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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98화 (98/230)

〈 98화 〉 5. 후계경쟁(22)

* * *

­ 타앙!

주말이긴 해도 이용하는 사람이 몇 없는 한산한 사격장. 그곳에 서령이 쏜 총의 격발음이 울린다.

그 마지막 한 발로 탄창을 모두 비운 서령이 사격장에서 빌린 소총을 내려놓고는 뒤편에 서있던 애쉬과 베일라를 돌아봤다.

“어때요?”

그녀는 소총 외에도 사격장에서 임시로 지급하는 보안경이나 귀마개, 안전 조끼까지 모두 착용한 상태였는데, 오랜만에 사격장에 나와서 그런지 꽤나 신이 난 느낌이었다.

“제법 잘 하는데?”

서령의 자세부터 그 총탄이 날아가 꽂히는 곳까지 똑바로 확인한 애쉬는 그런 그녀에게 칭찬을 건넸다.

자세에도 안정성이 있었고, 쏜 총탄도 모두 표적에 적중했다. 그 정밀성까지 따져본다면 조금 부족함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전문적으로 사격 훈련을 받은 사람도 아닌데 거기까지 바라는 건 무리가 있었다.

그런 애쉬의 칭찬을 들은 서령의 표정이 한층 더 밝아졌다.

“그렇죠? 전에도 가끔 이렇게 와서 사격을 하곤 했어요.”

최근에는 후계경쟁 때문에 좀처럼 들르지 못했지만, 사격을 할 때 느껴지는 반동과 총격음, 그리고 사격 후의 흐릿한 화약내까지.

지금처럼 제대로 맞춘 표적이 넘어가는 것을 보면 스트레스가 싹 풀렸다.

그렇게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서령을 보고 자신도 기분이 좋아진 듯 가벼워진 분위기의 베일라가 말했다.

“확실히 잘 하시는군요. 그럼 소총 사격은 어느 정도 하시는 것 같으니 바로 권총으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아, 네.”

베일라의 말을 들은 서령이 사격장에서 대여한 총기를 반납하고 돌아왔다. 베일라는 그런 그녀를 기다리는 사이 건 샵에서 사온 권총을 미리 세팅한 뒤 넘겨주었다.

“고마워요, 베일라.”

“아닙니다. 권총 사격 경험은 없는 걸로 아시는데, 혹시 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뇨, 베일라 말대로 권총은 써본 적이 없어요.”

“그럼 기본적인 파지법과 사격 자세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베일라는 권총을 쥔 서령의 자세를 교정해 주었는데, 권총 사격은 아무래도 소총 사격보다 신경 쓸 게 더 많았다.

“그렇게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조준선이 흔들리지 않도록 잘 받쳐주시면 됩니다.”

“이렇게요?”

“예. 하지만 팔을 그렇게 너무 쭉 펴지는 마시고 살짝 굽혀서 여유를 두는 쪽으로….”

서령은 베일라의 지시에 따라 자세를 잡았는데, 확실히 처음이라 그런지 헷갈려하는 부분이 많았다.

“좀 어렵네요….”

“아무래도 권총은 소총 사격보다는 조금 난이도가 있는 편입니다.”

개머리판을 어깨에 잘 견착시킨 뒤 조준점을 보고 쏘면 되는 소총과 달리 권총은 신경 써야 할 점이 더 많았다.

권총이라고는 해도 그 무게가 제법 묵직했기에 서령의 근력으로는 그것을 자신의 정면으로 향한 채 흔들림 없이 계속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고, 무엇보다 총열이 짧은 권총의 적중률이 소총보다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어지간한 실력자가 아닌 이상 소총처럼 쓰는 것은 힘들었다.

오죽하면 애쉬, 현대 지구에서의 이진현이 군대에 있을 때 들은 얘기 중 군 장교들에게 지급되는 권총의 목적은 적을 처치하는 게 아니라 자결용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었겠는가.

잠시 서령과 베일라가 하는 것을 지켜보던 애쉬는 자신의 품 안에서 권총 하나를 꺼내들었다.

멋들어진 문양과 함께 그립에 ‘Golden Canyon’이라는 글씨가 고풍스럽게 새겨져있는 은빛 리볼버.

얼마 전 애쉬가 살려 보냈던 카우보이모자의 남자, ‘골든 캐니언’이 은혜를 갚겠다는 표시로 잠시 맡겨둔 물건이다.

8구역에 있는 무슨무슨 물류 회사로 돌려주러 오라고 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은혜를 제대로 갚겠다고.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맡겨둔 물건이었지만, 한 번쯤 사용해보는 것도 괜찮을 않을 것이라 생각해 사격장까지 들고 온 것이다.

사격장 앞의 건 샵에서 구해온 리볼버 탄환까지 꺼낸 애쉬는 약실을 재끼고 실린더를 한번 돌려봤다.

­ 지이이익.

애쉬가 건네받은 뒤로 관리 한번 하지 않은 물건이었지만, 실린더는 매끄럽게 돌아가며 묘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감촉을 전했다.

“상태는 괜찮네.”

그럼 한 번 써봐야지.

잠깐 그 감촉을 즐기던 애쉬가 약실에 탄환을 밀어 넣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총 6발의 탄환이 들어간 실린더를 다시 결합하고 사격대 앞으로 향한다. 애쉬도 서령과 마찬가지로 권총을 써본 적은 거의 없었지만, 대충 감만으로도 어떻게 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사격대에 위치한 버튼을 누르자 정면에 표적이 올라왔다. 리볼버의 공이를 뒤로 당기고 팔을 들어 총구를 정면으로 향한다.

그리고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자,

­ 타아앙!

가슴 속까지 시원시원해지는 격발음이 사격장 내에 울렸다. 20미터 정도 밖에 있는 표적도 제대로 적중해 넘어갔지만, 애쉬는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 녀석은 어떻게 쐈더라.’

애쉬는 골든 캐니언, 그 남자가 리볼버를 사용하던 방식을 떠올렸다. 골든 캐니언은 리볼버를 여타 권총 사용하듯 눈높이까지 들고 사용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조준도 없이, 그저 자신의 허리 높이에서 순식간에 쏘아냈음에도 귀신처럼 맞췄었지.

게다가 이런 리볼버는 한 발 사격한 후 공이가 자동으로 넘어가지도 않아서 매번 쏠 때마다 뒤로 당겨줘야 했다.

그럼에도 눈 깜짝할 새 대여섯 발을 완벽히 맞추던 골든 캐니언, 그 카우보이는 다시 생각해도 대단한 녀석이긴 했다.

‘분명 녀석은….’

단 한번의 총성이 끝나기도 전에 몇 발의 탄환을 쏘아냈었지. 그 묘기에 가까운 리볼버 숙련도는 다시 떠올려도 감탄할 만 했다.

애쉬는 리볼버를 들고 당시 골든 캐니언이 보였던 움직임을 카피해 그대로 따라 해봤다.

­ 타아앙!

마찬가지로 들려온 총성은 단 한번. 그러나 그 찰나의 순간에 쏘아져 나간 탄환은 다섯 발이다.

그렇다면 맞춘 표적은?

“이런.”

겨우 셋. 다섯 발 중 두 발이 빗나갔고, 그 중에서도 두 발은 표적을 제대로 맞춘 게 아니라 사람으로 치면 팔이나 어깨 정도 되는 위치에 들어갔다. 제대로 된 타격을 준 건 아닌 것이다.

탄환을 쏘아내는 번개 같은 손놀림은 어느 정도 따라할 수 있었지만, 그 적중률까지 따라하려면 아무리 애쉬라도 제법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았다.

솔직히 다 맞출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실망한 애쉬가 아직 화약 연기를 내뿜는 리볼버를 내리자 뒤에서 서령의 감탄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애쉬 씨는 권총도 잘 쓰시네요.”

“응? 아니, 뭐….”

돌아보니 서령은 물론이고 베일라까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그의 입장에서는 어설프게 따라하다가 절반은 못 맞춘, 창피한 상황이었는데, 저렇게 반응해주는 것을 보면 괜히 낯부끄러운 느낌만 강해졌다.

“그 정도의 패닝이라니…,진짜 어디 특수 부대를 나오기라도 하신 겁니까?”

“아니, 그냥 일반인이었다니까. 그보다 아가씨는 벌써 교육 끝난 거야?”

“아뇨, 아직요. 잠시 멈추고 애쉬 씨가 사격하는 걸 보고 있었어요.”

“아가씨도 해봐. 저 아줌마 말고 나도 봐줄 테니까.”

“아줌마….”

매번 듣는 얘기면서도 데미지가 있는 것인지 중얼거리는 베일라를 뒤로하고 애쉬가 서령의 자세 교정을 도왔다.

“그럼 이대로 한번 쏴볼게요.”

“그래.”

서령이 사격대 앞에서 자세를 잡았다. 조금은 어색해 하고 있지만 그래도 모양이 나왔다.

“후우우….”

목표는 정면 15 미터 밖의 표적. 귀마개를 쓰고 깊게 숨을 내쉰 서령이 보안경 너머로 눈을 빛내며 방아쇠를 당겼다.

­ 타앙!

정중앙에 탄환을 맞은 표적이 뒤로 넘어갔다.

“잘 쏘셨습니다.”

그 다음은 20 미터.

­ 타앙!

정중앙, 명중.

“나이스 샷.”

뒤이어 세워지는 30미터의 표적.

타앙!

다시 한번 정중앙 명중.

“오….”

“이것까지 중앙에 맞추시다니.”

권총은 거리가 조금만 더 멀어져도 그 명중률이 급격히 떨어지는 총이었는데, 첫 사격에서 30미터까지 정중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애쉬도 권총을 써봐서 그것을 알았기에 서령의 예상 밖의 실력에 감탄한 것이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뒤이어 벌어지는 광경을 본 애쉬와 서령의 표정이 변해갔다.

연달아 세워지는 40 미터, 45 미터, 50미터까지…….

모두 정중앙에서 1~2 센티 이상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명중.

이 사격장에 권총 사격용 표적은 50미터까지밖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거기서 사격을 마친 서령이 귀마개와 총을 내려놓고 뒤를 돌아봤다.

“후우…. 어땠어요? 이 정도면 잘 쏜 것 같은데.”

그리고 그녀는 흔치 않게도 놀란 표정의 베일라와 애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내가 잘 몰라서 그런데 이 정도면 진짜 재능 있는 편 아닌가?”

“…맞습니다. 소총 사격도 제법 잘하시는 편이라 금방 익숙해지실 것은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은…. 권총 사격은 정말 타고 나신 것 같습니다.”

“그, 그 정도인가요?”

예상치 못한 애쉬와 베일라, 둘의 과한 칭찬에 서령이 뺨을 발갛게 물들였다. 그냥 최선을 다해서 집중한 뒤 방아쇠를 당겼을 뿐인데 저런 칭찬을 받을 정도인가?

그런 서령의 표정을 읽은 듯 베일라가 확신을 줬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제가 교육시켰던 교육생들 중에서도 이 정도로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던 경우는 없었습니다.”

“나도 처음엔 저 정도로 못 쐈던 것 같은데.”

그녀는 한때 한 경호업체의 교관으로서 일한 적도 있었는데, 그런 그녀의 말이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애쉬도 첫 사격에는 권총을 저렇게 잘 쓰지 못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거기에 동의했다.

여러 번 쏘면서 탄환의 궤도나 회전에 익숙해진 다음에야 지금처럼 쏠 수 있게 된 것이지, 숙련도를 설정해둔 검처럼 처음부터 잘하지는 못했다.

서령이 처음인데도 이상할 정도로 잘 쏘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조금만 다듬어도 실전에서 사용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 지금 당장도 권총 한 자루만 쥐어주면 여럿 머리에 구멍을 뚫을 수 있겠어. 내일 바로 유선혁인지 뭔지 암살이나 하러 가볼까?”

“…네?”

애쉬가 던진 농담에 서령이 당황했다. 그것을 보며 애쉬가 짓궂게 웃었다.

그런 애쉬의 웃음을 보고서야 농담임을 깨달은 서령이 투정했다.

“그런 농담은 하지 마세요, 정말!”

“프흐흐, 재밌잖아.”

“재미없어요!”

“그래그래, 그럼 연습이나 조금 더 하다 갈까? 저 말은 농담이었어도 재능 있다는 건 진짜라니까.”

애쉬의 장난에 살짝 삐진 서령은 다시 귀마개를 끼고 사격대로 향했다.

일행은 그 후로도 두어 시간 정도 서령의 사격 훈련을 돕다 사격장에서 퇴장했다.

우연치 않게 숨겨져 있던 서령의 재능을 하나 더 찾은 날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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