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09화 (109/230)

〈 109화 〉 5. 후계경쟁(33)

* * *

[장난치지 말고 빨리 끝내라.]

[응? 아니,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말인데. …아아, 알겠다니까. 그렇게 노려보지 말라고.]

스피커를 통해 다른 남자와 장난이라도 치는 듯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울린다. 이윽고, 장난스런 목소리의 남자가 조금은 진지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뭐, 서로 죽이라는 말은 농담이고. 우리는 악마라고 불리는 놈들인데, 지금부터 여러분은 우리랑 게임을 하나 할 겁니다. 자, 그게 무슨 게임이냐? 바로 숨바꼭질입니다.]

[…끝까지 장난질이군.]

[에헤이, 그분도 적당히 갖고 놀다 죽이는 건 괜찮다고 했잖아.

크흠, 아무튼 술래는 우리니까 여러분은 지금부터 5분 동안 이 저택 안에 자알 숨으시면 됩니다. 숨기 싫으면 그대로 있다가 머리에 총을 맞으셔도 되고.

아, 그리고 저택 이곳저곳에 술래에게 대항할 수 있는 아이템을 숨겨뒀으니 잘 찾아보세요~]

­ 툭. 끼이이이익!!

“윽!”

마이크 내려놓는 소리 직후 기분 나쁜 노이즈가 날카롭게 울렸다. 그것으로 정말 방송이 끝난 것이다.

은은한 음악이 흐르던 장내는 순식간에 혼란과 웅성거리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뭐, 뭐였지? 이벤트 같은 건가?”

“…회장님이 이런 이벤트를 준비하셨을 리가.”

“그럼 대체….”

유진혁 회장이 준비한 이벤트 따위로 의심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당장 연락해서 알아봐!”

“여, 연락이 안 됩니다! 전파 방해가 있는 것 같은…!”

“뭣.”

연락을 시도하고 있는 저택의 경비들이 있었고.

“아까 그 폭발 소리. 그건 장난이 아닌 것 같던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일단 이사님과 함께 저택에서 빠져나가는 편이 좋지 않을지.”

애쉬와 베일라처럼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사태를 살피는 이들도 있었다.

애쉬는 폭발음과 함께 시작된 방송이 끝나자마자 곧장 유진혁 회장 쪽을 살폈는데, 그쪽의 경호원과 비서들도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이 절대로 주최 측에서 계획한 이벤트 따위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주최 측에서 미리 준비한 일이었다면 저들이 권총까지 뽑아들고 주변을 경계하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유진혁 회장의 표정도 굳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저쪽에서도 예기치 못한 일이 분명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베일라 씨의 말대로 일단 저택 안에서 나가도록 하죠.”

“그래. 최대한 빨리 움직이는 게 좋겠어.”

애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조부인 유진혁 회장의 안색을 살핀 서령이 신경에 날을 세운 채 말했고, 애쉬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난 잠깐 빌헬름을 찾아올 테니까. 먼저….”

“저, 저 여기 있어요!”

분명 근처에 빌헬름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찾아가려던 것이 방금이었는데, 열심히 뛰어왔는지 숨을 작게 헐떡이는 빌헬름이 무릎을 짚고는 외쳤다.

상황이 터지자마자 애쉬에게로 달려온 것이다. 무슨 일이 터졌을 때는 애쉬의 옆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잘 아는 빌헬름의 행동은 무척이나 신속했다.

덕분에 그를 찾는 수고를 던 애쉬가 먼저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마침 잘 왔네. 그럼 나가자.”

“네.”

애쉬가 앞장서고 일행이 뒤따라 움직인다. 연회장 문 쪽으로 움직이는 애쉬 일행을 보고 몇몇 무리들이 함께 움직였지만, 곧 그들은 자신들이 향하던 바깥에서 들려온 비명 소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 으아아악!!

“…….”

끔찍한 것을 본 듯한 남성의 목소리. 슬쩍 서로의 눈치를 본 애쉬와 베일라가 일행을 두고 먼저 움직였다.

“잠깐 안에서 기다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덜컹! 연회장의 문을 부술 듯 박차고 바깥으로 나간다.

분명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경비는 온대간대 없고, 텅 빈 복도는 먼지 구르는 소리 하나하나까지 들려올 정도로 조용했다.

애쉬는 불길할 정도로 적막한 복도를 지나 마침내 저택 건물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곤 헛웃음 치며 저택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허….”

“애쉬 씨, 같이…. 아니, 이, 이게 무슨…….”

그리고 그보다 한 발짝 늦게 저택 밖으로 나온 베일라도 아연실색해서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둘의 귓가에는 몇 시간 전 들었던 빌헬름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맴돌았다.

‘저기 저거 보이세요? 제가 뒷세계의 커뮤니티에서 봤는데 저게 펼쳐지면 어지간한 포탄으로도 뚫기가 힘들대요. 저걸 실제로 볼 수 있을 줄이야….’

‘저게 20미터 이상까지도 솟아오른다는데, 진짜 펼쳐지면 이 저택은 완전 벙커, 요새나 다름없을 거예요. 이 저택을 완전히 둘러싸고 있다면 최소 수억에서 수십억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비들이었던 시체들이 수십 구씩 널려 있는 정원.

하늘을 뒤덮을 듯 솟아오른 격벽들의 조명이 피로 물든 바닥과 시체들, 그리고 그 정면에 선 둘을 비추고 있었다.

“이거 완전히 외통수네.”

애쉬는 바깥을 보고 완전히 굳어버린 베일라의 옆에서 중얼거렸다.

빌헬름은 저것이 20미터 이상까지 솟아오른다고 했던가. 애쉬가 대충 보기에도 그 높이가 20미터를 넘어 30미터에 가까워보였다.

게다가 그 끝부분이 돔처럼 안쪽으로 말려있는 것을 생각하면 실제 길이는 그보다도 길겠지.

손발을 걸칠 곳도 없을 정도로 매끈하고, 아파트 십수 층의 높이는 될 저것을 맨몸으로 탄다?

그것은 아무리 애쉬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외부의 공격에서 저택을 지켜야 할 격벽이 지금은 내부의 인원들을 가두는 덫이 된 것이다.

“으으, 사, 살려줘.”

이건 답이 없다. 막막함에 장벽을 올려다보고 있던 애쉬의 귀에 바닥에 쓰러져 있는 하객 하나가 보였다.

몸에 커다란 상처도 보이지 않지만 엎드린 채 겨우 기어 다니는 남자. 수많은 시체와 피를 보고 정신적 충격을 받아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먼저 이곳을 나가려던 하객처럼 보였는데, 살아있는 사람이라곤 이 남자 외에 보이지 않는 것이 이 남자가 안에서 들었던 비명소리의 주인일 것이 분명했다.

남자를 발견한 애쉬가 그에게서 시선을 슥 돌렸다. 지금 이런 놈들 하나하나까지 신경 쓸 새는 없었다.

“일단 들어가자, 아줌마. 일을 친 놈들이 뭐하는 놈들인지는 몰라도 그놈들이 말한 5분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예.”

베일라가 애써 표정을 정리하곤 대답했다. 경호원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는 침착.

그로서 경호 대상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이었다. 누구라도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것을 드러내선 안 된다.

동요를 감춘 베일라와 애쉬와 급히 저택 안으로 돌아가 바깥에서 본 것들을 일행에게 알렸다.

“그게 올라가 있었다구요?!”

“그래.”

애쉬와 베일라의 설명을 듣던 빌헬름은 곧장 창가로 달려가선 커튼을 들춘 뒤 바깥을 바라봤고, 애쉬와 베일라가 보았던 장벽의 존재를 발견했다.

그리고 곧 돌아와서는 힘없이 얘기했다.

“…망했네요. 저걸 뚫으려면 공업용 플라즈마 절단기로도 몇 시간은 걸릴 텐데.”

아까 뭔가 터질 때 위협을 감지하고 자동으로 올라간 건가?

빌헬름이 뒤늦게 격벽이 올라간 이유를 유추해봤지만, 이미 갇혀버린 상태에서 그런 건 의미가 없었다.

“아무래도 저걸 못 내리면 나가지도 못할 것 같은데, 아가씨는 뭔가 아는 거 없어?”

“…저도 이 저택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건 발견하기 쉬우니 경찰도 금방 출동하지 않을까요?”

무려 수십 미터나 되는 게 갑자기 솟아오른 것이다. 바깥에서 보지 못할 리가 없었고, 뭔가 이상을 감지한다면 공권력도 금방 움직일 터였다.

1구역 내에서도 이곳의 보안은 더욱 철저했으니까.

격벽 외부를 공권력이 둘러싼다면 이곳을 공격한 테러리스트들도 함부로 날뛰지 못하지 않을까.

그런 서령의 추측에 에아임이 동의했다.

“아가씨의 말씀이 맞습니다. 여긴 회장님께서 머무는 자택이니 분명…!”

“그, 그럼 저 망할 장벽을 내릴 방법이 없다는 겁니까!?”

에아임의 말이 모두 끝나기도 전, 한 남자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렸다.

남자는 유장혁 부회장과 얘기하고 있었는데, 주변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렸음에도 계속해서 언성을 높이며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그럼 어, 어떡하란 겁니까! 놈들이 말한 5분이 가까워지고 있다고요!!”

“진정하시죠. 이런 행동은 혼란만 더 부추길 뿐입니다. 지금 이곳에는 아직 수십 이상의 정예 경호원들이 있으니….”

“바깥의 시체들은 부회장님도 보지 않았습니까! 그걸 보고 어떻게 진정을 하란……!”

“조용히 하게.”

분노와 당황, 공포에 젖어 소리치던 남자의 목소리를 낮게 깔리는 남성의 목소리가 짓눌러 가라앉혔다.

애쉬도 단숨에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 수 있었다. 유진혁 회장. 바로 그의 목소리다.

중간에 자신의 말을 끊고 들어온 유진혁 회장의 존재에 성내던 남자도 한 풀 꺾여서는 목소리를 낮췄다.

“회, 회장님….”

“전부터 말하지 않았나, 헤이튼 부사장. 자네는 너무 가벼워서 탈이야.”

“하지만 지금은 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누구 마음대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단정 짓는 겐가.”

“회, 회장님께서는 방법이 있으신 겁니까?”

유진혁 회장의 말에 남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수십 년 동안 유성 그룹을 이끌어온 거인이자 이 저택의 주인인 유진혁 회장. 그라면 분명 무슨 방법이 있을 것이다.

경호원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하나같이 연회장에 입장하며 무기를 반납한 상태.

이런 상태에서 무장한 적을 만나기라도 한다면 일방적으로 학살당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유진혁 회장이라면.

그라면 다를 것이다.

이곳에 자리한 모든 이들이 유진혁 회장과 남자의 짧은 문답을 들었고, 공통적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단숨에 하객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 그래. 회장님께서 계시니까.”

“회장님의 경호원들도 있으니….”

바깥의 장벽과 시체들을 보고 절망하기도 잠시. 유진혁 회장과 헤이튼 부사장의 대화를 듣게 된 이곳저곳에서 희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애쉬는 그런 반응들을 보고 조소했다.

‘아주 대단들하시구만.’

공부깨나 한 놈들도 결국 이런 상황에 오면 간단히 흔들려버리고 만다.

그러니까 평소라면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들도 무의식중에 무시하고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그저 안도감을 얻기 위해서.

유진혁 회장은 아직 방법이 있다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객들은 멋대로 상상하고, 또 멋대로 결론내리고 있다.

어쩌면 유장혁 부회장에게 따지던 저 남자도 유진혁 회장의 수족 중 하나일 수 있겠지.

의도적으로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라면 역시나 대단한 수완가라고 할 만 했다.

“정말 회장님은 뭔가 방법이 있는 걸까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서령이 다른 하객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 낮춰 물었다. 그에 애쉬는 가볍게 대답했다.

“있겠어?”

지금은 그저 장내의 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런 분위기만 형성한 것이다. 만약 뭔가 방법이 있었다면 진작 썼겠지.

“그래도 저쪽에 합류하는 게 좋아 보입니다. 일단은 무장하고 있으니까요.”

“저도 동감입니다. 숨바꼭질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흩어지는 것보다는 모이는 게 나을 겁니다.”

에아임과 베일라가 말했다.

이곳에 들어오며 무기를 반납한 여타 경호원들과 달리 유진혁 회장의 경호원들은 권총 따위의 가벼운 무장이나마 갖추고 있었다.

소총 같은 화기는 없었지만 아무런 무기도 없는 것보다야 수십, 수백 배는 낫다.

유진혁 회장의 경호원들이 들고 있는 권총을 본 애쉬가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내 검은 어디 간 거야.”

“그건 저택 어딘가에서 따로 보관하고 있을 텐데….”

그게 어디인지까지는 서령도 알 방법이 없다. 발로 뛰어 찾는 수밖에.

그렇게 장내의 분위기가 대충 정리되어가는 듯하자 스피커에서 예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아아. 그럼 미리 말했던 5분이 지났으니 술래를 투입하겠습니다. 열심히들 살아남아보십쇼~]

여전히 장난스러운 목소리.

그러나 놈들이 하는 짓거리만큼은 장난 수준이 아니었다.

애쉬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그런데 대체 뭘 원하는 거지?’

이곳을 공격하는 건 무엇을 원하든 간에 엄청난 리스크가 동반되는 행위. 하지만 테러범 측에서의 요구사항 따위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경쟁자들 중 하나인 유선혁 사장과 유상혁 부사장 쪽의 동맹을 의심했지만, 그들 또한 지금 잔뜩 겁을 먹은 채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을 보아 내부의 배신자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워 보이고….

“하객 분들께서는 모두 이쪽으로 와주십시오!”

“저희도 저쪽으로 가요.”

“예.”

유진혁 회장 측의 인물이 하객들을 모으기 위해 소리치는 가운데, 서령을 따라 움직이며 유선혁 사장과 유상혁 부사장 쪽을 바라보던 애쉬는 그쪽에서 무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놈…, 없어졌군.’

조인 디아벨.

이전에 유흥 시설에서 만났으며, 다시 만난 오늘은 이상한 말을 던져대던 남자가 보이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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