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40화 (140/230)

〈 140화 〉 6. 넷 아이돌(막간)

* * *

“일단 내 이름은 페일 에스티. 베리 트윈즈의 스트로베리야. 그리고 이쪽은.”

“미온 에스티. 블루베리…입니다.”

“들었지? 그쪽은?”

“저는 빌헬름 메이젤입니다!”

“애쉬 론모어.”

먼저 자신들의 본명을 밝히는 베리 트윈즈.

그에 빌헬름이 자신의 이름을 밝혔고, 뒤이어 애쉬가 툭 던지듯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빌헬름은 자신의 우상인 넷 아이돌과 마주 앉아 들뜬 기색을 숨기지 못했지만, 애쉬는 반대로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나 저 빨간 머리의 꼬맹이.

“므으으….”

자신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는 애쉬에게 겁도 없이 눈싸움을 걸어오는 꼬맹이는 제 쌍둥이에게 한 차례 주의를 받았음에도 정신을 차릴 생각을 않는다.

애쉬는 당장 꿀밤을 때려주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다리를 꼰 채 물었다.

“그래서, 대체 뭐가 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거냐.”

“뭐 하러 왔겠어? 그런 건 내 직업이랑 여기 카메라맨만 봐도 알지 않아?”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그것도 몰라? 당신 바보야?’ 이런 느낌을 꽉꽉 눌러 담은 싸가지 없는 말투.

‘이 망할 꼬맹이가.’

그 말투를 들은 애쉬가 꼬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

그의 성격에 유명한 넷 아이돌이고 뭐고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냥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단 들이박고 본다.

당장 저 빨간 머리칼 사이에 더 빨간 혹을 몇 개 정도 만들어줄 생각으로 가득했던 애쉬였지만, 눈치도 빠르게 그의 생각을 읽은 빌헬름에 의해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자, 잠깐만요, 애쉬 씨! 스트로베리 님도 그만 해주세요!!”

“놔. 꿀밤 몇 대만 때리고 말 테니까.”

“애쉬 씨 꿀밤에 맞으면 머리가 터질 거라구요!”

“나, 날 때린다고? 어, 어디 한번 때려봐!”

다급히 매달리는 말리는 빌헬름과 살벌한 기색으로 일어나는 애쉬.

그의 박력에 일순간 놀란 것인지 말을 살짝 더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페일 에스티는 자신이 겁먹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애쉬를 더 도발해왔다.

그리고 당연히 때려보라는 것을 마다할 애쉬가 아니었다.

“딱 대라, 망할 꼬맹아.”

“안돼애!!”

빌헬름이 애쉬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끌려가며 한 발짝, 한 발짝. 그가 페일 에스티, 페일에게 가까워진다.

당당한 척 하며 그를 노려보던 빨간 머리 꼬맹이는 그가 가까워질수록 자신을 뒤덮어가는 그림자와 기세에 짓눌려 표정이 변해갔다.

‘흥! 어차피 겁만 주려는 거겠지. 내가 겁먹을 줄 알아?’

에서,

‘진짜 때린다고? 난 구독자가 1,000만이 넘는 베리 트윈즈의 스트로베리인데…?’

로.

­ 턱.

발소리가 멈추고, 빛을 등진 애쉬가 드디어 빨간 머리 꼬맹이의 앞에 도달했다.

한 팔에는 빌헬름을 매달고, 다른 한 팔은 금방이라도 때릴 듯 주먹을 꽉 쥔 채.

애쉬의 그림자에 갇힌 채 꽉 쥔 그의 주먹을 본 페일은 떨리는 눈으로 고개를 천천히 들어 애쉬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진청색 눈동자와 눈을 마주한 순간, 애쉬에게서 전해지는 위압감에 몸을 움찔 떨었다.

‘그래, 새, 생각해보니까 아까도 날 진짜 던졌잖아…?’

…지금이라도 사과할까?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애쉬와 눈이 자주친 그 찰나의 순간 페일의 자존심과 생존본능이 격렬하게 맞부딪혔다. 그리고 그 결론은 빌헬름에게 잡혀있지 않은 애쉬의 손이 천천히 올라오는 것을 본 순간 순식간에 결판이 났다.

아무리 그래도 자존심보다는 목숨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페일은 겁에 몸을 잔뜩 움츠리며 눈을 꽉 감은 채 외쳤다.

“미, 미안해, 사과할 테니까 때리지 마아!!”

“이미 늦었….”

“…사장님?”

때늦은 사과에도 아랑곳 않고 꿀밤을 때려주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린 애쉬였으나, 그의 뒤에서 들려온 순진한 목소리에 그것을 멈추고 말았다.

눈을 꽉 감은 채 벌벌 떠는 빨간 머리 꼬맹이의 마빡을 한 대 때려주려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이 불청객들을 위한 것인지 음료 따위를 들고 온 샤인이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샤인의 그 깨끗한 눈동자를 본 애쉬는 갑자기 자신의 양심이 찔리는 것을 느꼈다.

지금 샤인의 눈에는 그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고 있을까.

이제 막 성인이 됐을까 말까 한 소녀를 향해 주먹을 들이밀고 있는 건장한 성인 남성.

누가 봐도 심각하게 오해할 만한 모습일 것이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보일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니 갑자기 기분이 확 가라앉은 애쉬가 눈을 꽉 감고 있는 페일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아직 어린 티를 완전히 벗지 못한 빨간 머리 꼬맹이.

‘내가 왜 이런 꼬맹이한테 열을 올리고 있는 거지.’

스스로를 돌아보니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다.

결국 애쉬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앞으로 찾아올 고통에 떨고 있는 녀석을 향하던 꿀밤 주먹을 풀고 손을 내렸다.

그러자 그것을 느낀 빌헬름이 본인을 향하던 주먹도 아닌데 고맙다고 인사를 해왔다.

“봐, 봐주는 거예요, 애쉬 씨? 감사해요! 이제 괜찮아요, 스트로베리 님!”

“…저, 정말?”

눈을 슬쩍 뜬 페일.

페일은 여전히 자신 앞에 서있는 애쉬의 모습에 다시 눈을 질끈 감으려 했지만, 곧 그녀는 방금 전까지 자신을 향하던 꿀밤 주먹이 풀려 있는 것을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뒤늦게 괜히 허세부리며 언제 겁먹었냐는 듯 자신의 자존심을 챙겼다.

“그, 그럼 당연하지. 날 때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하.”

애쉬는 그렇게 자존심을 챙기면서도 슬쩍 자신의 눈치를 보는 페일의 모습에 짧게 한숨을 쉬고는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저런 것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것도 이상하다.

다리를 꼬고 소파에 몸을 묻은 애쉬는 이젠 다 귀찮다는 듯 용건부터 요구했다.

“됐으니까 여기 온 이유나 말해라.”

“그건…….”

허세는 부렸지만 기가 조금 죽은 페일이 입을 열어 대답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그냥 뻔한 얘기였다.

최근 굉장히 유명한 ‘유성 그룹의 소드마스터’.

그의 소재가 이곳 빈민가라는 것을 어디선가 알아온 그녀들, 베리 트윈즈는 스트로베리의 주도하에 온갖 발품을 팔아가며 그 정체를 밝히기 위해 움직였고, 가장 유력한 후보인 애쉬 론모어라는 해결사를 찾아오게 된 것이다.

찾아온 이유 또한 다른 인터넷 방송인들과 다를 것 없었다.

취재도 하고, 영상도 찍으며 한창 뜨거울 때 화제의 중심으로서 모든 관심을 끌어 모으기 위해.

그런 얘기를 듣던 애쉬는 문득 드는 생각에 물었다.

“뭐, 넷 아이돌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이돌이 그런 활동도 해?”

“물론이야. 우리는 아이돌이지만 아티스트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기자기도 한 만능 엔터테이너니까.”

“…네.”

애쉬가 페일에 이어 그 옆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던 블루베리, 미온 에스티 쪽을 바라보자 그쪽도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쌍둥이의 말에 동의했다.

애쉬가 그렇게 자신들의 말에 집중하는 듯하자 페일은 얘기를 계속했다.

“최근 성장세가 조금 더뎌졌단 말이지. 여기서 한번 더 벽을 깨기 위해선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없잖아.”

“아, 확실히…. 최근 구독자가 1,050만에서 1,070만까지 올라가는 게 눈에 띄게 느려지긴 했죠.”

“그런 것도 보고 있어?”

“물론이죠! 제가 팬클럽 넘버 4번이라니까요?”

빌헬름은 비록 일 초 늦어서 팬클럽 넘버는 4번일지언정 열정만큼은 1번보다도 더 강하다며 눈을 이글이글 불태웠다.

애쉬는 여태껏 본 적 없는 빌헬름의 그런 모습에 조금 신선함을 느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 뿐.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의 구경거리가 되어달라는 저런 부탁을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애쉬가 페일에게 심드렁하게 물었다.

“용무는 그걸로 끝이냐?”

“응.”

“그럼 일 없으니까 돌아가라.”

괜히 시답잖은 것들 때문에 시간만 버렸네.

애쉬가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반사적으로 그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페일이 마주 일어서며 외쳤다.

“잠깐! 돈이라면 최대한 원하는 만큼 맞춰줄게!”

“원하는 만큼?”

“응!”

애쉬의 물음에 페일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베리 트윈즈는 소속사도 없이 쌍둥이 단 둘이 활동하여 1,000만이 넘는 구독자를 갖게 된 채널이었다.

수익을 따로 배분하는 곳도 없었고, 온갖 광고와 조회수로 인해 나오는 금액은 어지간한 일반인들은 꿈도 꾸기 힘들 정도로 컸다.

그런 만큼 충분한 자신감을 갖고 한 말이었지만, 잠시 고민하던 애쉬의 입에서 나온 액수는 그런 쌍둥이조차 경악할 수밖에 없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1억.”

“1억?”

“크레딧으로.”

“……뭐어어?!!”

1억 코너도 아닌 크레딧.

지구의 한화로 친다면 약 2천억 정도 되는 어마어마한 금액.

평범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부자들 또한 평생 한번 손에 넣어볼 수 없는 거금이었다.

빨간 머리의 꼬맹이, 페일은 물론이고, 미온 또한 그의 입에서 나온 숫자에 놀란 듯 애쉬를 바라봤다.

“진심이야? 농담이라면 그만둬. 금액은 최대한 맞춰준다니까? 아니, 그보다 당신이 ‘유성 그룹의 소드마스터’가 맞긴 한 거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에 한 차례 휘청거린 페일이 애쉬에게 물었다.

생각해보니 본인이 맞는지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페일의 물음에 뭐라 대답할까 살짝 고민한 애쉬였지만, 그는 대충 감을 잡고 여기까지 찾아온 쌍둥이에게 굳이 숨길 필요도 없겠다 싶어 사실대로 대답했다.

“그거 나 맞는데.”

“그럼 일단 한번 보여줘!”

“보여주면 1억 크레딧은 준비할 수 있고?”

“그건…!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애쉬의 물음에 페일이 소리쳤다.

당연히 당장 준비할 수 있을 리가. 그녀들이 분명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채널의 주인이긴 했으나 갑자기 그런 거액을 가져올 수는 없었다.

가져올 수 있다고 해도 겨우 영상 하나에 지불할 만한 금액은 아니었고.

그런 페일의 목소리에 애쉬는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가볍게 대답했다.

“그럼 못 보여주지.”

“뭐? 이, 당신 가짜……?”

어딜 사람의 재주를 공짜로 보려고 하는가.

애쉬의 장난스런 대답을 들은 페일은 그에게 가짜인 것 아니냐며 따지려 했지만, 잠시 눈을 돌리다 발견한 물건에 시선을 빼앗겨 말을 흐리며 거기에 집중했다.

애쉬의 사무소, 그의 책상 뒤편 벽에 걸려있는 검 한 자루. 에리히 영감이 애쉬에게 만들어주었던 물건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을 본 페일은 언제 기세를 올렸냐는 듯 조금 침착해진 상태로 자신의 쌍둥이에게 물었다.

“…미온, 저거 칼이지?”

“응.”

“설마 영상에서 쓰던 칼일까?”

“…….”

그것은 지금 이렇게 멀리서만 봐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저 칼을 발견함으로서 애쉬가 영상 속 ‘유성 그룹의 소드마스터’와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척 보기에도 장난감 같아 보이지도 않는데, 요새는 구하기도 힘든 저런 장검을 누가 갖고 있겠는가.

물론, 그마저도 모방한 가짜일 수 있겠지만, ‘유성 그룹의 소드마스터’의 소재지가 이곳 71구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는 거의 없었다.

“저거, 잠깐 봐도 돼?”

“보여주면 1억 크레딧은 준비할 수 있고?”

“뭐? 아니…!”

명백히 놀리는 애쉬의 반복적인 물음에 페일이 다시 열을 올리려는 찰나, 픽 웃은 애쉬가 말을 이었다.

“뭐, 보고 싶으면 보던가.”

“……흥! 미온, 저거 한번 보자.”

애쉬에게서 고개를 훽 돌리곤 자신의 쌍둥이와 함께 벽에 걸린 그의 검으로 다가가는 페일.

애쉬는 빨갛고 파란 머리칼의 쌍둥이가 벽에 걸려있던 자신의 검을 들고 살짝 뽑는 것을 지켜봤다.

전등 아래 새까만 칼날이 드러나고, 그것을 확인한 페일이 작게 탄성을 터뜨렸다.

“아, 이거…! 맞지, 미온?!”

“…아마도.”

영상 속에서 봤던 것과 같은 검은 칼날.미온이 페일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페일이 다시 애쉬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진짜 당신이 ‘유성 그룹의 소드마스터’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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