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42화 (142/230)

〈 142화 〉 6. 넷 아이돌(막간)

* * *

“그.래.서. 빌헬름 씨는 어디를 가장 추천해?”

“저, 저는 역시 중심가에 있는 곳을 추천 드리죠. 외곽은 아무래도 위험할 수 있으니까….”

“그래? 그럼 일단 거기로 가자! 자, 다들 따라와!”

“…응.”

페일이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는 빌헬름을 능숙하게 이끈다.

게다가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미온도 중간중간 작은 반응과 함께 뚜렷한 존재감을 비추는 것이, 구독자 수가 1,000만이 넘어간다더니 과연 그것이 운 만으로 이뤄진 건 아닌 듯싶었다.

페일과 미온, 그리고 빌헬름이 앞장서고 촬영 및 경호 인력들이 뒤따라 움직인 곳은 어느 음식점이었다. 애쉬도 몇 번 가본 적 있는 71구역의 유명한 맛집.

슬럼으로 분류된 71구역이라고 해도 이곳은 나름의 번화가다보니 안전한 편이었다.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에게도 긴장감 따위는 보이지 않았고, 스물 가까운 인원이 움직이는 일행을 향한 호기심 가득한 시선이 머물다 떨어졌다.

“자리가 충분할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들어가자!”

덜컥. 페일이 기운차게 문을 박차고 들어갔고, 촬영팀과 경호팀이 뒤따라 들어갔다.

애쉬는 오랜만에 찾아온 음식점 구석 테이블에 앉아 가게 내부를 적당히 둘러봤다.

‘여전히 바뀐 건 없구만.’

하기야 몇 개월이라는 시간은 뭔가가 크게 바뀌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그럼 다들 먹고 싶은 만큼 마음껏 먹어, 내가 살 테니까!”

“오오…!”

촬영을 위한 연출인지 촬영팀과 경호팀이 낮은 탄성을 내뱉는다. 애쉬는 카메라가 슬쩍 그들을 비추는 것을 보며 고개를 돌렸다.

저런 연출에 동참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는 테이블에 내장된 메뉴판을 통해 주문을 마쳤고, 자신의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계속되는 촬영 현장을 지켜봤다.

“그럼 빌헬름 씨가 생각하는 71구역은 어때? 역시 소문만큼 많이 위험한 편인가?”

“아, 그건…….”

“…곤란해 하시는데 그만해, 스트로베리.”

“에, 그치만 궁금하잖아!”

계속된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에 빌헬름의 짓궂은 미소를 짓고 있던 페일이 미온의 제지에 반응했다.

목소리에 장난기가 넘치는 게 굳이 대답을 들으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고, 그저 빌헬름이 곤란해 하는 걸 알고 놀리는 것 같았다.

이곳이 위험하냐는 질문에 있는 대로 솔직히 대답하면 빌헬름이 어떻게 되겠는가.

71구역에 베리 트윈즈의 영상을 하나하나 모두 챙겨보는 구독자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중 이상한 놈들에게 걸리기라도 한다면 앞으로 빌헬름은 밤거리를 제대로 다니지 못할지도 몰랐다.

스토로베리, 페일은 아직 이곳의 치안 상태를 정확히 모르기에 장난치는 것 같았지만, 빌헬름에게는 진짜로 대답하기 힘든 질문인 것이다.

하지만 애쉬는 거기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네가 선택한 촬영이니까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그게 그렇게 매달리면서 귀찮게 한 대가였다.

애쉬 또한 책상 앞에 앉아 서류나 잠깐 들여다보고 있을 시간에 이렇게 나와서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혹시라도 진짜 최악의 상황까지 간다면 도와주기야 하겠다만….

“그럼 식사가 나오기 전! 여기서 퀴즈 타임!”

“갑자기요?!”

“내 팬이라면 알고 있겠지? 베리베리 퀴즈 타임을!”

“아, 네, 네.”

“원래는 예정에 없던 거지만 특별히…….”

빈틈없이 이어지는 촬영 진행.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지켜보던 애쉬는 어느 순간 탁, 하고 자신의 앞에 접시 내려다놓는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구식 서버 봇이 그의 앞에 음식을 놓고 학습된 대로 인사한 뒤 위잉 바퀴를 굴려 다른 곳으로 향했다.

식사 맛있게 드십시오.

그가 촬영 현장을 지켜보는 사이 어느새 십여 분이나 지나 음식이 나온 것이다.

애쉬는 금세 눈 깜짝할 새 지나간 시간에 조금 놀라고 말았다.

쌍둥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조차 자신도 모르게 얘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괜히 1,000만은 아니었네.’

“이번에도 정답! 진짜 No. 4번 팬이라고 할 만하네.”

“…응, 대단해.”

“하하핫! 이 정도는 기본이죠!”

애쉬는 언제부터인가 긴장이 풀린 빌헬름과 쌍둥이를 보며 나름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그럼 여기서 촬영 종료! 다들 고생했어!”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슬슬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는 시간. 촬영의 종료를 알리는 페일의 목소리에 촬영팀과 경호팀이 함께 외치며 자리를 정리했다.

애쉬는 가만히 그것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곧 얼굴을 붉힌 채 혼이 빠진 듯한 빌헬름이 그에게 다가왔다.

“정말 꿈만 같은 하루에요. 베리 트윈즈랑 같이 촬영하고, 밥까지 먹다니….”

“그러냐.”

애쉬는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보는 재미는 조금 있었는데, 여전히 그보다 귀찮은 게 더 컸다.

그래도 별 일은 없었으니 크레딧만 받고 좋은 구경한 셈 쳐야지.

“근데 어째 성격이 영상에서 봤을 때랑은 다르지 않냐?”

“그렇긴 한데, 그래도 좋아요.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좋을지도.”

다른 팬들은 모르는, 자신만이 아는 모습이 생겼다는 소리에 애쉬는 빌헬름이 미친 건 아닌가 싶었다.

누가 봐도 버릇없는 꼬맹이인데, 그게 좋다고 저렇게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라니.

애쉬가 그 뒤로도 빌헬름의 잡담 비슷한 소리들을 반쯤 흘려듣고 있을 때였다. 페일과 미온, 쌍둥이가 그에게 다가왔다.

애쉬에게 다가온 페일이 대뜸 물었다.

“어땠어? 우리 촬영은?”

“뭐가 어때.”

촬영이 그냥 촬영이지.

애쉬는 거기에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이 건방진 빨간 머리 꼬맹이가 나름의 재능은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어디까지나 그게 전부였다.

그는 전혀 관심도, 관계도 없는 종류의 것이었기에 별다른 감흥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자 그런 그의 반응을 본 페일이 발끈해서 말했다.

“그쪽은 기분 좋겠네, 아무것도 안하고 돈만 벌어가서.”

“그다지.”

처음부터 안 하려던 일이었다. 빌헬름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도 그렇고, 그가 아무것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이쪽에 적개심을 보이던 놈들을 미리 쳐내고, 또 그의 존재 자체만으로 살살 피해가던 놈들이 몇이던가. 그가 없었다면 분명 무슨 일이 생겨도 생겼을 것이다.

애쉬는 개인적으로 자신이 보수 이상의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겉보기엔 그냥 하품이나 하면서 촬영을 구경하는 것으로 보였겠지만.

애쉬를 잠시 노려보던 페일이 품에서 크레딧 카드 하나를 꺼내 애쉬에게 넘겼다.

“자, 선수금을 제외한 나머지 의뢰금.”

애쉬를 꽤나 못마땅하게 보는 것 같던 페일이지만, 다행히 개념은 있는지 이제 와서 약속된 대가를 바꾸거나 하려하지는 않는 것 같다.

애쉬는 페일이 넘기는 크레딧 카드를 가볍게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근데 진짜 우리랑 촬영 한번 해볼 생각 없어?”

“1억 크레딧.”

“이, 진짜! 됐어!”

애쉬가 성의 없이 내뱉는 대답에 페일이 고개를 홱 돌리곤 화났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일부러 발소리를 쿵쿵 내며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그에 애쉬는 어차피 더 볼 사이도 아닌 거 그냥 그대로 보내려고 지켜봤는데, 페일의 뒤로 천천히 따라가던 미온이 그를 돌아보고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어.”

애쉬는 자신이 한 일을 알기라도 하는 것 같은 미온의 감사 인사에 가볍게 마주 고개를 끄덕여주곤 돌아섰다.

“애쉬 씨! 그거 저한테 팔면 안돼요? 제가 천 크레딧 정도는 더 붙여서 살 테니까…!”

“…….”

아쉬운 눈으로 쌍둥이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던 빌헬름이 애쉬에게 붙어 넘겨받은 크레딧 카드의 거래를 요청했다.

자기가 사랑하는 아이돌의 품속에서 나온 물건이라 소장할 가치가 있다나 뭐라나.

그런 빌헬름에게 크레딧 카드를 던져준 애쉬는 쌍둥이의 일도 끝났겠다, 다시 사무소로 돌아가 빌헬름이 먼저 가져왔던 일에 대해 얘기했다.

*

“보수는 대충 20만 정도 돼요.”

“생각보다 좀 적은데.”

“대신 관련 부산물을 챙기는 건 상관없다고 하더라구요.”

“그것까지 합쳐봤자 30만이나 되냐?”

“…아마도요?”

빌헬름이 애쉬의 물음에 애매하게 대답했다. 그에 애쉬는 고개를 저었다.

부산물까지 챙겨야만 딱 적정치.

빌헬름은 의뢰주와 끈을 이어놓을 필요가 있다기에 그것으로도 일을 하려는 듯 했지만, 애쉬는 영 성에 차지 않았다.

누가 대가를 기타 노획물까지 합쳐서 내놓는단 말인가.

“못해도 10만은 더 내놓으라 그래. 말하기 곤란하면 내가 더 안 내놓으면 안 한다 했다고 하고.”

“음, 네. 말은 해볼…?”

애쉬의 말에 천천히 대답하던 빌헬름의 표정이 바뀌었다.

뭔가에 조금 놀란 듯하더니, 곧 표정이 굳어간다. 애쉬는 그런 빌헬름에게서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을 읽고 물었다.

“무슨 일이야?”

“그게…. 베리 트윈즈가 탄 차가 납치당한 것 같은데요?”

“…뭐?”

애쉬가 뜬금없는 소리에 되물었다.

그 쌍둥이들이 탄 차가 납치당했다고?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

“…실은 아까 추적기 비슷한 걸 달아뒀거든요.”

“…….”

빌헬름의 대답을 들은 애쉬의 시선이 천천히 바뀌었다. 그러자 빌헬름은 그의 시선에서 뚜렷한 온도의 변화를 느꼈는지, 다급히 변명했다.

“아니, 이상한 짓을 하려던 건 아니에요! 그냥 설마 이런 일이 있을까 해서 달아둔 건데!”

“진짜?”

“네! 정말이라니까요! 아무튼 지금 도시 안쪽으로 가던 차가 다시 슬럼 구역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지금 위치는 70구역인데…….”

억울한 기색으로 변명한 빌헬름이 말을 돌리며 애쉬를 바라봤다.

한시가 급박한 상황에서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런 빌헬름의 눈길을 받으며 잠시 싸가지 없는 빨간 머리 꼬맹이를 떠올린 애쉬였지만, 곧 같이 떠오른 물빛 머리칼의 소녀를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은 호위 의뢰의 연장으로 볼 수도 있었고, 파란 머리 쪽은 개념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았던가.

게다가 석양빛 붉은 머리칼의 소녀 또한 예의가 없다 뿐이지 심성까지 그렇게 나쁜 꼬맹이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일이 생긴 것을 몰랐다면 모르겠으나, 일단 안 이상 자신과 만난 날에 어떻게 되기라도 한다면 잠자리가 찜찜할 것이었다.

“그, 그냥 도와주시는 거예요?”

빌헬름이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검을 드는 애쉬에게 물었다. 그에 애쉬가 고개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대가는 받아야지.”

물론, 네가 아니라 쌍둥이와 그 꼬맹이들을 납치한 놈들한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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