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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89화 (89/230)

〈 89화 〉 5. 후계경쟁(13)

* * *

­ 최근 사무소 문을 닫았다더니, 그런 일에 끼어들어 있었네.

“뭐, 최근 좀 바빴지. 그래서 어때?”

내 제안은.

그런 애쉬의 물음에 전화 상대는 잠시 고민하는 듯 조용하더니 대답했다.

­ …굉장히 위험하다는 건 알겠어. 성공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시피 하고, 실패하면 큰 손실밖에 없을 테니까.

“그럼?”

­ 솔직히 말해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음….”

이쪽 영입은 역시 실패인가?

상대측의 말을 들은 애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반응했다. 그의 제안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그렇게 좋은 투자는 아니었다.

이번에 그가 제안한 일은 성공률이 엄청나게 낮은 복권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복권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구매할 수 없는, 리스크가 무척이나 큰 제안.

사업가라면 누구라도 피하고 싶을 것이 당연했다.

‘그 총잡이들한테나 가봐야 하나.’

전화 상대의 시원찮은 반응에 애쉬가 다른 방향으로 고민할 때였다.

하지만, 하고 상대방이 말을 이었다.

­ 당신이라면 이상하게 해낼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렇다면.”

­ 해볼게, 그 투자.

“…괜찮겠어? 막상 일을 제안한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한데, 이건 진짜 도박이나 다름없잖아.”

­ 중간에 포기할 생각이야?

“그럴 리가.”

한번 제대로 시작하면 무조건 끝을 본다. 애쉬가 먼저 지쳐서 포기할 리는 없었다.

그런 애쉬의 대답에 전화 상대가 말했다.

­ 그럼 됐어. 분명 위험은 크겠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으니까.

그리고 또, 당신이라면 어떻게든 해내지 않겠어?

상대방, 레이라 플로리스는 애쉬에 대한 믿음을 나타냈다. 그라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듯이.

“날 그렇게까지 믿고 있던 거야? 이거 좀 감동인데.”

­ …헛소리는 하지 말고. 아무튼 날짜는 최대한 빨리 잡아서 갈 테니까. 미리 준비나 해줘.

“오케이. 그럼 그때 보자고.”

­ 그래.

툭. 전화가 끊겼다.

그가 휴대폰을 내리자마자 서령과 베일라, 그를 기다리던 둘의 걱정 가득한 눈빛이 쏟아졌다.

“…슬럼에 위치한 갱단의 보스라더니, 정말로 괜찮은 겁니까?”

“어. 믿을 수 있는 여자야.”

“여자요…?”

“아, 말 안했던가.”

애쉬는 슬럼에서도 손에 꼽는 거대 갱단의 보스가 여자란 말에 의문을 나타내는 서령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갱단, ‘뱀파이어’와 그곳의 보스인 레이라 플로리스에 대해서.

“그런 갱단 하나랑 아가씨네 그룹은 비교할 수 없지만,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제법 지금은 큰 조직을 이룬 여자니까 나름 배울 건 있을 거야. 와서 얼굴 정도는 비춘다니 한번 얘기나 해보라고.”

“…네.”

애쉬의 말에 서령이 대답했다. 그 험악한 슬럼에 대한 소문들이 모두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애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런 곳에서 여성의 몸으로 일가를 이룬 인물은 어떤 사람일까.

역시 부하들에게 얕보일 수는 없을 테니 덩치도 크고 무척이나 무섭게 생긴 사람이겠지? 서령은 머릿속에 잠시 이런저런 이미지를 그리고 지워봤다.

“그보다 에아임 아저씨한테서 연락이 왔었다고?”

“예. 오늘 오전이었습니다. 5구역에 위치한 병원에 입원중이라고 하더군요. 병문안이라도 가려 했는데, 한사코 거절하는 바람에.”

애쉬의 물음에 베일라가 답했다. 전날, 유진혁 회장을 만나고 기분이 하루 종일 다운되어 있던 지금은 서령이 조금 멀쩡해진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행방불명되었던 에아임이 멀쩡히 살아있다는 것이다.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병문안은 거절해서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서령에게는 너무도 큰 위안이 되었다.

“그럼 빌헬름 녀석도 내일쯤엔 도착할 거라고 했으니, 한 잔 하면서 잠깐 얘기나 할까?”

“빌헬름…? 아, 어제 연락했던 그 해커 분을 말하는 거군요.”

“어.”

“그럼 얘기라면 어떤 얘기를 말하시는 겁니까.”

“그냥 살아온 얘기지, 뭐. 어때? 아가씨.”

애쉬가 서령을 불렀다. 어차피 딱딱하게 굳어있는 베일라는 술잔에는 손도 안 댈 것 같고, 그나마 술 상대를 해줄 사람이라면 서령뿐이었다.

낮에는 기분이 영 좋지 않은 그녀였으나 에아임의 생존 소식을 듣고 좋아진 지금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앞으로의 일은 내일 빌헬름이 도착하면 같이 고민하고, 오늘까진 좀 쉬자고.”

“아뇨, 저는 조금….”

서령은 그런 애쉬의 제안에 힘없이 미소 지으며 거절했다. 에아임의 생존 소식은 정말 대단한 희소식이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술을 즐길 수 있을 기분은 아니었다.

그런 서령의 거절에 애쉬는 아쉬움을 표했다.

“그래? 아쉽네. 그럼 나 혼자 마셔야지. 말 상대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아, 그쪽도.”

“하하…, 네.”

“예.”

서령과 베일라가 대답했다.

애쉬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에서 술 한 병과 깨끗한 잔 하나를 가져왔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베일라를 향해서였다.

“이참에 터놓고 얘기나 하자고. 아줌마는 어떻게 살았어?”

“…저 말입니까?”

“어.”

베일라는 갑작스런 애쉬의 물음에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인생이라.

“딱히 재밌는 얘깃거리는 아닙니다만.”

“괜찮아. 남의 인생 얘기는 그냥 그걸 듣는 것만으로도 재밌거든.”

“그렇다면야….”

뭐, 딱히 숨겨야할 비밀이나 아픔 같은 건 없다. 굳이 뺄 필요는 없겠지. 잠시 말을 고른 베일라는 입을 열어 담담히 얘기를 시작했다.

“제 고향은 이곳 연방(Union)이 아니라 다른 국가입니다.”

그녀는 이 도시, 웨인 시가 속한 연방 태생이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조금 떨어진 나라, 디덴에서 온 외국인.

지금으로부터 약 32년 전. 베일라는 디덴의 어느 지방에서 태어났다.

디덴은 웨인 시보다 발전도가 떨어지는 작은 나라였다. 그런 만큼 치안도 그리 좋지 않았고, 지방으로 가면 갈수록 더 그런 것은 필연.

그 지방 중에서도 지방에 위치한 베일라의 고향은 웨인 시의 빈민가까진 아니더라도 그에 못지않게 위험하고 지저분한 동네였다.

베일라는 그런 동네에서 자라며 제법 많은 것들을 봐왔다. 바깥 시선을 피해서 이뤄지는 뒷골목의 세력다툼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상자들.

무법지의 무력집단들이 행하는 폭력들과 피해자들.

끝내 강도들에게 살해당한 그녀의 부모까지.

그 모든 것은 어린 베일라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쌓여갔고, 그녀는 자연스럽게 폭력에 복종하거나, 스스로가 폭력의 화신이 되어 타인들을 밟고 그 위에 선 자가 돼야했다.

뒷골목에서 도둑질을 하거나 구걸을 하며 자란 그녀는 어느 정도 성장하자 군에 자원입대하여 조직에서 도망쳤다. 결과적으로 그건 옳은 선택이었다.

조직은 조직원이 멋대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통제했지만, 군에 입대한 것만큼은 다시 잡아오지 못했다.

베일라가 봐온 군대라는 집단은 그랬다. 가끔씩 보이는 얼룩 군복의 군인들을 보면 무법자들도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들을 공격한 자들이 사냥당하기까지 하는 진정한 폭력의 화신들.

그곳 무법지에서도 군인들만큼은 불가침의 영역으로 존재했다.

그렇게 자원입대한 베일라는 그곳에서 온갖 부조리와 가혹행위를 견뎌내며 성장했다. 어지간한 쓰레기라도 고개를 저을 만한 독기를 품고 계속해서 나아갔으며, 끝내 상위 부대에까지 이름이 알려져 중앙으로 전출되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대체로 서령이나 애쉬도 아는 것들이었다.

베일라의 분쟁지역 파병 경력이야 진작 들은 얘기였으니.

파병을 마치고 디덴으로 돌아간 베일라는 몇 개월 전역했고, 그대로 웨인 시로 와 경호업체에 취직. 유성에 스카우트되어 서령의 경호원이 되었다.

그걸로 끝. 베일라 자신이 말한 대로 누군가가 들어서 재밌을만한 얘기는 아니었다.

“미리 말씀드렸다시피, 그렇게 재밌는 얘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지루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죠.

서령은 그렇게 말하는 베일라를 조용히 쳐다봤다.

베일라가 군에 입대하기 전 얘기는 제법 오랫동안 그녀와 함께한 서령도 모르는 얘기였다. 그런데 설마 베일라의 부모가 강도에게 피살당하고 뒷골목에서 도둑질과 구걸로 혼자 자랐을 줄이야.

그에 비하면 서령의 삶은 축복받은 삶이 아닐까.

서령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애쉬가 베일라에게 물었다.

“전역은 왜 한 거야? 인정받는 군인이었으면 그 나라에서도 계속 안전하게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도 있지 않았나?”

아무리 부패한 군대라도 실력만 있다면 넉넉히 먹고 살 정도까진 올라갈 수 있다. 물론, 서령의 경호원이 된 지금이랑은 비교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 당시에는 힘든 선택이었을 것이다.

보장된 미래도 없고, 있는 거라곤 파병나간 몇 년 동안 모은 돈 조금밖에 없었을 텐데, 갑작스럽게 전역하다니.

애쉬의 의문에 베일라는 잠시 눈을 감고 떠올렸다. 디덴 본국으로 돌아간 뒤 찾은 그녀의 고향.

그리고 그녀가 그곳에서 일으킨 일.

이걸 굳이 말해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든 베일라였지만 곧 눈을 뜨고 자신의 과거를 연민하는 듯한 서령을 본 그녀는 쓴웃음을 짓고 입을 열었다.

“부하들과 제 고향에 찾아가 제가 머물었던 골목을 싹 청소했습니다.”

“…네?”

서령이 그녀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청소했다. 그 말의 의미 정도는 그녀도 알았다. 그곳을 점거하고 있던 조직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는 말.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곳의 인간들을 죽였다는 뜻일 것이다.

베일라는 놀란 표정의 서령을, 조금은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의 애쉬를 보며 얘기를 계속했다.

“제 선택이 아니라, 사실상 불명예전역이었습니다. 그건.”변명할 여지도 없는 일이다. 아무리 쓰레기들이라고는 해도 그들은 민간인이었으며 베일라와 그녀의 부하들은 민간인을 지켜야하는 군인이었다.

어느 정도 수준이었다면 윗선에 돈이라도 먹여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그날, 베일라와 부하들이 처리한 쓰레기들의 숫자는 무려 수십에 달했다. 그러니 난리가 날 수밖에.

베일라와 그녀의 부하들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나름의 명분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정도가 과했다. 베일라와 부하들은 군법 재판에 회부됐고, 그대로 군 교도소로 갈 수도 있었다.

당시 베일라의 상사였던 어느 장성급 인사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면 말이다.

부패한 군에서도 몇 안 되는 인격자였던 베일라의 상사는 그녀를 도왔고, 베일라는 부하들을 대신해 자신이 책임지고 전역하는 것으로 일을 무마할 수 있었다.

다행히 불명예 전역으로 처리되지도 않았기에 받은 퇴직금으로 웨인 시에 정착할 수 있었다.

지금 돌아서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만한 사고를 치고도 멀쩡히 전역해 퇴직금까지 받을 수 있었던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왜, 왜 그런 일을 한 거예요?”

그런 베일라의 말을 들은 서령이 물었다. 서령이 지금까지 보아온 베일라는 다소 딱딱하지만 그럼에도 나름의 정을 가진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학살에 가까운 일을 저질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서령의 물음에 베일라가 대답했다.

“복수였습니다.”

“복수…라고요?”

“예.”

베일라의 상사였던 장성급 인사가 그녀를 도왔던 것은 베일라가 그런 짓을 벌인 이유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베일라를 학대하며 핍박하던 조직의 생태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베일라의 부모를 살해한 강도, 그가 뒷골목 조직의 간부였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에.

아주 오래 전부터 강도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베일라는 이를 악물고 언젠가 있을 복수의 순간을 기다렸고, 그것은 십여 년이 지나 현실이 되었다.

아랫사람들에게 인망 있는 상사였던 베일라. 그녀의의 부하들도 그런 베일라의 복수를 도왔다. 잘못하면 자신들에게까지 화가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것을 이해한 애쉬가 말했다.

“좋은 부하들을 뒀었나보네.”

“…예. 주제에 맞지 않게 좋은 녀석들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베일라가 중얼거렸다.

결과적으로는 좋게 끝낼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심장이 떨리는 것 같았다.

당시의 베일라가 걱정하던 것은 그녀 자신보다도 그녀를 위해 그런 위험까지 감수한 부하들의 안위였다. 그들마저 자신의 복수로 인해 피해를 봐서는 안됐으니까.

그렇게 과거 얘기를 끝낸 베일라. 서령이 그녀를 바라봤다.

“베일라도 그런 때가 있었군요…”

“예. 저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니까요.”

부모님의 원수에 대한 복수라….

서령은 어쩐지 그녀의 그런 복수가 자신이 결심한 복수와도 닮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린 자식에게 관심 없는 부모를 대신해 그녀를 키우다시피 한 에아임. 그리고 부모보다도 많은 관심을 보내주었던 조부.

하지만 에아임과 서령은 그녀의 핏줄이라는 사람들에게 살해당할 뻔했고, 사랑했던 조부는 그녀의 삶을 부정했다.

그에 대한 복수는 반드시 이뤄져야만 했다.

하지만, 자신은 과연 베일라처럼 잔혹한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서령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애쉬는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곤 웃으며 말했다.

“제법 멋지게 살아왔잖아, 그쪽도. 뭐가 재미없다는 거야?”

“멋진 삶…입니까.”

“응. 영화 같은데?”

“하하…. 그렇담 다행이군요.”

애쉬의 말에 베일라가 작게 웃었다. 영화 같은 삶이라.

타인의 입장에서는 저렇게도 볼 수 있구나. 베일라에게는 돌아보기도 싫은 과거의 연속이었으나 애쉬의 말을 들으니 조금 유쾌해 보이는 것도 같았다.

그런 그녀를 뒤로한 애쉬는 베일라의 다음으로 서령을 지목했다.

“아가씨는 어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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