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5. 후계경쟁(41)
* * *
쏟아지는 탄환에 흩날리는 피와 살점.
조인 디아벨은 그 스스로 자신했던 대로 모든 총탄들을 맨몸에 받아내고도 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멀쩡할 수는 없었다.
거의 잘려나간 다리는 당연히 움직일 수 없었고, 기동력이 사라진 만큼 전투력도 급격히 하락.
안 그래도 숫자가 줄어든 상태에서 간간히 애쉬를 견제하고 정면에서 막아서기도 하던 조인 디아벨이 리타이어 당하자 전투의 구도는 급속도로 무너졌다.
“……!!”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목이 떨어진 마지막 일반 가면.
바닥에 주저앉은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조인 디아벨은 마지막으로 생을 마감하는 부하를 보고 중얼거렸다.
“…끝났군.”
이제는 전투를 계속할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 둘의 사이에는 압도적인 격차가 있다는 것을 느꼈기에.
조인 디아벨과 그 부하들이 애쉬에게 실질적으로 준 피해는 오히려 그의 주먹질에 맞았을 때 금속 골격에 찢어진 주먹 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애쉬의 부주의로 인한 것이었지 그들의 실력으로 입혔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전부였으니 그 격차를 느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애쉬는 그런 조인 디아벨의 중얼거림을 들은 듯 대답했다.
“그래, 끝났지. 그러니까 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라.”
저쪽도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애쉬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조인 디아벨을 다시 한번 확인하곤 곧장 서재 개인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런 상태면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도망치거나 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타다다다!!
콰아앙!!
아까부터 개인실 쪽에서 들려오던 격발음과 짧은 폭발음이 다시 한번 울린다.
애쉬는 다시 한번 울리는 소음들을 듣고 급히 움직였다.
*
타다다다!!
“프하핫! 잘들 피해 보라고~!”
여전히 신이 난 악마 가면이 총을 갈기다 말고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그것을 본 베일라는 느껴지는 다급히 서령의 손을 잡아끌었고, 에아임과 빌헬름이 그 뒤를 따랐다.
“이사님!”
“베, 베일라 씨!”
“으아아!”
“자, 받아라!”
그 직후, 악마 가면은 서령 일행이 있던 자리에 무언가를 던졌고, 그것은 굉음과 함께 주변의 책장을 모조리 무너뜨렸다.
콰아앙!!
귀가 울릴 정도의 폭음. 폭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다른 책장 뒤쪽에 엄폐한 뒤 그런 상대방의 행동을 지켜보던 베일라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망할, 저희를 완전히 가지고 놀고 있군요.”
사격의 방향도 그렇고, 폭발물을 던지는 위치와 타이밍도 그렇고, 이쪽을 죽이든, 사로잡든 그 전에 실컷 괴롭혀주겠다는 의도가 명확히 보인다.
반대쪽으로 갈라진 유진혁 회장 쪽도 다를 건 없었다. 악마 가면은 너 나 할 것 없이 품속의 폭발물을 던져대며 양 쪽을 갖고 놀았고, 이쪽은 그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곳에 무장한 전투인원만 있었다면 당장 나가서 싸워볼 법도 했으나 지금은 무장도 없고, 호위 대상이 함께 있는 상황.
맨몸으로 완전무장한 적에게 달려드는 것은 애쉬 같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짓이다.
잠시 숨을 고른 베일라가 일행을 둘러보며 물었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하아, 저는 괜찮아요.”
한 자리에서 숨도 고르지 말라는 듯 계속해서 폭발물을 던져오는 탓에 계속해서 달리느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서령이 대답했다.
직전에도 반쯤 끌려오듯 달리고 있었는데, 지친 모습이 얼마 달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역시 그녀를 데리고 이곳을 뚫는 건…….
아니. 베일라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해도 무조건 가능하게 해야 한다.
설령 그녀와 에아임 수석비서, 둘의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외부 협력자인 빌헬름은 몰라도, 그것은 경호원인 베일라와 수석비서인 에아임의 책임이자 의무였다.
“저도 괜찮긴 한데, 에아임 씨가 오는 길에 총을 좀 맞은 것 같아요.”
“수석비서가 말입니까?”
“아, 아니. 전 괜찮습니다.”
빌헬름의 말에 에아임에게로 시선을 돌린 베일라. 그런 그녀의 시선을 받은 에아임이 양 손을 저어보이며 부정했지만, 베일라가 사실을 확인했다.
“있는 그대로 말해주십시오. 어디에 맞은 겁니까.”
“그, 등에 맞긴 했는데, 얕게 박혀서 괜찮습니다. 정말로요.”
“…지금 당장은 긴장에 고통이 없을지 몰라도 점점 느껴질 겁니다. 달릴 수는 있으십니까?”
“예. 힘들 것 같으면 그때 말하겠습니다.”
안색이 창백해 명백히 이상이 보이는 에아임의 말이었으나, 베일라는 거기에 대해서까지 지적할 수는 없었다.
지금 같이 급박한 상황에서 한 사람의 부상을 보자고 시간을 끄는 건 위험성을 더 높이는 행위나 마찬가지.
“한 방 더 간다~!”
아니나 다를까 제자리에서 서로의 상태를 확인한 일행의 근처에 툭 투둑, 하고 뭔가가 굴러왔다.
주먹만한 하얀 구체. 악마 가면의 남자가 계속해서 던져대던 폭발물이었다.
그것을 발견한 베일라가 다시 한번 서령의 손을 잡아끌며 외쳤다.
“다시 뛰십시오!”
서령 일행이 책장 뒤쪽에서 황급히 달려 나왔다.
그러자 다시 한번 그들을 노리고 울리는 총격음이 울리고 총탄이 빗발처럼 쏟아진다.
“억!”
팟, 파바박! 주변에 총알이 박히는 소리를 들으며 달려가던 것도 잠시, 뒤를 지키며 달리던 에아임이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에아임!!”
쓰러지는 그를 돌아본 서령이 비명처럼 소리쳤다. 쓰러진 그의 등에는 못해도 십여 발은 될 피탄 자국이 나 있었다. 일행의 가장 뒤를 지키며 사실상 총알받이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이사님과 빌헬름 씨는 일단 저쪽에 숨으십시오! 에아임 수석비서는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네, 네!”
베일라는 당황하지 않고 보호 대상들을 두터운 기둥 뒤로 보냈고, 어떻게든 에아임을 기둥 뒤까지 끌고 갔다.
베일라가 에아임을 끌고 오자 서령과 빌헬름이 다급히 쓰러진 그에게 다가갔다.
“에아임! 괜찮아요?!”
“하, 하하. 아가씨, 저는 괜찮습니다….”
서령이 눈물을 글썽이며 그의 창백한 안색을 확인하는 사이 베일라와 빌헬름은 그의 상처를 살피고 침음을 흘렸다.
“이건….”
“음…….”
십여 발의 총탄 자국은 에아임의 말대로 탄두가 보일 만큼 얕게 박힌 것이 없었다. 또, 등 뿐 아니라 다리에도 핏자국이 있는 것이 그쪽에도 피격됐던 것 같다.
상처만 본다면 어떻게 신음소리 한 번 안내고 기적처럼 이곳까지 달려올 수 있었는지 이상할 정도.
하지만 그의 상처 속, 깊숙한 곳을 확인한 베일라와 빌헬름은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에아임 수석비서. 당신…….”
상처 내부를 본 베일라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십여 발의 총탄에 맞은 것 치고 흐른 핏자국은 얼마 되지 않는다. 총에 맞아 피가 흐른 ‘시늉만 낸 것처럼.’
그리고 상처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약하게 흐르는 전류.
피가 조금 들어갔는지 붉은 빛을 띤 기계 부품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언뜻 보면 사이보그의 신체 개조 부품이라고도 착각할 수 있을 모습.
하지만 유성의 연구소 실험에도 자주 참여했던 베일라나, 관련 지식을 거의 전문가 급으로 갖고 있는 빌헬름은 에아임의 몸 안이 사이보그의 그것과도 궤를 달맇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이보그의 신체 개조가 인간의 몸에 기계를 삽입한 것이라면 이것은 기계의 형체에 얇은 인간의 신체를 덮어씌운 꼴.
그래, 에아임 수석비서는…….
“…수석비서님, 안드로이드셨어요?”
“…….”
“네…? 빌헬름 씨, 무슨…,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에아임은 침묵하고 서령은 베일라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반문한다. 베일라는 빌헬름을 대신해 그런 서령에게 자신이 보고 내린 결론을 다시 한번 말해주었다.
“…에아임 수석비서는, 안드로이드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에아임이 안드로이드라니. 에, 에아임!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아가씨, 저는.”
서령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그런 그녀를 보며 잠시 침묵하고 있던 에아임은 무언가 대답하려 했지만, 그런 혼란이 채 수습되기도 전에 불청객이 찾아들었다.
“거기 여자를 이쪽으로 보내.”
척.
목표는 역시나 서령인 듯 그녀를 넘기라 말하고는 더 이상의 첨언도 없이 총구를 일행에게로 향하는 세 가면의 남자들.
자신들은 중무장 중이지만 이쪽에는 무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그 행동이 무척이나 여유로웠다. 자신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베일라는 서령을 그냥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그녀를 죽이지는 않더라도 무슨 꼴을 당할지 알고 서령을 보내준단 말인가.
“어서.”
재촉하며 금방이라도 총을 쏠 듯 총구를 기울여 보이는 가면의 남자들이었지만, 베일라는 슬쩍 시선을 돌려 서령에게로 향했다. 정확하게는 그녀의 핸드백으로.
분명 그 안에 서령이 챙겨온 권총이 한 자루 있었지.
굳이 찾아와 서령을 요구하는 저들의 태도로 봤을 때 목표물인 서령을 살해하지는 못할 것 같다.
한참 전부터 총을 쏠 때도, 그리고 폭발물을 던져올 때도 느꼈지만 서령만큼은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는 느낌이 다분히 들었던 것이 기분 탓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기야 서령과 유진혁 회장을 살해하는 게 목표였다면 진작 폭발물 따위로 책장들을 모조리 밀어버리고 총기를 난사해댔겠지.
정신이 이상한 테러범인척 해도 목적은 따로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도박일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면 한 번 시도라도 해볼 만했다. 여기서 숫자를 좀 줄여 놓으면 유진혁 회장 쪽과 합류해서 싸운다고 해도 더 편해지겠지.
베일라가 힘겹게 일어나고 있는 에아임을 바라봤다.
그가 안드로이드든 아니든 지금은 상관없다. 지금 당장 생각해야할 것은 그저 유서령 이사를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하는 것 뿐.
베일라가 에아임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사님과 함께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하, 하. 그럴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장시간의 기동이 불가능합니다.”
“몇 분이라도 좋습니다. 이사님과 빌헬름 씨를 데리고 저쪽에 합류하십시오.”
더 이상 이사님과 함께 하는 게 불가능해지면 몸을 던져서 적들의 시선이라도 끄는 겁니다.
차갑지만 이성적인 베일라의 말에 에아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도 곧 따라가겠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 이사님을 지키십시오.”
“그건 굳이 말하지 않으셔도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에아임이 의지에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둘의 대화를 들은 베일라에게서 빌헬름은 한 발짝씩 물러났다. 어차피 이 자리에 있어봐야 방해밖에 되지 않는데, 최대한 빨리 자리를 떠나 주는 게 좋았다.
“이사님, 핸드백 좀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베일라, 설마…. 안돼요, 그래도 같이…!”
핸드백이라는 말에 그녀의 생각을 눈치 챈 서령이 그럴 수는 없다며 베일라를 쳐다봤지만 그녀의 뜻이 어떻든 이미 정해진 일이었다.
“자, 잠시 빌릴게요.”
서령의 옆에 있던 빌헬름이 은근슬쩍 그녀의 핸드백에서 권총을 꺼내 베일라에게로 던졌다.
휘릭, 하고 날아간 권총을 베일라는 정확하게 받아 들었다.
“…이 상황에서 저항하겠다는 건가?”
“바보 같군.”
가면의 남자들이 소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다. 베일라는 그런 그들을 보며 속으로 카운트했다.
3, 2, 1.
“지금!”
타다당! 외친 베일라가 순식간에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에아임이 서령을 억지로 안고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이런…!”
“베일라 씨!”
“실례하겠습니다!”
“어서 가요!”
어떻게든 탄환을 방탄복 위로 받아 내거나 피한 가면들의 목소리와 서령, 에아임, 그리고 빌헬름의 목소리가 뒤섞였다.
총소리와 거친 발소리가 멀어진다. 에아임은 더 이상 자신이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숨기지 않겠다는 듯 지친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움직였다.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서령을 최대한 안전한 곳까지 데려가겠다는 일념 하에.
이 개인실은 무척이나 넓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바퀴를 돌 수 있었다.
하지만 중간 중간 쏟아지는 총탄이나 폭발물 조심해 움직여야 했기에 실제 시간은 그보다 훨씬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에아임, 내려줘요! 에아임!!”
“죄송합니다. 놈들의 목적 중 하나가 아가씨인 것 같으니 어떻게든 쫓아올 겁니다.”
그러니까 절대로 내려줄 수는 없다. 에아임이 결연한 목소리로 자신의 각오를 전했다.
자신을 내려달라며 발버둥 치던 서령이었지만, 그런 에아임의 목소리를 들은 그녀는 곧 에아임의 어깨에 축 늘어졌다.
“저기 또 와요!”
“그럼 일단 저쪽으로 피해보겠습니다!”
망보던 빌헬름의 말에 서령을 안은 에아임이 급히 움직였다.
이제는 베일라도 없는 상태. 이제는 적과 만나면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흐으, 흐으.”
안드로이드였기에 숨이 찰리는 없지만, 어쩐지 숨이 차오르는 것만 같은 느낌에 습관적으로 숨을 고른다.
이제는 슬슬 한계에 달한 듯 그의 시야도 흐려지고 있었다.
얼마나 더 서령을 데리고 움직일 수 있을까. 이대로라면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신체의 기동이 정지될 것이다.
그럼 빌헬름과 단 둘만 남은 서령은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까?
에아임은 애쉬와 베일라의 얼굴을 떠올렸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처럼 자신만만한 애쉬와, 딱딱하지만 언제든 기댈 수 있을 것처럼 항상 옆에 위치하고 있던 베일라.
애쉬는 지금 어떤 상태일까. 테러리스트들은 분명 장비의 수준도 대단해보였지만, 그럼에도 애쉬가 당하는 모습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그가 어서 바깥을 정리하고 이쪽을 도와주러 와야 할 텐데.
빌헬름이라면 자신이 완전히 멈추면 아가씨를 잘 챙겨주겠지?
에아임이 자신 이후를 걱정하며 그런 생각을 떠올릴 때였다. 가라앉은 서령의 목소리가 총격음 사이를 뚫고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에아임.”
“흐으, 예.”
인간이 아니라 안드로이드라 다행이다. 서령에겐 마지막까지 인간인 채 남고 싶었지만, 안드로이가 아니었다면 대화는커녕 진작 시체가 되어 바닥을 굴렀을 테니.
“에아임은…. 제가 알던 에아임이 맞죠?”
“예. 아가씨를 처음 뵀던 순간부터 저는 저였습니다.”
그래, 에아임은 유진혁 회장으로부터 유서령 아가씨에게 전해질 때부터 안드로이드, 에아임 펠튼이었다. 그녀의 보좌로서, 친구로서, 가족의 대용품으로서 만들어진.
“…놀라긴 했지만 에아임이 사람이든 안드로이드든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흐으으, 예.”
서령의 목소리를 들으며 흐려진 어떻게든 전력을 집중해보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제는 흐릿한 세상을 어떻게든 구분하며 빌헬름의 말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혹시라도 책장에 부딪혀 아가씨가 다치기라도 하면, 안되는데.
“그러니까…. 앞으로도 저랑 같이…….”
“하, 하하. 감사합니다, 아가….”
“에아임 씨!!”
터억! 끝내 흐려진 시야에 그는 무너진 책장을 발견하지 못했다.
에아임은 놀란 빌헬름의 목소리와 함께 몸의 균형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자마자 서령은 안고 바닥을 굴렀다.
“윽.”
그의 품안에 들어온 서령이 작은 신음을 흘렸다.
에아임은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그의 하반신이 움직이지 않는다. 완전히 기동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흐려진 시야를 이제는 붉은 경고등이 가득 채웠다. 각 신체 부위가 한계에 달했다는 뜻이었다.
“에아임…. 에아임?”
에아임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자 서령이 그를 불렀지만, 그런다고 고장난 것을 고칠 수는 없다. 이제 정말로 끝이다.
더 이상은….
“죄송, 합니다. 아가씨.”
“에아임!”
서령이 흐느끼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에아임의 귓가에는 서령의 목소리와 경고음이 메아리처럼 계속해서 울렸다.
“안 돼!! 에아임까지……!!”
이제는 청각 기관도 맛이 가기 시작했는지 들려오는 서령의 목소리도 흐려졌다.
에아임은 자신의 끝이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이렇게라도 유서령 아가씨를 돕고 떠날 수 있어서.
“……! …!”
서령이 뭐라 외치는 게 느껴졌지만 그 내용까지는 알 수 없다.
에아임은 어떻게든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어떻게든, 끝까지 도와드리고 싶었는데…….
느낌은 들었지만 모두 똑똑히 전해졌을지는 모르겠다. 들리질 않으니.
에아임은 점차 어두워지는 시야에 뜨거운 무언가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울지 마세요, 아가씨. 제 마지막은 정말 가치 있었습니다.
*
“프하핫! 아, 역시 빵빵 터지는 게 재밌다니까!”
“그래? 난 거기에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싫어하는데.”
“…응?”
이리저리 폭발물을 던져대던 웃던 악마 가면, 후안이 갑자기 끼어든 타인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잿빛 은발과 짙은 청안. 잘 벼려진 칼날처럼 푸른 빛을 띈 눈동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네가 어떻게? 설마….”
조인 디아벨, 그 녀석이 당했나?
그러지 않고서야 이 녀석이 여기에 올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어떻게?
조인 디아벨의 실력 자체는‘웃는 악마’ 안에서도 엄청나게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그 신체까지 포함한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후안 자신보다도 서열상 한참 위. 못해도 상위권에는 들어가는 강자였는데 그런 그가 부하들까지 데리고 한 명에게 당했다고?
너무도 명확한 의심과 의문의 눈빛은 가면으로도 가려지지 않았지만, 애쉬는 그런 의문을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애쉬는 자신을 바라보는 후안의 의문을 풀어주는 대신 금이 간 군용 대검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그 빵빵 터져서 재밌다는 거, 어디 나한테도 한번 해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