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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44화 (144/230)

〈 144화 〉 6. 넷 아이돌(막간)

* * *

“흐, 또 시작했네.”

“어이! 너무 작살내놓진 말라고!”

그럼 이따 괜히 찜찜해지니까!

남자들이 낄낄대며 비명과 낮은 타격음이 들려오는 곳에 소리쳤다.

그들은 이미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 듯 익숙해보였다.

‘이 안쪽도 전부 처리해버리는 게 좋겠군.’

애쉬는 그것을 들으며 그들의 처분을 결정했다. 이 안에 있는 놈들은 모조리 사형.

다행히 납치당한 쌍둥이는 끔찍한 짓을 당하지 않았지만, 그 직전의 상황에 폭행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곳에 납치당한 것 자체가 다행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수많은 사건에서 갱 따위에 납치당한 여자들이 어떻게 됐는지 여럿 봐온 애쉬에게는 그나마 다행인 상황이었다.

­ 스륵.

애쉬의 허리춤에서 검은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깥에서 인간을 베고 왔음에도 피 한 방울 남아있지 않은 깨끗한 칼날이 반짝인다.

애쉬는 몸을 낮춘 채 가까운 기둥 뒤에서 얘기하던 놈들에게 다가갔다.

‘최대한 은밀하게 간다.’

이 정도 수준의 놈들이라면 제대로 반응하기도 전에 목을 떨굴 수 있었지만, 인질이 잡혀있는 이상 최대한 안전하게 가야했다.

아무리 그라도 거리가 떨어진 상태에서 인질에게 닿아있는 칼날이나 총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었으니까.

가장 가까운 놈들과 기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숨은 애쉬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적당한 때를 노렸다.

“못해도 몇 백만 크레딧은 뜯을 수 있을 텐데, 그럼 인당 얼마나 떨어지는 거지?”

“수십만 크레딧?”

“크, 그럼 한 동안은 그냥 먹고 놀아도 되겠군.”

“어디 물 괜찮은 곳 없냐?”

“유흥가 쪽에서 유명한 곳들 많잖아. ‘달의 꽃’이라던가.”

“거긴 너무 비싸지 않아?”

“그래도 수십만이면 한 번쯤 가볼 만하지.”

“음, 그렇긴 해.”

쓰레기들의 입에서 애쉬도 아는 이름이 나온다.

그러고 보면 ‘달의 꽃’에 가지 않은지도 꽤 오래 됐다. 레이라와 ‘뱀파이어’가 접수해서 계속 영업하고 있다고 하는데, 언제 한번 들러봐야겠다.

애쉬가 짧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기회가 왔다.

“그럼 난 잠깐 저쪽 좀 보고 온다.”

“어. 다녀와.”

한 명이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난 것이다.

터벅, 터벅. 애쉬는 발걸음 소리가 여덟 걸음 정도 멀어지자 주변을 살폈다. 이쪽을 보고 있는 시선은 따로 느껴지지 않는다.

거기까지 확인한 순간 애쉬는 바로 행동을 시작했다.

­ 터업!

“읍?! 으븝!!”

기둥 뒤에 있던 놈의 입을 막은 뒤 검날로 목을 그어 조용히 암살한다. 피가 바닥에 튀지 않도록 재빨리 시체를 기둥 뒤에 숨긴 애쉬는 곧장 이어서 주변을 돌며 하나씩 숫자를 줄여나갔다.

“컥…!”

숨이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여섯 번째 놈.

애쉬는 그 시체가 바닥에 닿으며 소리를 내기 전에 받아 장애물 뒤쪽으로 숨겼다.

이제 일고여덟 정도가 남았는데, 개중 대부분은 납치당한 쌍둥이 쪽에 모여 있어 한 번에 처치해야 했다.

애쉬가 인기척을 숨기고 그쪽으로 향하려 할 때였다.

주변에 있던 놈들 중 하나가 텅 빈 장내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애쉬가 몸을 숨기고 있는 쪽을 향해 걸어왔다.

“응? 이봐! 다들 어디…!”

­ 사악!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애쉬의 신형이 튀어나가며 검은 칼날이 대기를 갈랐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임에도 종이 갈라지는 것 같은 예리한 소리가 울리며 쭈욱 이어진 검은 선이 남자의 목을 가르고 지나간다.

인간의 목이 아니라 젤리나 두부 같은 것을 가르듯 부드럽게 남자를 스쳐지나간 애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납치범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뭔…!”

앞서 목이 잘려나간 납치범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던 나머지 떨거지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단숨에 전부 목을 친다.’

납치범들이 무기를 꺼내기 위해 품 안에 손을 넣었을 때, 이미 애쉬와 거리는 몇 미터 이내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일반인에게는 그마저도 길게 느껴질 거리였겠지만, 애쉬는 아니었다. 몇 미터라면 상대방이 무기를 채 꺼내고 반응하기도 전에 먼저 닿을 수 있는 초근접거리.

순식간에 적들의 한가운데로 들어간 애쉬는 몸을 크게 회전시키며 검을 한 차례 그었고, 그가 휘두른 검 끝은 어김없이 노리던 곳을 완벽히 베고 지나갔다.

“……!”

촤아악! 동시에 목이 베인 일곱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진다. 그 가운데서 피의 비를 맞고 있는 애쉬와 입술이 터지고, 몸 곳곳에 멍이 든 채 바닥을 구르고 있는 페일의 눈물 맺힌 눈이 마주쳤다.

페일의 눈이 있을 수 없는 것을 본 사람의 그것처럼 크게 떠지며 놀라움에 물들었지만, 애쉬에게는 그녀를 위로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여기 둘 다 모여 있는 줄 알았는데.’

베리 트윈즈의 블루베리, 미온 에스티가 안 보였다.

가장 가까운 인기척을 향해 눈을 돌려보니 십여 미터 정도 떨어진 구석에 머리에 보자기 같은 것을 뒤집어 쓴 소녀, 미온을 데리고 있는 납치범이 경악에 빠진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빨간 머리 꼬맹이를 둘러싸고 있는 납치범들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은 모양.

애쉬는 인질을 잡고 있는 남자가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들고 있는 검을 날렸다.

“애, 애쉬 론…커억!”

놈은 애쉬가 들고 있는 검과 머리색만 보고도 알아본 모양이었지만, 그의 이름을 모두 부르기도 전에 날아간 검이 목을 꿰뚫고 남자를 곤충박제처럼 벽에 박아버렸다.

“미온!! 이것 좀 풀어줘!”

아직 묶인 팔다리 때문에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페일이 애쉬에게 소리쳤다.

방금 전까지 성인 남성들에게 폭행당하고, 눈앞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봤음에도 제 쌍둥이에 대한 걱정이 더 큰 것 같았다.

“기다려.”

애쉬는 순순히 페일의 말에 따라 그녀의 팔다리를 묶고 있는 밧줄을 뜯어내 주었다.

평소였다면 고맙다고 하지는 못할망정 어딜 명령이냐고 놀려봤겠지만, 납치범들의 피를 뒤집어쓰고 패닉에 빠진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자신의 가족에게 다가가려는 페일의 모습은 그런 장난기 어린 마음이 싹 가시게 만들었다.

그가 구속을 풀어주자 페일은 곧장 일어나 미온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갓 태어난 사슴처럼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것을 본 애쉬가 그녀를 도와주려 할 때였다.

험상궂은 목소리가 그의 움직임을 멈추게 만들었다.

“이, 이 개자식!!”

“…아직 하나 남아있었나.”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듯한 더벅머리에 허름한 옷차림. 마지막 남은 납치범 하나가 애쉬와 일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애쉬 혼자만 있었다면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겠으나, 지금은 다리에 힘이 풀린 페일과 아직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미온이 있는 상태였다. 잘못하면 조금 곤란해질 수도 있는 상황.

애쉬는 그런 기색을 숨기고 선심 쓰듯 마지막 남은 납치범에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그냥 가면 보내줄 테니까 가라.”

물론, 그냥 보내줄 생각은 없었다. 서로 떨어져 있는 쌍둥이가 문제였지, 저런 놈을 처치하는 데는 굳이 검까지 필요하지도 않다.

혹시라도 방심하고 몸을 돌리는 순간 달려들어 목을 꺾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납치범은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탓인지 애쉬의 경고에도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웃었다.

“흐, 흐흐. 그래, 그 유명한 해결사라도 맨손으로는 총을 어떻게 할 수 없겠지?”

“딱히 그렇지는 않은데.”

“허세 부리지 마!”

타앙!

아직 여유 있는 애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납치범이 그를 향해 총탄을 한 방 갈겼다.

바로 죽이지 않고 농락이라도 할 생각인지 머리나 심장 같은 주요 부위를 노리지 않은 탄환이 날아온다.

애쉬는 반사적으로 움직여 그것을 피했다.

“피, 피했다고? 이, 저 년들은 둘 중 하나만 살려둬도 되겠지…!”

­ 타다다당!!

그러자 납치범은 당황하기라도 했는지 외치더니 그대로 총탄을 마구잡이로 갈겼다.

하지만 애쉬는 놈이 움직이는 것을 파악한 순간 페일을 안아든 채 뛰고 있었다.

“아파도 참아.”

“뭐? 꺗!”

얼떨결에 그에게 안긴 페일이 작은 비명 소리를 냈다. 그녀가 안기자마자 속도가 급격히 올랐기 때문이다.

애쉬는 그녀를 안은 채 몸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을 향해 다가갔다. 페일은 그나마 그가 안고 있었지만, 미온에게 납치범의 시선이 끌린다면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으, 으아아!!”

다행히 놈은 페일은 안아든 애쉬의 움직임에 당황해 소리 지르며 방아쇠만 마구잡이로 당길 뿐 그쪽으로 관심을 줄 새도 없는 것 같았다.

체구가 작은 여성이라는 짐덩이 하나를 달고서도 총탄을 피하며 파고든 애쉬는 놈의 정면에 닿은 순간 페일을 위로 높게 던져 올렸다.

“꺄아악!”

­ 우드득.

그리고 총을 고쳐 잡던 납치범의 목을 순식간에 꺾어버린 뒤, 다시 떨어지는 그녀를 받았다.

“무, 무슨 짓이야…!”

“이제 끝났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상태로 다시 품에 들어온 페일에게 애쉬가 대답했다. 그에 페일이 고개를 돌려 납치범의 상태를 확인했다.

목이 90도 이상 꺾여 입에 거품을 물고 몸을 파르르 떨고 있는 시체를.

그것을 본 페일은 다급히 고개를 애쉬의 품에 박아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쌍둥이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 나 좀 저기로 데려가줘….”

“오냐.”

대답한 애쉬가 미온에게 다가가 페일을 내려놨다. 자신의 쌍둥이에게 다가간 페일이 머리에 뒤집어 씌워진 것을 벗기고 밧줄을 풀려 했지만, 잘 풀리지 않는다.

애쉬는 친절하게도 거기까지 먼저 도움을 줬다.

“미온…!”

“비켜봐.”

­ 투두둑.

굵기가 손가락 한 마디는 되는 밧줄이 단숨에 뜯겨나간다.

자유의 몸이 된 페일과 미온은 감격의 자매 상봉을 이루었다.

“다친 덴 없어?”

“…페일이야말로 아프지 않아?”

“난, 난 괜찮아….”

페일은 괜찮은 척하려면서도 긴장이 풀렸기 때문일까 눈물이 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것을 본 미온도 작게 눈물지었다.

애쉬는 아직 시체에 박혀있던 자신의 검을 회수하며 슬쩍 거기서 시선을 돌렸다.

도시 안쪽에서 곱게만 자랐을 그녀들에게 이번 사건은 너무도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싸가지 없던 모습과 별개로 지금 자매의 사이에서는 끼어들 수 없을 정도로 슬픈, 그리고 안도 섞인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자매가 서로를 보듬고, 애쉬가 검날을 닦는 시간이 흐른 가운데, 애쉬의 귀에 꽂혀있는 인이어에서 깜빡 잊고 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애쉬 씨, 별 일 없는 거죠…? 아직 베리 트윈즈의 신호는 안쪽에 있긴 한데….

“아. 너한테 말하는 걸 잊었네. 무사히 구출했어.”

저, 정말요? 다행이에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너도 들어오던지 해. 전부 정리 끝났으니까.”

네!

상황이 무사히 끝났다는 소식에 힘차게 대답한 빌헬름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봤는데, 저쪽에 경호원들이랑 촬영팀 사람들이 묶여있던데, 거긴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풀어줘야지.”

*

“고마워….”

촬영팀과 경호원들이 깨어나고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눈시울이 붉어진 페일이 애쉬에게 조심스럽게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항상 꼿꼿이 서있던 붉은 머리칼이 찬 차례 푹 숙여진다.

애쉬는 그런 감사 인사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감사 인사는 됐어. 뭐, 공짜로 한 것도 아닌데.”

“…그래도 감사해요.”

물빛 머리칼의 미온이 페일에 이어 말했다.

만약 애쉬가 알맞게 오지 않았더라면 그녀들은 어떻게 됐을까. 그것은 감정 표현이 적은 미온도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로 끔찍한 것이라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자신의 머리칼에서부터 번진 것처럼 어딘가 얼굴이 붉어진 페일이 애쉬에게 말했다.

“…연락처 줄 테니까 가끔 연락해.”

“뭐?”

“자! 그, 그럼 난 간다!”

페일은 애쉬의 손에 종이 한 장을 넘겨주곤 바쁘기라도 하다는 듯 경호원들과 촬영팀을 향해 뛰어갔다.

그에 미온도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보이곤 천천히 그곳으로 향했다.

애쉬는 자신의 손에 들린 종이를 슬쩍 내려다봤다.

“…….”

“아, 애쉬 씨! 한번 조회 해봤는데, 예전에 해체된 어떤 갱단 소속이었던 것 같아요. 해체되고 남은 갱단의 잔당이 저지른 짓이네요.”

“그래?”

“네. 그런데 그 종이는 뭐예요?”

“아, 이거. 이건….”

애쉬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려다 자신이 오늘 하루 동안 봐온 빌헬름의 행동을 떠올리고 말끝을 흐렸다.

빌헬름에게 이걸 알려주는 게 맞을까?

짧게 고민해본 애쉬가 결국 말을 대충 얼버무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이런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겠지.’

물론, 알고 있건 모르고 있건 상대방이 직접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지만, 지금의 빌헬름에게 이것을 알려주는 것은 옳은 판단은 아닌 것 같다.

“그래요?”

빌헬름은 그런 애쉬의 말에 신경 쓸 정신이 없다는 듯 그냥 넘어갔다.

잠시 후, 자신들이 타고 온 차량의 수색 및 정비가 끝났는지 경호팀과 촬영팀 측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예!”

베리 트윈즈, 페일 에스티와 미온 에스티를 태운 차량은 곧 이곳을 떠나갔다.

그녀들이 안전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도운 1등 공신 중 하나인 빌헬름은 그것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난 듯 중얼거렸다.

“어라? 내 감사 인사는…?”

이것저것 정리를 돕느라 정작 그녀들과는 대화조차 더 못해본 빌헬름은 허무한 느낌으로 떠나는 차량의 뒤를 바라봤다.

그리고 며칠 뒤.

뒷세계의 커뮤니티는 다시 한번 올라온, 블러 처리나 모자이크가 없는 몇 초짜리 영상에 다시 한번 뜨거워졌다.

애쉬가 베리 트윈즈가 납치당한 곳에 침투할 때의 장면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

검은 칼을 든 잿빛 은발의 해결사가 입구를 지키는 납치범들의 목을 따는 영상은 전문 장비로 촬영된 듯 무척이나 깔끔했다.

“애쉬 씨! 이건 어디서 찍힌 거예요?”

“…나도 몰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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