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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13화 (113/230)

〈 113화 〉 5. 후계경쟁(37)

* * *

애쉬는 테러리스트 측에서 모습을 드러낸 조인 디아벨을 확인했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연회장에 들어섰을 무렵에는 모르고 있었지만, 사건이 터진 직후부터 대충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역시 너도 이쪽이었구만.”

“그래. 안타깝게도 이런 일이나 벌이는 쪽에 속해있지.”

애쉬가 가면을 벗은 조인 디아벨에게 툭 던지듯 말했고, 조인 디아벨은 그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쉬가 예상하고 있던 것은 놀라울 것도 없었다. 그가 준 힌트가 한 둘이 아니었고, 특히나 사건 직전에 건넸던 말은 자신이 이번 일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대놓고 밝힌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아니, 친구라니! 이봐, 여기 아는 사람이 있었어?”

“전에 말하지 않았었나. 재밌는 친구를 봤다고. 그런데 그 친구를 다시 보게 된 곳이 운 없게도 이곳이 됐군.”

“아, 그 스카웃할까 했다던?”

“그래.”

애쉬를 앞에 두고 악마 가면과 조인 디아벨이 짧은 대화를 나눴다.

상황이 너무도 유리하기 때문일까. 일단은 적으로 분류된 애쉬를 앞에 두고도 긴장감 하나 보이지 않는 모습.

그에 수십의 무장병력에게 둘러싸인 애쉬도 평온한 기색으로 일상적인 대화를 하듯 끼어들었다.

“거기 그놈이 나한테 맞고 뻗었던 것도 얘기했나?”

“맞고 뻗었어?”

“허.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출력을 제한해서….”

“나도 그때 힘 조절 했는데.”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대화. 연회장에서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 중 일부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그런 얘기들을 처음 듣는 악마 가면은 어쩐지, 하고 납득했다는 듯 떠들었다.

“갚을 빚이라는 게 한 대 얻어맞은 빚을 얘기하는 거였다니. 열 받아서 여기까지 올만도 해. 그런 이유라면 당연히 내가 자리를 비켜줘야지.”

“허허.”

조인 디아벨은 명백히 자신을 놀려먹는 애쉬와 악마 가면의 목소리에 대꾸할 힘도 잃었는지 그저 허허로운 웃음만 흘렸다.

그렇게 장난스런 분위기로 흘러가던 것도 잠시.

악마 가면의 말 한 마디에 다시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럼 여기는 네가 맡는 걸로 하고, 나는 3구역으로 가면 돼?”

“그쪽은 거의 끝내놓고 와서 할 게 없을 테니 여기서 심판이나 봐주지.”

“심판?”

“그래. 마침 저쪽도 맨손이니 종목과 규칙은 그때와 똑같이.”

“…설마 지금 파이트 클럽에서 경기했던 그대로 놀아보자고?”

마지막에 끼어든 애쉬가 자신이 잘못들은 게 아니냐는 듯 조인 디아벨에게 물었지만, 조인 디아벨은 맞게 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도 설욕의 기회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다만 이번에는 다운, 그로기가 아니라 상대방의 죽음이 목표일 뿐이지.”

“재밌겠네, 좋아. 내가 저쪽에서 끼어들지 못하게 해줄게.”

조인 디아벨의 말을 들은 악마 가면이 신이 나서는 서령과 유진혁 회장 등이 숨어있는 개인실 쪽을 지칭하며 말했다.

제 동료가 질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져도 상관없다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태도였지만, 확실한 것은 저쪽도 조인 디아벨 못지않은 이상한 놈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유리한 점을 모두 포기하고 1:1로 한판 붙어보겠다는 조인 디아벨의 말에 애쉬가 헛웃음을 흘렸다.

“하, 이 상황에서 진짜 나랑 맨몸으로 한판 해보겠다는 거지.”

“그래. 그쪽도 준비하지, 나중 가서 핑계는 받지 않을 테니.”

조인 디아벨 자신의 입으로 말했듯 목숨을 걸고 싸우는 판에 나중이 어디 있단 말인가.

농담하듯 후에 핑계는 받지 않겠다 얘기한 조인 디아벨이었지만, 그의 눈은 어디까지나 진심으로 가득했다.

그런 조인 디아벨의 눈빛을 읽은 애쉬가 말했다.

“뭐, 그렇다면 나야 나쁠 건 없지.”

여럿이서 한번에 덤비는 걸 상정하고 나오긴 했으나 이렇게 상대방 측에서 먼저 1:1로 붙어주겠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제대로 싸우는 솜씨는 보지 못했으나 몸을 다루는 실력만 봐도 심상치 않았던 조인 디아벨이다.

그런 실력자를 먼저 하나 제거하고 시작하는 건 애쉬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앞으로의 전투가 조금이나마 덜 귀찮아질 테니까.

애쉬의 입에서 동의하는 말이 나오자 조인 디아벨은 본인이 갖고 있던 무장을 풀어헤쳤다.

품속에 넣고 있던 권총과 단검, 그리고 들고 있던 소총을 내려놓은 것은 물론이고, 입고 있던 재킷에도 뭔가 있는지 툭 내려놓았음에도 무게감 있는 소리가 울린다.

“넌 진짜 아무 무기도 없어?”

애쉬는 그냥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런 그를 보며 악마 가면이 물어왔다.

애쉬는 어쩐지 띠꺼운 말투로 물어오는 악마 가면에게 비슷한 기분을 느껴보라고 질문으로 답했다.

“왜, 네가 봤을 때 있는 것 같냐?”

몸을 쭉 펴 보인다.

정장 재킷도 벗어놓은 흰 셔츠에 정장 바지, 그리고 구두 차림. 누가 봐도 맨몸으로밖에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아니, 없어 보이긴 하는데….”

악마 가면이 말끝을 흐렸다.

누가 봐도 맨몸으로 보일 모습이었지만, 악마 가면이 의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상식적으로 자신보다 숫자가 많은 적들과 싸우기 위해 나오는데 맨몸으로 올 리가 없었으니까.

사이보그였다면 개조 신체 중 무기를 대신할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테지만, 애쉬가 사이보그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었다. 파이트 클럽 경기 전 스캔에서 나온 결과를 조인 디아벨이 직접 봤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애쉬는 뻘쭘하게 서 있는 악마 가면에게 픽 웃으며 말했다.

“더 할 말 없으면 가서 네 친구 응원이나 해. 이번에도 박살을 내줄 테니까.”

“그래 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알아서 하겠지.”

대답한 악마 가면이 머리를 긁적이며 등을 보이고 물러났다.

적에게 등을 보이다니, 건방질 정도로 경계심이 부족한 모습에 뒤를 한번 쳐볼까 고민한 애쉬였지만, 역시나 그런 건 그의 취향이 아니다.

저 악마 가면과 나머지 떨거지들을 치는 건 어디까지나 조인 디아벨, 승부를 걸어온 그를 완전히 꺾어버리고 난 뒤였다.

“준비는 다 됐어?”

조인 디아벨 쪽은 준비를 마쳤는지 악마 가면이 애쉬에게 물었고, 애쉬는 고개를 대충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런 애쉬의 대답을 들은 악마 가면이 양쪽은 물론 서재 안쪽의 개인실까지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자, 그럼 양쪽 다 중앙으로!”

애쉬와 조인 디아벨이 악마 가면의 말에 따라 서재의 중앙으로 모였다.

뭔가 터지기라도 한 듯 반쯤 무너진 서재의 중앙은 악마 가면의 부하로 보이는 일반가면의 남자들이 대충 치워놔서 발에 걸리는 건 거의 없는 상태였다.

애쉬와 조인 디아벨, 서재의 중앙에 모인 둘은 서로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이전, 파이트 클럽에서와 같은 구도였으나 옷차림이나 상황, 마음가짐 등 모든 것이 달랐다.

무슨 생각으로 조인 디아벨이 이런 상황을 조성한 것인지는 몰랐다. 또, 그런 게 중요하지도 않았고.

지금 애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호위 대상인 서령과 다른 일행들의 안전 외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려면.

‘처음부터 전력으로 친다.’

눈앞에 있는 조인 디아벨을 비롯한 다른 놈들부터 박살내야했다.

자신의 정면에서 선 조인 디아벨을 보던 애쉬는 슬쩍 고개를 돌려 자신 뒤편의 개인실 입구 쪽에 시선을 향했다.

분명 자신이 문을 닫고 나왔을 텐데 열린 문 안쪽에서 서령과 다른 일행들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악마 가면이 외친 소리를 들은 것이 분명했다.

무슨 일인가 싶겠지.

안쪽에서 이쪽을 보던 자신의 일행들과 눈이 마주친 애쉬는 쓱 시선을 돌려 다시 정면의 상대에게 집중했다.

조인 디아벨도 애쉬가 보았던 개인실 쪽을 봤는지 쓴웃음을 지었다.

“다음부턴 친구가 무어라 말을 하면 잘 듣는 게 어떤가.”

“친구는.”

“너무하군. 나만 진심이었나.”

기껏해야 하루 만난 사이에 무슨 친구냐는 듯한 애쉬의 목소리에 대꾸한 조인 디아벨이 몸을 긴장시켰다. 이제 슬슬 시작하자는 신호였다.

그것을 읽은 애쉬도 몸을 움직이기 위해 준비했고, 둘을 보던 악마 가면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근데 뭐라고 해야 하지? 시작? Fight?”

“아무 쪽이나.”

“그래. 그럼…….”

Fight!!

악마 가면이 외치며 물러나고, 애쉬는 놈이 빠지는 것보다도 더 빠르게 달려들어 전력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 퍼엉!

찰나의 순간,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 굳게 쥔 애쉬의 주먹이 대기가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반응조차 못한 조인 디아벨의 이마에 꽂혀 들어간다.

‘끝났다.’

애쉬는 자신의 주먹이 조인 디아벨의 이마에 닿은 그 순간 이 장난인지 뭔지 모를 싸움이 끝났다는 것을 확신했다.

일반적으로 이마는 타격하기에 좋은 부분은 아니었다. 잘못하면 오히려 친 사람의 손이 부러질 수도 있을 정도로 단단한 두개골이 위치한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애쉬가 전력을 다한 순간 타격 지점 따위는 의미가 없어졌다.

인간의 뼈, 살은 물론이고 손의 부상을 감수하면 어지간한 바위조차도 부숴버릴 근력과 신체 내구성이었다.

그야말로 극소형 미사일과도 같은 파괴력.

제아무리 단단한 두개골이라고 해도 그런 것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

­ 뻐어어억!!

애쉬의 주먹에 정확히 직격당한 조인 디아벨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머리에서 피를 터뜨리며 날아가 십여 미터는 더 떨어져 있던 서재의 벽에 처박혔다.

“…뭐야.”

그것을 본 악마 가면이 한 박자 중얼거렸다. 그 악마 가면 안의 표정이 예상이 가는 목소리.

다른 일반 가면들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어.”

조인 디아벨 또한 악마 가면을 쓰고 나타났던 인물. 이 테러의 주모자 격이 되는 이들 중 하나였다.

그 실력 또한 이번 일에 동원된 이들 중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인물이었는데 그가 이렇게 순식간에 끝나버린 것이다.

심지어는 개인실에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도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애쉬는 애매한 표정으로 자신의 주먹을 들어보았다.

조인 디아벨의 머리에서 터져 나온 피로 인해 피범벅이 된 주먹.

그러나 그의 주먹에 있는 묻은 피가 모두 조인 디아벨만의 것은 아니었다.

‘찢어졌군.’

핏물 사이로 허연 무언가가 보이고 있는 애쉬의 주먹.

조인 디아벨의 머리를 가격한 주먹 관절부의 살이 찢어져서 시뻘건 핏물 사이로 뼈를 드러내고 있었다.

주먹으로 누군가를 가격한 것이 처음도 아니고, 몸을 다루는데 있어서 바보 같은 실수를 할 애쉬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의 손이 이렇게 찢어진 것은 상대방에게 뭔가가 있다는 것. 가격할 때의 그 단단한 감각도 인간의 그것이라기보다는 기계에 가까웠다.

애쉬는 찢어진 곳에서 올라오는 통증을 눌러 담으며 조인 디아벨이 날아간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건 오히려 이쪽이 한 방 먹었나.’

날아간 뒤 벽에 처박힌 후 바닥에 떨어졌던 조인 디아벨. 몸을 움찔 떤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으…윽. 정말, 인간, 이 아닌 속도에, 힘이군.”

골이 울린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은 채 비틀거리며 일어선 조인 디아벨.

애쉬는 고개를 들어올린 그의 얼굴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말 강화인간이 맞나, 친구.”

애쉬의 주먹에 타격이 없었던 것은 아닌 듯 이마부터 눈까지의 살점이 터져나간 피부의 아래.

두개골이 자리하고 있어야 할 곳에 인간의 뼈 대신 피로 붉게 물든 금속과 복잡한 기계로 대체된 인공 안구 따위가 자리하고 있었기에.

그것은 뒷소문으로나 듣던 ‘휴먼 안드로이드’와도 비슷한 모습이었기에 애쉬가 천천히 입을 열어 물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데. 넌 인간이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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