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 〉 6. 넷 아이돌(막간)
* * *
“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의뢰 성사 여부는 저희 사장님께서 의뢰서를 확인하신 후 결정하시는 거라…….”
“그래서 저희 보스께서….”
“아니, 그걸 나한테 말해도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부탁드립니다. 애쉬 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빌헬름 님이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애쉬 씨랑 친하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일을 막 부탁할 그런 입장은 아니거든요?”
점심시간 직후, 오후 2시의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는 꽤나 소란스럽다.
끊이지 않고 울리는 전화벨과 그것을 열심히 받고 있는 샤인.
사무소의 인력도 아닌 이에게 매달려 자신의 용건을 말하고 있는 이름 모를 빡빡이와, 그런 빡빡이의 태도에 난감해하는 빌헬름까지.
터벅, 터벅.
전날 새벽까지 영화를 보다 늦게 일어난 애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1층에 내려오자마자 들려오는 소란에 인상을 찌푸렸다.
‘시끄러.’
서령과 유성그룹의 의뢰 종료로부터 약 한 달. 최근 그의 사무소는 매일같이 이런 느낌이다.
연방 뉴스로부터 시작된 파장은 뉴스가 뜬 지 일이주 정도 지났을 때까지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으나, 거기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크게 그의 일상을 뒤흔들었다.
원래도 빈민가 전체에 이름을 날려 나름 많이 들어오던 의뢰의 숫자가 지금은 무려 열 배 가까이 폭증한 것이다.
당연히 하나밖에 없는 외부용 유선 전화는 터질 듯이 울려댔고, 지금 빌헬름을 붙잡고 있는 빡빡이처럼 직접 찾아와 귀찮게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애쉬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빌헬름과 그를 붙잡고 있는 빡빡이를 향해 다가갔다.
“하.”
“아, 애쉬 씨! 여기 이 아저씨가 말할 게 있다는데요?”
“다, 당신이 애쉬 론모어라는 해결삽니까?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릴 테니 제 의뢰를 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그를 발견하자 곧장 반색하며 맞는 빌헬름과, 고개를 돌려 그의 존재를 확인한 후 재빨리 붙잡고 있던 빌헬름에게서 벗어나 이쪽으로 다가오는 빡빡이.
저 빡빡이는 보스니 뭐니 떠들던 걸 보면 갱이든 무슨 기업의 소속이든 어딘가에 속해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꺼져.”
기분이 영 좋지 않은 애쉬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빡빡이의 맨들맨들한 머리를 붙잡고 곧장 열려있는 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어억!”
우당탕!!
뭐, 뭐야!
사람이 날아왔어….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그나마도 곧 가라앉았다.
밖을 돌아다니던 빈민가의 인간들도 그 빡빡이가 날아온 곳이 바로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애쉬가 항상 이 시간에 쯤에 문을 열어놓으라 시킨 이유가 있었다.
저런 놈들을 단번에 내동댕이 쳐버리기 위해서.
포장이 여기저기 깨져나간 아스팔트 바닥을 구르며 신음하는 빡빡이를 잠시 바라보던 애쉬가 시선을 다시 사무실 안쪽으로 돌렸다.
그에 때마침 전화를 끊은 샤인이 직전 일어난 일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인사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사장님!”
“오냐.”
오늘도 늦은 일과의 시작이었다.
*
“으흐흐.”
애쉬는 천천히 들어온 의뢰서들을 살폈다. 지난 며칠간 쌓인 의뢰서는 그 장수만 수백 장에 달했는데, 지금 그의 책상 위에 올라온 숫자는 대충 마흔 장 정도.
모두 샤인이 고르고 고른, ‘뒤가 구리지 않고’ ‘의뢰 내용이 멀쩡한’ 것들이었다.
원래는 샤인에게 전적으로 맡겨 간단히 요약시키곤 하던 애쉬였지만, 최근에는 그래도 직접 일거리를 살피려고 했다.
언론에 반쯤 노출되다시피 한 뒤로 일거리가 터질 듯 늘어나다보니 샤인에게만 맡기고 있는 게 양심에 찔렸다.
그리고 그렇게 의뢰서들을 살피길 몇 분. 다시 한번 애쉬의 귓가에 음침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흐흐.”
“…….”
처음에는 잘못 들은 것이었나 싶었는데,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음침한 웃음소리의 근원지로 눈을 돌리면 소파에 앉아 무언가를 들여다보며 히죽히죽 웃고 있는 빌헬름이 있었다.
애쉬는 자꾸만 신경을 거스르는 빌헬름의 음침한 웃음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 없이 그의 뒤로 다가갔다.
“흐흐….”
그러니까 이번에는~
그 유명한.
셰인리 레스토랑을 찾아가보겠습니다!
귀에 꽂고 있는 이어폰으로부터 미세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손에 들고 있는 단말기 화면에는 스물도 되지 않은, 쌍둥이로 보이는 여자 둘이 호들갑을 떨며 박수를 짝짝 치고 있다.
빌헬름이 빠져 있는 그것을 발견한 애쉬는 순간 멍해졌다.
‘이게 뭐지…?’
문화적 충격.
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붉은 머리칼과 푸른 머리칼의 여자애들이 나오는 영상은 계속됐다.
여기 셰인리 스테이크 하나하고요. 블루베리 넌 뭐 먹을래?
나도 같은 걸로.
네! 셰인리 스테이크 두 개 주세요. 마실 것도 추천 와인으로 두 잔 주시구요!
레스토랑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 자기들끼리 꺄르르 웃으며 떠든다.
자신들의 성격에 맞춰 염색한 것인지 붉은 머리칼의 한 명은 활발한 타입이고, 푸른 머리칼의 다른 한 명은 조용조용하고 차분한 타입.
둘은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영상을 이끌었고, 그렇게 계속된 뒤의 영상은 별 것도 없었다.
그냥 음식을 먹고, 또 자기들끼리 떠들다가도 시청자에게 툭툭 말을 건넨다.
하지만 애쉬는 그런 일련의 행동과 말투에서 참을 수 없는 오글거림을 느꼈다.
애쉬가 거기에 심취해 있는 빌헬름에게 말을 걸었다.
“뭐하냐.”
“엇, 앗. 아, 네?”
빌헬름은 갑작스럽게 자신의 귀에 들려온 애쉬의 목소리 탓인지 한 차례 허둥지둥 움직이다가도, 어색한 느낌으로 그의 물음에 답했다.
“그, 요새 유명한 넷 아이돌, 베리 트윈즈인데요.”
“…넷 아이돌? 베리 트윈즈?”
“네. 인터넷 방송으로 이름을 알린 아이돌이고, 최근에는 자기들이 발표한 노래를 음원 차트 최상위권에까지 올렸을 정도로 유명해요.”
빌헬름은 그들이 발표한 노래의 제목은 ‘Sweet Berry’이며 빨간 애가 스트로베리, 파란 애가 블루베리라고, 애쉬가 묻지도 않은 것들을 먼저 설명했다.
그에 그것을 듣던 애쉬는 아무 생각 없이, 경솔하게도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필터도 거치지 않고 내뱉고 말았다.
“그거 씹덕들이 보는 거 아냐?”
“……네?”
순간적인 적막.
그리고 그 직후 이어진 빌헬름의 물음.
그런 반응을 본 애쉬는 자신이 말을 잘못 내뱉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태였다.
적막을 깬 빌헬름이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열띤 목소리로 부정과 설명을 시작했다.
“아니, 씹덕이라뇨! 이번에 나온 Sweet Berry가 얼마나 명곡인지 아세요? 차트 1위도 잠깐 했었는데, 아마 당장 길거리로 나가서 아무나 하나 붙잡고 물어도 다 알 걸요?! 그리고 그 가사에 어떤 감정이 담겼는지……!”
“…….”
속사포같이 쏟아지는 설명들.
애쉬는 그 반쯤은 알아먹을 수 없는 광기어린 얘기들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나,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그가 말실수를 했다는 것.
그는 딱히 빌헬름의 취미로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 게 따로 일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입에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이 평소에는 찍소리도 않는 빌헬름을 저토록 필사적으로 만든 것이다.
“어, 그래. 미안하다. 내가 오해했네.”
애쉬는 빌헬름이 진정하도록 일단 사과했다. 사과라는 것을 일체 않는그로서는 이래적일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애쉬의 성격을 아는 빌헬름으로서도 놀라운 일이었는지 조금 기세가 줄긴 했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빌헬름은 투덜거리는 것으로 말을 이어갔다.
“아무리 그래도 음원 차트 1위까지 한 아이돌을 씹덕들이 보는 거라니…….”
“그래그래.”
설마 빌헬름이 말 한마디에 이렇게 열을 올릴지 몰랐던 애쉬는 시선을 돌리며 아직 남은 투덜거림을 끝내기 위해 주제를 바꿀 거리를 찾았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빌헬름의 귀에 꽂힌 이어폰과 단말기에 띄워진 화면이었다.
빌헬름은 분명 인공 안구와 귀 안쪽에 음향 기기를 이식한 상태였다. 단말기와 연결만 하면 안구 안쪽에서 영상을 재생하여 볼 수 있었으며, 이는 소리도 마찬가지.
그런데 왜 굳이 이어폰과 단말기 화면을 통해 보고 듣고 있는 것일까.
말도 돌릴 겸, 마침 눈에 들어온 것이 궁금해지기도 하여 애쉬가 물었다.
“그런데 넌 왜 그걸로 보고 있는 거야?”
“…그야 인터페이스를 통해서 재생하면 음질이랑 화질이 떨어지니까요.”
아무리 신경 인터페이스의 기술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아직 외부 기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라며 불퉁한 기색의 빌헬름이 설명했다.
그런 설명을 들은 애쉬가 생각했다.
‘어지간히도 진심인가보네.’
신경 인터페이스가 아무리 외부기기에 못 미친다곤 하나 그것도 어느 정도 수준이 넘어가는 고급품에서나 느껴질 차이.
평균 이상의 성능은 갖고 있었는데,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외부기기까지 사용하는 것에서 빌헬름의 정성이 느껴졌다.
그만큼이나 신경 쓰고, 좋아하는 것을 건드렸으니 벌집을 건든 것처럼 확 일어나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튼…….”
타박, 타박.
빌헬름이 말을 이어가는 사이 문을 통해 사무소로 들어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빌헬름의 얘기에 설렁설렁 끄덕이던 애쉬는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우뚝, 시선을 멈췄지만, 열변을 토하던 빌헬름만큼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계속했다.
“그러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베리 트윈즈는 진짜 아이돌이니까요.”
“와아….”
그렇게 애쉬가 우뚝 멈추고 빌헬름이 이어가길 십여 초. 그 짧은 연설의 마무리 직후, 낯설지만 어딘가 낯익기도 한 여성의 감탄성이 끼어들었다.
그 목소리를 들은 빌헬름이 몸을 굳혔다.
왜냐면,
“나 완전 감동 받았어! 여기에도 베리베리단 발견!! 역시 우리의 인기는 도시 구석구석까지 퍼져있는 걸까?!”
“…허락도 없이 영상을 찍는 건 실례야, 페일.”
그 감탄성의 주인과 직후 이어진 차분한 목소리는 방금 전까지 빌헬름 자신이 보고 듣던 영상 속에서 나오던 것이었으니까.
설마설마, 하며 빌헬름이 떨리는 시선을 옮기자 눈에 띄는 붉고 푸른 머리칼이 그의 시선을 반기며 흔들렸다.
그 머리칼의 주인들이 외쳤다.
“안녕! 71구역의 베리베리단!”
“…안녕하세요.”
“우리는 베리 트윈즈!”
“…입니다.”
베리 트윈즈.
그 전설의 소개를 눈앞에서 본 빌헬름은 터질 듯 북받쳐오는 감동과 감정의 격류에 일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