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5. 후계경쟁 후일담(10)
* * *
“여전히 고약한 늙은이네.”
“…듣는 귀가 많습니다.”
“뭐 어때? 그래봤자 고철덩어리들일 텐데.”
사무실 밖, 거침없이 쏟아내는 목소리가 복도를 타고 흘렀다.
경호원들과 비서가 자주 오가는 길임에도 목소리는 사무실의 주인을 욕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의 주인이 되는 이가 무려 유성 그룹이라는 거대 기업의 주인이 되는 유진혁 회장이었음에도.
유진혁 회장과 그 부하들을 향해 시원하게도 악담을 내뱉은 목소리의 주인은 자신을 뒤따르는 부하를 향해 가볍게 투덜거렸다.
“부하라는 것들이 멍청한 짓을 해서 내가 저 늙은이한테 고개를 숙여야겠어?”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
“오늘 저녁이나 사.”
“그 정도로 용서해주신다면.”
얼마든지 그리 하겠다며 부하가 고개를 숙였다. 그에 작게 웃은 목소리는 계속해서 물었다.
“이번에 얻은 손해가 크다지?”
“예. 잘 훈련받았던 인력이 200 가까이 죽었고, 특히나 부단장 하나가 죽은 건 메꿀 수 없는 큰 피해입니다. 거기에 금전적 피해는 물론이고, 유성 쪽에 저희 측 기술이 적용된 물건이 다수 넘어갔으니…….”
이번 유성 그룹의 일로 얻은 피해를 크레딧으로 환산하면 정말 천문학적인 금액이 나올, 말도 안 되는 피해였다.
그에 관련된 피해 보고를 들으며 어느새 유성그룹 본사의 1층 로비까지 내려온 목소리가 말했다.
“생각보다 더 크네.”
“예.”
목소리의 말에 부하가 고개를 숙였다. 유성 그룹 측에서 연락이 들어오자마자 이번 계획을 입안한 것은 바로 그였다.
비록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한 실패라곤 하나 분명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한창 계획을 진행해가고 있는 지금, 이런 피해를 입은 것은 그 영향이 너무도 컸다.
누가 들어도 들을수록 암울해지는 보고였지만, 부하로부터 그것을 전해들은 목소리는 그에 아랑곳 않고 쾌활하게 말했다.
“아, 정말 뼈아프네.”
“면목이 없습니다.”
“짜증나는데, 그냥 전부 죽여 버릴까?”
유진혁 회장부터, 그 일가까지 모조리.
목소리는 피처럼 붉은 자신의 눈동자를 빛내며 물었다.
정말 장난처럼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 하지만 그런 상사의 목소리를 들은 부하는 곧장 그로 인해 얻을 것과 잃을 것들을 진지하게 계산했다.
그의 상사가 되는 쾌활한 목소리는 좀처럼 그 진심을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때는 화가 난 듯 하다가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고, 어느 때는 웃으면서도 학살을 자행한다.
그 중에서는 뒤를 생각하지 않은, 일순간의 충동에 전념한 일들도 너무 많았기에 그 진의를 의심하는 것보다도 계산이 먼저 선 것이다.
‘만약 여기서 화풀이삼아 유진혁 회장을 죽인다면 어떻게 될까.’
상세한 것은 좀 더 깊이 생각에 빠져봐야겠지만, 크게 보자면 사실 고민을 할 것도 없었다.
그 피해는 정말로 궤멸적일 것이다.
분명 죽이는 것은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유진혁 회장은 죽는 것만으로 끝날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대기업의 말석에 겨우 위치하고 있던 유성 그룹을 자신의 대에서 연방 전체를 통틀어도 첫 손에 꼽을 초거대 기업체로 만든 거물.
자신이 죽더라도 이쪽에는 그에 상응하는 피해를 입히고 가겠지.
유진혁 회장이 이미 그들, ‘웃는 악마’의 배후를 어느 정도 잡고 있는 만큼 후환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그것을 상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부하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온 결과를 어떤 방식으로 말해야 그의 상사, ‘웃는 악마’의 단장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렇게 부하는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렸지만 곧 상사, ‘웃는 악마’의 단장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크흨, 뭘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래! 내가 바보도 아니고 진짜 할 것 같아?”
“…….”
“그 늙은이, 안 그래도 신경이 곤두 서있는 상태일 텐데. 건드리면 분명 엄청나게 귀찮아질걸?”
아마 그 순간 유진혁 회장의 남겨둔 안배들과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이다. 직접 만나 사과하고 보상하겠다는 그들의 방문을 허락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미 충분한 대비가 돼있다는 것을.
걱정하지 말라며 부하의 어깨를 탁 두드려준 ‘웃는 악마’의 단장은 유성 그룹의 건물 밖에 나와 웃는 눈으로 그곳을 돌아봤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유성 그룹의 본사를.
“이번엔 넘어가고, 다음 기회에 하지 뭐.”
* * *
“놈들이 잡혔다고?”
“그래, 유성 그룹 소속에 칼잡이. 내가 전에 얘기했던 녀석이 틀림없어.”
짙은 시가향이 감도는 어두운 방 안, 중후한 목소리의 물음에 카우보이모자, 케이프의 남자가 대답했다.
‘골든 캐니언’, 게빌 리퍼슨.
애쉬 론모어라는 칼잡이에게 자신의 손목과 리볼버를 넘겼던 남자다.
그는 직전 뉴스에서 본 정보를 ‘총잡이들의 여명’의 단장이 되는 아버지, ‘데일 리퍼슨’에게 알렸다.
“혼자서 ‘악마’를 수십은 쓸어버렸다던데, 그 정도면 인정할 만하지 않나?”
안 그래도 애쉬에게 당한 뒤 돌아와서 동료들에게 신나게 놀림을 받은 그였다.
여럿이 가더니 겨우 하나한테 쪽도 못 쓴데다가 자신의 손목까지 헌납하고 돌아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뉴스에서 나온 사실은 그의 체면을 그나마 살려주었다.
그의 신세가 ‘이름도 없는 칼잡이 하나한테 당한 놈’에서 무려 ‘웃는 악마를 홀로 박살낸 남자에게 당한 놈’으로 격상됐기 때문이다.
당한 다음 찾아보니 애쉬 론모어라는 이름도 원래 빈민가의 뒷세계에서부터 알음알음 알려지던 이름이긴 했지만, ‘웃는 악마’라는 이름은 그보다 수백, 수천 배는 무거운 존재감을 발했다.
“흥.”
하지만 그런 골든 캐니언의 말에도 중후한 목소리의 남자, 데일 리퍼슨은 코웃음만 칠 뿐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는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쪼르르륵.
“저 애송이가 뭘하는 놈인지 모르겠지만, 상대한 ‘악마’라고 해봤자 그 이름도 아까운 버러지들이었을 거다.”
“그건 모르는 일이지. 내가 봤을 땐 영감하고도 해볼 만할 것 같던데.”
골든 캐니언은 아직도 자신의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는 애쉬 론모어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초근접 거리에서 쏘아진 탄환을 새까만 칼날이 가르던 그 순간을.
후일 알렸던 그 상황은 모두가, 심지어는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동료들조차 제대로 믿지 못한 일이었지만 골든 캐니언 자신만큼은 그것이 현실이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데려와라. 내가 직접 테스트해줄 테니.”
“안 그래도 조만간 찾아올 거야. 내가 녀석에게 맡겨둔 물건이 있으니까.”
자신이 매우 애지중지하던 리볼버.
찾아오면 꼭 보상하겠다고 이곳의 위치까지 알렸으니 분명 그것을 돌려주러 찾아올 것이었다.
자신감 넘치는 골든 캐니언의 말에 데일 리퍼슨은 흥미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의 아들은 그 애쉬 론모언지 뭔지 하는 애송이의 실력에 대해 확신하고 있는 듯 했지만, 그는 대중에 노출된 가짜 영웅에 대해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대중 매체라는 것은 늘 그렇듯 언제나 잔뜩 부풀리고,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자극적인 인상만 남기기 위해 발악을 하는 곳이었으니.
* * *
“어…….”
“…….”
제 71구역 어느 빈민가의 거주 지역,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온 애쉬와 그런 그를 따라온 빌헬름은 자신들의 눈에 들어온 광경을 보고 말을 잃고 말았다.
건물 벽을 가득 채운 낙서와 온갖 손상.
몇몇 유리창은 완전히 박살이 났고, 사무소 안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바깥에서부터 그것을 본 애쉬는 털털 끌고 온 자신의 캐리어를 내려놓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안쪽으로 향하자 완료된 의뢰서를 보관하는 금고 근처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이 망할 새끼. 단단하게도 잠가뒀네.”
“야, 근데 이렇게 안쪽까지 들어오는 건 좀 위험하지 않냐? 들어보면 머리가 돌아버린 놈이라던데, 진짜 걸리기라도 하면….”
“하, 얼굴도 모르는데 지가 어쩔 거야. CCTV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것만 빨리 털고 가면 아무도 모를걸?”
“…그렇긴 해.”
자연스럽게 그들의 뒤로 다가간 애쉬가 동의했다.
이 근방에도 원래는 CCTV가 설치돼 있었으나 하도 많이 부서지는 바람에 어느 순간부터 복구를 멈춘 상태.
그의 부재 상태에서 CCTV에 찍히지도 않고, 박살을 내놓은 뒤 도망가면 확실히 잡을 방법이 없다.
그들은 끼어든 애쉬의 목소리에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머저리 같은 대화를 계속했다.
“근데 그 꼬맹이는 어디갔지?”
“아까 위로 올라가던데. 졸핀이 따라갔어.”
“그 꼬맹이가 여기 열쇠를 갖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겠네. 같이 올라가서 잡아올까?”
사무소를 관리하고 있었을 꼬맹이, 샤인에 대해 언급하는 강도들. 애쉬는 그런 머저리들에게 물었다.
“그 녀석이 알긴 아는데, 거기서 뭘 꺼내려고?”
“그야 물론 돈 될 걸 챙겨야……?”
대답하던 머저리 강도 1의 말끝이 흐려진다. 그에 뒤이어 다른 강도 2와 3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금세 눈이 마주치는 강도 셋과 애쉬.
애쉬는 그들의 표정이 변해가는 것과 별개로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주인이라 아는데, 거기에 돈 될 건 없어.”
“어, 언제…!”
“미친 칼잡이!”
“도망쳐!!”
한 강도가 외치며 움직이자 다른 놈들도 뒤뚱뒤뚱 달려 나간다. 하지만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애쉬가 아니었다.
“어딜.”
도망가는 강도들을 붙잡아 뚜드려 패고 위층의 샤인을 쫓고 있는 나머지 하나까지 정리한다.
꼬맹이 샤인은 칼든 성인 남성이 방금 전까지 자신을 쫓았음에도 옷만 툴툴 털고는 돌아온 애쉬에게 인사했다.
“다녀오셨어요, 사장님!”
“…그래 다녀왔다.”
사무소를 떠난 지 몇 개월.
최근 뉴스로 인한 것인지 오자마자 이곳을 털던 강도를 잡긴 했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언제나와 같은 사무소의 일상이었다.
Ep 2. 유서령, 유성 그룹, 후계경쟁– 진짜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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