 끌어야겠지.

그럼 혼자 남은 서령은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까?

에아임은 애쉬와 베일라의 얼굴을 떠올렸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처럼 자신만만한 애쉬와 딱딱하지만 언제든 기댈 수 있도록 항상 옆에 위치하고 있던 베일라.

애쉬는 지금 어떤 상태일까.

영상으로 봤던 실력이라면 상대가 서른에 달하는 병력이라 하더라도 쉽게는 당하지 않을 것 같은데….

에아임이 이후를 걱정하며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 타아앙!

“허억.”

퍽. 갑작스럽게 울린 격발음과 함께 무언가가 그의 몸에 꽂혀들었다.

그 충격에 몸이 흔들린 그는 달리던 도중 나무 기둥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부딪혀 바닥을 굴렀다.

혹여나 서령이 다칠까 최대한 감싼 채로.

“윽.”

그의 품안에서 서령이 작은 신음을 흘렸지만, 그런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서령에게는 살갗이 살짝 까진 것 외에 다른 부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에 안심한 에아임이었지만, 곧 자신이 무언가를 맞고 쓰러졌다는 것을 떠올리고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에, 에아임. 방금 총에…!”

“저는 괜찮습니다, 아가씨. 그보다 어서.”

바닥에 함께 쓰러졌던 서령이 그를 걱정했지만, 에아임은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듯 곧장 일어서며 서령도 함께 일으켰다. 여기서 이럴 시간은 없었다.

­ 부스럭, 투둑.

바닥에 늘어진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 그를 쏜 자가 왔기 때문이다.

달빛에 총을 들고 이쪽을 바라보는 검은 양복의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오늘은 운이 좋네. 목표물이 알아서 손아귀에 들어오기도 하고…. 음?”

남자는 분명 에아임이 총에 맞고 쓰러지는 것을 확인했으나 그가 일어서있는 모습을 보고 의문을 표했지만, 에아임의 옆에 위치한 서령을 발견하곤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빙고.”

그에 에아임이 서령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아가씨. 일단 이곳에서 몸을 피하십시오. 제가 놈을 붙잡아 놓겠습니다.”

“하지만…!”

“아가씨!!”

“…!”

자신을 걱정하며 망설이는 서령을 꾸짖듯 소리치는 목소리.

서령이 그에 깜짝 놀라 에아임을 바라봤지만, 그의 엄한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지난 십 수 년 간 언제나 서령에게만큼은 너그러웠던 에아임이 그녀에게 처음으로 보이는 표정이었다. 에아임이 굳은 표정을 돌려 다가오는 검은 양복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어서 가십시오. 애쉬 씨와 베일라 씨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애쉬도, 베일라도 모두 서령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치고 있다. 이번에는 그의 차례가 됐을 뿐이다.

뭔가 꾸미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검은 양복이 자신의 손에 총이 들려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말했다.

“이봐, 그쪽은 무장도 안한 것 같은데 허튼짓거리 하지 말고 서로 편하게 가자고.”

아프지 않게 한 번에 보내줄 테니까.

검은 양복은 선심이라도 쓰듯 말했지만, 그딴 소리를 듣고 포기할 거라면 여기까지 도망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에아임은 몸을 긴장시키며 한 차례 서령을 바라봤다. 그녀는 계속해서 망설이는 듯 했지만 결국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에아임도 몸을 잔뜩 긴장시켰다. 이제부터 그는 어떻게든 도망치는 서령의 뒤를 지켜야 했다.

잠시 검은 양복을 바라보던 에아임은 기합을 내지르며 기습적으로 달려들었고, 당황한 상대방이 욕설을 내뱉는 소리와 함께 서령의 다급한 발소리가 현장에서 멀어졌다.

“흐아압!!”

“뭣, 이 미친 새끼가…!”

*

“하악, 학….”

너무도 현실감이 떨어지는 상황에 눈물 흘리며 달리던 서령은 어느 순간 지쳐 나무 기둥에 기대어 섰다. 잠시 적막에 잠긴 숲 속에 그녀의 거친 숨소리만이 울렸다.

15년.

무려 15년이다.

그녀에게는 거의 평생이라고 해도 좋을 15년 동안 함께한 친구가, 에아임이 이런 곳에서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무장하나 없는 일반인인 에아임. 그가 총을 든 상대방에게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까?

그런 게 가능하리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저 희망에 불과했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도저히 이 모든 게 현실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사실 자신은 회식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깜빡 잠든 것뿐이고, 이 모든 것이 스쳐지나가는 잠깐의 꿈이었다면…….

­ 타앙!!

현실을 부정하던 그녀의 귓가에 총성이 날아와 꽂혔다. 그녀가 도망쳐온, 에아임과 검은 양복의 남자가 얽히고설켜 드잡이질을 하던 곳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서령은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그래, 자신은 쫓기는 중이었다. 여기서 멍하니 있을 시간 따위는 없다.

그녀가 눈물 흘리며 현실을 부정하는 시간들까지 배려할 만큼 추격자들은 자비심 넘치지 않았으니까.

정신을 차린 서령이 눈물을 닦았다. 자신들의 희생을 헛되이 되지 않도록 도망쳐달라던 에아임의 마지막 말이 그녀를 일깨웠다.

훗날 어떻게 되든 지금은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녀를 위해 희생한 모두를 위해서라도, 자신을 위해서라도.

서령은 지친 몸을 채찍질해 어떻게든 다시 움직이며 자책했다.

‘왜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았을까.’

유성 회장의 직계? 유성 미래전자의 상임이사?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그녀 스스로 쟁취하지 않고, 그저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나온 것들은 결국 이렇게 현실에 맞닥뜨렸을 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든 것은 결국 그녀 자신이었다.

그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에 안주했기 때문에.

그로 인해 형제자매들, 경쟁자들에게 얕보였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그녀의 탓이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모두들.”

다른 사람의 것들은 하나씩 하나씩 떨어지고, 이제는 서글프게도 홀로 남은 자신의 발소리에 집중하던 서령이 중얼거렸다.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간다면, 이제는 바뀌리라.

지금까지의 자신을 벗어던지고 어떻게든 변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비척비척 발걸음을 옮기는 서령의 뒤로.

바스락.

작은 발소리 하나가 따라붙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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