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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16화 (116/230)

〈 116화 〉 5. 후계경쟁(40)

* * *

애쉬가 움직임을 뚝 멈춘 순간, 조인 디아벨은 일종의 황당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쪽 세계에서는 모를 수가 없는, 때때로 연방 뉴스에까지 나왔기에 일반인들까지 그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법한 ‘웃는 악마’는 모르면서 철저하게 숨겨진 ‘회사’의 존재는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설마 회사가 조인 디아벨 자신이 아는 그 ‘회사’가 아닌 하나의 명사를 가리키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말하는 뉘앙스를 들어보면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너도 ‘회사’ 소속이냐?”

어떻게 회사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냐는 조인 디아벨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역으로 물어오는 애쉬.

여기에 대해 답해도 될까하는 고민에 멈칫했던 조인 디아벨은 결국 대답을 들려주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그들, ‘웃는 악마’에게 있어 큰 기밀이 되는 정보도 아닐뿐더러, 짤막한 정보 하나를 들려주고 애쉬만한 실력자를 스카웃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면 손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조인 디아벨이 입을 열어 대답했다.

“왜 ‘회사’를 찾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회사’ 소속이 아니야. 다만 ‘웃는 악마’와 ‘회사’는 협력관계에 있지.”

‘회사’는 ‘웃는 악마’에게 온갖 장비와 실험품을 제공하고, ‘웃는 악마’는 그것을 실전에서 사용해 실험 데이터를 뽑아내며 그들이 원하는 일을 처리해준다.

과거부터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이어진 관계였고, 조인 디아벨이 시연해보인 나노머신들도 ‘회사’에서 받아온 물건이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런 조인 디아벨의 대답을 들은 애쉬는 드디어 원하는 대답을 들었다는 듯 씨익 웃어보였다.

어쩐지 불길함이 감도는 미소. 조인 디아벨은 알 수 없는 그 불길함을 무시하고 물었다.

“그래. 스카웃 제안은 다시 생각해보겠나? 자네 정도의 실력이라면 상상하는 것 이상의 지원이 나올 수도 있을 텐데.”

“아니. 말 했잖아, 제안은 거절이라고.”

원하는 것을 모두 들은 애쉬가 조인 디아벨의 물음에 다시 한번 거절을 표했다. 애초에 고민조차 하지 않은 듯 단번에 나온 대답이었다.

처음부터 원하는 정보만 받아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 그럴 생각인 것 같다고 예상하던 조인 디아벨이었기에 놀랄 일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실망감이 들며 입맛이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일방적인 것일지 모르겠지만 친구로서의 친근감도 있었고, 명백히 자신보다 뛰어난 실력자를 신체의 차이로 찍어 누르는 것도 유쾌하지 않았으니까.

애쉬의 손에 들린 것은 고작해야 그가 가져왔던 군용 대검 한 자루와 권총이 끝.

그런 소박한 무기들로는 조인 디아벨, 자신의 신체를 절대로 뚫을 수 없었다.

“아쉽게 됐군. 진심으로 자네를 살리고 싶었는데.”

“이미 날 잡았다는 듯이 말하네?”

“그야 자네가 갖고 있는 무기로는 내 몸을 뚫을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이곳에서 몸을 피할 수도 없을 테지.

조인 디아벨은 아직까지 후안이 입구를 틀어막고 있는 개인실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애쉬가 지켜야 할 대상인 유서령 이사가 있었으니 이 자리에서 도망칠 수도 없을 것이었다. 애초에 그럴 성격인 것 같지도 않았고.

이미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한 듯한 조인 디아벨의 모습에 여전히 입 꼬리를 끌어올리고 있는 애쉬가 한 발짝 나서며 말했다.

“콧대가 아주 높으신데, 그러다 쓱 잘려도 모르겠어.”

“오만이 아니라 현실이라네, 친구.”

나노머신 결합체로 팔을 감싼 조인 디아벨도 애쉬와 마찬가지로 한 발짝 나섰다.

방금 전까지 대화나 하고 있었다는 게 거짓말이라는 듯 순식간에 날이 서는 분위기.

그에 따라 대기하던 가면의 남자들도 척, 총을 들어 올려 총구를 겨눴다.

금방이라도 총성이 울릴 것 같은 상황 속 애쉬가 자신을 향해 겨눠진 총구들, 그리고 정면에 선 조인 디아벨을 쓱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시간도 없겠다, 빨리 끝내자고.”

* * *

결과적으로 변한 것은 없다.

싸운다. 그리고 모조리 깨부순 다음 ‘회사’에 대해서 물으면 되는 것이다.

겸사겸사 조인 디아벨이 속해 있다는 ‘웃는 악마’에 대해서도.

‘마침 피도 좀 멎었고, 딱 좋네.’

애쉬는 뼈가 드러날 정도로 찢어졌던 상처에서 피가 멎은 것을 느끼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 정도 상처라면 별도의 조치가 없는 이상 이렇게 빨리 출혈이 멈출 수는 없었으나 애쉬의 비정상적인 재생력은 그것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상처가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라 모든 일이 끝난 이후 치료를 받든 말든 해야겠지만, 지금은 출혈이 멈춘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격!”

조인 디아벨과 같은 악마 가면이 아닌 일반 가면 중 하나가 외치고, 그에 따라 다시 한번 열 정 가까운 총구가 불을 뿜기 시작한다.

­ 타다다다!

애쉬도 전장의 음악 소리와도 같은 격발음에 맞춰 춤췄다.

슬럼에서 겪었던 일반적인 총기들보다 탄속이 더 빠르고, 실력도 뛰어난 만큼 그 각이 예리하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들은 애쉬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숫자가 수십 이상씩 되는 다수의 빽빽한 탄막이라면 모를까 겨우 열 명 정도에 불과한 소수의 허술한 총격은 아무리 총기의 성능이 뛰어나다 해도 문제없다.

느려진 세상 속. 자신을 향하는 그 모든 것을 똑바로 인지하고 움직인다.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며, 조금 거슬린다 싶은 것은 손에 들고 있는 군용 대검으로 쳐내며 돌파.

허공에 파문을 일으키며 날아오는 탄환의 모습이 일반적인 탄환과는 조금 달라보였지만, 그마저도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 티잉!

자신을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탄환을 쳐낸 애쉬는 그대로 계속 파고들어 정면을 지키고 있는 조인 디아벨을 향해 오른손의 날카로운 이을 드러냈다.

조인 디아벨도 그에 반응하여 정면으로 나오며 건틀릿의 모양을 하고 있던 나노머신을 넓게 펼쳐 방패처럼 들었지만,

‘역시나 내구성은 좋지 않은 모양이군. 이대로 벤다.’

애쉬에게는 그것의 보이지 않는 균열이 무척이나 커다랗게 느껴졌다.

아직 실전성이 제대로 입증되지 못한, 초기품인 듯 했기에 당연하게도 그 결합력이 떨어지는 듯 내구성이 어중간한 방패만도 못한 느낌.

물론, 일반적인 칼질이나 탄환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겠지만, 애쉬의 손에 들린 순간부터 그것은 이미 일반적인 검이 아니었다.

12레벨의 도검류 숙련도가 선사하는 감각. 검으로 모든 것을 벨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 감각이 애쉬의 검을 이끌었다.

총탄의 사이를 뚫고 도달한 곳. 조인 디아벨과 팔만 뻗어도 닿을 거리까지 가까워진 애쉬는 나노머신 방패를 향해 그대로 군용 대검을 베어 내렸다.

“흡!”

정면에서 들이킨 숨을 끊는 소리가 들려온다. 충격에 대비하려는 것 같던 조인 디아벨이었지만, 그 판단은 틀린 판단이었다.

애초에 부딪힘과 충격이라는 것 자체가 없을 테니.

­ 스스슥.

손끝에 걸려오는 거슬거슬한 감각. 방패처럼 결합해있던 나노머신들이 군용 대검의 날에 따라 베어갈라지고, 그 뒤에 숨어있던 조인 디아벨의 굳어가는 표정이 보였다.

군용 대검 따위를 들고 방패를 베어낼 줄은 몰랐다는 표정.

애쉬는 이미 몇 번이나 봐온 익숙한 표정이었지만, 당하는 이들은 언제나 놀랄 수밖에 없다.

‘아직.’

애쉬는 그 놀란 표정을 보며 계속해서 칼날을 아래로 내려벴다.

나노머신으로 이뤄진 결합체를 베는 것은 결국 다시 합치면 되는 일이다. 그러니 한번 접근한 지금, 상대방에게 영구적인 손상을 줘야 했다.

방패 결합체를 가른 칼날이 그것을 달고 있던 조인 디아벨의 전완부까지 닿는다.

살점과 단단한 근육을 가르고 뼈에 까지 닿는 순간, 엄청난 반발력이 군용 대검을 통해 전해졌다.

­ 카가가각!!

“뭣…!”

자신의 뼈가 갈려나가는 것을 느꼈는지 조인 디아벨이 경악한 표정으로 외쳤지만, 애쉬도 그에 못지않게 놀라고 말았다.

‘대체 무슨 금속으로 만들어 졌길래!’

자신의 감각에 따라 정확하게 칼날을 박아 넣었는데, 날이 제대로 들어가질 않는다.

이대로 가면 완전히 끊어내지 못하고 중간에 멈출 것이라는 생각이 든 애쉬가 이를 악물고 군용 대검을 베어 내렸다.

아니, 그것은 베어내렸다기보단 차라리 힘으로 찍어 눌렀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어떤 금속으로 대체됐다던 조인 디아벨의 뼈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강도를 지니고 있었다.

­ 사악!

끝내 완전히 조인 디아벨의 전완부를 가른 군용 대검이 피에 붉게 물든 채 대기를 갈랐다.

애쉬는 조인 디아벨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며 곧장 뒤로 물러섰고, 직후 그가 있던 자리를 수십 발의 총격이 꿰뚫었다.

­ 터억.

총격음이 계속해서 울리고 있는 이곳에서조차 묵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오는 듯하다.

“그러게 내가, 조심하라고 했잖아!”

­ 타앙!

전완부 아래가 잘려나간 조인 디아벨을 본 애쉬가 웃음을 터뜨리며 총격을 가하던 가면의 남자 중 하나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흐억…!”

총탄을 피해 몸을 움직이는 와중에도 방탄 기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면과 옷을 피해 맨살이 드러난 목을 정확하게 명중.

하나가 총을 떨어뜨리며 쓰러지고, 바로 뒤이어 다른 하나에게 쏜다.

“젠장!!”

동료가 쓰러지는 것을 본 놈은 탄환을 가까스로 피해냈지만, 그만큼 애쉬를 노리고 쏘아지는 탄환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타닷!

“어억!”

애쉬는 눈에 띄게 줄어든 탄막 사이를 한층 수월하게 지난 뒤 목표가 가까워지자 군용대검으로 다른 가면의 목을 갈랐다.

그리고 다시 다른 목표물을 향해 움직이려던 찰나, 그를 향해 잘려나간 전완부를 나노머신 칼날로 메운 조인 디아벨이 달려들었다.

“멈춰라!!”

전완부가 잘려나갔음에도 여전히 육중한 무게와 체격을 무기로 달려드는 조인 디아벨.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그는 땅에 발을 쿵 구르며 무언가를 사용한 듯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가속했지만,

“그렇게 일방적으로 얻어 터졌으면 이제 접근전으론 안 된다는 걸 알 때도 되지 않았나?!”

총탄을 보고 쳐내는 애쉬에게는 여전히 빠르다고 할 수 없는 속도였다.

저렇게 정면에서 겁도 없이 달려드는 놈들은 단번에 목이나 머리를 베어내기 편하다는 것을 잘 아는 애쉬였지만, 지금만큼은 그래선 안됐다.

녀석, 조인 디아벨에게는 들을 얘기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애쉬는 목이나 머리를 노리는 대신 군용 대검의 칼날을 눕혀 다리를 노렸다.

팔은 하나 정도 없어도 나노머신 결합체로 대신할 수 있을 테지만 다리가 없으면 기동력을 완전히 잃을 터.

제일 귀찮게 구는 녀석이 리타이어 된다면 이 상황도 금방 정리될 것이었다.

­ 쇄애액!!

상체를 숙여 자신의 머리를 향해 휘둘러지는 결합체의 칼날을 피하고, 군용 대검을 휘둘러 허벅지를 가른다.

허벅지는 그 두께가 전완부보다 훨씬 두꺼운 만큼 더 큰 힘이 들겠지만, 애쉬에겐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 카가가각!!

애쉬가 예의 반발력을 억누른 채 칼날을 박아 넣는 순간.

지금을 기다렸다는 듯 조인 디아벨이 애쉬를 덮쳐들며 외쳤다.

“쏴라!!”

처음부터 그는 애쉬와의 정면대결에서 이길 생각도, 칼날을 피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어떻게든 잠시 칼날을 봉쇄하고 애쉬를 붙잡아 함께 총탄의 비에 노출될 계획이었던 것이다.

자신은 총탄에 거의 면역이나 다름없으니 같이 맞는다면 분명 끝장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애쉬는 총탄에 맞으면 죽을 수도 있는 인간이었으니 틀린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애쉬가 순순히 잡혀줄 때의 얘기였다.

“어딜.”

애쉬는 조인 디아벨이 자신을 향해 팔을 뻗어온 순간 그의 허벅지를 반 넘게 갈라낸 군용 단검을 순순히 놓으며 곧장 뒤로 빠졌다.

어차피 저 정도 갈라진 순간 개조 파츠라도 기능을 잃는 것은 당연하다.

조인 디아벨은 날붙이가 없다면 상대하기 까다롭겠지만, 그가 기동력을 잃은 순간 날붙이도 필요성을 잃었다.

어차피 다른 가면들은 칼이 아니라 총으로도, 맨손으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으니까.

애쉬가 순식간에 자신의 품안에서 빠져나가는 것에 반응한 조인 디아벨의 눈이 커졌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부하들은 그 움직임에 반응하지 못하고 잠시나마 방아쇠를 당기고 말았다.

순식간에 쏘아진 수십 발의 탄환이 조인 디아벨의 전신을 덮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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