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27화 (127/230)

〈 127화 〉 5. 후계경쟁(51)

* * *

“잡았다…!”

식은땀을 상쾌하게 닦아낸 빌헬름이 진심어린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누군가와 전심전력으로 부딪혀 본 게 대체 얼마만이던가. 상대방이 프로그램인지, 아니면 사람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았지만 결국 승리는 빌헬름 자신의 것이었다.

일단 폐쇄회로를 틀어막고 있던 게 뚫리자 그 안쪽으로 진입하는 것은 무척이나 쉬웠다.

아무리 유성 그룹 회장이 거주하는 저택의 보안이라고는 해도 진심으로 나선 빌헬름을 막아설 수는 없는 것이다.

“어디 얼굴 좀 볼까?”

폐쇄 회로 안쪽으로 진입한 빌헬름이 중얼거리며 CCTV들을 확인했다.

이 저택을 돌아다니며 확인한 CCTV의 숫자만 무려 수십 이상. 이 정도면 거의 빈틈없이 감시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움직임이나 얼굴도 확인할 수 있겠지.

“찾았다.”

다행히 ‘웃는 악마’ 측도 CCTV를 활용하기 위함인지 파손된 것은 없었고, 빌헬름은 어느 복도의 CCTV에서 당황한 기색으로 단말기를 두드리고 있는 상대방을 찾을 수 있었다.

40대 정도 돼 보이는 외모의 남자. 저 남자가 이번 일을 일으킨 주동자 측의 해커일 게 분명하다.

‘웃는 악마’ 측의 해커는 자신이 통제하고 있던 폐쇄회로를 빼앗긴 것을 깨닫고 주변의 CCTV를 찾으려는 듯 돌아보다 빌헬름이 지켜보고 있던 CCTV의 렌즈와 눈이 맞았고, 빌헬름은 정면으로 보인 남자의 얼굴을 자신의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어차피 이 저택에 갇힌 것은 저쪽도 마찬가지.

체크만 잘 한다면 모든 일의 정리가 끝난 후 하객인 척 빠져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폐쇄회로의 복구도 끝났겠다. 다시 시스템의 복구로 돌아가려던 빌헬름은 잠시 통제실 입구 쪽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다른 CCTV를 돌아봤고, 곧 거기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발견했다.

“…애쉬 씨가?”

애쉬 론모어. 언제나 무적처럼 보였던 그가 정신을 잃은 채 베일라에게 들려오고 있었다.

* * *

“이, 이게 무슨…….”

“…끔찍하군. 무슨 일이 나도 아주 크게 났겠어.”

유진혁 회장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저택. 지원 요청을 받아 격벽이 내려간 그곳에 도착한 웨인 시의 대테러부대가 침음을 흘렸다.

격벽이 내려가자마자 보인 것은 못해도 백 단위에 달할 경호원들의 시체.

현대 사회에서 이런 대규모 학살의 현장을 보는 것은 아무리 특수 상황에만 출동하는 대테러부대라고 해도 흔한 일이 아니었다.

당장 격벽이 내려간 마당에 보이는 것만 이 정도이니 내부에 존재하는 유성 그룹 고위 인사들의 경우에는 어떻겠는가.

‘잘못하면 유성이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겠군.’

그럼 그 여파는 웨인 시 뿐 아니라 연방의 도시 전체에 몰아칠 것이다.

유성 그룹은 연방에서도 손에 꼽는 초거대기업체였고, 그런 유성 그룹의 영향을 받는 곳이 절대 적지 않았던 만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피해를 보겠지.

웨인 시의 대테러부대장은 비록 경제 측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부디 유성 그룹의 고위 인사들이 무사하길 바랐다.

“진입한다.”

“예.”

대테러부대는 혹시 모를 폭발물에 주의하며 저택 안으로 진입했다.

­ 1번 팀 클리어.

­2번 팀 클리어.

­ 3번 팀, 시체 발견, 특이점 없음. 신상 확인 후 보고하겠음.

“확인했다. 나머지 팀은 계속 진입하도록.”

휘하 팀장들의 보고에 대답한 태테러부대장은 계속해서 지직거리는 통신 상태를 확인하고 생각했다.

‘재밍까지 철저하게도 작업해두셨군.’

저택 내에는 무척이나 짙은 통신방해용 재밍이 끼어 있었는데, 어찌나 방해 전파가 강하던지 지금 그들이 착용하고 있는 통신기기가 불과 한 달도 되기 전 공급받은 리델 사의 신제품이 아니었다면 이런 통신이 불가능했을지도 몰랐다.

­ 3팀 보고. 저택 내 사망자 4인. 신상확인 결과 유성 그룹 고위 인사의 자제들로 판명.

“확인. 인근 시체가 발견된 만큼 적이 있을지 모르니 혹시 모를 매복에 주의하도록.”

­ 확인. 그럼 3팀도 계속 진입하겠음.

긴장 속에서 대테러부대 산하의 팀들이 계속해서 저택을 수색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시체만 발견될 뿐 이상할 정도로 적과 마주치지 않았다.

1팀 저택 중심부 근처에 도달.

­ 2팀. 사망자 신상 확인 결과 유성 물류의 상임이사급 인물들로 판명. 이쪽도 중심부까지 진입하겠다.

“중앙팀 확인했다. 지원이 필요하면 즉시 요청하도록.”

­ 3팀 생존자 한 명 발견. 본인이 유성 그룹 고위 이사라 주장중. 신상 확인 후 인계하겠음.

“알겠다. 이쪽도 곧장 인원을 보내지.”

생존자를 발견했다는 보고에 대테러부대장이 대답했다.

드디어 첫 번째로 나온 생존자. 어째서 혼자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본다면 저택 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진짜 최고위급 인사의 시체는 생각보다 별로 없어. ’웃는 악마‘ 놈들도 뭔가 노리는 게 있었던 건가.’

발견된 시체들의 신상 정보를 맞춰보던 대테러부대장은 생각보다 고위급 인사가 없는 상황에 그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웃는 악마’는 어떤 정보도 알려지지 않았으며, 오로지 이름만 밝혀졌음에도 세계에 모르는 이들이 거의 없는 유명한 테러리스트들이자 분쟁 지역의 용병 팀이었다.

단 한 번도 제대로 검거된 적이 없으며 모든 일이 끝나고서야 그들의 소행임이 밝혀지던 의문의 부대.

이번 유성 그룹 사태처럼 사건 중에 외부로 소식이 나온 것은 처음이었으니 어쩌면 이번 일에서 그들의 정체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부디 그러길 바랐다.

그렇게 돼야 이번 사건의 희생자들의 억울함도 풀어줄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런 생각에 빠져있던 대테러부대장은 휘하 팀장들의 긴장 섞인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 윽, 망할.

­ …완전히 전쟁터가 따로 없군. 여기서 무슨 처형식이라도 있었던 건가?

­ 미친 새끼들….

산전수전 다 겪은 대테러부대의 팀장들이 낮은 목소리로 욕지거릴 내뱉었다.

그에 그들의 바디캠을 통해 전송되는 영상으로 시선을 돌린 대테러부대장은 사건 현장만 수십 년 이상 다닌 경력에도 불구하고 구역질이 올라올 뻔한 것을 느꼈다.

바닥에 늘어져 있는 수많은 시체들. 그것들이 하나같이 토막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팔, 다리, 머리, 목, 가슴, 배.

가릴 것 없이 예리한 것으로 잘라내기라도 한 시체가 무려 일백에 가깝다.

쏟아진 피는 발밑을 가득 적시고 있었고, 내장 따위가 늘어진 것은 예삿일도 아니었다.

전쟁터와 같은, 아니, 어쩌면 전쟁터 한복판보다도 끔찍할 광경.

사건 현장만 수십 년 경력의 대테러부대장이 끔찍하다 느낄 정도의 모습이었으니 현장에 직접 나가 있는 이들이 어떤 기분일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나마 경력이 있는 팀장들도 욕지거릴 내뱉는데, 팀 내의 통신망이 구역질 소리로 가득하겠지.

그 누구도 그것을 지적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일단 계속 진입을….

­ 외, 외부 지원인가?! 외부에서 사람들이 왔습니다!!

보고하려는 대테러부대 팀장의 목소리를 누군가의 외침이 뒤덮는다.

그 외침 직후 대테러부대는 내부의 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생존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새, 생존자. 생존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혹시 모르니 일단 접근을 막고 확인을…….”

­ 당장 의료팀을 불러요!!!

절규하는 듯 외치는 여성의 목소리가 단숨에 모든 소리를 짓눌렀다. 그에 자연스럽게 바디캠의 초점이 목소리의 주인에게 향한다.

“…유서령 이사.”

대테러부대장은 화면에 들어온 여성의 얼굴만 보고도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번 작전에 투입되며 그가 급히 머릿속에 우겨넣은 중요 인물.

유진혁 회장의 손녀이자 유성 그룹을 이어받을 수도 있는 이의 얼굴이었으니까.

­ 일단 진정하시고 얘기를….

­ 의료팀부터 부르라고요! 당장!!

­ 아, 알겠습니다.

유서령 이사에게 말하려던 팀장이 기에 눌려 대답했다. 아직 위험이 모두 제거된 것인지도 알 수 없었고, 그런 만큼 저렇게 단번에 대답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대테러부대장은 그런 팀장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의료팀을 찾고 있는 걸 보면 분명 부상자가 있는 거겠지.

혹시라도 그 부상자가 유진혁 회장이거나, 그의 핏줄 중 하나인데 의료팀의 출동이 늦어 사망하기라도 한다면 뒷감당을 할 수 없었다.

공권력이 개인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됐지만 그게 현실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의료팀을 출동시키는 수밖에.

“들었지. 의료팀 출동시켜.”

“…예.”

대테러팀장은 옆의 오퍼레이터에게 명령했고, 곧 현장을 향해 의료팀이 나갔다.

* * *

삐이이,

“안 돼, 죽지 말아요, 애쉬…. 제발…. 흐윽.”

사이렌을 켠 구급차가 도로를 내달린다. 서령은 침대에 누워 산소 호흡기를 차고 있는 애쉬를 보며 눈물 흘렸다.

아버지인 유장혁 부회장.

가족과도 같았던 비서, 에아임.

그리고 이제는 몇 달간 그녀를 지키고 알게 모르게 감싸주던 애쉬까지 세상을 떠나려 한다.

베일라가 어떻게든 안고 돌아온 애쉬의 모습은 말 그대로 산송장이라고 해도 틀릴 게 없었다.

온몸은 주입된 독으로 인해 부풀어 오르거나 이상하게 변색되어 있었고, 그 독이 주입된 수백 개의 구멍에서는 피와 독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미약하게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더라면 산송장이 아니라 그냥 시체라고 해도 믿었을 상황.

죽음이 결정되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았으나 서령은 그를 포기하지 못했다.

베일라는 독의 존재를 경계해 서령이 섣불리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 했지만 그녀는 어떻게든 애쉬와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고, 그의 옆을 지켰다.

“이건….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살아서 온 겁니까. 이미 늦었습니다, 출혈량이나 피부의 상태를 보면 시간이 좀 지난 것 같은데 의료의 신이 오지 않는 이상…….”

“닥쳐어어!! 닥치고 살려내!! 살려내라고!!! 여기서 애쉬가 죽으면 당신들도 전부 죽일…!!”

“이, 이사님, 진정하세요! 그리고 의사 분들,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해주세요! 살려내면 분명 그만큼의 보상을 해드릴 거고, 설령 돌아가신다고 해도 책임은 묻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제발요,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서령을 말린 빌헬름이 필사적으로 외쳤다.

애쉬는 나락으로 떨어져가던 그의 인생을 구해준 구원자였다. 그런 그가 이렇게 아무런 조치도 받지 못한 채 죽는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여기서 끝을 본다고 해도 시도라도 해봐야 했다.

그런 서령과 빌헬름의 감정을 느낀 것인지 의료진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알겠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겠습니다. 그 뒤는 신께 맡기는 수밖에요.”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애쉬가 눕혀진 의료용 침대가 빌헬름과 서령을 지나쳐 수술실로 들어간다.

­ 철컥.

“아, 아아.”

수술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서령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전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애쉬를 만나기 전에도, 만난 후에도, 그리고 그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지금도.

그저 기도하는 것밖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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