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 7. 총잡이들의 여명(5)
* * *
“그래. 날 쏴라, 애송아.”
떠들썩한 파티장 가운데 담담한 데일 리퍼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을 건넸으면서도 별다른 경계심조차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그에 애쉬는 자신이 총잡이가 아니라 칼잡이라는 것을 따지기 전에 먼저 물어야 했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여기 든 게 실탄이 아닌가?”
지금 중심에 선 둘을 웃으며 바라보는 카우보이모자 총잡이들의 분위기는 그렇다 쳐도, 또 시작이구나 하며 가볍게 고개를 젓는 일반인 직원들의 분위기는 실탄이 든 총을 앞에 두고 있는 느낌이 아니다.
하지만 애쉬 자신의 감은 분명 리볼버 안에 든 탄환이 모두 실탄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거기에서 작은 혼란이 온 것이다.
그런 애쉬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데일 리퍼슨이 아니라, 그를 안내한 게빌이었다.
“아니, 거기 든 건 분명 실탄이 맞아. 지금 저 늙은이가 보여주려는 건 일종의… 신입 신고식 같은 거지.”
“신고식?”
“그래. 바깥에서 기고만장해진 상태로 들어온 신입들의 콧대를 꺾어두기 위한 행사인데…….”
그것을 외부인인 네게까지 보여주려는 것 같다.
게빌의 끊어진 뒷말은 그런 뜻을 담고 있었다.
‘총잡이들의 여명’은 ‘리퍼슨 물류’라는 회사로도 활동했지만 연방의 뒷세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용병집단 중 하나였고, 당연히 신입들을 받는 기준 또한 빡빡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놈들만 가려 받다보니 게 중에 인성이 덜 되먹은 놈이 없을 리가.
우물 안에서 날고 기던 놈들이 들어오다 보니 자꾸만 귀찮은 일이 생겨났고,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 단장인 데일 리퍼슨이 만들었으며, 이제는 전통이 된 신고식.
애쉬로서는 그 신고식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얘기를 들어보니 흥미가 조금 생겨나긴 했다.
신고식 한 번에 주제 모르는 애송이들의 콧대를 완벽히 꺾어놓는 것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대단한 것을 보여줬겠지.
‘그런 거라면 한번 정도 어울려 줄까.’
‘세계 최고의 총잡이’라는 상대방의 실력도 슬쩍 볼 겸, 한 번 놀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휘리릭.
“오케이, 좋아.”
그렇게 결심한 애쉬가 손 안에서 묵직한 리볼버를 한 바퀴 돌렸다. 그도 나름 총을 다뤘기에 익숙한 손놀림.
애쉬가 승낙의 뜻을 나타내자 잘 해보라며 게빌이 물러났고, 구경꾼들이 휘파람을 불며 떠들었다.
“휘이익!!”
“잘 해보라고, 신입!”
“신입이 아니라 그냥 외부인이라니까 그러네.”
“아무렴 어때! 힘내라 회색머리!”
“…이런 행사는 그냥 바깥에서 하면 안 되나.”
카우보이모자들이 환호하고, 일반 직원들 중 누군가가 푸념했다.
애쉬는 그런 목소리들을 들으며 픽 웃었다. 그리고 여전히 시가를 문 채 손은 주머니에 넣고 있는 데일 리퍼슨에게 물었다.
“여기 들어있는 여섯 발. 다 써도 되는 거겠지?”
“마음대로 해봐라.”
그래봐야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테니까.
데일 리퍼슨의 목소리에서는 그렇게 말하는 듯한 오만함까지 느껴졌다.
애쉬는 그 여유가 과연 진짜 자신감일지, 아니면 자만일지 시험해보겠다고 생각하며 총을 똑바로 들었다.
리볼버의 총구가 데일 리퍼슨을 똑바로 향하고, 총신의 끝이 전등불에 반짝 빛났다.
“그럼 사양 않고.”
작게 중얼거린 애쉬는 그 순간 사고를 급속도로 가속시키며 리볼버를 들고 있는 자신의 팔에, 자신의 손끝에 집중했다.
그리고 동시에 과거 자신이 상대해왔던 수많은 적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격 실력을 가진 자는 누구였을까.
‘폭군 오마르’?
아니, 그는 육탄전차와 같은 방어력과 돌파력은 대단했으나, 총을 그렇게 잘 다루진 않았다.
‘방화광 루이스’?
아니, 그는 화염 방사기 따위의 무기를 썼을 뿐 제대로 된 총은 사용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레이라 플로리스’?
그래, 그녀는 분명 총을 잘 다루긴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그가 상대해왔던 이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실력을 지닌 총잡이가 있지 않았던가.
‘골든 캐니언’, 게빌 리퍼슨.
비록 반칙과도 같은 존재에게 막히긴 했으나 그가 마지막에 보였던 사격은 애쉬로서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연격이었다.
애쉬의 사격 실력은 분명 뛰어났으나, 그 한계는 명확하다.
감각적이고 더듬어지지 않아 거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니까 기술적인 것에 능통하지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가 봐왔던 총잡이들 중 가장 뛰어났던 이의 것을 모방할 수밖에.
‘분명 이렇게 했었지.’
자신이 보았던 것을 떠올리며 싱크로를 맞춰간다. 애쉬의 몸은 그 기억 속 ‘골든 캐니언’의 모습을 따라갔다.
타악.
그의 엄지가 리볼버의 공이를 뒤로 당겼다.
아무리 애쉬라도 겨우 한 번 본 것만으로 상대방이 수십 년 동안 갈고 닦은 기술을 완벽히 흡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수준 안쪽이라면 원본에 한없이 가깝게는 따라할 수 있었다.
게빌 리퍼슨이 보여줬던 기술은 아쉽게도 그 어느 정도를 벗어나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끼리릭.
수십 년까진 아니더라도 수 년 이상 훈련한 수준까지는 단숨에 끌어올릴 수 있다.
타아앙!!
방아쇠가 당겨지며 찰나의 순간 총구가 연달아 불을 뿜었다.
단 한 발의 총성. 그리고 쏘아져나간 세 발의 탄환.
골든 캐니언, 게빌 리퍼슨은 한 번의 총성 안에 더 많은 탄환을 정확히 쏘아냈지만, 애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원하는 곳에 정확히 맞출 수 있는 한계는 세 발이 끝이었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탄환이 대기를 꿰뚫고 회전하며 전진했다.
상대방의 목숨을 노리는 것은 아니었기에 탄환이 향하는 곳은 팔과 다리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맞는다면 월 단위로 요양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지 볼까.’
마지막 세 번째 탄환이 총신에서 폭발적으로 뻗어나가는 것을 느낀 애쉬는 곧장 상대방, 데일 리퍼슨에게 집중했다.
피할 거냐? 아니면 뭔가 개조 신체 따위로 막을 거냐?
피한다면 뒤쪽에 서있는 직원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을 것이고, 방어형으로 특화된 개조 신체로 막는다면 도탄의 위험이 있었다.
당연히 지금 사람이 주변에 이렇게 많은 상황에서는 그런 도탄마저도 위험하다.
자신이 직접 쏴보라고 했으니 뭔가 완벽히 막을 방법이 있겠지.
그렇게 눈을 돌린 애쉬에게 보인 것은 그의 모든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느려진 시간 속 천천히 피어오르는 시가 연기.
두 손을 모두 주머니에 넣고 있던 데일 리퍼슨은 어느샌가 리볼버 한 자루를 꺼내든 채 똑바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타아앙!!
데일 리퍼슨이 들고 있는 리볼버의 총구가 불을 뿜는다.
애쉬가 쏘아낸 것과 정확히 같은 속도.
한 번의 총성 안에 세 발의 탄환이 쏘아져 나왔다.
‘탄환을 탄환으로 맞춰서 떨구겠다는 건가?’
그것을 본 애쉬가 데일 리퍼슨의 의도를 단번에 파악했다.
그의 이번 예상은 정답이었는지, 데일 리퍼슨이 쏘아낸 세 발의 탄환은 대기층을 뚫고 애쉬가 쏘아낸 세 발의 탄환을 정확히 노리며 다가갔다.
상대방이 쏘아낸 탄환을 완벽히 읽고 자신이 쏘아낸 탄환으로 상쇄하는 것.
거기까지는 애쉬도 조금 놀랐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비현실적인 괴물들이 널려있는 게임 속 세상에서 ‘세계 최고의 총잡이’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러나 그 직후 일어난 장면은 애쉬조차도 스스로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뭐…!’
티잉!
애쉬가 쏘아낸 세 발의 탄환과 데일 리퍼슨이 쏘아낸 세 발의 탄환이 부딪힌다.
그리고 애쉬가 쏘아낸 탄환은 모두 수직으로 떨어졌고, 데일 리퍼슨이 쏘아낸 탄환은 모두 수직으로 솟아올라 각각 바닥과 천장에 처박혔다.
파바박!
고무줄 늘리듯 쭈욱 늘려놨던 1초가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온다.
떠들썩한 소리가 다시 이어졌고, 부스스스 총탄이 박힌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졌다.
“캬…. 언제 봐도 예술이라니까 저 양반 솜씨는.”
“나도 저걸 보고 한동안 충격을 받아서 말도 못했지.”
“…진짜 천장에 방탄 코팅을 하던지 해야지.”
카우보이모자들과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애쉬는 데일 리퍼슨과 자신의 총탄이 처박힌 천장, 그리고 바닥을 순서대로 바라봤다.
양쪽 모두 수십 발 이상의 총탄 구멍을 메꾼 자국이 나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애쉬는 아직 총구에서 화약 연기가 흘러나오는 리볼버를 슥 내리는 데일 리퍼슨을 진지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건 정말….’
‘세계 최고의 총잡이’라고 했나?
애쉬는 방금 전 데일 리퍼슨의 기교와 천장, 그리고 바닥에 남아있는 총탄 자국들을 본 순간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멋모르는 이들은 그저 탄환으로 탄환을 맞춰 상쇄시킨 것으로만 볼지도 모른다. 그들에겐 그것조차 믿을 수 없는 장면이겠지.
하지만 애쉬처럼 탄환의 궤도와 회전 하나하나까지 읽을 수 있는 이들에겐 그보다도 몇 단계는 높은 아니, 아예 차원이 다른 기교로 보였다.
자신과 상대의 총탄의 회전과 궤도를 읽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이용해 도탄 없이 완벽한 수직으로 서로의 총탄을 천장과 바닥에 꽂아버리는 것.
그건 단순한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이론상으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인간의 뇌와 손끝으로 초정밀 기계들이나 가능할 것을 실전에서 해낸 것이다.
게다가 그가 애쉬보다 늦게 총을 뽑은 것을 생각하면…….
‘괴물이군.’
남은 세 발의 탄환을 더 쏴볼 필요도 없었다.
애쉬의 검날을 이용한 총탄 되받아치기보다도 훨씬 수준 높은 기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천장과 바닥의 총탄 자국들을 보아하니 신입들이 들어올 때마다 이런 걸 보여줬으니 그들이 충격에 빠져 입을 다물 수밖에.
애초에 이게 무엇인지도 못 알아볼 멍청이들은 ‘총잡이들의 여명’에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단하네. 나도 총으로는 못 이기겠어.”
리볼버를 내린 애쉬가 데일 리퍼슨을 보며 말했다. 남을 칭찬하는데 인색한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애쉬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데일 리퍼슨에게 건네받았던 리볼버를 휙 던져 되돌려주었다.
그가 던져주는 리볼버를 가볍게 받은 데일 리퍼슨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총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면 이길 수 있다는 뉘앙스를 알아들은 것이다.
후욱 담배 연기를 내뱉은 데일 리퍼슨이 물었다.
“총으로는 이길 수 없다?”
“어. 인정할게, 총으로는 못 이겨.”
애쉬는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리볼버나 총 따위의 대결로는 저 남자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졌다는 건 아니다.
그의 주특기는 어디까지나 사격이 아니라 검을 다루는 것이었으니까.
데일 리퍼슨의 실력을 보고 몸이 잔뜩 달아오른 애쉬가 검 손잡이에 한 손을 툭 얹은 채 말했다.
“내 특기가 검이라는 건 들었지? 그쪽 실력은 잘 봤으니 이제 나가서 한 판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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