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10화 (110/230)

〈 110화 〉 5. 후계경쟁(34)

* * *

“어떤가요?”

“틀렸어요. 멀쩡한 회선이 없네요.”

서령의 물음에 빌헬름이 고개를 저었다.

애쉬와 서령, 빌헬름을 비롯한 일행들은 유진혁 회장이 이끄는 하객 무리를 뒤따르며 저택 내의 시스템을 연결하는 회선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당장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꽉 막힌 상태였다.

“그럼 당장은 방법이 없는 건가요?”

“네. 이렇게 아무 회선이나 통해서는 뭘 할 수가 없어요. 적어도 이 저택 내에 있는 시스템 관리실 정도에는 가야죠. 누구 솜씨인진 모르겠는데 아주 꼼꼼하게 잘 막아놨네요.”

“…전파 방해는 물론이고, 저택 내의 모든 시스템까지 장악해 놓다니. 굉장히 치밀하군요.”

“그야 뭐, 무려 유진혁 회장님의 저택에서 열리는 축하연을 테러할 정도의 놈들인데, 이 정도가 아니면 시도 자체가 불가능했겠죠.”

에아임의 말에 빌헬름이 대답했다.

저택 내의 보안 시스템이 무력화 된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회선이 꽉 틀어 막힌 것까지. 모두 동업자의 손길이 느껴진다.

유성 그룹에서 최우선으로 관리하는 이곳의 보안을 뚫은 것으로 보아 보통이 아닌 것 같았다. 만약 혼자서 이 모든 것을 해냈다면 빌헬름, 자신과도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

팀으로 움직였다고 해도 이 정도 솜씨와 신속함을 봤을 때 어지간한 수준의 해커들이 모였을 터다.

그런 것을 감안했을 때, 그, 혹은 그들이 한 것은 저택의 보안 시스템을 뚫고 회로를 장악한 게 전부가 아니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어쩌면 외부의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겠어요.”

방호 시스템 점검 따위의 이유를 들어 시 정부에 신고하고, 일을 벌이고 있을 가능성이 굉장히 컸다. 아니, 만약 이 계획을 짠 것이 빌헬름 자신이었다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공권력이 재빨리 나서서 저 격벽을 뚫고 구하러 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 빌헬름의 설명을 들은 일행의 표정이 한층 더 심각해졌다.

사실상 도망 다니며 시간을 끈다는 선택지가 사라진 샘이니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 술래인지 뭔지를 때려잡고 이 일을 꾸민 놈들까지 안에서 직접 처리하는 것 밖에 없다.

하지만 어떻게?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경호원들은 연회장에 입장하기 위해 모든 무기를 반납했고, 유진혁 회장의 경호원들이 무장하고 있다곤 하지만 권총 정도에 불과했다.

이쪽은 맨몸이나 다름없는데 완전무장 했을 적과 어떻게 싸우란 말인가.

서령과 에아임은 뭔가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지만, 반대로 베일라와 빌헬름은 여전히 조용한 애쉬를 향해 시선을 향했다.

연회장을 나올 때부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조용히 따라오던 그.

다른 둘은 전투가 일어나면 무조건적인 패배만을 예측하는 것 같았지만, 빌헬름과 베일라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오래 전부터 애쉬를 알아왔으며 몇 번이나 함께 일을 했던 빌헬름은 물론이고, 베일라 또한 일전에 애쉬가 제대로 움직이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라면 분명 비무장 상태에서도 훌륭한 활약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었다.

베일라가 입을 열어 여전히 생각에 빠져있던 그에게 물었다.

“애쉬 씨. 혹시 무슨 일이 터진다면 전투가 가능하겠습니까?”

“…응? 아, 물론. 무기가 없다고 못 싸우는 건 아니니까.”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예 듣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닌 듯 애쉬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당연히 무기가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애초에 지근거리에서 쏘아진 탄환을 반응해서 피할 수 있는 그다. 적이 제대로 된 탄막을 형성할 수 있는 중대 규모 미만이라면 얼마든지 접근해 무기를 빼앗고 싸울 수 있었다.

“그건 다행이군요.”

애쉬의 대답에 베일라가 한시름 덜었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보았던 애쉬라면 분명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 본인의 뜻이 따라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그런데 아까부터 뭘 그렇게 생각하고 계세요?”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지금 애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 있을 전투에 관한 고민 따위가 아니었다.

연회장에서 자신이 보았던 것들,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 사라진 조인 디아벨과 몇몇 인물들.

그리고 연회장에 있을 때부터 무언가 일어날 것을 알고 있던 것처럼 불안감을 표출하던 유선혁 사장과 유상혁 부사장 측.

그러나 일이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면 분명 자신들이 꾸민 일일 텐데 그들이 불안감을 보이고 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혹시나 걸릴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에 의한 것이라기엔 그 정도가 너무 과하다.

애쉬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테러리스트들과 관계가 있는 게 거의 확실시 되는 만큼 일행들에게는 미리 말해둬야 했다.

“이따가 술래인지 뭔지 하는 것들이 나타나면 저놈들이 슬쩍 빠져나갈 수도 있을 거야. 한번 뒤를 밟아봐.”

애쉬가 200에 가까운 하객 무리 가운데서 몸을 사리고 있는 유선혁, 유상혁 형제를 슬쩍 가리키며 말했다.

“유선혁 사장과 유상혁 부사장 말인가요? 설마 저 둘이….”

“그래.”

서령의 물음에 애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놈들이 테러리스트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 놈들은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캐내는 것은 이번 일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애쉬와 일행들이 유선혁 사장과 유상혁 부사장 쪽을 경계할 때였다.

잠시 탐색을 위해 무리와 떨어져있던 경호원의 중 일부가 다시 돌아왔다. 손에는 무언가를 든 채로.

“부회장님, 저기 방에서 이런 걸 발견했습니다.”

“이건.”

자신에게 보고하러 온 경호원의 손에 들린 물건을 확인한 유장혁 부회장이 그 중 하나를 넘겨받았다.

매끈한 회색빛 몸체와 주문자의 손아귀에 딱 맞도록 맞춤 제작된 손잡이.

피로 보이는 붉은 액체가 묻은 그것을 거꾸로 뒤집어보니 손잡이 밑의 탄창에는 주인의 이름으로 보이는 글씨가 새겨져있다.

‘일락 포사트’

그것은 누군가의, 아마도 이곳 저택을 지키는 경비원의 것일 피가 묻어있는 권총이었다.

“…권총의 주인은 나중에 확인하고 변고가 있다면 유품으로 가족에게 돌려보내도록.”

“예.”

유장혁 부회장은 회빛 몸체에 묻어있는 피와 탄창 밑에 새겨진 이름을 확인하곤 그것을 찾아온 경호원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경호원이 찾아온 무기는 누군가의 이름이 새겨진 권총 하나 뿐이 아니라 몇 정이 더 있었으나, 유장혁 부회장은 그 중하나도 자신이 갖지 않고 모두 경호원들에게 분배했다.

그 자신이 갖고 있으면 약간의 심리적 안정감을 받을 수야 있겠지만, 전투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은 민간인이 이런 권총을 쥐는 것으로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웃기지도 않는 짓을.”

유장혁 부회장은 자신의 옆에 유진혁 회장이 있다는 것도 잊고 낮은 목소리로 분노를 표출했다.

연회장에서 방송이 나올 때의 상황을 떠올리자 이것이 왜 구석진 방에서 나왔는지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방송을 종료하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분명 이런 내용이었지.

‘저택 이곳저곳에 술래에게 대항할 수 있는 아이템을 숨겨뒀으니 잘 찾아보세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지껄이던 아이템이란 게 이런 것이었나.

이곳에서 순직한 경비들과 연회장에 들어선 경호원들이 반납한 무기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유진혁 회장은 드물게도 감정을 드러내는 자신의 아들, 유장혁 부회장을 바라보다 그를 대신해 대기 중인 경호원과 비서들에게 명령했다.

“일단은 하객들과 같이 움직이면서 주변 방을 탐색해 보거라.”

“예.”

“알겠습니다.”

다시 일부의 경호원과 비서들이 움직였고, 테러리스트들이 일부러 여유를 주는 것인지 서른 정도 되는 숫자의 경호원들이 가벼운 무장을 갖추기 전까지 술래라는 이들과 만나는 일은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글쎄. 놈들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는데.”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영문을 알 수가 없다는 듯한 서령의 말에 애쉬가 가볍게 대답했다. 여기에 유진혁 회장과 유성 그룹의 중역들을 모조리 가둔 것까진 알겠는데,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이 정도 이름값이 있는 인물들을 가둬놓고는 요구사항도 없고, 숨바꼭질이나 하자는 말로는 그들의 목적도, 정체도 유추해볼 방법이 없었다.

대체 놈들은 무엇이 하고 싶은 것일까.

“차라리 뭐라도 좀 터졌으면 좋겠는데.”

“불길하게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겠고, 알 수도 없는 상황에 답답해진 애쉬가 괜히 중얼거렸고, 빌헬름이 그런 애쉬를 타박했다.

하지만 그런 애쉬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일까.

저택 곳곳에 달린 스피커들을 통해 예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오, 생존자들 주변에 술래가 도착했는데 아주 많이도 몰려다니시는군요! 이런 건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혼란을 좀 주도록 하겠습니다!]

“뭐?”

[자, 누가 좋을까. 우리 유성 그룹의 리더인 유진혁 회장님? 아니, 아니지. 처음부터 머리를 잘라버리면 재미가 없으니까…. 으음…….]

“지금 장난이라도 치자는 거냐!!”

“이딴 짓거리나 하려고…!!”

갑자기 들려온 스피커 속 목소리에 하객들 중 일부가 분에 차서 외쳤지만, 스피커 속의 목소리는 아랑곳 않고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가볍게 침음을 흘렸다.

[아, 정했다.]

그러다 고민을 끝낸 듯 산뜻한 목소리로 말했고,

[그럼 안녕히 가세요~]

­ 촤아악!!

산산히 부서진 유리창이 흩뿌려지는 소리와 함께 픽, 한 명의 하객이 머리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뭐, 뭐야…!”

“무슨…!!”

하객 무리 중심에서부터 시작되는 술렁임.

무리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위치한 서령 일행은 그 술렁임이 어느 정도 퍼진 다음에야 그 중심에서 쓰러진 인물이 누구인지 발견할 수 있었다.

“흣!”

뒤늦게 바닥에 쓰러져 피 흘리고 있는 인물을 발견한 서령이 충격에 빠져 입을 가렸다.

“……!!”

베일라가 경악에 입을 열지 못했고, 그런 그녀에 뒤이어 목소리에 힘이 빠진 에아임이 그 인물을 불렀다.

“부. 부회장님…….”

유장혁 부회장.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하객들을 이끌던 그가 저격에 당한 것이다.

일행 모두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누군가 하객들 전체가 들을 수 있도록 외쳤다.

“부회장님이 저격에 당하셨다!!!”

*

[자자, 다들 지금부터 흩어지지 않으면 머리통을 날려드리겠습니다~ 흐하하핫!]

“미, 미친! 숨어!!”

“대체 어디서 날아온 거지?!”

“지, 진정하십시오!! 흩어지는 건 오히려 저들이 바라는……!!”

부회장이 저격에 당했다는 게 알려짐과 동시에 안정된 듯 했던 하객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전했다.

하객들을 통제하려는 경호원들의 노력과 상관없이 창이 없는 방으로 숨거나 복도를 달려 도망친다.

하객들 모두를 뭉치게 하려던 유진혁 회장의 수가 계획이 총탄 한 발에 산산조각 난 것이다.

연회장에서의 혼란이 농담이었다는 듯 흩어지는 하객들에게는 더 이상 경호원의 통제도, 유진혁 회장의 목소리도 먹히지 않을 것이었다.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광경을 바라보던 애쉬가 중얼거렸다.

“제대로 당했네.”

차라리 침착하게 뭉쳐서 저격을 당하기 어려운 위치로 향했다면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흩어지는 건 어딘가에 있을 ‘술래’만이 웃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제 하객들이 너무 크게 뭉쳐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던 그들이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하겠지.

아직 나름의 침착함을 갖고 유진혁 회장 근처에 모여 있는 이들도 있긴 했으나 그야말로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애쉬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유진혁 회장을 바라보다 그에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있는 유선혁, 유상혁 형제를 발견하곤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애, 애쉬 씨. 어디가세요?!”

“저기 저 새끼들을 족쳐봐야지.”

애쉬가 대뜸 움직이자 놀란 빌헬름의 질문에 그가 대답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저놈들이 혼란을 틈타 어딘가로 빠져나가기 전에 붙잡아서 정보를 얻어야했다.

그 과정이 좀 거칠어도 어쩔 수 없다. 아마 약간의 폭력 정도는 옆의 유진혁 회장도 용납하지 않을까.

유진혁 회장과 재수없는 형제를 향해 몇 걸음 옮긴 애쉬가 말했다.

“너희도 따라와. 내 근처에서 멀어지지 말고.”

“예, 예. 알겠습니다.”

“…이사님.”

“아, 아버지, 부회장님이….”

에아임과 베일라가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서령을 챙기고 뒤따랐다.

재수 없는 형제를 향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는 애쉬.

덩달아 유진혁 회장에게도 가까워졌기에 경호원들이 그를 막아섰으나 애쉬는 그들을 가볍게 뚫고 지나갔다.

“잠깐…!”

“멈추십시…옷!”

“비켜.”

힘으로 막으려다 단숨에 몸이 젖혀지는 경호원들. 그들은 애쉬의 무지막지한 힘에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밀려났다.

이윽고 애쉬는 유진혁 회장을 지나쳐 자신들의 주적이었던 유선혁 사장과 그의 동생, 유상혁 부사장의 앞에 도착했고, 경호원들을 뚫고 자신의 앞에 도착한 애쉬를 멍하니 올려보던 유선혁 사장은 단숨에 멱살이 잡혀 공중으로 떠올랐다.

“넌 뭐, 뭐야!”

애쉬는 당황한 채 멱살을 잡고 있는 자신의 손에 매달린 유선혁 사장의 재수 없는 얼굴을 보며 그를 낮게 위협했다.

“닥치고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사실대로 부는 게 좋을 거다. 안경잡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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