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11화 (111/230)

〈 111화 〉 5. 후계경쟁(35)

* * *

“유선혁 사장님!”

유선혁의 근처에 있던 경호원과 비서들이 그를 떼어놓기 위해 움직였지만, 애쉬는 그런 이들을 장난감 다루듯 가볍게 받아내며 유선혁을 놓아주지 않았다.

“당장 그 손 놔!”

결국 참지 못한 경호원들이 권총을 뽑아들었을 때, 걸음이 빠른 애쉬보다 한 발짝 늦게 도착한 일행이 그를 만류했다.

“애쉬 씨, 일단 내려놓고 얘기해요, 우리.”

“예,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건 없는 만큼….”

빌헬름과 베일라가 돌발행동을 보인 애쉬를 진정시켰고, 애쉬는 못이기는 척 멱살을 잡아들어 올렸던 유선혁을 내려놓았다.

애초에 그도 처음부터 유선혁을 후드려 팬다거나 폭력을 가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좀 더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겁만 주려던 것.

여전히 그의 살기는 유효했는지, 멱살이 놓인 유선혁은 그대로 털썩 주저앉은 채 일어나지 못했다. 이제 한동안은 그와 제대로 눈도 맞추지 못할 것이다.

애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유선혁에게서 한 발짝 물러섰고, 물러난 그와 유선혁 사이를 경호원들이 메웠다.

그렇게 상황이 일차적으로 정리가 되자 애쉬는 제자리에서 유진혁 회장을 돌아봤다. 그리고 여전히 굳은 표정의 그에게 물었다.

“영감도 알고 있지? 저 놈이 이번 일을 벌인 테러리스트들이랑 연관돼 있다는 걸.”

“회, 회장님한테 영감?”

“무례한…!”

애쉬의 불손한 말투에 유진혁 회장 주변인들이 오히려 더 역정을 냈다. 정작 그렇게 불린 본인은 아무런 말도 않는데도.

주변인들의 반응을 무시한 애쉬는 대답을 기다리며 유진혁 회장을 바라보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 영감.’

차갑다.

정말로 얼음장같이, 눈을 마주하는 사람까지도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웠다.

방금 자신의 눈앞에서 아들이 죽었는데도 저 눈동자에는 한 치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지금 자신과 마주한 애쉬를 천천히 살피고 있을 뿐.

방금 전 죽은 유장혁 부회장과 만났을 때도 차갑다는 느낌은 있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범주 내에서 느껴진 감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노인의 눈을 보라. 마치 감정을 절제한 기계 같은 느낌만이 가득하지 않은가.

“…….”

자신에게 물어오는 애쉬를 물그러미 바라보던 유진혁 회장은 곧 몸을 돌려 등을 보였다. 그리고 먼저 움직이며 말했다.

“일단 자리를 바꾸도록 하지. 여긴 얘기를 할 곳이 못되는 듯하니.”

여전히 혼란에 빠진 하객들의 목소리와 움직임으로 소란스러운 복도.

유장혁 부회장의 사체를 수습한 경호원들과 비서들, 그리고 자리에 남아있던 몇몇 하객들이 유진혁 회장의 등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그렇게 따라 걷길 몇 분. 그들 무리는 곧 서재로 보이는 어느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서재에 도착한 애쉬의 바로 앞에서 에아임이 서령의 안부를 물었고, 서령이 대답했다.

서령도 이곳까지 오며 좀 진정된 것인지 목소리에서 떨림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 충격의 영향이 남은 것인지 여전히 분위기는 어두운 편이었다.

하기야, 아무리 거리감이 있다고는 해도 자신의 아버지가 죽은 것이다. 사람이라면 이쪽이 정상이고, 유진혁 회장 쪽이 비정상적인 것이겠지.

“괜찮아졌으면 아가씨가 저 영감한테 말 좀 해봐. 저기 저 두 놈을 조져야 한다고.”

마침 목적했던 곳에 도착하기도 했고, 서령도 어느 정도 정신을 수습한 것 같으니 이제 다시 여기에 집중할 때다.

외부 고용 인력에 불과한 애쉬가 말해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여기선 서령이 나셔야했다.

그런 애쉬의 말에 서령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아버지의 죽음도 죽음이지만 지금은 이 상황을 타파하는 것이 우선.

가뜩이나 지금은 하객들이 모두 흩어져서 전력이 분산된 상황이었다. 그녀 자신까지 짐이 될 수는 없다.

한 번 정신을 다잡은 서령은 스스로도 놀랄 만큼 이성적으로 사고했다. 과거의 습격 당시, 그녀 자신의 손으로 타인의 목숨을 빼앗은 뒤로부터는 항상 이런 느낌이었다.

어떤 일에서 커다란 감정의 변화를 겪어도 한 차례 수습하기만 하면 거기에 어떤 영향도 받지 않고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다.

불과 최근 몇 개월 안에 생긴 변화.

기업가로서는 무척이나 좋은 일이었지만, 서령은 그런 변화가 무작정 마음에 들지만은 않았다.

점점 유진혁 회장, 자신의 아들이 눈앞에서 죽었음에도 감정 한 톨 내비치지 않는 이와 닮아가는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하던 서령은 애쉬와 에아임을 대동한 채 유진혁 회장에게 다가갔다.

“지금 당장은 격벽을 내릴 방법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네. 일을 꾸민 자들도 최소한 며칠 이상 준비를 했을 텐데, 우리가 단숨에 뚫어버리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나.”

“…최대한 빨리 해결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래.”

유진혁 회장은 자신의 비서와 대화중이었는데, 그 내용을 들어보니 저 격벽을 내릴 방법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이쪽도 빌헬름처럼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였고.

그 내용을 듣고 있던 서령이 유진혁 회장을 불렀다.

“회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 유서령 이사님께서 오셨군요. 그럼 저희는 다시 수색에 참여해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게.”

미리 언질이 있었는지 서령이 오자 곧장 자리를 비워주는 비서들.

경호원들은 다른 하객들과 서재의 입구를 지키고 있고, 다른 비서들도 자리를 비웠다.

이제 이 자리에 남은 것은 서령과 애쉬, 에아임, 그리고 유진혁 회장과 그의 수석 비서뿐이었다.

이제 말해보라는 듯 서령을 바라보는 유진혁 회장. 서령은 그런 그의 눈길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유선혁 사장과 유상혁 부사장이 이번 테러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둘이 이번 테러와 관련이 있다?”

“네. 연회장에 있을 때부터 그 둘은 뭔가 알고 있다는 듯이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또, 제 경호원에게 듣길 저들의 경호원 중 일부가 자리에서 사라졌구요. 이 테러를 계획한 이들이 저들이든 아니든 최소한의 상관관계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증은 없지만 정황상 증거라는 게 있다. 저들은 충분히 의심해 볼만하다. 그런 서령의 말을 유진혁 회장이 긍정했다.

“그래. 그 둘이 불안해하는 모습은 나도 봤다. 이상해보이긴 하더구나.”

“네. 그러니 저들의 입을 한번 열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그래야겠지.”

유선혁 회장, 그 자신의 말대로 그 또한 유선혁, 유상혁 형제에게서 이상점을 발견했다면 분명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얘기가 빠르게 끝나려던 찰나, 심문을 허락한 유진혁 회장이 말했다.

“그럼 네가 해보거라.”

“네. 저희 쪽에서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아니, 네가 직접 심문해보라는 얘기다.”

“…네?”

너희 쪽 인물이 아니라 유서령이라는 개인. 유진혁 회장은 서령을 정확히 지목하며 말했고, 서령은 그런 그의 목소리에 한 순간 굳어버리고 말았다.

자신이 직접 심문해보라고?

잘못 들은 것인가 싶어 다시 유진혁 회장을 돌아봤지만,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듯 유진혁 회장의 입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서령에게 제 형제의 심문을 맡긴 것이다.

‘어째서?’

왜 자신만을 지목해서 저런 말을 하는 거지? 그런 의문을 갖고 유진혁 회장과 잠시 마주보던 서령은 그 눈을 들여다 본 순간 깨닫고 말았다.

차가운 눈동자가 어찌 하는지 지켜보겠다는 듯 그녀를 향하고 있다.

이것은 유진혁 회장이 서령에게 주는 일종의 시험인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서령은 가슴 속에서부터 머리끝까지 무언가 치밀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등을 돌렸다.

그와 더 마주하고 있으면 순식간에 차오른 분노와 욕지기를 참지 못할 것 같았기에.

‘이런 상황에서마저 당신은.’

제 아들이 죽고, 그룹을 유지하는 중역들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이 상황까지도 후계경쟁의 일부로서 사용하려는 유진혁 회장을 과연 그녀와 같은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돌아선 서령은 몸이 덜덜 떨릴 정도의 분노를 참으며 모든 감정을 가슴 속에 우겨넣고 말했다.

“그럼 원하시는 대로.”

제가 심문하겠습니다.

*

심문의 준비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그저 서재 안쪽의 개인실에 유선혁, 유상혁 형제를 끌고 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

다소의 저항이 있긴 했지만, 무기도 없는 일반 경호원들의 저항을 뚫는 것은 애쉬에겐 아이의 손목을 비트는 것보다도 간단했다.

“머, 멈춰!!”

“컥!”

단숨에 나가떨어지는 개인 경호원들. 그들의 뒤에 숨어있던 두 형제는 서재 안쪽의 개인실까지 애쉬에게 잡힌 채 질질 끌려갔다.

“놔! 대체 뭘 하려는 거야!”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 테니…!”

자신들도 찔리는 게 있었는지 발악하거나 돈 따위로 회유해보려는 두 형제였지만 애쉬는 그들의 말을 무시한 채 개인실 안쪽으로 던져 넣었다.

그리고 철컥. 문이 닫히며 개인실은 바깥의 소란과 완전히 동떨어진 적막에 휩싸였다.

그런 분위기도 잠시.

“회장님….”

“너, 유서령!”

애쉬에게 던져져 바닥을 구른 뒤 정신을 차린 두 형제의 목소리에 침묵이 깨졌다.

둘은 차마 유진혁 회장에게는 함부로 말하지 못하겠는지, 만만한 서령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이게 무슨 짓이야! 이런 상황이라고 네가 뭐라도 된 줄 알아?! 이 버릇없는 년…!”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는 유상혁 부사장.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게 좋을 거다. 이곳에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떨고 있으면서도 침착한 척 허세 부리며 협박하는 유선혁 사장.

그런 비루한 꼴로 욕하고 위협해봤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서령은 그런 그들의 추한 꼴을 무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어 물었다.

“이번 일에 대해 아는 게 있으면 전부 말 해주세요.”

평소와 마찬가지로 조곤조곤한 목소리. 하지만 그 밑에는 억지로 우겨 넣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깔려있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유선혁, 유상혁 형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서령의 목소리에 그나마 있던 불안감마저 가셨는지 오히려 더욱 기세등등해져서 떠들었다.

“정당한 경쟁으로는 안 될 것 같으니 여기서 무슨 수작이라도 부리려는 모양인데, 회장님께서 보고 계시다는 걸 잊지 마라, 유서령.”

“멍청한 년. 여기에 가두기라도 하면 우리가 겁이라도 먹을 줄 알아? 불쌍해서 놔뒀더니…….”

계속해서 주제도 모르고 떠들어대는 둘.

서령은 여전히 입을 다문 채 그들을 바라봤다.

어릴 적부터 항상 두려워하며, 또 자신의 윗사람으로 우러러보기만 했던 이들의 실체는 결국 이 정도였다.

애초에 유진혁 회장이 이곳에 같이 있다는 것이 뭘 뜻하는지, 그런 간단한 것조차 왜 생각하지 못하는 거지?

상황 파악도 느리고, 판단력도 떨어진다.

이런 인간들이 뭐라고 과거의 그녀는 그토록 무서워했을까.

계속해서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마구잡이로 쏟아내자 슬슬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애쉬가 입을 닫게 하려 할 때였다.

서령이 항상 들고 다니던 핸드백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그러니까 당장…?”

“…….”

제법 사용했지만 잘 관리되어 광택이 흐르는 하얀 몸체의 물건이 나오자 두 형제가 순식간에 입을 다물었다.

애쉬도 그것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저건 또 어떻게.’

애쉬, 베일라와 함께 사격장 근처 건샵에서 구매했던 것. 서령이 핸드백에서 꺼낸 물건은 바로 권총이었다.

연회장에 입장할 때 분명 스캐너를 통과해야 했을 텐데, 서령은 핸드백에 넣어둔 채 들키지 않은 것이다.

“이사님이….”

애쉬는 서령이 꺼내든 권총을 보고 놀랐지만, 다른 일행들은 권총을 꺼내든 것이 다름 아닌 그녀라는 사실에 놀랐다.

평소 서령과 함께하며 그녀의 성격을 알 만큼 알아온 그들이 아니던가.

평소의 그녀라면 권총을 뽑아들어 누군가를 위협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그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너 그게 무슨….”

“미, 미친 거야?!”

그리고 또 다른 한 쪽, 그녀의 앞에서 실컷 입을 놀리던 유선혁과 유상혁 형제는 서령 일행보다도 더욱 크게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차가운 눈으로 권총을 뽑아든 서령은 경악한 둘을 향해 그것을 겨누며 다시 한번 말했다.

“이번 일에 대해 아는 게 있으면 전부 말 하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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