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 5. 후계경쟁(48)
* * *
벌의 공격 방식은 무척이나 단순하다.
턱으로 물어 끊기, 그리고 배에 달린 독침으로 찌르기.
그 단 둘뿐이었지만 사람들은 벌을 무서워했다.
왜냐면 작고 빨라서 잡기도 힘들뿐더러, 보통 그 숫자가 무척이나 많기 때문에.
현재 애쉬가 있는 게임 속 세상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는 소식이긴 했지만, 과거 지구에 있을 적에는 벌에 쏘여 죽은 사람의 얘기를 제법 들은 적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과거의 애쉬, 지구의 이진현은 벌을 무서워하지도 않았고, 그것에 쏘여 죽는 일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왜냐면 그냥 피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지는 것 같았다.
부우우웅!
귓가에 거친 날갯짓소리가 울린다. 어떻게든 인공 벌떼에게 둘러싸이지 않도록 움직이고 있는 애쉬였지만, 그 숫자가 숫자다보니 그것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여태껏 단 한 방도 쏘이지 않은 게 기적같이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B1번 개방 완료!!”
“망할.”
애쉬는 자신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시선을 끌기 위해 기세 좋게 뛰어나간 것은 괜찮았으나, 이 개떡 같은 날벌레들에게 막혀 악마 가면에게 도달할 수가 없다.
그런 와중에 하나의 관이 더 열린 것이다.
이것으로 벌써 열린 관의 숫자가 넷.
못해도 만 단위에 달하는 인공 벌들의 떼는 온갖 지옥 같은 곳을 헤쳐 나온 애쉬로서도 어찌할 방법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막막했다.
수만에 달할 인공 벌떼를 모두 베어버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으니까.
악마 가면이 꺼낸 인공 곤충 병기는 대인 무기로서는 정말 더할 나위 없는 물건이었다.
부우우웅!!
다시 한번 주변을 감싸 돌려는 벌떼. 애쉬는 재빨리 그것에서 빠져나가며 검을 휘둘러 정면에 위치한 인공 벌 몇 마리를 베어냈다.
‘저걸 어떻게 공략하지?’
결국 본체를 잡든 인공 벌들을 모두 쓸어버리든 해야 했는데, 어느 쪽도 당장은 가능할 것 같지가 않았다.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로 달려드는 벌떼를 피하며 방법을 고민하던 애쉬는 마땅한 수단을 찾지 못하고 뻔한 시도부터 해보기로 결정했다.
‘안 돼도 일단 해보는 수밖에.’
감각을 열어 다가오는 벌들을 피하고, 눈으로는 가까운 시체를 찾는다.
분명 일반 가면들은 수류탄 따위의 폭발물을 몇 개씩 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시체에 아직 사용하지 않은 것들이 남아있지 않겠는가.
다행히 애쉬가 미리 잡아놓은 일반 가면들의 시체들은 아직 제 위치에 있었고, 애쉬는 자신이 원하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거다.’
어느 한 시체의 허리춤에 달린 폭발물. 그것은 애쉬도 사용할 줄 아는 물건이었다.
애쉬는 곧장 방향을 틀어 발견한 시체를 스치듯 지나가며 거기서 폭발물과 소총을 회수했다.
폭발물은 멀쩡하고, 소총 내부에는 여분의 탄환이 들어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그는 폭발물의 안전장치를 풀고 손에 쥐었다.
‘폭발로 공간을 열고 총알을 박아 넣는다.’
애쉬가 제아무리 빠르게 던진다고 해도 폭발물이 악마 가면에게까지 닿을 수는 없을 것이다.
놈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것을 그냥 맞아줄 리가 없고, 아마도 주변의 벌들에게 막혀 떨어지겠지.
하지만 폭발로 인한 충격파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공중을 나는 것들은 대기의 흐름에 무척이나 민감했고, 그것은 저 인공 벌들도 마찬가지.
어떻게든 버티려고 한들 충격파에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이용해 폭발 직후 생겨난 빈 공간으로 총탄을 쏟아 붓는다.
머릿속에서 대략적인 그림을 그려본 애쉬는 바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따라오는 벌떼를 생각하며 동선을 크게 잡아 움직였다.
단순히 폭발물을 던져 공간을 여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최대한 벌떼를 흩어지게 하는 것도 중요했다.
악마 가면의 주변에 위치한 벌떼의 숫자를 낮추면 그만큼 성공확률도 올라갈 테니.
부우우웅!
계속해서 따라붙는 벌떼.
그것을 확인하며 어느 정도 움직여 무리를 갈라놓은 애쉬는 바로 자신의 계획을 실행했다.
틱.
안전장치를 해제한 폭발물이 던져지는 순간 폭발물의 안에서 트리거가 돌았다.
그가 설정한 시간은 단 1초.
인공 벌떼를 흩어놓기 위해 동선을 크게 잡느라 악마 가면과의 위치도 수십 미터까지 떨어져 있다.
보통은 날아가다 중간에 터질 거리였지만, 애쉬는 그 짧은 시간 안에도 정확히 맞춰 넣을 자신이 있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완벽한 직선으로 폭발물이 날아간다.
“….”
아니나 다를까 애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악마 가면은 이럴 것을 예상했다는 듯 자신의 주변을 감싼 벌들을 조작해 모았고, 그렇게 벌떼가 모여드는 순간 폭발물이 터지며 불길을 내뿜었다.
콰아앙!!
불길과 함께 충격파가 일고, 피어오른 연기가 시야를 가린다.
여기까진 완벽히 계획대로.
그렇다면 그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차례였다.
폭발의 충격은 날벌레들이 막아줬을지 몰라도 그것들이 밀려난 사이의 총격까지 막을 수 있을까?
애쉬는 폭발이 터지기 무섭게 소총을 들어 지금은 연기에 가려진, 악마 가면이 위치한 자리에 드르륵 갈겼다.
솔직히 이것으로 완벽히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조인 디아벨은 놈의 서열이 5위라고 했던가?
그런 놈이 이런 벌떼 하나만 믿고 전장에 나섰을 것 같지는 않았으니.
그래도 약간의 피해라도 주기 위해 사격한 것이었는데, 총탄이 연기 속으로 빨려들어간 뒤 들려온 소리는 애쉬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었다.
티디디디디딩!!
인간의 살이나 석재로 된 벽에 박히는 게 아니라 금속에 튕겨나가는 것 같은 소음.
폭발로 인해 피어오른 연기가 조금 흩어지자 애쉬는 그것이 어디서 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연기 뒤로 드러난 것을 본 애쉬가 자신도 모르게 내뱉었다.
“…어이가 없네.”
그것은 벽이었다.
다름 아닌 인공 벌떼가 단단히 얽혀서 만들어진 금속의 벽.
방금 계획에 있어 애쉬의 착오가 있었다면 그것은 저 인공 벌떼가 진짜 생물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었다.
인간의 조작에 따르는 저 인공 벌들은 진짜 곤충처럼 멍청하지 않았으며, 또, 진짜 곤충들은 절대로 불가능한 것을 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저렇게, 서로의 몸과 다리를 연결해 폭발에도 무너지지 않는 벽을 만드는 등의 행동을 말이다.
챠르르르륵.
금속 쓸리는 소리와 함께 벽의 연결부가 풀려나가고, 다시 벌떼가 날아오른다. 폭발에 날개 손상을 입어 다시 날아오르지 못하는 것들이 있었지만, 그 숫자는 소수.
저것들을 모두 처리하려면 못해도 방금과 같은 폭발을 수백 번은 더 일으켜야 할 것 같았다.
“…….”
그렇게 다시 벌떼가 날아오르고, 그 사이에 위치한 악마 가면이 아무런 말도 없이 애쉬를 바라봤다.
마치 재롱은 다 부렸냐는 듯이 말이다.
“하.”
그런 악마 가면의 눈을 본 애쉬는 한 손에 들고 있던 소총을 그냥 던져버렸다.
저런 걸 본 이상 소총은 정말 장난감이나 다름없다.
폭발에도 견디는 물건인데, 소총 따위에 제대로 된 피해를 입을 리가 없지 않은가.
“B3, 6번 개방 완료!! 이것으로 모두 개방 완료했습니다.”
악마 가면과 눈을 맞추고 있던 애쉬의 뒤편에서 일반 가면의 외침이 들려왔다. 처음에 그가 개방을 막았던 관까지 모두 끝난 것이다.
그리고 일반 가면의 외침 이후, 다시 한번 대기가 울리는 듯한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부우우웅!!
이럴 줄 알았으면 악마 가면 쪽을 노리기보다 다른 금속 관의 개방을 막는 거였는데.
애쉬가 작게 후회했다.
수만에 달하는 거대 벌들이 사방에서 날갯짓하는 소리는 그것만으로도 살이 떨릴 정도의 위압감을 선사했다.
그것들이 노리고 있는 게 애쉬가 아니라 다른 경호원이었다면 첫 두 개의 금속 관이 열렸을 때 진작 나자빠졌겠지.
이제껏 잘 피해오던 애쉬였지만, 사방이 둘러싸인 지금은 어떻게 해도 완벽히 피할 방도가 없었다.
실탄이 아니라 그보다 탄속이 한참은 느린 비비탄 총알도 수천, 수만 발이 이렇게 사방에서 날아오면 답이 없는데, 심지어 그것이 유도 기능이 있는 벌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작게 한숨을 쉰 애쉬는 결국 최후의 수단을 강구했다.
“그래, 뭐. 처음부터 시간을 끄는 건 마음에 안 들었지.”
저 인공 벌들의 독침에는 분명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독 따위가 들어있을 게 분명했기에 독물에는 내성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만큼 조금 안전하게 가보려고 했는데, 상황이 따라주지를 않는다.
시간을 끄는 것도 불가능해진 이상 이제 남은 방법은 정말로 단 하나.
‘저것들을 억지로 뚫고 놈을 죽인다.’
정면돌파 뿐이었다.
*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 솜씨가 아닌데…?’
무슨 장비라도 쓰고 있는 건가?
어찌나 집중했는지 이젠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빌헬름이 생각했다.
벌써 상대와의 공방이 이어지길 몇 분.
슬슬 이상함이 느껴졌다.
공격받는 곳을 알아채고 반응하는 속도를 보며 내심 상대방의 실력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는데, 중간부터 패턴이 바뀌더니 작업 내용이 너무도 일정해진 것이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그것이 한 두 번이면 진짜 패턴을 드러냈구나 싶었겠지만, 수십, 수백 번이 되면 프로그램의 사용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의심하면서도 빌헬름은 하나의 의문을 풀지 못했기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프로그램이 내 실력을 따라온다고?’
빌헬름은 뒷세계에서도 소문난 정보상이었으며, 여태껏 제대로 된 비교 상대조차 찾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였다.
그런 본인에게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있던 빌헬름이었는데, 그것을 일개 프로그램 따위가 따라온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준의 프로그래머, 혹은 해커가 있었다면 이미 그 사람은 이 사이버 네트워크의 신이라고 불리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 의문을 풀지 못한 빌헬름은 계속해서 혼자 끙끙댈 수밖에 없었고,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상대방과 무한히 공방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러던 중, 빌헬름에게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빌헬름 씨.”
“…네?”
여태껏 가라앉은 분위기로 지켜보던 서령이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넨 것이다.
그것은 듣던 중 무척이나 반가운 소리였지만, 빌헬름은 그런 것 이전에 일단 난감하다는 느낌부터 받았다.
서령이 넷 워킹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익히 들어왔기에 알고 있었지만, 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몰랐으니 말이다.
아마 도와주겠다는 건 시스템 복구 쪽인 것 같았는데, 혹시라도 서령이 실수해 일이 잘못된다면 정말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어떡하지?’
서령에게 복구 작업을 맡기고 폐쇄회로에 집중하면 저 프로그램인지 뭔지를 뚫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서령에게 믿고 맡기기엔 그녀의 실력을 모르니 안심이 되질 않았다.
그런 빌헬름의 생각을 읽은 듯 서령이 입을 열었다.
“폐쇄회로 쪽에서 계속 싸우고 계신 것 같은데, 그쪽에 상대방 해커가 있는 거죠? 복구 작업 정도는 얼마든지 대신할 수 있어요.”
“…그걸 읽으셨어요?”
“네.”
이 저택의 폐쇄회로는 보안을 위함인지 일반적인 코드를 암호문으로 한번 뒤집어서 로그를 남겼는데, 그것을 읽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실력이 보통 이상은 된다는 소리였다.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빌헬름은 그것을 이해하고 바로 자리를 내어주었다.
시스템 복구에 할애하던 신경을 거두고, 손목에서 뽑아냈던 연결 단자를 회수한다.
상대방과 이제는 진짜 승부를 가릴 때다.
빌헬름이 그렇게 폐쇄회로에 집중하자 서령은 따로 챙겨온 무선 단말기의 단자를 꽂고, 그것을 통해 신경 인터페이스를 동기화했다.
그녀는 매우 간소한 신경 인터페이스만을 이식했기에 단자를 직접 연결할 수가 없었고, 그것은 직접 연결보다 반응 속도도 느리고 입출력의 딜레이도 컸다.
하지만 빌헬름처럼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게 아니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보안 시스템의 복구에 제한시간 따위는 없었으니까.
서령은 눈을 감은 채 빌헬름이 작업하던 시스템의 복구를 계속해갔고, 그녀에게서 떨어진 뒤편, 유진혁 회장이 그런 그녀를 조용히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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