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30화 (130/230)

〈 130화 〉 5. 후계경쟁 ­ 후일담(3)

* * *

소드 마스터라는 별명은 애쉬가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지난 20여 일 사이 무척이나 유명해져 있었다.

어디선가 유출된 테러 현장의 영상 자료는 순식간에 화제가 되었고, 수많은 이들이 그 영상을 보고, 또 분석했다.

*

제목 : 이 새끼 대체 뭐하는 새끼임?

조회 수 – 30,131

[영상]

뉴스에서 보고 영상 직접 찾아 봤는데 1분 27초~28초 감속시켜서자세히 보면 칼 휘두르면서 총알 튕겨나가는 게 희미하게 보임 칼로 총알을 패링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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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296)

익명 – 어디서 본 것 같았는데 ‘그 새끼’네 ㅋㅋ

└ 익명 – 그 새끼가 누구임?

└ 익명 – 그 슬럼 쪽에서 유명한 새끼 있음 외모가 딱 그 새낀데 궁금하면 그쪽 지역 커뮤니티 가서 찾아보셈

└ 익명 ­ 유성 그룹 소속이라는데 슬럼은 뭔 소리?

└ 익명 – 최근에 슬럼에서 안보이더니 도시 안쪽으로 들어간듯

익명 – 나 이 새끼 누군지 알 것 같다

└ 익명 – 누군데?

└ 익명 – ㅁㅊㅋㅈㅇ라고 있음 머리색이나 칼 들고 있는거나 딱 그 새끼임

익명 – 이거 아무리 봐도 주작인데 믿는 새끼들은 저능아들임?

└ 익명 – 응 이미 전문가들 교차검증 나왔어~ 주작 아니야 이 저능아야~

└ 익명 – ㅋㅋㅋ

*

“아주 난리가 났군.”

뒷세계 소속의 인간들이 주로 사용하는 다크 웹, ‘게이트’에서 자신에 대한 글을 확인해 본 애쉬가 중얼거렸다.

‘게이트’도 뉴스에 나온 영상으로 떠들썩하긴 마찬가지였다.

뒷세계의 온갖 인간들이 그의 영상을 돌려보며 분석하고 있었고, 이미 정체는 거의 밝혀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

아무리 이곳이 다크 웹이라고는 해도 이용자가 수만에 달하는 커뮤니티였다. 이 정도라면 뒷세계뿐 아니라 앞쪽에서 활동하는 놈들 중 일부에게까지 그의 이름이 알려졌을지 몰랐다.

“대체 어쩌다 퍼진 거야?”

애쉬가 단말기를 병상 옆 테이블에 툭 던져 놓으며 옆자리의 서령에게 물었다.

그에 그녀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저택을 복구하는 현장에서 유출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은 그야말로 우연의 일치였다.

사건이 끝난 직후 휴머노이드였던 에아임의 시신과 ‘웃는 악마’ 측에서 가져왔던 장비들을 모두 회수한 유진혁 회장은 저택의 복구를 명령했고, 유성 그룹의 많은 인력들이 투입돼 사고 현장을 정리했다.

그러던 중 비교적 최근에 입사한 인력 하나가 이 저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부서진 외벽 사이로 드러난 CCTV 회로에 자신의 단말기를 연결한 것이다.

평소였다면 회로에 접속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정보를 꺼내지 못했겠지만, 하필이면 빌헬름이 한 차례 난장판을 친 폐쇄회로는 조금의 전문지식만 있어도 뚫을 수 있을 정도로 보안이 망가져 있었고, 현장 직원은 그를 통해 영상을 캐낼 수 있었다.

“그리고 블러 처리한 그걸 개인 SNS에 올렸다가 그대로 퍼져나가게 된 거에요.”

멍청한 현장 직원은 SNS 중독자였고, 영상을 올렸다가 일이 커지는 듯하자 곧장 삭제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유진혁 회장 저택 테러 사건’이라는 키워드와 맞물려 순식간에 퍼져나간 영상은 웨인 시만이 아니라 연방 전체에 뿌려졌고, 유성 그룹에서는 영상을 유출한 직원을 순식간에 잡아들여 반년 정직 처분을 내렸다.

“겨우 그걸로 끝?”

“당장은 저희로서도 어쩔 수가 없어요. 너무 유명해졌으니까요.”

설명을 들은 애쉬의 물음에 서령이 대답했다.

유진혁 회장의 성격상 가만히 내버려둘 사람은 아니었으나, 서령의 말대로 지금 당장은 방법이 없었다.

사건이 터진 직후라 한창 영상과 그것의 게시자에게 관심이 쏠려있는 상태에서 직접적으로 해코지를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

애쉬가 한숨을 흘렸다. 이 일은 서령과 유성 그룹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었고, 그들의 입장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라 그로서도 할 말이 없었다.

다만 앞으로 일어날 귀찮은 일들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는 것이다.

애쉬는 과거 슬럼에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매일 매일이 혼란의 연속이었다. 사무소를 습격하는 갱들과 애쉬의 유명세를 듣고 찾아오는 온갖 잡상인들, 그리고 정신이 나가서 이유 없이 덤벼들던 쓰레기들까지.

그런 것들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훤하다.

슬럼 또한 규모가 상당했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도시의 일부, 몇 개 구역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시 전체다.

애쉬는 앞으로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일단, 음…. 제가 최대한 손을 써볼게요.”

애쉬가 상상만 해도 어지럽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그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 지 알고 있는 빌헬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이미 이렇게 퍼져버린 이상 완전히 틀어막을 방법은 없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노력해보면 어느 정도는 줄어들지 않겠는가.

하지만 애쉬는 그런 빌헬름의 목소리에 고개를 저었다.

“됐어. 너라고 하루 종일 붙어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아무리 빌헬름이 뛰어난 해커라고는 해도 결국 한 명의 사람인 이상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고생시켜봐야 나올 것도 없는데, 굳이 그럴 이유는 없다.

나중에 일이 들이닥치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한 애쉬는 그쯤에서 이 주제에 대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그는 서령과 빌헬름, 그리고 베일라로부터 자신이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들었는데, 서령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얘기가 흘러나왔다.

“아마 조만간 후계가 결정 날 것 같아요.”

“응? 갑자기?”

“네. 이번 일도 있었고, 회장님께서 거기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저희들을 다시 한번 모으셨거든요.”

서령이 너무 뜬금없다는 듯한 목소리의 애쉬에게 대답했다.

문맥상 여기서 서령이 말하는 ‘저희’라는 것은 분명 이번 후계경쟁의 후보가 되는 이들일 것이다.

하지만 결정이 빨라도 너무 빠르지 않은가.

애쉬가 의뢰에 따라 합류한 지는 아직 세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유성 그룹만한 곳의 후계가 이렇게 급하게 정해질 이유는 없을 터였다.

‘아니, 생각해보면 아주 이유가 없는 것 같진 않기도 하고.’

잠시 이번 사건을 돌아본 애쉬가 생각했다.

일단 ‘웃는 악마’라는 감당하지 못할 재앙을 끌어들인 유선혁, 유상혁 형제는 당연히 후계경쟁의 우승 후보에서 제외.

유진혁 회장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놈들을 후계로 삼지는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유장혁 부회장도 이번 사건에서 저격으로 사망.

이번 사건으로 여섯 중 절반이나 되는 세 명의 후보가 완전히 탈락한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유선화, 유성혁 쌍둥이와 서령, 이렇게 셋뿐.

사실상 두 개의 진영만이 남은 것이었는데, 쌍둥이 쪽은 서령 측에서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 상대다.

“그럼 진짜 아가씨가 회장이 되는 건가?”

“글쎄요…. 아직 확실하진 않아요.”

애쉬의 물음에 서령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결과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아직 그쪽과는 제대로 부딪혀보지도 않았고, 그녀가 유진혁 회장의 머릿속을 꿰뚫어 볼 수도 없었으니.

하지만 확실한 게 하나 있다면, 그것은 지금 서령이 무척이나 유리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우선은 정보의 불균형.

이쪽은 저쪽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서령을 얕보던 쌍둥이 쪽은 과연 이쪽에 대해 알고 있을까?

이번 테러 사건을 통해 뭔가 느낀 게 있다면 미리 움직였겠지만, 그럼에도 20 일이라는 시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저쪽에도 빌헬름만큼 뛰어난 해커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충분한 정보를 확보할 수 없었겠지.

게다가 이번 사건을 통해 고위급 이사들을 구하며 지지자들을 끌어 모은 서령은 정보의 불균형 이전에 쌍둥이 쪽과 정면으로 부딪혀도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아마 그녀의 조부가 되는 유진혁 회장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지 않을까.

“날짜는?”

“며칠 안 남았어요. 일주일 뒤예요.”

“늦잠은 안자서 다행이네.”

조금만 더 늦게 깨어났다면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애쉬가 다행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가 혼수상태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든 아니든 간에 유진혁 회장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애쉬는 그 자리를 지키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모처럼 서령을 위해 일한 만큼 그 결과 정도는 함께 봐도 되지 않겠는가.

또, 유진혁 회장에게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것도 있었고.

“그럼 약속한대로 내일 퇴원한다.”

“…네.”

애쉬의 통보에 서령이 대답했다.

그는 서령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의 성격과 맞지 않는 병원에서 나가지도 않고 3일을 더 얌전히 있었던 것이다.

지속적인 검사로도 아무런 이상이 없고, 오히려 일반인보다 한참은 더 건강하다는 결과가 나온 만큼 아무리 걱정이 된다 한들 그를 더 붙잡아 둘 수 있는 명분이 없었다.

더 붙잡혀 있을 사람도 아니었고 말이다.

서령과 일행은 잠시 이런저런 얘기를 계속하다 곧 시간이 늦어져 자리를 일어섰다.

“그럼 내일 데리러 올게요.”

“어. 잘가.”

애쉬는 마지막으로 병실을 떠나는 서령과 베일라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빌헬름은 아직 용건이 있는 듯 자리를 지켰다.

­ 드르륵. 턱.

서령과 베일라가 떠나며 미닫이문이 닫힌다.

둘이 떠난 자리에 남은 빌헬름은 방금 전까지의 조금 가벼운 분위기를 탈피하고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단말기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사실 최근에 애쉬 씨에 대한 정보를 집요하게 쫓는 놈들의 흔적이 발견됐어요.”

* * *

“이사님…, 괜찮으십니까?”

“네,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나요?”

“…아뇨, 별 것 아닙니다.”

제 착각이었나 보군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량을 운전하며 뒷좌석을 돌아보며 물었던 베일라가 중얼거렸다.

자신의 착각이었나보다 하고 넘어간 베일라였지만, 에아임과 애쉬의 부재에도 서령과 항상 함께한 그녀는 최근 그녀의 상태를 다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니, 굳이 항상 함께하지 않았더라도 한 달 전의 그녀를 봤던 사람이 지금의 그녀를 본다면 분명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

애쉬의 병실에 함께하고 있을 때와 달리 누군가 말을 걸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동떨어진 분위기와 무겁게 가라앉은 눈빛.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몰라도 서령은 이번 테러 사건을 계기로 분명 변했다.

그 확연한 변화에 회사에서 서령을 항상 편히 대하던 비서들도 이제는 그녀를 대하기 힘들어 정도였다.

에아임은 복구 중이었기에 그 죽음이 알려지지 않았고, 다른 비서들은 그가 부상당해 휴직중인 것으로만 알았다. 그러니 서령이 이번 사건에서 충격적인 일을 겪고 침울해진 상태인가보다 하고 넘어갔지만, 베일라는 서령의 감정을 얼핏 느낄 수 있었다.

고통을 통한 정신적 성장.

에아임의 죽음에 대한 애도.

머지않은 이별의 준비.

곧 후계 경쟁은 끝날 것이었고, 그 때가 곧 지난 몇 달간 함께했던 애쉬와도 헤어질 때였다.

영원히 헤어지는 것은 아니고, 가끔씩 만날 수는 있겠지만 최근 너무도 많은 이별을 겪은 서령은 거기에 더해질 한 번의 이별만으로도 무척이나 큰 공허함을 느낄 터였다.

특히나 그 대상이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상대방이라면 말이다.

실제로 서령은 최근 조용히 뭔가를 생각할 때가 많았고, 그럴 때마다 베일라는 그녀의 눈빛에서 물씬 풍겨 나오는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서령과 베일라가 애쉬를 붙잡지 않는 것은 이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딘가에 얽매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자유로운 바람이었으며, 또 통제되지 않는 야생마였다.

지금이야 이쪽을 마음에 들어 하며 머물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휙 하고 떠나버릴 것이 보이는 듯 했다.

잠시 애쉬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리던 베일라는 서령에게 집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도착했습니다.”

“아, 고마워요.”

­ 덜컥.

그런 그녀의 말에 서령이 문을 열고 내린다.

가까운 곳에 차를 세운 베일라는 아직 들어가지 않고 건물 입구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서령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사님이 너무 크게 마음 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베일라 또한 곧 있을 이별이 아쉬웠지만, 군인으로서 여러 전장을 거닐었던 그녀에게 이별이란 익숙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별이 있을 때마다 아픔을 느끼는 그녀였기에, 베일라는 서령이 이번 이별로 큰 상처를 입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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