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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41화 (141/230)

〈 141화 〉 6. 넷 아이돌(막간)

* * *

“진짜 당신이 ‘유성 그룹의 소드 마스터’였어?”

“그렇다고 했잖아.”

애쉬가 물어오는 페일에게 다가가며 대답했다.

그리고 미온이 들고 있는 검을 건네받아 다시 벽에 걸어두고 자신의 사무용 의자에 눕듯이 앉으며 말했다.

“다 봤으면 그만 가라. 내 영상이라도 찍고 싶으면 1억 크레딧 가져오고.”

“진짜….”

귀찮다는 듯 훼훼 손짓하는 애쉬의 태도에 정말 이런 녀석이 그 소드 마스터가 맞긴 할까 싶었던 페일이었지만, 그래도 지금의 모든 정황이 그를 가리키고 있는 것은 맞았다.

일단 어떻게든 촬영에 협조를 받기만 하면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저 먼 3구역에서 여기까지 온 이상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페일이 어떻게든 살살 꼬드겨볼 생각으로 애쉬에게 물었다.

“그렇게 촬영이 싫어? 기껏해야 몇 시간만 투자하면 1만 크레딧은 줄 수 있는데?”

“1만?”

“응! 겨우 몇 시간으로 1만 크레딧을 버는 거야.”

애쉬의 목소리에 페일이 유혹하듯 대답했다.

1만 크레딧이라면 그가 불렀던 1억 크레딧에는 턱없이 모자랐지만, 그럼에도 지구의 한화로 2천만원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페일의 말대로 겨우 몇 시간의 촬영으로 받기에는 과분한 돈.

엄청나게 큰돈은 아니었지만 이곳 슬럼에서는 그마저도 없어 허덕이는 이들이 넘쳐났고, 그보다 못한 돈 때문에 살인까지 불사하는 이들도 많았다.

일반적인 71구역 빈민가의 주민이라면 누구라도 혹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지만 페일에게는 하나의 큰 오산이 있었는데, 그것은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이가 바로 최근 1,000만 크레딧짜리 의뢰를 마치고 온 애쉬라는 것이었다.

돈을 벌어온 지 불과 한 달. 아직 여유가 넘치는 애쉬는 페일의 제안을 코웃음 치며 거절했다.

“날 구경거리로 만들려면 1억 크레딧은 가져오라니까.”

한탕 했으니 쉬려던 그를 움직이려면 괜찮은 일거리라도 힘들 터였는데, 심지어 싫어하는 일을 겨우 1만 크레딧으로 진행한다? 그런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곧 유성 그룹을 통해 신분을 얻게 된다면 도시 안쪽으로 해결사 사무소의 이전을 생각할 정도로 여유 넘치는 애쉬는 지금 상태에서 귀찮은 일거리를 더 만들 생각이 없었다.

“진짜 거절한다고…?”

“그렇다니까.”

“그, 그럼 홍보도 해줄게! 우리 채널 구독자가 1,000만이 넘는데, 작정하고 한번 홍보하면 분명 효과가…!”

“안 해.”

애쉬는 페일의 헛짚은 제안에 고개를 까딱였다.

구독자 1,000만이 넘는 채널의 홍보는 확실히 상당한 파급력을 갖고 있을 것이었다. 분명 홍보 효과도 대단하겠지.

하지만 지금 같은 상태에서 더 바빠지는 것은 사절이었다.

‘안 그래도 뉴스에 얼핏 나오고 더 바빠졌는데, 여기서 더 바빠지면….’

그 때는 이 사무소를 완전히 접어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꾸역꾸역 억지로 읽던 의뢰서들을 한 차례 내려 본 애쉬는 이제 들어줄 만큼 들어줬으니 슬슬 빨강파랑 쌍둥이와 그 고용인들을 내쫓으려 했다.

아니, 빌헬름이 급히 끼어들지 않았다면 분명 내쫓았을 것이다.

“그럼 이만…….”

“잠시만요! 이대로 보내면 제 팬미팅도 여기서 끝이잖아요!”

“…여기가 네 팬미팅 장소냐?”

애쉬가 갑자기 끼어든 빌헬름에게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인터넷에서만 숭배하던 제 우상을 직접 만났으니 헤어지고 싶지 않은 거야 알겠는데, 지금 여기는 그의 사무소고, 저들이 바라는 것은 그가 영상에 출연하는 게 아니던가.

아무리 빌헬름의 부탁이라고 해도 애쉬는 거기까지는 해줄 생각이 없었다.

그러자 빌헬름도 최후의 양심은 있었는지 애쉬의 그런 말투를 의식하고 대답했다.

“구, 굳이 그런 영상이 아니더라도, 이왕 여기까지 오셨으니 다른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른 활동? 예를 들면 뭐?”

“그, 예를 들면 71구역의 번화가 탐방이라던가….”

“제정신이냐?”

페일이 관심을 드러내자 아무런 말이나 막 내뱉는 빌헬름에게 애쉬가 진심으로 물었다.

빌헬름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을 터다. 이 71구역의 빈민가가 얼마나 위험한지.

외부인이라면 아무리 건장한 성인 남성이라도 길을 걷다 목숨이 노려질 수 있는 곳이 바로 빈민가, 슬럼이었다.

그런 슬럼의 번화가라고 해봐야 얼마나 안전하겠는가. 결국 그곳을 채우고 있는 이들 또한 슬럼의 주민들이었는데.

아무리 번화가라고 해도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골목길에는 질 떨어지는 놈들이 우글우글 거렸고, 어두워지기라도 한다면 그런 놈들은 탁 트인 길거리까지 기어 나오기 일쑤였다.

그런 곳에 저런 귀티 나는 꼬맹이들을 데리고 간다고?

대충 보니 쌍둥이의 경호원이 열 명 정도는 있는 것 같았지만, 탐욕과 성욕에 눈이 돌아간 슬럼의 쓰레기들이라면 그런 것조차 무시하고 달려들 수 있었다.

아니, 굉장히 유명하다고 했으니 오히려 쌍둥이를 알아본 이들에 의해 계획적인 납치를 당하거나 할 수도 있어서 더 위험했다.

하지만 빌헬름도 거기까지는 생각을 했는지 애쉬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아니, 잠시 끝까지 들어주세요. 슬럼은 외부에 굉장히 폐쇄적이지만 나름 볼 것도 많으니 영상에 나름 괜찮은 소재도 찾을 수 있을 거고, 위험하긴 한데 애쉬 씨가 같이 가준다면… 괜찮지 않을까……해서.”

빌헬름이 재빨리 말을 이어가다 슬금슬금 애쉬의 심기가 불편해지진 않았는지 눈치를 살폈다.

빌헬름이 아무리 애쉬와 친밀한 관계에 있다곤 해도 오늘과 같이 멋대로 그를 움직이려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 행동이 선을 넘진 않았는지 걱정될 수밖에.

하지만 다행히도 빌헬름의 걱정과 달리 애쉬는 표정만 찌푸리고 있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애쉬의 표정을 살피며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쉰 빌헬름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우상, 아이돌인 페일과 미온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떠세요?”

“정 영상을 찍는 게 안 되면 그런 거라도 하면 좋겠지만…. 어떻게 생각해, 미온?”

“…괜찮은 것 같아.”

“저, 정말요?!”

자신의 쌍둥이에게 묻는 페일과 그것을 긴장으로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빌헬름.

미온은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고, 그에 빌헬름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환호성을 숨겼다.

현실에서 직접 모실 수 있게 된 자신의 우상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 것이다!

빌헬름은 신나서 애쉬를 돌아봤고, 애쉬는 그런 빌헬름을 보며 져주는 것은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래도 디스카운트는 없다.

“1만 크레딧.”

“뭐? 겨우 몇 시간 호위하는데 1만 크레딧이나 달라고?!”

“싫으면 말던가.”

*

“아니, 어떻게 호위 한 번에 1만 크레딧을 받을 생각을 하지? 너무하지 않아, 미온?”

“…….”

“그리고 그 태도는 뭐야! 나는 베리 트윈즈의 스트로베리인데…!”

“하하…. 진정하세요. 애쉬 씨는 정말 1만 크레딧이 아니라 10만 크레딧을 받아도 아깝지 않은 실력자라니까요?”

“4번. 지금 그쪽 편을 드는 거야?”

“아뇨, 그런 건 아닌데….”

“그럼 뭔데!”

“…죄송해요.”

빌헬름이 씨근덕거리는 페일에게 결국 사과했다.

그가 영상 속에서 보던 스트로베리보다 더 신경질적인 느낌이었지만, 빌헬름은 스트로베리님이 자신에게 화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마저 너무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이런 걸 보고 사랑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빌헬름이 그렇게 현실에서 영접한 넷 아이돌에 푹 빠져있는 동안, 두어 걸음 뒤에서 그들을 따라가던 애쉬는 그 상황을 지켜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바로 뒤에서 쫓아오고 있는 경호원들의 따가운 눈빛을 받고 있었는데, 빌헬름은 행복에 겨운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니 아주 괘씸하기 짝이 없다.

‘나중에 보자.’

평소의 친분도 있고, 지난 유성 그룹의 일에서 고생한 것도 마음에 걸려서 이렇게 어울려주는 중이었지만, 이번 일이 끝난 뒤에는 온갖 일들로 최대한 부려먹을 예정이었다.

그런 미래를 모르는 빌헬름은 여전히 행복한 표정으로 쌍둥이에게 71구역을 안내했다.

“아, 여기는……인데, 71구역에서는……해서 유명한 곳이에요.”

“그래? 그럼 슬슬 촬영 시작할까?”

“…응.”

“카메라맨!”

“예!”

애쉬의 옆에서 걷던 카메라맨이 제 상체의 반만 한 촬영 장비를 들고 뒤뚱뒤뚱 움직였다. 그리고 한 곳에 자리를 잡은 뒤 거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하려는 듯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준비 끝났습니다. 카운트 다운 후에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3, 2, 1, 액션!”

“안녕, 베리베리단! 오늘은…….”

오프닝 멘트로 보이는 대사를 시작하는 페일과 미온.

현지 안내역으로서 촬영에 함께하게 된 빌헬름은 잔뜩 긴장에 가득 찬 표정으로 기계처럼 쌍둥이의 멘트에 반응했다.

“짜잔! 오늘은 71구역의 내 팬과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볼 거야! 자,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라고 했었지?”

“아아, 그, 그게, 71구역에서 유명한…….”

촬영에 함께 하자는 말에 방금 전까지는 좋아 죽으려고 하더니 막상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자 직전에 했던 말을 반복하는 단순한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바짝 굳은 모습이라니.

애쉬는 그 촌극과도 같은 모습을 바라보다 촬영 현장에서 시선을 돌려 주변을 바라봤다.

십여 명의 경호원들과 촬영 장비를 든 카메라맨이 한데 모여 움직이자 시선을 안 끌 수가 없는 조합이 된다.

촬영 현장을 지켜보는 현지인들은 많았고, 그들은 다양한 눈빛으로 이쪽을 구경하고 있었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빛도 있는가 하면, 척 봐도 외지인으로 보이는 그들에게 바가지를 씌워 지갑을 털어먹으려는 욕망에 찬 이들도 있었고, 외지인에 대한 이유 없는 적개심으로 가득 찬 눈빛도 당연히 있었다.

“…또 도시 안쪽 놈들이야?”

“우릴 완전히 동물원의 짐승 정도로 보나보군.”

애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생각보다 그들의 목소리에 느껴지는 적개심이 강했다.

원래도 그렇게 좋은 눈길을 보내는 이들은 없었으나, 오늘은 무언가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부터 완전히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상태.

초인적인 청각으로 멀리 떨어진 현지인의 목소리를 듣던 애쉬는 곧 그 원인을 대충 알 수 있었다.

“저번에도 몇 놈들이 지랄하길래 반쯤 죽여서 보내줬는데,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놈들이 있잖아.”

“지들이 유명한 방송인이라고? 그래봤자 지방만 잔뜩 낀 돼지새끼들이….”

‘설마 나 때문인가?’

그들의 대화를 들은 애쉬가 생각했다.

최근 그를 찾아온 인터넷 방송인들이 제법 있었고, 그들은 모두 애쉬에게 강제로 쫓겨났었다.

그에 대한 화풀이인지 뭔지 그들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슬럼의 벌집을 건드린 것이다.

들려오는 얘기를 보니 그런 놈들이 한 둘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중 태반은 작살이 나서 돌아갔겠지.

기존에 그들을 건드리고 간 놈들 때문에 열이 받아있는 상태에서 이번에 또 저 쌍둥이가 나타나 뭘 찍고 있으니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확인한 애쉬는 적개심을 나타내고 있는 놈들을 하나하나 보며 은근히 기세를 흘렸다.

그러자 그것을 느꼈는지 시선을 돌린 현지인들이 그와 눈을 마주친 순간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미, 미친 칼잡이….”

“저 놈이 불러온 년들인가?”

“…돌아다니는 걸 보니 또 한 동안은 저 놈을 조심하라고 해야겠군.”

이 근방은 완전히 애쉬의 앞마당이나 다름없었다. 71구역 번화가 근처에서 그의 얼굴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었고, 얼굴을 모른다고 해도 그의 상징이자 특징이 되는 머리칼과 눈동자 색을 모르는 이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 번 눈들을 마주치며 경고 했으니 허튼 생각은 안 하겠지.

애쉬는 다른 경호원들이 정신을 빼놓고 촬영 현장 근처나 지켜보는 사이 자신의 할 일을 마쳤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조금은 불안한 게, 주변을 예의주시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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