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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14화 (114/230)

〈 114화 〉 5. 후계경쟁(38)

* * *

“으음, 인간이냐니. 그럼 내가 뭐로 보이는가.”

“안드로이드.”

조인 디아벨의 질문에 애쉬가 딱 잘라 대답했다. 저 모습을 본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떨어진 살점 아래로 보이는 금속 골격과 거기에 연결된 인공 안구는 연방 법률로 강력하게 금지된 인간형 안드로이드, 일명 휴머노이드라 부르는 그것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았다.

“너무하군. 개조를 좀 많이 했다 뿐이지 난 인간이 맞아.”

“그 꼴로 인간이라고?”

애쉬의 말에 조인 디아벨은 너무하다는 듯 표정을 바꿔보였지만, 안면 위쪽만 살점이 떨어져 금속 골격이 드러난 지금은 그래봐야 기괴하게만 보일 뿐이다.

“솔직히 나도 지금 내 꼴이 보기 좋지 않을 거라는 건 알지만 어쩌겠는가. 이제는 이것도 나의 일부인데.”

본인도 한 꺼풀 벗겨진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은 조인 디아벨.

분명 뭔가 사정이 있었던 것이겠지만, 애쉬가 지금 집중해야 할 부분은 그런 사정이 아니라 저 금속 신체를 어떻게 공략 하느냐였다.

‘저건 맨손이나 어지간한 총으론 힘들겠는데.’

애쉬가 전력으로 내지른 주먹에 맞았음에도 껍질만 벗겨졌다 뿐이지 사실상 멀쩡한 머리.

그 안에 든 것이 정밀 기계였다면 충격에 맛이 갔을 거고, 인간의 뇌가 들어있다고 해도 곤죽이 되었을 충격량이었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다.

처음에 조금 비틀거린 것으로 보아 충격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래도 곧 회복하는 게 검을 쥐고 베어버리는 것이 아니라면 방법이 거의 없을 것 같았다.

“이봐, 괜찮아? 한 방에 끝난 줄 알았다고!”

“그래. 저번에 파츠를 바꿔놓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한방에 뻗을 뻔 했어. 바꾸고도 골이 흔들리는데.”

악마 가면의 호들갑에 조인 디아벨이 대답했다. 어째서 전에는 이보다 약한 충격에 기절했으면서 이번에는 멀쩡한가 싶었더니 그때 당한 뒤 뭔가 다른 대비를 해놓은 것 같았다.

그런 둘의 얘기를 듣던 애쉬가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이쪽을 둘러싸고 있지만 놀란 기색이 역력한 일반 가면들과 그들의 가운데 놓여있는 조인 디아벨의 장비가 눈에 들어온다.

소총과 권총, 그리고 단검과 옷가지까지.

그 중에서도 애쉬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역시나 저 단검, 제법 사용한 것인지 손잡이가 헤진 군용 대검이었다.

연회장에 입장할 때 반납했던 검은 어디 갔는지도 모르겠고, 지금 보이는 날붙이라곤 저것 하나밖에 없는데 저걸 가져오려면 그 주변의 일반 가면들을 뚫어야했다.

‘그럼 저쪽 장단에 어울려주는 것도 관둬야겠네.’

저쪽의 장단에 어울려 조인 디아벨을 먼저 처리하기로 했던 건 계획은 철회하도록 한다.

저 금속 골격에 비해 비교적 덜 단단한 인공 안구 같은 곳을 노리면 어떻게 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런 귀찮은 일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저들, 일반 가면들의 속으로 파고들어 난전을 유도하며 조인 디아벨의 장비로 전투를 시작하는 수밖에.

그럼 지금은 얌전한 다른 악마 가면이나 일반 가면들이 서령과 다른 이들이 있는 개인실 쪽을 노릴 수도 있었지만, 거기에도 경호 인력이 있는 이상 아이 다루듯 하나하나 신경써줄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모든 생각을 마친 애쉬에게 조인 디아벨이 말을 건넸다.

“그럼 다시 시작할까, 친구.”

“시작하긴. 친구친구 거리더니 이거 순 양아치 아니야.”

“응?”

“내가 못 뚫을 정도면 그냥 맨몸으론 답이 없는 수준인데, 맨몸 격투를 제안해?”

전처럼 턱이라도 가격해서 기절시킬 수 있다면 몰랐겠으나 지금은 그것도 안 되는 상태.

애쉬의 신체 능력으로도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 못할 정도라면 강화인간은 물론이고, 순수 강화형 사이보그들도 뚫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1:1 맨몸 격투를 제안한 것 자체가 양심이 없는 것.

“그렇긴 하….”

애쉬의 말에 담긴 뜻을 이해한 조인 디아벨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선수를 친 것은 애쉬였다.

“됐고, 이제부터 그냥 내 맘대로 한다.”

­ 투웅!

바닥을 박찬 다리가 몸을 쏘아낸다.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둘의 거리.

이번에는 똑바로 반응하겠다는 듯 팔을 들어 올린 조인 디아벨이 주먹을 뻗어왔다.

그러나 처음부터 노리는 것이 그가 아니었던 애쉬는 자신을 향해 내질러진 주먹을 흘려보내며 조인 디아벨을 스쳐지나갔다.

“…?”

그러자 의문을 표하는 조인 디아벨.

애쉬는 그런 그를 무시한 채 그대로 정면으로 달려 조인 디아벨의 장비를 지키고 있던 가면의 남자들의 틈새로 뛰어들었다.

“뭇…!”

“비켜.”

정면을 가로막고 서있는 한 명을 달려가던 그대로 집어던져버리고, 중심으로 파고든다.

나름 괜찮은 실력을 갖고 있는 듯 가면의 남자들도 한 박자 늦게 반응하긴 했으나 총구를 겨눌 뿐 쏘지는 못했다. 애쉬를 쏴도 된다는 악마 가면의 명령이 없었기 때문에.

덕분에 그들의 중심에 선 애쉬는 느긋하게 자신의 발밑에 위치한 조인 디아벨의 장비들을 챙겨들 수 있었다.

‘이거면 충분하지.’

챙겨든 것은 권총과 군용 대검.

권총 탄은 몇 발 안 되겠지만 어차피 부 무장에 불과하고, 이곳에 있는 숫자라고 해봐야 스물 몇이 끝이었다.

이들 모두가 진짜 제대로 된 실력자라면 곤란할 수도 있었겠으나 그렇지 않은 이상 문제는 없다.

“이봐! 그건 반칙이야!”

권총과 단검을 집어든 애쉬가 똑바로 서자 어느새 달려온 악마 가면이 외쳤지만, 이미 판을 깨기로 마음먹은 애쉬를 제지할 수는 없었다.

“어쩌라고.”

­ 타앙!

순식간에 총구를 향한 뒤 방아쇠를 당겨 발포한다. 애쉬의 눈에는 탄환이 대기를 가르고 쏘아져 나가는게 똑똑히 보였다.

그리고 그 직후에 일어난 일도.

“피해?”

목표물이 아니라 허공을 가르고 지나간 총탄이 서재의 벽에 박혔다.

시끄러운 악마 가면이 총탄을 피한 것이다.

놀란 건지, 아니면 그 정도가 한계인 것인지 몸을 반쯤 던져 피하는 동작이 크긴 했지만, 그것은 운이 아니라 총탄이 쏘아지는 방향을 정확히 읽고 피한 것이었다.

예측하고 몸을 던져 피한 것과 총탄을 제대로 보고 피한 것.

둘 다 결과는 같았지만,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게 달랐다.

조인 디아벨뿐 아니라 저 악마가면 또한 슬럼 거대 갱단의 보스급, 혹은 그 이상이라는 것이었으니까.

“이런, 씹. 갑자기 쏴? 나랑도 제대로 붙어보자고?!”

가까스로 총탄을 피하고 일어선 악마 가면이 소리쳤다. 애쉬의 갑작스런 사격에 화가 난 모양.

하지만 그의 뒤에 다가온 조인 디아벨이 어깨를 꾹 누르며 악마 가면을 제지했다.

“이봐, 후안.”

“넌 왜!”

“아쉽지만 놀이는 끝난 것 같으니 저 친구는 나한테 맡기고 저쪽을 보는 게 어떤가.”

“이걸 나한테 짬처리를 시킨다고? 저 놈이 먼저 쐈는데?”

개인실 쪽을 가리키며 하는 조인 디아벨의 말에 오히려 더 열이 올랐는지 소리쳤지만, 곧 눈을 똑바로 맞추고 낮은 목소리로 부탁하는 조인 디아벨의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저쪽에 중요 인물들이 많지 않나.”

“…….”

“정시까진 잡아놔야 하니 부탁하지.”

“…이번만 봐준다 진짜.”

“난 둘이 같이 덤벼도 되는데?”

눈을 마주치며 무언가 압박이라도 받았는지 급격하게 변하는 태도. 그들이 하는 양을 바라보던 애쉬는 뛰어난 실력자로 보이는 악마 가면이 서령 쪽으로 가지 않도록 도발을 던졌지만, 악마 가면은 시선조차 주지 않고 몇 명의 인원만 대동한 채 개인실 쪽으로 향했다.

‘이렇게 되면 좀 불안한데.’

베일라의 잘 실력은 알지만 오히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걱정이었다. 그녀가 저 악마 가면에게는 한참 부족하리라는 것 또한 알았으니.

유진혁 회장의 경호원들이 있긴 하지만, 완전히 믿을 수도 없는 만큼 이번에도 타임어택이 시작된 것이다.

악마 가면이 개인실 쪽으로 향한 뒤, 원래 인원의 절반 정도 되는 열 남짓한 인원과 남은 조인 디아벨이 애쉬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일단 일이 이렇게 된 건 사과하지. 뒤늦게 생각해보니 내가 봐도 좀 그렇다 싶더군. 이제는 이 몸이 너무 자연스럽다보니 자주 깜빡한단 말이지.”

자신이 일반적인 사이보그조차 아니라는 것을 깜빡했다며 사과하는 조인 디아벨.

그러나 애쉬는 그 사과조차 받아줄 시간이 없었다.

“됐으니까 빨리 끝내자고. 이쪽도 바쁘니까 말이야. 한번에 덤벼.”

“…그래. 아쉽게 됐군, 시간이 조금만 있었다면 같은 곳에서 일하게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조인 디아벨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쉬움을 표한다. 그는 이미 애쉬에게 제대로 한 방 맞았던 만큼 한 번에 덤비라는 말을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시작될 것은 빚을 갚아주기 위한 결투가 아니라 전투, 전쟁이었다. 그런 곳에서 정정당당을 따지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가면의 남자들로부터 다른 장비를 받은 조인 디아벨이 입을 열어 말했다.

“그럼 이쪽에서 먼저 가지.”

“얼마든지.”

“…사격해.”

“사격!”

­ 투다다다!

복명복창과 함께 가면의 남자들이 방아쇠를 당겨 중심의 애쉬를 향해 탄환을 쏟아냈다.

조인 디아벨은 몸을 튕겨 총탄을 피하며 움직이는 애쉬를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봤다.

*

“좌측!”

“절대로 다가오지 못하게 막아! 한번에 탄환을 소진하는 일이 없도록 대비!”

명령을 내리는 목소리와 함께 탄환이 귓가를 가른다.

애쉬는 자신을 향해 빗발처럼 쏟아지는 탄환을 피하며 몸을 던졌다.

다시 한번 허리를 스쳐지나가는 탄환이 두어 발. 일반 가면들의 위협적인 사격의 힘은 그들의 사격 실력도 실력이었지만, 그들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한 명에게서부터 나오고 있었다.

“정면에 다가오면 무조건 수류탄부터 까고 빠져라!”

군인 장교 출신의 용병이었는지 지휘하는 솜씨나 각 상황에 맞는 지시를 내리는 게 보통이 아니다.

숫자는 열 몇에 불과했으나 체감상 스물도 더 되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그 정도 숫자로는 애쉬를 완전히 막아낼 수 없었다.

­ 타앙!

자신을 향하는 총탄을 피하며 자연스럽게 겨눈 권총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다른 소총 따위의 총격음이 계속해서 울리고 있음에도 어쩐지 자신의 것만큼은 뚜렷하게 들려온다.

쏟아지는 수십 발의 총탄 사이를 거슬러 올라가는 지나가는 단 한 발의 탄환.

“큽…!”

그것은 정확하게 가면의 남자 중 하나의 목젖에 꽂혀들었다.

목에 바람구멍이 난 남자가 들고 있던 총을 떨어뜨린 채 그곳을 부여잡고 무릎 꿇었지만, 다른 가면들은 동요하지 않는다. 그들 또한 수많은 전장을 지나온 베테랑들이었다.

총에 맞은 동료가 거치적거리지 않도록 뒤로 빼고 빈 공간을 좁혀 틈이 없도록 만든다.

“핫!”

경험이 많은 만큼 잘 대처했으나 숫자가 줄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안 그래도 많지 않던 인원 중 하나가 빠진 것은 그만큼 애쉬에게 여유를 주었다.

애쉬는 정면으로 돌파하며 바닥에 떨어져 있던 서적 한 권을 집어 가면의 남자 중 하나에게 던졌다.

­ 펄럭.

급히 던진 것이라 책이 날아가던 도중 펼쳐지는 불상사가 일어났지만, 그럼에도 원하는 곳까지 가기엔 충분한 힘과 속도였다.

책에 맞기 직전, 목표가 된 가면의 남자가 상체를 숙여 책을 피했다.

‘간다.’

그것을 확인한 애쉬가 바로 그 남자의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계속해서 그를 겨누고 있던 총구들은 여전했지만, 정면이 빈 만큼 파고드는 것 자체는 수월하다.

오른 손에 든 단검의 날을 바짝 세운 애쉬가 막 상체를 다시 들어올리는 남자의 정면에 닿았을 때, 부웅 날아온 뭔가가 그의 걸음을 제지했다.

“안되지!”

육중한 것이 휘둘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날아온 금속 막대.

그것은 개인실로 향한 악마 가면이 갖고 있던 물건과 같은 것이었다. 악마 가면이 조인 디아벨에게 하나 건네고 간 것을 그가 던진 것이다.

단검을 들어 올려 날아온 그것을 단숨에 베어버린 후, 정면의 가면의 남자까지 처리하려던 애쉬였으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 촤아악!

“미친!”

지름이 3cm 정도 되는 금속 막대의 표면이 화악 일어나더니 애쉬가 있는 방향으로 엄청난 숫자의 침 같은 것을 쏘아낸 것이다!

무슨 조화인지 내부에 무언가 숨겨져 있던 것이 아닌, 매끈한 금속 막대 자체가 침이 된 것 같은 모습.

평소처럼 방탄 코트라도 입고 있었다면 그것을 믿고 모두 받아내며 뚫었겠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없는 상황이었다.

척 봐도 보통 침은 아닌 것 같고, 그 숫자가 수천, 수백은 되어 보이는 바늘의 비에 애쉬는 여유조차 잃고 몸을 던져 피할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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