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 6. 넷 아이돌(막간)
* * *
“운전은?”
“못해요!”
“그럼 어떻게 가려고 이걸 잡았냐?”
어느 때보다 다급한 기색으로 가까운 차량의 문을 딴 빌헬름에게 애쉬가 물었다.
이 세계의 차량은 모두 특수하게 제작된 신분증을 삽입해야만 가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애쉬의 경우 운전 자체는 가능했지만 신분증이 없었고, 빌헬름은 신분증은 있지만 면허가 없는 상태.
그 누구도 차를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다.
빌헬름은 애쉬의 물음에 말 대신 행동으로 대답했다.
휘리릭.
손목 밑의 단자를 단숨에 쭈욱 뽑아 차량 통제 장치에 연결한다. 그리고 눈을 감은 뒤 작업하길 불과 십여 초.
다시 눈을 번쩍 뜬 빌헬름이 애쉬에게 외쳤다.
“이제 시동을 걸 수 있을 거예요!”
“그거 언제 봐도 편리해보이네.”
빌헬름의 목소리에 대답한 애쉬가 곧장 운전석에 앉았다. 그리고 엔진 시동 버튼을 누르자 빌헬름의 말대로 시동이 걸려오며 차체가 털털 떨렸다.
척 봐도 연식이 엄청나게 오래된 데다 싸구려 차량이었기에 탑승감은 좋지 않았지만, 지금 그런 건 상관없었다.
애쉬는 곧장 차를 몰아 움직였다.
부우우웅.
“위치는 어디야?”
“70구역 외곽이에요. 아직 안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걸 보니 목적지엔 도착하지 않은 것 같은데… 아, 멈췄다!”
“바로 띄워.”
“네!”
빌헬름이 해킹한 차량의 디스플레이 화면에 지도를 띄웠다. 거기에는 지도와 함께 베리 트윈즈의 차량이 멈춘 위치가 붉은 점으로 표시돼있었다.
한 20분 정도 걸릴까. 여기서 현재 애쉬가 차를 몰고 있는 71구역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위치였다.
“최대한 빨리 가주세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임마.”
안절부절 못하는 빌헬름에게 짧게 대답한 애쉬가 속도를 끌어올렸다. 순식간에 계기판의 숫자가 치솟아 올랐다.
애쉬와 빌헬름은 낡은 엔진이 지르는 비명소리를 들으며 어두컴컴한 도로를 가로질렀다.
* * *
차가운 바닥과 닿아있는 몸을 통해 한기가 전해진다.
뭔가를 머리에 뒤집어 씌워져 앞은 보이지 않고, 머리는 윙윙 울렸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그녀를 덮쳤지만 그녀, 페일은 제 고통보다도 먼저 목숨보다 소중한 쌍둥이를 찾았다.
“윽…. 미온, 미온?”
“응.”
“다, 다행이다. 같이 있구나.”
“…다행은 아닌 것 같아.”
정신이 없는 와중에 페일의 귓가에 미온의 조용한 목소리가 울렸다. 목소리가 옅은 것으로 보아 미온도 페일과 마찬가지로 두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았는데, 먼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핀 모양이다.
“다행은 아니라고…?”
페일도 쌍둥이의 말을 듣고 억지로 정신을 일깨웠다. 그러자 몸을 묶고 있는 테이프의 존재와 다수의 발소리, 그리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이 년들이 그렇게 돈이 많은 년들이라 이거지?”
“그렇다니까. 제 입으로 구독자가 천만이 넘니 뭐니 하던데. 찾아보니 진짜였어. 그 정도면 못해도 연수입이 수백만은 될 걸?”
“수백만 코너? 겨우?”
“멍청아! 당연히 크레딧이지!”
“수백만 크레딧이라고?!”
“내가 듣기로도 그래. 구독자가 천만 정도 되면 매달 수십만 크레딧 정도는 우습다더군.”
“미친, 그럼 제대로 한 건 할 수 있겠어.”
“근데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그만한 돈을 버는 년들이면 분명….”
“하, 얼굴도 모르고 여긴 cctv도 없어. 지들이 뭐 어쩔 건데.”
“하, 하하. 그것도 그렇지.”
애초에 이곳을 아무런 경계도 없이 돌아다니는 년놈들을 보면 얼마나 얼빠진 것들인지 알 수 있다며 희희덕 거리는 목소리들만 대여섯 명이고, 그 외에도 움직이고 있는 발소리들을 합치면 그 숫자가 열댓 명도 더 넘어 보인다.
페일은 그제야 자신이 정신을 잃기 전 일어난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신들이 타고 온 차량 안에서 갑자기 터진 가스와 하나 둘씩 정신을 잃어가는 사람들.
보조석에 앉아 있던 페일은 어떻게든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다가 정신을 잃었었다.
아마 지금 머리가 아픈 것도 그때 마신 가스 때문일 테지.
그것을 깨달은 페일은 순간 공포에 휩싸일 뻔했으나, 곧 이를 악물고 그것을 버텨냈다. 자신의 쌍둥이, 미온을 위해서라도 공포 따위에 이성을 잃을 수는 없었다.
불과 몇 분 차이라지만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먼저 태어난 언니로서의 사명감이 그녀에겐 있었다.
페일은 자신의 떨리는 목소리도 어떻게 하지 못하면서 미온을 안심시키기 위해 말했다.
“괘, 괜찮아, 미온.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응.”
미온의 대답을 들은 페일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두 손목과 발목이 묶여 있어 움직이기 쉽지 않았지만, 평소 여러 안무로 단련된 몸은 그것을 어떻게든 해낼 수 있었다.
그녀가 몸을 일으켜 앉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몇몇 발걸음이 그녀와 쌍둥이를 향해 다가왔다.
“드디어 일어났군. 이봐! 여기 일어났는데?”
“그래?”
그녀가 깨어났음을 알리는 말과 함께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들.
페일은 그 발소리들을 들으며 떨리는 몸을 어떻게든 숨기려 노력했다.
“오. 드디어 일어나셨구만. 그래, 잠은 잘 잤나?”
“…너 같으면 이딴 상황에 잘 잤겠어?”
“오호. 기운이 넘치는 걸 보니 잘 잔 것 같은데.”
한 남자의 목소리가 그녀를 놀리듯 말했다. 그에 욱하고 감정이 올라왔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페일은 더 기세를 쏟아낼 수는 없었다.
상대가 노리는 것은 분명 쌍둥이의 돈이었다.
그것을 받으려면 목숨만큼은 온전히 남겨둘 수밖에 없겠지만, 반대로 목숨만 온전하다면 무슨 짓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최악의 상황에는…….’
여성으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들 중 하나를 당할 지도 모른다.
페일은 자신 뿐 아니라 미온의 안전까지 걸려있는 이상 함부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그럼 얘기를 좀 해볼까?”
“…무슨 얘기.”
“알 텐데. 우리가 뭣하러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너희를 빼돌렸겠어?”
“돈을 내놓으라고?”
“그래, 정답이야.”
페일의 말에 남자가 잘했다고 칭찬하기라도 하듯 대답했다. 페일은 그 목소리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얼마나 원하는데?”
“너와 네 친구의 목숨 값은 얼마지?”
“그건….”
자기 자신과 가장 소중한 이의 목숨이라는 것은 감히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금전 따위라면 전재산을 다 바쳐도 모자랄 것이다.
남자는 가려져 있는 페일의 표정을 읽지도 못했으면서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네가 가진 당장 움직일 수 있는 현금 전부를 내놔. 그럼 여기서 살려 보내주지.”
“…그게 얼만지 알고?”
“글쎄….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게 있어.”
그건 금액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희는 여기서 살아서 나가지 못한다는 거야.
스산한 살기가 감도는 남자의 목소리에 페일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직접 상대방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모두 진심이었다. 원하는 만큼 돈을 내뱉지 않으면 진짜로 그녀와 미온을 죽일 생각이다.
페일은 난생 처음 받아보는 살해 협박에 더 이상 떨림을 숨기지 못했다.
“읏….”
“귀엽긴. 너무 걱정하지 마. 돈만 마음에 들면 멀쩡하게 보내줄 테니까.”
슥. 남자의 소름끼치는 손길이 그녀의 목덜미를 만졌다. 그에 페일은 반사적으로 몸을 확 틀며 소리쳤다.
“저리 치워!!”
“…이거 신사답게 대하려고 했더니만.”
“흐흐, 네가 뭔 신사답게야. 여기서 제일 악질적인 놈이.”
“맞아. 네가 신사면 나는 천사다. 크하핫!”
“너흰 좀 닥쳐.”
“아, 예~예. 우리 신사님께서 말씀하시면 들어야지.”
페일과 대화하던 남자의 동료들이 남자를 놀렸다. 그에 남자는 분이 차오른 듯 페일을 향해 말했다.
“그냥 끝낼 수 있는 기회를 주면 헛생각을 하는 년놈들이 많더라고. 너도 태도를 보니까 그래. 그러니까 교육을 조금만 받고 가자.”
퍼억!!
“아악!!”
남자의 목소리를 듣던 페일은 순간 자신의 가슴께를 강타하는 충격에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가 떨어졌다.
뭐에 맞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뚜벅, 뚜벅.
두 손이 묶여 맞은 곳을 가리지도 못하고 고통에 몸을 벌벌 떠는 그녀에게 발소리가 다가왔다.
* * *
“저기에요!”
덜컹! 빌헬름이 문을 열고 급박하게 차량에서 내렸다.
애쉬는 그런 빌헬름의 뒤를 따르며 향하는 곳을 봤는데, 그곳은 아직 무언가를 건설 중인 공사현장이었다.
‘…추적기를 차가 아니라 당사자들한테 붙여 놨나보군.’
그 촬영 현장 속에 언제 여유가 생겨서 그런 것이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만큼은 정말 행운인 일이었다.
애쉬는 목표인 건물 입구 쪽에서 경계중인 인간을 발견하고 빌헬름을 멈춰 세웠다.
“여기부턴 내가 혼자 갈 테니까 납치범들이 어디로 빠져나가지 않는 지나 봐.”
“아, 네. 부탁드려요!”
빌헬름은 애쉬의 말에 수긍하면서 챙겨온 인이어를 넘기곤 지금 이 일이 자신의 일이기라도 한 듯 간곡히 부탁했다.
그에 애쉬는 작게 고개만 끄덕이고 곧바로 움직였다.
한 발짝, 두 발짝 내딛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빌헬름의 모습이 멀어진다.
어느새 하늘은 어두컴컴하게 잠겨 그의 그림자까지 완벽하게 가려주었다.
조명이 켜진 입구 근처에 쪽으로 향한 애쉬는 그곳에 서서 떠들고 있는 두 명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이따 우리 차례도 오겠지? 돈도 뜯고 재미도 보고 얼마나 좋아.”
“우웩, 난 이미 씹창이 난 것들은 보기도 싫어.”
“왜, 구독자가 1,000만이라잖아. 얼굴 못 봤어? 좀 어려보이긴 해도 괜찮던데.”
“그딴 게 중요하냐? 이미 딴 놈들이 실컷…컥!”
“응? 억…!”
한 명이 제 뒷목을 잡고 쓰러지고, 그것에 의문의 표정을 짓던 놈은 자신이 뭐에 당했는지도 모르고 바닥을 굴렀다.
핏자국이 조명 앞의 바닥을 물들였다.
착.
질척한 핏물 위로 애쉬가 발을 디뎠다. 검은 칼날을 빼어든 그의 뒷모습은 누가 봐도 넷상을 떠도는 ‘유성 그룹의 소드 마스터’ 그 자체.
담벼락을 타고 이동한 애쉬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바닥을 구르고 있는 무언가가 달빛에 반짝이며 그 모습을 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