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20화 (120/230)

〈 120화 〉 5. 후계경쟁(44)

* * *

솔직히 충격이다.

애쉬는 서재 안쪽 개인실에 보관해두고 온 에아임의 사체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 아저씨가 안드로이드였다니.’

솔직히 전부터 일반인은 아닐 것이라고 예상하긴 했다.

일반인보다 묵직한 발소리와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그런 요소들은 결코 에아임 정도의 체격에서 나올 수 없는 것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유진혁 회장이 은연중에 붙여둔 비서 겸 사이보그 경호원 정도겠거니 했는데, 아예 인간 자체가 아니었다니.

서령도 이번 일이 터지고서야 알게 된 것 같았는데, 그녀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복도를 걷던 중 여전히 어두운 표정의 서령을 돌아보던 애쉬는 자신을 부르는 빌헬름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애쉬 씨! 저기서 애쉬 씨 칼을 찾아왔는데요?”

“내 칼?”

애쉬는 빌헬름에 그가 이어 가리키고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빌헬름이 가리키고 있는 곳은 그들 일행과 이십여 미터 정도 앞선 곳에서 동행하고 있는 유진혁 회장 쪽.

탐색을 나갔던 유진혁 회장의 비서 중 하나가 그의 검을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애쉬는 그것을 발견한 즉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들의 어이없는 듯한 대화 소리가 들렸다.

“이런 걸 어디에 쓰라고 둔 거지?”

“테러범들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던데, 장식품 같은 것도 놓은 게 아닐까요?”

멀쩡한 칼을 장식품 취급하고 있는 유진혁 회장의 비서들. 그들의 대화를 듣던 애쉬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건 내가 반납한 건데.”

“아,당신은.”

애쉬가 끼어들자 놀란 듯한 유진혁 회장의 비서들.

그들은 애쉬가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개인실 바깥 서재 쪽에서 일어난 전투를 누가 끝냈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애초에 개인실 바깥으로 나간 게 그 혼자뿐이었으니 모를 수가 없는 일이다.

애쉬는 안드로이드인지 사람인지 모를 비서들의 경계하는 눈빛을 받으며 그들이 들고 있는 자신의 검을 가리켰다.

“그건 내 건데 받아가도 되겠지.”

“…얼마든지요.”

휙,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듯 검을 던져주는 비서. 애쉬는 그런 그들의 태도에 미간을 찌푸렸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변절을 경계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무슨 사나운 짐승한테 먹이 주는 것도 아니고.’

애쉬는 경계하는 비서들 너머로 유진혁 회장을 한 차례 본 뒤 자신의 일행에게 돌아갔다.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는 저 늙은이와 여기서 부딪혀봐야 좋을 건 없었다. 서령을 후계로 만들어 신분을 얻어야 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점수를 따도 모자를 판에.

“뭐래요?”

“그냥 주던데.”

“그건 다행이네요.”

빌헬름이 애쉬의 손에 들린 검을 보며 안도했다.

원래 애쉬가 들고 있던 군용 대검은 조인 디아벨의 목을 자르며 부러졌다.

애쉬가 맨손이 된 상태라 조인 디아벨이 경고한 다른 악마 가면의 존재가 계속 신경 쓰였는데, 애쉬가 자신의 무장을 찾은 상태라면 이제는 무서울 게 없었다.

검을 되찾은 애쉬와 일행은 계속해서 유진혁 회장 쪽 무리가 움직이는 것을 뒤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움직인 두 무리의 동행은 복도를 지나며 몇몇 하객들을 발견해 조금씩 불어났다.

그 중에는 서령의 경쟁자인 쌍둥이들도 있었다.

“살았다! 회장님!”

“내, 내 눈앞에서 사람이….”

유진혁 회장을 발견하고 화색을 띤 채 달려오는 쌍둥이의 누나, 유선화와 얼굴에 튄 피를 닦지도 못한 채 덜덜 떨고 있는 남동생 유성혁.

유장혁 부회장의 충격적인 죽음에 이어 자신을 지키던 경호원들이 죽기라도 한 듯 그 여파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몰려다니다 또 난리 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그렇게 이동을 계속하며 점점 커지더니 이제는 수십에 달하는 무리를 본 애쉬가 중얼거렸다.

아직 조인 디아벨과 후안이라는 악마 가면이 관리하는 곳을 벗어나지 않았는지 적과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그 정확한 경계를 모르는 이상 언제 튀어나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실례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움직이던 와중 유진혁 회장 측에서 비서 하나가 서령을 찾아왔다.

여전히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지만 감정이 조금 수습된 서령이 그를 맞이했다.

“…무슨 일이시죠?”

“회장님께서 이사님 측의 인재의 힘을 빌리고자 하십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제 쪽의 인재를요?”

“예.”

서령의 물음에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쪽의 인재라니. 누구의 힘을 빌려달라는 것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그녀 측에서도 가장 임팩트가 강한 애쉬였지만, 비서가 부른 이름은 그녀의 예상과 달랐다.

“빌헬름 메이젤. 그 해커 분의 힘을 빌리고 싶습니다.”

“네?”

빌헬름 또한 서령과 같은 생각이었는지, 뜬금없이 불린 자신의 이름에 의문을 나타냈지만, 곧 이어진 비서의 설명은 유진혁 회장이 빌헬름을 지명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저택의 중심에는 상황실과 중앙 통제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중앙 통제실에서…….”

저택 내의 CCTV 등을 관리하는 상황실과 중요 보안 시스템들을 관리하는 중앙 통제실.

그 중에서도 중요 보안 시스템을 관리하는 중앙 통제실에서 빌헬름의 힘을 빌려 적에게 점거당한 시스템을 원상복구 하겠다는 것이다.

“저희 또한 관련 분야의 전문가 수준은 되나, 그래도 이사님 측의 빌헬름 메이젤 님 정도 되는 인물은 없어 이렇게 요청 드립니다.”

유진혁 회장 측의 비서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어느 정도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게 중에서도 빌헬름 정도 되는 인물은 없다는 게 비서의 설명이었다.

“중앙 통제실을 되찾으면 외부로의 통신도 가능할지 모를뿐더러, 특히나 그곳에는 외부 격벽 제어 시스템도 자리하고 있으니 어떻게든 그곳만 되찾는다면 외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아….”

척 듣기에도 무척이나 중요해 보이는 작업 내용에 서령이 작게 목소리를 흘렸다.

활동을 철저히 숨긴 빌헬름의 존재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서가 말한 대로 중앙 통제실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 순간 이 사태도 끝이었다.

외곽 지역이나 슬럼 같은 곳에서는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공권력은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큰 힘 중 하나.

유성 그룹의 모든 고위 인사들이 모인 지점이 공격당했다는 것을 알면 그들 또한 전력을 다해 나설 것이었고, 그 규모는 말 그대로 상상 이상일 터였으니.

이건 거절하고 싶지도, 거절할 수도 없는 부탁이었다.

“빌헬름 씨.”

“네.”

“부탁드려도 될까요?”

“안전만 보장된다면 물론이죠.”

서령이 빌헬름을 불렀고, 빌헬름도 그녀의 뜻에 부응해 고개를 끄덕였다.

빌헬름의 긍정에 고맙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인 서령이 유진혁 회장의 비서에게 말했다.

“그럼 자세한 계획은 직접 얘기해보고 싶은데요.”

“예. 우선 도움에 감사드리며 바로 회장님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 * *

­ 촤아악!!

새까만 윤이 흐르는 칼날이 대기를 베어 가른다. 그 끝에 걸린 가면의 남자들이 단숨에 쓸려나갔다.

애쉬는 그 묵직한 감각에 미소 지었다.

“역시 에리히 영감 작품이 최고라니까.”

되돌아온 검의 손맛은 여전했다. 강도와 예기, 단 하나도 놓치지 않은 최고의 작품.

답답하기 그지없는 싸구려 군용 대검 따위를 쓰다 제대로 된 검을 잡으니 기분이 살았다.

그런 상쾌함에 미소 지은 애쉬였지만, 그를 지켜보던 다른 경호원들은 경악과 두려움을 느끼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저딴 게 가능하다고…?”

“아니, 그런 게 가능한가 아닌가를 따지기 이전에 표정을 봐. 인간을 썰면서 웃고 있다.”

“완전히 미쳤군.”

수군수군 떠들어대는 목소리들.

거슬리는 내용의 말도 많았지만, 애쉬는 거기에 더 신경을 쏟지 않았다.

저런 것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다면 이미 그가 살던 71구역 거주지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럼 마지막.”

“허억…!”

쓰윽, 가볍게 검을 그어 남은 한 명의 목을 떨어뜨린다.

마지막까지 가면의 남자들을 모두 처치한 애쉬는 검을 거뒀다.

애쉬가 검을 거두자 뒤에서 그것을 바라보던 경호원이 쭈뼛쭈뼛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 그럼 주변은 정리 됐으니 계획을 실행할 분들을 데려와도 되겠습니까?”

“어.”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게 어지간히도 불편한 모양인지 애쉬가 고개를 끄덕이자 곧장 자리를 피해 돌아갔다.

저 뒤쪽에서 따라오고 있는 서령과 유진혁 회장의 무리를 불러오기 위함이다.

다른 몇몇의 경호원들과 함께 정찰 겸 적 소탕을 같이하고 있던 애쉬는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봤다.

[중앙 통제실]

*

!경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

인가 없이 접근 및 출입을 시도하면 강력한 제제를 받으실 수 있으며, 이로 인한 책임은…….

*

중앙 통제실이라는 문구가 적힌 명판 밑에 붙어있는 경고문.

이곳이 지금부터 가장 중요한 작업이 시작될 장소였다.

그 앞에 서서 대기하고 있자니 애쉬를 뒤로하고 소식을 전하러 간 경호원이 서령 일행과 다른 유진혁 회장 측 인원들을 이끌고 돌아왔다.

그 중에서도 홀로 서있는 애쉬에게 먼저 다가온 것은 빌헬름이었다.

“애쉬 씨, 고생 많으셨어요.”

“뭐, 고생이랄 것까지야.”

빌헬름의 공치사에 애쉬가 별 것도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맨손으로 조인 디아벨 같은 놈들을 몇 명씩 상대한 것도 아니고, 일반 가면들 같은 잡졸 몇으로는 발걸음조차 멈출 수 없다.

진심이 잔뜩 묻어나는 애쉬의 말이었지만, 빌헬름은 고개를 저으며 한 손으로 애쉬의 찢어진 손을 가리켰다.

“평소였다면 그랬겠지만 지금은 손을 다치셨잖아요.”

조인 디아벨의 머리를 맨손으로 가격한 후 찢어졌던 상처. 피가 어느 정도 멎은 뒤 지금은 붕대를 대신한 옷감 따위로 감싸져 있었지만, 움직이자 조금 찢어진 듯 다시 붉은 피가 베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애쉬는 그런 것조차 별 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좀 아픈 게 거슬리긴 한데, 그냥 놔두면 금방 낫는 상처야.”

“…허세 같은데 또 완전히 믿지 못할 것도 없어서 이상한 기분이네요.”

애쉬의 말을 들은 빌헬름이 애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애쉬가 그렇게 말하니 정말로 아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것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얘기였지만, 애쉬가 여태껏 한 일 중 상식에서 크게 어긋난 것이 어디 한둘이던가.

무의식중에 애쉬를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빌헬름은 그냥 넘어갈뻔 하다가도 걱정에 괜히 말을 더했다.

“아무튼 이번 일이 끝나면 병원이나 한번 가보죠. 신분 문제는 잠깐 정도라면 제가 어떻게든 해결해드릴 테니까.”

“하. 그래, 걱정은 고맙다.”

“네…아니, 머리는 헤집지 말아주세요! 제가 오늘 얼마나 열심히 꾸미고 왔는데…!”

“어차피 다 파토 났는데 어때.”

애쉬가 고맙다며 머리칼을 마구 헤집자 기겁하며 몸을 뺀 빌헬름이었지만, 애쉬는 픽 웃으며 대꾸할 뿐이었다.

“아, 오늘 머리 만지느라 투자한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날아갔잖아요.”

애쉬의 손길을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머리가 까치집이 된 빌헬름이 괜히 투덜거렸다.

그리고 애쉬에게 양해를 구한 뒤 그를 지나쳐 자리를 떠났다.

“그럼 전 먼저 가볼게요. 이제 슬슬 작업을 시작할 때라.”

“오냐.”

빌헬름은 유진혁 회장의 비서들과 협업을 위해 움직였고, 자신의 할 일을 마친 애쉬도 자리에서 벗어나 서령에게로 돌아갔다.

그녀는 유진혁 회장과 대화 중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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