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01화 (101/230)

〈 101화 〉 5. 후계경쟁(25)

* * *

“그럼 오픈해주시죠.”

“자, 이쪽은 K 투 페어인데 그쪽은?”

“7 트리플.”

“행운의 7 트리플이라. 이거 이번에도 져버렸구만.”

애쉬가 카드를 펼치자 보인 7이란 숫자 세 장에 남자, 조인 디아벨이 기분 좋게 웃으며 패배를 인정했다.

애쉬와 조인의 게임은 약 30여 분 동안 진행됐는데, 오늘은 애쉬에게 행운이 따라주고 있는 것인지 그의 승률이 좀 높게 나오고 있었다.

“난 오늘 운이 영 따라주지를 않는데, 다음 게임으로 넘어가 볼까? 포커는 됐으니 블랙잭 어떤가.”

“좋지. 딜러 아가씨, 블랙잭으로 가지.”

“예. 그럼 게임 종목을 지금부터 블랙잭으로 변경하겠습니다.”

“아, 잠깐. 게임 시작하기 전에 목을 좀 축이자고. 난 보드카 쪽으로. 자네는?”

“난 위스키.”

“그래. 나는 보드카, 이 친구는 위스키로. 마실 것 좀 부탁하지.”

딜러에게 자신의 앞에 있던 코인 중 일부를 팁으로 넘겨주며 부탁하는 조인.

그런 조인의 목소리를 들은 여성 딜러가 자연스럽게 팁을 받으며 양해를 구했다.

“그럼 잠시 자리를 비우고 말씀하셨던 마실 것을 준비해오겠습니다.”

“그래그래, 천천히 다녀와.”

“예, 그럼.”

그렇게 딜러가 자리를 비우자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조인이 은근슬쩍 애쉬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때, 괜찮지 않나?”

“음…. 확실히 수준이 있네.”

“그렇지? 내가 며칠 동안 오늘 있을 파이트 클럽 경기를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몰라. 아, 오늘 파이트 클럽에서 경기가 열리는 건 알고 있나?”

“어. 안 그래도 거기 들렀다 올라온 거거든.”

“어쩐지. 위쪽 구역이 아니라 이쪽에서 여자를 찾는 걸 보고 그럴 것 같다고는 생각했는데, 진짜였구만 그래.”

조인이 고개를 주억였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애쉬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조인은 자신이 경쟁자에게 노리던 먹잇감을 보여줬다는 사실을 확인받고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거 혹시라도 내 걸 뺏기는 건 아닐지 모르겠어.”

“글쎄….”

애쉬는 그런 그의 말에 아니라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인이 제 마음에 든다며 안내한 여성 딜러가 그의 마음에까지 완전히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우승의 자리는 뺏을 예정이었으니까.

아무리 조인이 괜찮은 놈이라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해도 승리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애쉬의 짧은 대답에 풍기는 뉘앙스는 조인도 읽을 수 있었는지 그도 앞으로 있을 파이트 클럽의 경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여기서 승부를 벌일 것도, 그렇다고 승리를 구걸하지도 않을 것이었으니.

둘은 그저 다양한 게임을 계속 즐기며 시간을 보냈고, 어느새 시각은 오후 8시 50분.

파이트 클럽에서의 경기가 열리기 직전이 되었다. 목적이 같은 둘은 카지노에서 벗어나 대회를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쯤에서 갈라지지.”

“그래. 혹시라도 만나게 되면 살살 부탁한다고.”

“핫. 좀 봐주긴 할게.”

47층의 파이트클럽. 여기까지 와서도 능청을 떠는 조인을 보며 픽 웃은 애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져주진 않을 테지만 아프지 않게 기절시키는 정도까지는 봐줄 수 있었다.

그렇게 애쉬와 조인이 동행을 마무리 할 때쯤 파이트 클럽 관계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기에 참가하시는 고객님들께서는 이제 정해진 위치로 가주셔야 합니다!”

“그럼 이만. 건승하라고. 만나면 봐주기로 한 건 잊지 말고.”

애쉬와 배정된 조가 달랐던 조인이 먼저 자리를 떠났다. 애쉬도 그런 그를 보다가 자신이 속한 조로 발걸음을 옮겼다.

둘이 경기 내에서 만나는 것은 꽤나 상위권에 올라서나 가능할 것이었다.

*

­ 뻐어억!!

“으컥…!”

[이, 이게 무슨 일인가요!! 이번에도 단 한 방?! 한 방에 상대를 다운시켰습니다!!]

배를 붙여 잡고 바닥에 쓰러진 상대방을 앞에 둔 애쉬의 귀에 해설자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세 번째 경기. 애쉬는 앞선 두 번에 이어 이번 경기에서까지 제대로 한 방씩 먹여주며 그대로 경기를 끝내온 것이다.

[……3! 2! 1!]

­ 땡땡땡!

[애쉬 론모어 선수가 콜 벡텀 선수를 단숨에 잡아내고! B팀의 최종 선발자 자리를 가져갑니다!!]

“와, 전부 한 방을 못 버티고 그냥 끝나네. 누구 저 선수한테 건 사람 있어?”

“아니, 비쩍 말라서는 무슨….”

결국 상대방이 끝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애쉬의 승리가 선언됐다.

그러나 관객들과 해설자의 감탄에도 애쉬는 그저 심드렁할 뿐이었다.

‘외부에서도 초청했다더니, 별 것도 없네.’

그 이유인즉슨 선수로 나온 이들의 수준이 너무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곳 47층 파이트 클럽은 유흥시설, ‘The Paradise’의 41~50층 이상에 오를 수 있는 모든 고객들이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었지만, 그 외에도 인원수를 채우기 위해 외부 인원들을 고용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런 수준이라니.

애쉬가 경기에서 사용하고 있는 신체 능력은 서령의 기존 경호원들보다 조금 높은 정도에 불과했는데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누워버리는 것은 심하지 않은가.

당장 애쉬의 눈앞에 쓰러진 상대만 해도 이곳 시설을 이용하는 고객이 아니라 외부에서 초청한 선수였다.

이쯤 되면 애쉬 본인에게 돈을 걸어 다른 이용객들의 돈을 뺏는 게 미안할 정도.

솔직히 그냥 관두고 싶을 정도로 수준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래도 우승 상품과 상금, 그리고 그가 제법 괜찮은 실력자라 느꼈던 조인 디아벨의 존재를 생각하며 참았다.

각 팀의 선발자들까지 지금까지 상대했던 놈들만큼 부족한 건 아니겠지.

자신의 세 번째 경기를 끝내고 팀의 최종 선발자가 되어 본선에 올라간 애쉬는 다른 팀의 경기를 구경하기 위해 이동했다.

그가 너무 빨리 끝내버린 바람에 본선 시작까지 시간이 붕 떠버린 것이다.

애쉬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역시 그와 함께 게임을 즐겼던 남자, 조인 디아벨이 속한 E팀이었다.

애쉬가 그쪽 팀에 도착했을 때는 E팀도 마찬가지로 선발전이 거의 마무리 된 상태였다.

[조인 디아벨! 쉬지 않고 몰아칩니다! 정말 폭풍 같습니다!!]

“조인 디아벨! 젠장! 믿고 있었다고!!”

“으아악! 우승 후보라더니 쪽도 못쓰고 당하면 어떡해!!”

상대방을 케이지 구석에 가둬놓고 계속해서 주먹을 날리는 조인 디아벨. 그는 계속해서 저렇게 움직이고 있었음에도 전혀 지치지 않은 듯 가볍게 미소 짓고 있다.

그런 표정을 읽은 애쉬는 계속해서 그가 몸을 움직이는 방식을 지켜봤다.

­ 퍼억, 퍽!

“흐읍.”

가드 위로 꽂히는 주먹임에도 충격이 상당한 듯 상대방은 숨을 삼키고 있었고, 조인 디아벨은 단단한 방어를 그대로 깨부수려는 듯 계속해서 주먹을 내질렀다.

구석에 갇혀 일방적으로 폭행당하고 있는 상대방은 팔에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점차 가드를 머리 쪽으로 올렸다. 가드 위로도 저런 충격이 전해지는데, 머리에 제대로 맞는다면 단순 기절 정도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복부가 비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상대방의 가드가 올라가는 것을 확인한 조인 디아벨은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무릎으로 상대의 복부를 타격.

“커허억!”

그리고는 상대방이 앞으로 꼬꾸라지는 모습을 전부 바라보지도 않은 채 뒤돌아서서는 양 팔을 들어올렸다.

타격이 들어가는 감각만으로도 상대방이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 것이었다.

그렇게 돌아선 조인의 확신에 답하기라도 하듯 상대방은 끝내 일어나지 못한 채 의료팀에 실려갔고, 곧 그가 팀의 최종 선발자로 결정됐다.

[조인 디아벨 선수가 E팀의 최종 선발자 자리를 차지합니다!!]

“나이스! 내가 저 몸만 보고도 예상했다니까!!”

애쉬의 옆자리에서 구경하던 남자가 외쳤고, 조인도 그것을 들었는지 남자에게 시선을 돌리다 바로 옆의 애쉬를 발견했다. 그리고 애쉬를 발견하자마자 곧장 케이지를 넘어 그에게 다가왔다.

“오, 그쪽은 벌써 끝난 거야? 설마 떨어진 건 아니겠지?”

“떨어지긴. 하도 수준이 떨어져서 순식간에 왔는데.”

“그럼 다행이구만. B조라고 했었나? 최대한 나중에 만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이왕이면 결승에서.”

결승에서 멋지게 맞붙으면 좋겠다는 조인의 말에 애쉬는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유흥 시설에서 열리는 대회가 뭐라고 영화 속 명장면 같은 느낌으로 말하는 건지.

“격투기도 좀 배웠나봐? 몸을 쓰는 게 제법이던데?”

“하하, 그래 보이나? 같은 일을 하는 녀석한테서 좀 배우긴 했지.”

조인은 자신의 스승격이 되는 그 동료는 자신과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격투기 실력이 대단하다며 겸양을 떨었다.

그에 애쉬가 물었다.

“무슨 일을 하는데 동료한테 격투기를 배워?”

“뭐…. 용병 일을 하고 있지. 여기 온 것도 일 때문에 잠깐 들른 거고.”

“용병?”

“그래. 제법 유명한 PMC 소속인데 아마 그쪽도 이름만 들으면 알 걸?”

“이름이 뭔데?”

“하하. 궁금하면 이번 대회에서 날 이겨보라고. 그럼 혹시 모르잖나. 내가 스카웃 제의라도 할지.”

애쉬의 질문에 조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스스로의 실력과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있는 말이었다.

“그럼 이따 경기 후에 다시 물어보지.”

그래서 애쉬도 굳이 더 묻지 않았다. 어쨌든 대회에 참가한 다른 참가자들의 수준을 봤을 때 어느 쪽이든 먼저 떨어질 것 같진 않은데, 금방 만나겠지.

그때 한 수 가르쳐 주고 들으면 될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곳에 속해있어서 이름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당연히 자신이 이긴다는 듯한 애쉬의 말에 조인이 놀라듯 말했다.

“오, 자신감이 대단한데. 그래도 이번 경기에서 보인 게 내 전부라고 생각하면 큰 코 다칠 거야, 친구.”

“됐으니까 긴장이나 하고 와라.”

“하하하, 그래. 기대하지.”

애쉬의 말에 조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애쉬와 조인이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다른 팀들도 선발전이 모두 끝난 것인지 방송으로 층 전체에 대회 진행에 대한 알림이 들려왔다.

[곧 파이트 클럽 제 197회 대회의 본선이 있을 예정입니다. 출전 선수 분들께서는 준비를 마치신 후 중앙 케이지의 선수 대기실로 가주시기 바랍니다.]

“이만 가야겠구만. 이따 보지.”

“나 만나기 전에 떨어지진 말고.”

“하하핫.”

조인이 특유의 시원한 웃음소리와 함께 멀어졌고, 애쉬도 자리에서 일어나 선수 대기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짧은 조 추첨식이 있었는데, 우연찮게도 첫 경기에서 애쉬와 조인이 첫 경기에서 맞붙게 된 게 아닌가.

[이상으로 조 추첨식을 마치겠습니다! 그럼 3분 뒤 본선 첫 경기가 열릴 예정이니 본선 개막의 주인공이 될 B조의 애쉬 론모어 선수와 E조의 조인 디아벨 선수는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첫 경기라니. 타이밍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방송을 들은 애쉬는 진행위원에게 글러브를 받아 끼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에게 대회 전 물품들을 건네준 진행 위원 중 하나가 애쉬에게 다가와 말했다.

“본선의 룰은 예선과 같습니다. 연방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4등급 이상의 사이보그이신 경우에는 출력을 50% 이하로 제한해주시면 되며, 이미 제압된 상대방에게 과도한 폭행을 가할 시…….”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제약을 거는 룰. 역시 그 회수가 200회에 가까운 대회여서 그런지 이런 쪽에 있어서는 철저했다.

사이보그도, 뭣도 아닌 애쉬는 진행위원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고, 진행위원은 곧 그를 케이지 안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에 맞춰 애쉬에 대한 짧은 선수 소개와 함께 삼백 정도 되는 관객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그럼 선수가 입장하겠습니다! 여태껏 만난 모든 선수들을 한 번에 눕힌 원펀치맨! 미사일과 같은 펀치의 소유자!! 애쉬이!! 론모어!!!]

“믿는다, 애쉬 론모어!!”

“와아아!!”

“휘익!”

애쉬에게 돈을 걸었는지 혼자 눈에 띄게 소리치는 관객들과 휘파람을 부는 다른 관객들.

특히나 그의 외모를 본 여성 관객들이 크게 환호했다.

팀별로 나눠서 경기할 때는 몰랐는데, 확실히 이용객들 뿐 아니라 휴식시간이 주어진 직원들까지 한데 모이다보니 그 숫자가 상당하다.

애쉬가 케이지에 오르자 곧이어 그의 상대가 될 조인 디아벨의 소개가 이어졌다.

[다음 선수!! 상대방에게 단 한번의 유효타도 맞지 않으며 폭풍처럼 몰아쳐 쓰러뜨려온 신흥 강자!! 며칠 전부터 한 여자만을 바라보며 이 날을 기다려왔다는 로맨티스트!! 조이이인!! 디아벨!!!]

“휘이익!”

“예선부터 응원했다!! 박살내버려!!”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얼굴을 뭉게!!”

유난히 애쉬에게 적대적인 외침이 많이 들려오는 선수 입장식.

대기실에서 나온 조인 디아벨이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입가에 단 채 케이지로 오는 게 보였다.

“바로 만났네?”

애쉬는 가볍게 글러브를 툭 치며 점검하고는 그를 반겼다. 그에 케이지에 들어온 조인도 몸을 풀며 답했다.

“결승에서 만나길 바랬는데. 아쉽지만 잘 부탁한다고, 친구.”

“그래. 최대한 살살은 해볼게.”

“하하하.”

“두 선수 모두 준비 되셨습니까?”

가볍게 인사를 나눈 애쉬와 조인에게 다가온 심판이 다가와 물었다.

그에 애쉬와 조인이 답했다.

“어.”

“물론.”

둘의 대답을 들은 심판이 케이지 밖에 무어라 말하자 곧 경기가 진행됐다.

[그럼 이제부터 경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Ready, Fight!!]

­ 때앵!

경기장의 공이 울리고, 본선의 첫 경기가 시작됐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