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48화 (148/230)

〈 148화 〉 7. 총잡이들의 여명(4)

* * *

“…네가 그 애쉬 론모어란 애송이냐.”

코끝을 마비시킬 듯 묵직한 시가 향.

어찌나 진하던지 옅은 안개처럼 보일 정도로 짙은 담배 연기가 열린 문을 통해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것을 들이마셨는지 옆에 있는 게빌이 작게 기침했지만, 애쉬의 눈빛은 그 연기 사이를 꿰뚫고 방 중심에 앉아있는 한 남자에게 닿아 있었다.

‘이 남자가 ’세계 최고의 총잡이‘라고?’

애쉬는 자신의 눈길이 닿은 남자를 살폈다.

게빌이 늙은이라고 부르던 것과 달리 무척이나 건장한 몸.

게빌의 멋들어진 수염은 제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것인지 야성적으로 기른 턱수염은 물론이고, 시가를 물고 있는 입에서는 후욱 뿜어지는 담배 연기가 인상적이다.

그것만으로도 무척이나 위압적인 분위기가 살았는데, 정작 애쉬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그런 외적 요소가 아닌 그의 눈이었다.

이 어둑어둑한 방 안에서도 그 광포한 기색을 숨길 수 없는, 야수의 눈동자.

“콜록! 이 망할 늙은이. 담배 좀 적당히 피라니까아.”

애쉬는 어지간한 이들이라면 눈을 스치는 것만으로도 기가 죽어버릴 그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봤고, 둘의 눈빛이 교차되는 순간.

시간이 끝없이 느려지는 것 같은 감각과 함께 게빌이 내뱉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엿가락 늘어지듯 끝없이 이어졌다.

이것은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 아니었다.

애쉬는 유성 그룹에서 ‘웃는 악마’의 부단장과의 첫 스침 이후 게빌의 아버지라는 총잡이에게서 다시 한번 느껴지는 지금의 감각에 집중했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그 감각의 정체를.

‘이제 알겠군.’

지금 느껴지는 이 감각. 그것은 다른 게 아니라 그의 무의식이 보내는 경고였다.

눈앞의 남자는 자신을 해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는 실력자다. 그러니 경계하라.

그렇게 알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 감각을 느낄 때마다 심장이 뛰는 이유.

그것은 자신에게 대적할 수도 있을 적수에 대한 긴장과, 그것을 기대하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세계 최고의 총잡이’라는 이 남자를 상대해보고 싶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애쉬의 한쪽 입꼬리가 조금씩 말려 올라갔다.

그것은 얼마나 재밌을까. 얼마나 즐거울까. 과연 이 남자는 ‘웃는 악마’의 부단장보다 강할까?

애쉬의 머릿속에 순식간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다. 직접 붙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일단 지금의 감각이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 깨닫자 그 뒤에 통제하는 것은 쉬웠다.

느려졌던 시간이 다시 가속하여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그의 사고 속도가 가속하여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지만, 애쉬와 저 남자가 눈을 맞추고 있던 시간은 불과 1초 남짓.

자신이 애쉬 론모어라는 애송이가 맞느냐고 물어봤던가.

애쉬는 그 속을 알 수 없는 남자의 눈동자를 보며 대답했다.

“맞는데, 그쪽은?”

“데일 리퍼슨.”

시가를 물고 있던 남자가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물고 있던 시가를 한 손으로 들며 담배 연기와 함께 덧붙였다.

“멍청하게도 너 같은 애송이에게 손목을 헌납하고 온 얼간이의 애비다.”

삐딱하게 앉은 중년 남자, 데일 리퍼슨이 애쉬를 바라본다.

그와 동시에 이 방 전체를 뒤덮고 있던 무거운 분위기가 그에게 몰려들었다. 애쉬도 과거 본능적으로 깨달았던 기세의 집중이다.

데일 리퍼슨은 그의 기를 조금 꺾어놓으려 하는 것 같았지만, 여기에 살의가 섞이면 애쉬도 어중이떠중이들을 쫓아내는데 자주 애용하는 살기의 압박이 되는 것이다.

데일 리퍼슨 또한 애쉬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세를 의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자유자재로 사용할지도 모른다.

애쉬가 뜻대로 다룰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살의 하나뿐이었으니까.

그것을 알아챈 애쉬는 픽 웃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재밌어질 것 같은데?’

당장 눈짐작만으로도 이 정도라면 원작 게임에서도 메인 에피소드에 등장했을지 모를 중역. 아니, 이런 실력자라면 무조건 등장했을 것이다.

싸워보기도 전에 이런 압박감을 주는 상대가 원작에서 등장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데일 리퍼슨. 그는 단순히 총만 잘 다루는 남자가 아니라 애쉬 자신 이상으로 많은 피를 손에 묻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애쉬와 데일 리퍼슨이 서로를 바라보며 기세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게빌이 끼어들어 말했다.

“말했을 텐데. 내가 얼간이가 아니라 이 녀석이 괴물 같은 녀석이라고. 영감도 한 번 당해 보면 정신이 확 들걸.”

“멍청한 소리.”

데일 리퍼슨은 아들인 게빌 리퍼슨의 말을 단호히 끊어냈다.

자신이 이런 애송이에게 당할 리가 없지 않느냐는 듯한 자신감이 넘쳐나는 태도였다.

평소였다면 감히 자신의 면전에서 자신을 무시하는 놈의 이빨을 털어줬을 애쉬였으나, 느껴지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은 그런 자신감을 가질만한 실력자였다.

애쉬는 데일 리퍼슨의 태도에 구태여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하지 않고, 웃는 얼굴 그대로 그에게 제안했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지금 바로 어때?”

총잡이라고 했으니 지금 당장 사격장이든 어디든 가서 한판 해보자고.

애쉬는 자신의 들뜬 기색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대된다는 감정을 가득 담아 데일 리퍼슨에게 곧장 제안했다.

아마 상대도 그와의 짧은 대치 사이에 뭔가를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애쉬 론모어라는 인간이 자신이 무시하던 것처럼 진짜 애송이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겠지. 그럼 지금 그의 제안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터였다.

“흥.”

데일 리퍼슨은 애쉬의 제안에 코웃음 치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앞장서 움직이며 말했다.

“따라 나와라.”

“오, 얼마든지.”

데일 리퍼슨의 말에 애쉬는 신이 난 기색으로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에 방에 같이 있던 게빌도 함께했다.

집무실을 나와서 복도를 걷는다. 게빌은 설마하며 데일 리퍼슨에게 물었다.

“영감, 파티 준비도 끝났는데 사격장까지 가려는 건 아니지?”

“…….”

데일 리퍼슨은 게빌의 말에 대꾸하고 싶지도 않다는 듯 입을 다물고 발걸음만 옮겼다.

애쉬와 게빌은 그의 뒤를 따랐는데, 곧 흥미진진해하던 애쉬의 표정이 변했다.

데일 리퍼슨의 발걸음이 향한 곳. 그곳이 바로 다른 직원들이 파티 중인 사무실이었기 때문이다.

한 판 붙어보자는데 이곳으로 올 이유가 있나?

애쉬가 그런 의문을 가질 때, 게빌이 뭔가 알았다는 듯 데일 리퍼슨에게 물었다.

“아, 설마 그걸 보여주려고?”

게빌의 말을 들어보면 뭔가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오늘 데일 리퍼슨을 처음 보는 애쉬로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딱히 뭔가 보고 싶지도 않고.’

애쉬가 바라는 건 어디까지나 시원시원한 싸움이었지, 묘기 따위를 보려고 여기까지 몸소 행차한 건 아니었다.

그런 애쉬의 생각과 별개로 게빌, 데일 리퍼슨 부자와 그가 파티장에 들어가자 먼저 자리하고 있던 직원들이 그들을 반겨주었다.

“뭐야, 얘기는 끝난 건가?”

“우리 단장은 웬일로 벌써 나왔지? 평소라면 시간이 좀 지나서 나왔을 텐데.”

“손님도 왔겠다, 같이 한 잔 하려나보지.”

“사장님 분위기가 그런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케일 씨가 보기에도 그렇죠?”

카우보이모자들의 태평스러운 목소리부터 시작해서 여직원들의 눈치 보는 듯한 목소리까지. 안 그래도 시끌벅적하던 파티장에 목소리들이 가득 들어찼다.

그런 그들이 서있는 파티장 한 가운데까지 걸어간 데일 리퍼슨은 물고 있는 시가를 내리고는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후우. 가운데를 비워라.”

“오오, 가운데를 비우라고 하신다~!”

“뭐야? 설마 입단식이냐? 저 녀석 신입이야?”

“멍청아. 전부터 얘기했잖아. 저 칙칙한 머리칼이 게빌 손목 잘라먹은 녀석이라고.”

“그럼 기라도 죽여주려고 하는 건가?”

“아무래도 좋지. 우린 한 잔 하면서 구경이나 하자고.”

카우보이모자들이 떠들며 파티용으로 펼쳐뒀던 테이블을 옮겼다.

순식간에 파티장 한 가운데에는 직경 10여 미터 정도 되는 빈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 중심에 선 데일 리퍼슨은 테이블이 옮겨지는 모양을 바라보던 애쉬에게 어서 안 들어오고 뭐하냐는 듯 눈짓했다.

애쉬는 그런 그의 눈짓에 따라 급조된 결투장 한 가운데로 들어갔다.

술잔을 들어 올리고 이쪽을 바라보며 떠드는 카우보이모자들과 일반 직원들.

워낙에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싫어하는 애쉬는 불쾌한 표정으로 다시 시가를 물고 있는 데일 리퍼슨에게 말을 던졌다.

“뭐, 여기서 장난이라도 한번 해보자고?”

괜찮은 실력자라고 생각해서 한판 붙을 생각에 기분이 좋았는데, 무슨 동물원 원숭이라도 된 것 같아 순식간에 저조해졌다.

하지만 데일 리퍼슨은 기분 나쁘다는 티를 팍팍 내는 애쉬의 태도에도 아랑곳 않고, 품속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 휘릭.

손가락을 타고 빠르게 빙글 돌아가는 은빛의 무언가.

워낙에 능숙하고 빠르게 돌렸기에 조금 번져 보일 정도였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굳이 애쉬가 아닌 일반인이라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총? 이런데서?’

그것은 리볼버였다. 그것도 과거 게빌 리퍼슨이 애쉬에게 맡겼던 것과 같은 모델의.

그것을 확인한 애쉬가 진심이냐는 듯 여유롭게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총잡이에게 물었다.

“여기서 한판 해보자고?”

설마 카우보이모자들 뿐 아니라 일반인으로 보이는 여성 직원들까지 있는 이 자리에서 자신과 제대로 붙어보자는 건가?

아무리 타인에게 무심한 애쉬라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기에 자신의 일과 상관없는 일반인이 휘말리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나 진짜 전투가 아니라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 온 이런 곳에서는 더욱 말이다.

그러나 그런 애쉬의 물음에 돌아온 것은 대답이 아니라 데일 리퍼슨, 그가 돌리고 있던 리볼버였다.

“받아라.”

휙.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던 은빛 리볼버가 총잡이의 손에서 벗어나 칼잡이에게 날아왔다.

딱히 그것으로 타격하겠다거나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지 그다지 빠르지 않은 속도.

애쉬는 날아오는 리볼버를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었다.

“…뭐하자는 거지?”

은빛 리볼버는 게빌 리퍼슨이 그에게 맡겨뒀던 것과는 조금 다른 문양과, 다른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The Devil’.

‘Golden Canyon’이라는 별명이 새겨져 있던 게빌 리퍼슨의 것과 달리 그의 리볼버엔 악마라는 뜻의 영단어가 새겨져 있다.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저 남자는 별명이 악마라는 뜻인가?’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게빌 리퍼슨의 리볼버에는 그의 별명인 골든 캐니언이 적혀 있었으니 저 남자, 데일 리퍼슨의 별명은 악마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마침 애쉬는 최근 자신과 얽혔던 한 집단의 이름을 떠올렸다.

‘웃는 악마’

그 놈들과 엮인 직후, 대단한 실력자로 추정되는 총잡이와 만났는데 그의 별명이 악마다? 무척이나 공교로운 일이었다.

‘설마 그쪽 소속은 아니겠지.’

뭘 원해서 자신에게 총을 넘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완전히 적대하는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다.

‘웃는 악마’에 관해서는 지금 이 일이 끝난 뒤 물으면 되겠지.

그렇게 결론지은 애쉬는 탄환까지 꽉꽉 들어찼는지 묵직한 리볼버를 들어 보이며 퉁명하게 물었다.

“이건 뭐, 그쪽을 쏘기라도 해달라는 건가?”

이 리볼버 안에 든 것은 분명한 실탄이다. 무게감과 연한 화약 냄새. 그것만으로도 애쉬는 리볼버와 그 안에 들어있는 탄환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

자신의 아들과 부하들이 있는 곳에서 몸에 구멍이라도 나고 싶다는 건지 뭔지.

애쉬는 물론 검을 가장 잘 썼지만, 타고난 감각으로 총 또한 못 쏠 수가 없는 인간이었다.

당장 어디 경호 회사에 들어가더라도 최고 수준의 사격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실력자.

그가 항상 검만 쓴다고 해서 총을 못 쓸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애초에 요즘 세상에 뒷세계에서 일을 하는 놈들 중 총을 못 다루는 놈들이 얼마나 있겠냐만…….

설마하니 자신을 쏘라고 총을 넘긴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 애쉬의 물음이었지만, 데일 리퍼슨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그의 예상을 크게 벗어난 것이었다.

그는 시가 끝의 재를 툭 털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래. 날 쏴라, 애송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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