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23화 (123/230)

〈 123화 〉 5. 후계경쟁(47)

* * *

총탄의 빗속을 헤치고 움직이는 애쉬의 몸짓은 생명의 위협에 다급히 움직인다는 느낌보다는 차라리 하나의 춤사위처럼 보였다.

그만큼이나 움직임 하나하나가 끊임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상체를 짧게 움직여 폐 쪽을 노리고 날아오던 총탄을 피함과 동시에 검면으로 동선을 막는 총탄들을 걷어낸다.

­ 티디디딩!

애쉬가 검면으로 걷어낸 십여 발의 탄환이 금속 울리는 맑은 소리와 함께 튕겨나가고, 애쉬는 첫 번째로 목표했던 금속 관짝 근처에 도달했다.

“잘가라.”

­ 썩둑.

낮은 목소리와 함께 금속 관짝을 열기 위해 뭔가를 조작하던 놈의 목을 썰어버린다.

애쉬가 자신의 뒤에 온 줄도 모르고 잠금 장치 조작에 집중하다 목이 떨어진 일반 가면은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눈을 감았을 것이다.

비록 죽긴 했지만 그것은 무척이나 행복한 죽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왜냐면 바로 그 옆에 있던 일반 가면은 겨누고 있던 총구와 함께 팔과 어깨가 정확히 절반으로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새까만 칼날이 빛을 반사했다.

­ 싸악!

“으아아아악!!”

동료의 죽음에도 명령 없이는 입을 열지 않는 것 같았던 일반 가면도 이런 고통만큼은 참을 수 없었는지 바닥으로 쓰러진 채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애쉬는 거기에 더 시선을 주고 있을 수 없었다.

금속 관짝을 조작하고 있던 일반 가면의 목을 썬 직후 다른 놈의 총과 팔을 써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에 가까웠으나, 다른 일반 가면들이 겨눈 총구는 잡졸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빠른 속도로 그의 움직임을 따라왔기 때문이다.

애쉬는 쉴 새도 없이 곧장 발을 굴러 있던 자리에서 옆으로 튀어나갔고, 직전까지만 해도 그가 있던 자리를 못해도 수십은 될 총탄들이 꿰뚫었다.

그것을 느낀 애쉬가 생각했다.

‘한참 전부터 느꼈는데 확실히 수준이 좀 높아.’

탄속이야 전적으로 장비에 달렸기에 실력이 어떻든 다를 수 없었지만, 그것을 조준하고 사격하는 것은 인간은 같은 인간이라도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을 수 있었다.

같은 장비를 써도 혼자서 수십의 인간을 구멍 난 치즈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총잡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잡졸 하나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시원한 바람구멍이 뚫려버리는 놈이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일반 가면들은 애쉬가 생각하는 기준 안에서도 제법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굳이 따져보자면 잡졸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곳에.

‘회사’의 ‘땅거미 부대’는 하나하나가 일반 잡졸이라고 할 수 없을 놈들이었기에 논외였지만, 반대로 그들을 제외하면 지금 만난 일반 가면들이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전에 봤던 카우보이모자, ‘골든 캐니언’이 이끌던 서부 총잡이 컨셉충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공동 1위를 맡고 있는 것이다.

사이보그인지, 아니면 강화인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움직임을 손과 눈이 어느 정도 따라오고 있다는 점에서 애쉬가 봐왔던 슬럼의 일반 갱들과는 비교를 하는 것 자체가 미안할 정도.

그런 인원이 열, 스물도 아니고 그 세 배에 가까웠으니 통제실 입구 쪽의 경호원들이 없었다면 싸움이 더 귀찮아졌을지도 몰랐다.

애쉬는 앞을 가로막는 일반 가면의 목젖을 베어낸 후 제 목을 붙잡고 바람 새는 소리를 내는 놈을 방패삼아 앞으로 나아갔다.

“크흐읍…!”

이미 죽을 예정인 것을 알았는지, 아니면 아군이 잡혀있더라도 애쉬를 공격하는 게 중요하다는 건지 다른 놈들은 애쉬를 향해 계속해서 사격했고, 총탄이 박힐 때마다 고기 방패가 된 일반 가면의 남자는 고통의 신음소리를 흘리며 몸을 떨었다.

그렇게 몇 걸음 지나지도 않아 방패막이가 된 일반 가면이 축 늘어졌고, 애쉬는 곧장 놈을 던져버리며 몇 미터 남지 않은 거리의 다른 금속 관짝으로 향했다.

“흐아압!”

방어형으로 개조된 사이보그라도 되는지 동료들이 쏘아내는 총탄을 등지고 달려드는 일반 가면이 하나.

상대가 일반적인 인간이었다면 모르겠지만 하필이면 애쉬, 그것도 제대로 된 검을 들고 있는 그가 상대라는 것이 놈의 불행이었다.

이렇게 달려드는 놈들에게는 총탄을 걷어 내거나 도탄 시킬 때와 달리 기술도 필요 없었다.

애쉬는 눈 깜짝할 새 검을 휘둘려 놈의 사지를 베어냈다.

­ 촤아악!

예상대로 검 끝에 걸리는 감각이 인간이나 강화인간 치고는 많이 단단하다. 무슨 5단 합체 로봇이 합체를 풀기라도 했는지 남자는 팔다리가 떨어졌음에도 거의 피를 흘리지 않으며 바닥을 굴렀다.

안드로이드인지 신체를 기계로 완전히 갈아치운 사이보그인지는 모르겠지만, 애쉬는 그곳에 시선을 주지 않고 앞으로 향했고, 또 다른 금속 관짝의 보안을 해제하고 있던 일반 가면을 처리했다.

“켁!”

이것으로 둘.

다시 한번 총탄이 쏟아지는 자리를 피한 애쉬는 자리를 옮기며 흘깃 악마 가면의 위치를 살폈다.

‘…아직도 제자리?’

악마 가면은 여전히 처음과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것도 자신들의 뒤편으로 파고든 애쉬에게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듯 팔짱만 낀 채 부하들이 썰려나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움직일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 같았다.

‘왜지?’

애쉬가 생각했다.

애쉬 혼자 일반 가면들을 상대했다면 통제실 쪽을 공격당할 수도 있었겠으나, 지금은 경호원들이 나름 잘 막아주고 있는 상황.

그쪽의 사망자도 있어 보이긴 하는데 그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열세에도 불과하고 무난히 잘 막고 있는 것이다.

저쪽의 목적은 통제실에서의 시스템 복구를 막는 게 아니었나?

그것을 막으려면 어떻게든 시간을 아껴가며 이곳을 뚫어야 할 텐데, 급한 기색이라곤 보이질 않는 게 이상했다.

애쉬는 악마 가면이 보이고 있는 여유로운 태도에서 위화감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일단은 저걸 열고 있는 놈들을 막는다. 그리고….’

그것을 반복하며 피해를 쌓은 뒤 좀 더 편안한 환경에서 악마 가면을 처리한다.

수십에 달하는 일반 가면들의 지원이 없다면 아무리 악마 가면이 대단한 실력자라고 해도 맞싸움에서 시간을 끌릴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흐아악!”

애쉬는 악마 가면을 계속해서 의식하며 움직였고, 곧 세 번째 금속 관의 봉인을 풀던 일반 가면의 가슴께를 갈라 놈이 제 심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왔다.

후방에서 애쉬에게 당한 제 부하의 숫자가 열댓은 되는데 여전히 악마 가면은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그렇다면 이쪽에도 나쁠 건 없다.

언제까지 여유를 부릴 수 있나 보자. 그런 생각으로 애쉬가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일 때였다.

“B­5번 개방 완료했습니다!!”

“B­2번도 완료했습니다!!”

계속해서 울리고 있는 총격음 사이로 일반 가면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애쉬는 그 외침을 듣자마자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고, 자신이 경계하던 금속 관짝 두 개의 봉인이 풀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세 개의 개방을 막는 사이 남은 세 곳 중 두 개가 열린 것이다.

금속 관짝이 열린 것을 확인한 애쉬는 곧장 시선을 악마 가면에게 돌려 반응을 확인했다.

그는 여태껏 관망하고 있던 것을 끝내고 참전하겠다는 듯 팔짱을 풀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쪽도 준비가 됐으니 제대로 시작하지.”

애쉬가 아니었다면 총격음, 수류탄 따위의 폭발음에 묻혀 제대로 듣지도 못했을 목소리.

악마 가면이 그런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 부우우우웅!

금속 관에서 새까만 벌레 떼가 날갯짓 소리와 함께 날아올랐다.

그것을 본 애쉬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벌?”

한 쌍의 날개, 강인해 보이는 턱과 당장이라도 적을 공격하기 위해 바짝 세운 독침까지.

저 금속 관짝에 숨기고 있던 게 벌이었다고?

금속 관에서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벌들을 자세히 살피던 애쉬는 이내 그것이 일반적인 벌이 아님을 눈치 챘다.

성인 남성의 엄지손가락 크기는 될 법한 엄청난 크기와 매끈한 금속질의 몸체.

날개 또한 반투명한 벌의 그것이 아니라 특수한 금속으로 된 듯 빛을 반사한다.

저걸 뭐라고 해야 할까.

저것은 일반적인 벌이 아니다. 저건…….

‘인공 곤충?’

인간의 필요에 의해 제작된, 인공 곤충이었다.

애쉬는 두 개의 금속 관에서 전장의 일부분을 가득 매울 정도로 쏟아져 나와 살벌한 날갯소리를 울리고 있는 그것들을 보며 조인 디아벨의 마지막 충고를 회상했다.

‘검은 머리칼의 악마 가면을 보면 자리를 피해라, 그 남자는 강화 인간에게 질 수가 없는 상성을 갖고 있으니.’

애쉬는 그 말을 떠올리며 이제는 뭉게뭉게 피어오른다는 말이 더 어울릴 벌떼를 바라봤다.

조인 디아벨의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강화 인간이라고 해도 인간의 엄지손가락만 한 인공 벌이 수천, 어쩌면 일만은 되는데 어쩔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당장 열린 금속 관의 숫자가 겨우 두 개였으니 다른 네 개의 관짝까지 열린다면 수만은 될, 말도 안 되는 숫자.

조인 디아벨의 말은 분명 틀린 말이 아니었지만, 애쉬는 저 엄청난 벌떼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저게 강화인간에게‘는’ 질 수가 없는 상성이라고?”

애쉬의 생각은 달랐다.

조인 디아벨은 강화인간에게‘는’ 질 수가 없는 상성이라고 말했지만, 저것은 강화인간에게‘도’ 질 수 없는 상성.

강화인간이 아니라 사이보그, 안드로이드여도 어쩔 수 없는 재앙이었다.

‘여유를 부린다 했더니, 이딴 걸 숨겨두고 있었군.’

경호원들이 지닌 소총 수십 정 따위로 저걸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애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총탄도 날개가 아닌 몸체에 맞는다면 끄떡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보였고, 또, 경호원들이 저만한 벌레의 날개만 골라 맞출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들도 아니었다.

마구잡이로 난사하다 운 좋게 몇 개나 떨어뜨리면 다행이지.

‘저건 절대 저쪽으로 보내면 안 된다.’

애쉬로서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답이 안 보이는데, 저쪽으로 보내는 순간 경호원들은 전멸이었다.

날갯짓하며 공중에 떠오른 인공 벌떼를 보던 애쉬는 악마 가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마도 저 벌떼를 통제하는 것은 악마 가면.

저런 말도 안 되는 병기를 잡졸 따위에게 맡겼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좀 무리해서라도 놈을 친다.’

목표가 바뀌었다. 저딴 걸 본 이상 상대방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버릴 수밖에 없었다.

벌의 배에 달린 독침에도 아마 치명적인 독극물이 들어있을 확률이 높은데, 아무리 애쉬라도 수천, 수만에 달하는 벌떼에게 단 한 번도 쏘이지 않고 돌파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것을 조종하는 본체를 최대한 노리며 시간을 끌어보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 부우우우웅!!

애쉬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벌떼의 날갯짓 소리에 집중하며 검을 전력으로 쥐었다.

일단은 저 인공 벌떼가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 시험해본다. 무척이나 위험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었다.

만약 저것들이 어느 정도 속도 이상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오랜만에 진짜 위험하겠는데.’

이 자리에서 절대 도망치지 않을 생각인 애쉬도 목숨을 걸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렇게 그가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두 개의 금속 관에서 쏟아져 나온 인공 벌떼 중 한 무리가 악마 가면의 주위를 감쌌고, 다른 한 무리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발견한 애쉬는 발을 굴러 곧장 악마 가면에게 달려들었다.

'어디 한번 제대로 놀아보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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