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5. 후계경쟁(18)
* * *
“제가 다른 쪽을 좀 파봤는데, 조금 재밌는 정보가 나왔어요.”
“재밌는 정보?”
“네. 며칠 전에 습격했던 쪽이 유성중공업의 유선혁 사장이라고 했었죠?”
“응. 그 안경잡이가 내밀었던 서약서에 그놈 이름이 적혀 있었지.”
빌헬름의 물음에 애쉬가 대답했다. 유서령이 지닌 모든 지분을 유선혁에게 양도한다던 서약서의 내용이 떠오른다.
그런 애쉬의 대답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빌헬름이 말을 이었다.
“최근 유선혁 사장의 개인 자금 쪽에 큰 움직임이 몇 번 있던데, 아무래도 23구역 유성중공업의 공장 단지에서 뭔가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정확히 뭘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겁니까?”
에아임이 물었다. 23구역에 위치한 공장 단지는 유성에서 갖고 있는 곳들 중에서도 제법 큰 편.
유성 계열사 중 대부분이 이용하는 곳이니만큼 그 시설의 수준은 보장되어 있다.
시설의 수준이 뛰어난 만큼 그곳에서 제작할 수 있는 물품의 종류도 무척이나 다양했는데, 유선혁 사장 정도의 재력과 권력이라면 마음먹기에 따라 일반 가전부터 시작해서 신경 인터페이스 등에 들어가는 정밀부품은 물론이고, 그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보안을 요하는 군사물품까지도 제작할 수 있었다.
물론,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다면 연방 정부에서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는 군사물품 따위를 사적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겠지만, 끝없이 폭주한 인간의 욕망은 스스로 파멸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다.
그런 일말의 불안감이 섞여있는 에아임의 질문에 빌헬름이 안심하라는 듯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알아봤는데 별 건 아니에요, 그쪽에서 개인 돈벌이를 조금 하고 있는 것 같더라구요.”
“돈벌이 말인가요?”
“네. 얼마 전에 이사님한테 있었던 습격도 이런 방법을 통해 만들어진 돈으로 실행된 걸 거예요.”
유선혁 사장의 개인 사비는 거의 들이지 않고 그룹의 피를 빨아먹고 있는 것이다.
그런 빌헬름의 설명에 서령이 표정을 굳혔지만, 애쉬의 생각은 심각해진 서령과는 조금 달랐다.
“그래? 그런데 그게 뭐?”
“네?”
애쉬가 별 것도 아니라는 듯 툭 던진 말에 서령이 놀라 반응했다.
하지만 애쉬는 그녀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그런 거야 그 유선혁이라는 놈이 아니라 다른 쪽도 다 하고 있을 거 아니야. 모르긴 몰라도 아가씨의 조부? 그 노인네도 하고 있을 걸?”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자들이 그렇게 해먹는 건 특별할 것도,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는 듯한 애쉬의 말에 서령이나 다른 이들도 아니라고는 말할 수는 없었다.
서령만 해도 자신의 밑에 위치한 이사들의 사소한 비리 중 몇몇은 어쩔 수 없이 눈감고 넘어간 경우가 있었지 않던가.
“그러니까 내가 묻고 싶은 건 그게 우리와 어떤 식으로 관계가 있냐 이 말이지.”
“사실 애쉬 씨 말대로 저희랑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게 맞아요. 하지만 이게 그쪽을 공략할 단초가 될 수 있어요.”
“공략할 단초?”
“네. 여기 유서령 이사님의 성향을 봤을 때 다른 경쟁자들을 어떻게 처리하고 싶지는 않아하실 것 같은데, 그렇죠?”
“…네. 아무리 그래도 직접적으로 해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사님의 생각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허. 그런 꼴을 당하고도?”
최근에 그런 사건을 겪었으면서도 나오는 서령의 대답에 에아임이 의지를 더한다.
애쉬는 그런 둘을 보고 고개를 저었지만, 빌헬름은 이미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그렇게 경쟁자를 직접 처리하기 싫다면, 다른 방법으로 끌어내려야죠.”
“끌어내린다구요?”
“네.”
서령의 물음에 빌헬름이 답했다. 그리고 이어서 설명했다.
“이건 조금 거칠긴 해도 어디까지나 경쟁이에요.”
적을 죽이는 전투, 전쟁이 아니라 경쟁자를 재치고 올라가거나, 끌어내리며 먼저 목표에 도착하는 싸움.
그게 후계경쟁의 본질이었다.
서령을 비롯한 경쟁자들의 최종 목표는 그룹 회장의 후계자 자리. 그렇다면 그 후계자 자리는 누가 주는 것인가.
“그야…. 그건 회장님이 아니겠습니까.”
“맞아요. 유진혁 회장님이 후계를 정하시는 거죠.”
시의적절하게 돌아오는 에아임의 대답에 빌헬름이 기분 좋게 설명했다.
후계자를 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유진혁 회장. 경쟁자를 모두 제거하는 것으로 선택지를 자신 하나만 남겨놓는 것도 승리조건 중 하나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전부 끌어내려서 유서령 이사님을 최고의 후계자로 만드는 거죠.”
“그 첫 번째 목표가 유선혁 사장….”
“네. 들어보니 며칠 전에 한 방 맞았다면서요. 바로 갚아줘야죠.”
“뭐, 그런 거면 괜찮긴 한데. 어떤 식으로? 이런 사소한 돈벌이 정도는 큰 타격도 안 될걸?”
“그러니까 자세한 계획이 뭐냐면…….”
* * *
“으, 으아악!!”
끼이익!
운전석에 있는 레이라의 부하가 내지르는 비명 소리. 그리고 급격히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애쉬의 상념을 깨뜨렸다.
그리고 이어서,
투우웅!
못해도 애쉬가 타고 있는 차량의 스무 배는 될 크기의 화물 차량이 스쳐지나간다. 공장지대에 물류를 보급하는 차량 같았다.
‘미친…!’
저런 것과 사고가 날 뻔 했다니. 직격했으면 아무리 그라도 멀쩡하지는 못했으리라.
스쳐지나간 화물 차량을 보고 순간 간담이 서늘해진 애쉬가 차 안에 대고 소리쳤다.
“이, 개 같은! 운전에 집중하라니까!”
“아니! 지금 앞 유리창에 금이 가서 앞이 보이질 않습니다!!”
“쫄따구가… 말대꾸?!”
“진짭니다!!”
피잉!
차량번호 19N2884673, 19N2884673. 당장 정차 후 검문에 응하라! 이곳은 유성 그룹의 사유지이며 너희들은 사유지 불법 침입을 비롯한……!!
“총부터 갈겨대면서 검문은!”
애쉬가 창밖으로 튀어나온 상체를 노리는 탄환을 피하며 소리쳤다. 귀가 멍해질 정도의 사이렌 소리와 저 확성기는 확실하게 공장 단지 내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어찌저찌 계속해서 시선을 끌고는 있지만 이대로라면 아무리 빌헬름의 외부 조작이 있다고 한들 공권력이 나서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애쉬가 인이어를 통해 상대방에게 재촉했다.
“빌헬름! 아직이야?!”
잠시만요! 곧…!
“오, 망할.”
곧 작업이 끝난다는 빌헬름의 대답을 듣던 애쉬는 자신 쪽을 향하는 무언가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
슈우우우!
프로펠러가 달리지 않은 시가지 전용 급속 공중부양기가 멀리서부터 날아오고 있다.
이 세계에 처음 떨어졌던 과거, 수배당할 당시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탑승물의 출현이었다.
“애, 애쉬 님! 저건…!”
“나도 봤어, 인마! 빌헬름! 이대로 더 있으면 진짜 일 커진다!”
잠깐, 진짜 잠깐이면 돼요! 지금부터 대충 3분, 아니 2분!!
“3분?!”
유성 그룹이 관련돼있기 때문일까. 공권력의 출동이 예상보다 한참은 빠르다.
지금이야 급속 공중부양기 한 대가 전부였지만, 3분 뒤에는 한 대가 아니라 열 대 이상, 게다가 진짜 사살을 목적으로 한 기갑 병기들을 실은 것도 공중부양기도 출동할 수 있었다.
참고로 과거 애쉬를 도심지에서 쫓아낸 것도 그 기갑 병기들이었다.
23구역 경찰 특수 진압대다! 지금 당장 차량을 정차하고 검문에 응하라! 당장 차량을 멈추지 않으면 사살한다!
급속 공중부양기에 달린 확성기에서 경고음이 들려왔다. 이제는 그 탑승구에서 세 갈래 로프도 매달고 있는 게 애쉬가 타고 있는 차량을 추월한 뒤 대원들을 떨어뜨려 직접 저지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것을 본 애쉬가 다시 상체를 차 안에 집어넣었다.
“곧 차도 버려야할 것 같은데 어때, 싸울 줄은 좀 알아?”
“예? 저도 나름 간부라 실력은 있다고 자부하는데 저 녀석들은….”
차량의 위로 급속 공중부양기가 추월해나간다. 늘어진 로프에는 이미 중화기를 들고 착지 준비를 하고 있는 경찰 대원들이 매달려 있었다.
같은 중무장이어도 숫자 차이가 나면 힘들 텐데, 지금 그는 가벼운 무장에 애쉬와 단 둘뿐이었다. 싸움이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애쉬는 몰라도 운전 중인 ‘뱀파이어’의 간부, 케인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완전 짐덩이네.”
“애쉬 님 쪽이 이상한 겁니다!”
“빌헬름! CCTV 조작은?”
그 정도는 작업 중에도 가능해요!
“오케이! 그럼 최대한 시간은 끌다 빠져나가볼 테니까 잘 부탁한다!”
저만 믿어요!
빌헬름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과 함께 애쉬가 운전석의 케인을 바라봤다.
그도 애쉬와 마찬가지로 인이어를 끼고 있었는데, 애쉬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불안한 기운에 몸을 떨었다.
“들었지? 차는 바로 버린다.”
“…그냥 뛰어내립니까?”
“그럼. 천천히 감속하고 정차시킨 다음에 내리게? 그냥 주차까지 하겠다고 하지 그러냐.”
“…아닙니다.”
애쉬의 말에 케인이 기가 죽어 대답했다. 일전에 전투를 직접 보고 존경심을 갖게 된 대상은 정말 가차 없었다.
케인은 수백 미터 정도 앞, 급속 공중부양기를 통해 그들을 추월한 뒤 공장 단지의 도로를 점거하고 있는 경찰 대원들을 보며 몸을 긴장시켰다.
이대로 가면 저 중화기에 차량과 함께 벌집이 되어버릴 터. 슬슬 뛰어내릴 준비를 해야 한다.
그도 신체를 개조한 사이보그였기에 어느 정도 속도로 달리는 차량에서 뛰어내리는 건 아주 큰 위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방심하면 부상을 입을 수 있었다.
“그럼 셋하면 뛰어내리는 거다.”
“옙.”
“셋!”
“예, 예?! 잠…!”
콰아아!
문이 벌컥 열리고 순식간에 바람 소리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애쉬가 먼저 차 밖으로 몸을 던지고, 갑작스런 셋이란 구령에 당황한 케인이 뒤늦게 따라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직후.
투다다다!!
정면의 경찰 대원들에게서 쏟아진 탄환의 비가 차량을 덮쳤다.
* * *
쫘아악!
유성중공업 본사, 꼭대기 층에 위치한 유선혁 사장의 사무실.
그곳에서는 때 아닌 뺨을 올려 부치는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뭐? 다시 한번 말해봐.”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쫘아아악!
다시 한번 살갗이 강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사무실 안에 울린다. 그것은 이미 몇 차례 반복된 것인지 강한 충격에 돌아간 비서의 뺨은 퉁퉁 부어 있었고, 그 입가에서는 피가 흘렀다.
“이번이 몇 번째지? 응?”
“쿨럭…. 여섯 번째입니다.”
피 섞인 기침을 삼킨 비서가 대답했다. 벌써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에게 당해 자금원을 끊긴 게 여섯 번째였다.
이제 제대로 된 자금원 중 남은 건 겨우 둘.
유선혁 사장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돈줄은 아직 조금 남아있었지만, 그룹을 통하는 것처럼 진짜 돈이 되지는 못했고, 기껏해야 용돈벌이 정도에 불과했다.
그것을 생각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유선혁이 주체하지 못할 분노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똑바로 방비하라고, 안 했었나?”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걸 당해줘? 또?”
유선혁이 다시 한번 손을 치켜 올려 비서는 몸을 움찔 떨었지만, 그새 분노를 조금 참은 것인지 손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에 안심하면서도 비서는 억울함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번 것을 제외하더라도 당하길 다섯 번. 아무리 바보라도 그렇게 당하고서 똑같을 수는 없다. 비서는 분명 수많은 인력을 갈아 넣어 완벽하게 준비했었다.
하지만 규격외의 상대 때문에 그것에 뚫려버린 것이다.
“상대방의 정체는. 또 모르나?”
“…예. 지금으로선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 미치겠군.”
비서의 대답에 유선혁이 털썩 자리에 앉아 미간을 짚었다.
이주일 전부터 시작된 습격은 그에게 근래 들어 없었던 스트레스와 과도한 분노를 안겨주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의 자금원으로 이용되는 곳들에 귀신처럼 파고들어가 자금원의 시스템을 모조리 박살내놓고는 유유히 도망가는 놈들.
놈들은 항상 복면을 쓴 채 움직여서 육안으로 그 외모를 확인할 수도 없었고, 또 얼마나 대단한 실력의 해커가 같이 활동하는 것인지 사건이 일어날 때면 근방의 모든 CCTV와 개인단말기 등이 맛이 가버려서 추적할 수도 없었다.
정말 귀신같은 솜씨로 침투해서는 귀신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유선혁은 여전히 미간을 짚은 채 입가의 피를 닦고 있는 비서에게 물었다.
“이번에 고용한 그 녀석들은 언제 도착한다지?”
“빠르면 며칠, 늦어도 일주일 안에는 웨인 시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는 거지….”
유선혁은 성실히 답변하는 비서의 대답을 들으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놈들이 설치는 것도 여기까지다.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었다.
“녀석들이 도착하면 바로 자금원 방어에 투입해.”
“…그 녀석들을 말입니까? 하지만, 제대로 통제에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안되면 돈이라도 더 처먹이던가! 닥치고 하라는 대로 해!!”
“…예, 알겠습니다. 관련 서류를 준비하겠습니다.”
말대꾸를 하는 비서에게 다시 한번 분노를 쏟아낸 유선혁. 비서가 자리를 떠나자 그는 펜이 꺾일 정도로 손아귀에 힘을 주며 생각했다.
놈들이 다시 더러운 손을 뻗는 순간이 그 생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