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 7. 총잡이들의 여명(7)
* * *
“……해서 매일 두 건 정도의 일을 마치고 있습니다.”
“꽤나 열심이군.”
“네. 솔직한 마음으로는 어떻게든 여기 계속 붙잡아두고 싶을 정도예요.”
데일 리퍼슨의 집무실. 보고를 위해 그곳에 들른 재무팀장, 케일 로렌스가 반쯤 진심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애쉬 론모어, 그 해결사가 ‘리퍼슨 물류’, ‘총잡이들의 여명’에서 일한 지 이제 10일이 지났다.
그 동안 그가 보인 성과는 이미 일반적인 수준을 벗어나 있었다.
최고 난이도의 의뢰들로만 매일 두 건 이상씩 해결하고 있으며, 그런 와중에 동료들의 평가 또한 무척이나 좋다.
“다만 단점이라면 협동성이 조금 떨어진다는 것 같은데….”
“실력이 있으면 그딴 건 상관없지.”
“…네, 그렇죠.”
케일의 입에서 나온 그의 유일한 단점을 데일 리퍼슨이 부정했다.
결국 협동이라는 것도 실력이 부족할 때나 필요한 것 아닌가. 혼자서 모두 다 할 수 있다면 타인과 힘을 합치는 일 따위, 방해에 불과했다.
케일은 계속해서 보고를 이어갔다.
“결과적으로 게빌 씨가 재활에 들어가기 전보다 토벌 의뢰로 인한 수익률이 약 11% 정도 상승했어요.”
11%. 어떻게 보면 그다지 크지 않은 수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총잡이들의 여명’만큼 이름 높은 집단에서 일어난, 단 한 명으로 인한 변화라면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
게빌도 기껏해야 하루, 혹은 이틀에 한 건씩 하곤 하던 최고 난이도의 의뢰들이 들어오는 족족 신입 해결사에게 썰려나가고 있었기에 있을 수 있던 변화.
호위나 물품 배송 같은 부류의 의뢰도 있긴 했으나, 그런 것들은 워낙 소요 시간이 길었기에 2주일에 한정된 잿빛 해결사를 써먹기에는 비효율적이었다.
최종 수익률에 대한 변화를 마지막으로 케일은 애쉬에 대한 재무적인 보고를 끝냈고, 데일 리퍼슨은 그녀에게 물었다.
“네가 본 그 애송이는 어땠지?”
“제가 본 애쉬 씨라면….”
그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케일은 열흘이라는 짧은 시간이나마 자신이 봐왔던 애쉬 론모어를 떠올려봤다.
조금 무서운 부분도 있지만, 나름 재치 있고 무엇보다 외모부터가 무척이나 뛰어나다보니 일반인 사무직원들은 그를 좋아하는 편이다.
케일도 그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역시 슬럼 출신이기 때문일까. 거친 부분도 분명 보였지만, 그에게서는 은근한 배려심 또한 느껴졌다.
뒷세계에 속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는 어디까지나 부드럽게 다가왔으며, 또 유쾌한 부분도 있는 남자.
다만 아직 속단하긴 일렀기에 케일은 애매한 느낌으로밖에 말할 수 없었다.
“얼마 보진 않았지만, 괜찮은 분 같아요.”
“그래.”
그런 케일의 말을 들은 데일 리퍼슨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건방지고 주제를 모르긴 하지만, 그가 보기에도 근본부터가 썩어있는 녀석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 애송이를 완전히 꺾어버릴 필요까진 없겠군.’
앞으로 4일. 데일 리퍼슨은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약속의 날에 대하여 최종 결정을 내렸다.
* * *
“와아! 게빌 형!”
“오, 데이빗. 많이 컸네.”
“겨우 2주일 밖에 안 지났는데요?”
“그 나이 때는 원래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법이야.”
게빌을 비롯한 카우보이모자들이 이런저런 상자들을 들고 들어서자 아이들이 신난 발걸음으로 달려와 그들을 반긴다.
한 발짝 뒤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애쉬는 자신이 제대로 온 게 맞나 싶어 주위를 둘러봤지만, 트럭에서 여러 물품이 든 박스를 내리는 직원들의 표정에도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제일 중요한 임무가 있는 곳이라고?”
7구역에 위치한 어느 커다란 보육원. 그 정문에 선 애쉬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목소리에 트럭에서 내려지는 물품을 확인하던 케일이 대답했다.
“미래를 키우는 일인데, 이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그래,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갈 곳 없는 어린아이들을 보살피는 보육원.
이런 곳에 지원을 나가는 것 또한 일종의 투자라면 투자였고, 또 도의적으로도 무척이나 옳은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게 지금까지 나갔던 임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임무라니.
당일의 할당량을 마쳤음에도 그 말에 따라 나왔던 애쉬로서는 조금 속은 기분이었다.
일단 나왔으니 뭔가 하기야 하겠지만.
“자주 이런 봉사를 나오나?”
“보름에 한 번씩 회사 차원에서 나오곤 하죠.”
“그렇게 많이?”
“네. 보통은 업무시간 이후에 나오는 거다 보니 조금 힘들긴 한데, 아이들이 기뻐하는 걸 보면 저희도 기분이 좋아지죠.”
보람이랄까. 그런 게 있어요.
케일은 이렇게 말하니 뭔가 선행을 자랑하는 것 같다며 부끄러운 듯한 말투로 말했다.
“아마 애쉬 씨도 하다보면 느끼실 거예요.”
“…난 애들은 별론데.”
애쉬가 짧게 대꾸했다.
그는 어린애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오히려 조금 싫어하는 축에 속했다. 샤인처럼 싹싹하고 꼼꼼하며 어른스러운 녀석이라면 모를까, 일반적인 애들처럼 시끄럽고 눈치 없는 것은 질색이었다.
케일은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듯한 눈치의 애쉬에게 쓴웃음 지으며 말했다.
“내키지 않으시면 먼저 가셔도 돼요. 회사 내에서도 애들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서 자원자만 하고 있는 일이니까요.”
“아니, 뭐.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기도 그렇긴 해.”
아무리 잘못 알고 왔다지만, 여기까지 와서 애들 싫다고 그냥 가면 너무 쓰레기 같지 않은가.
애들을 직접 상대하지 않더라도 도울 방법은 있다. 애쉬는 그냥 짐이라도 좀 나른 뒤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오오, 역시 에이스 신입! 사이보그도 아니라고 들었는데 대단하구만!”
“올릴 수 있는 만큼 올려.”
빨리 끝내고 가게.
애쉬가 위로 차곡차곡 쌓이는 지원 물품 상자를 보며 말했다.
그는 박스당 못해도 4,50 킬로그램씩 나가는, 특히 무거운 물건들을 주로 들어 옮겼는데 그것들을 여덟 칸, 열 칸씩 쌓아 올리니 그 무게만 수백 킬로그램에 달했다.
입구에서 아이들을 상대하던 게빌이 애쉬를 보며 조금 걱정스런 기색으로 말했다.
“이봐, 애들이 많으니 조심해.”
무게도 무게지만 부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데다 어린애들이 많은 보육원이었기에 특히나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애쉬는 그런 게빌의 목소리에 콧방귀만 뀌며 지원 물품의 탑을 들고 일어섰다.
“걱정 말고 애들 상대나 하시지.”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가 누구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쏘아진 총탄을 느끼고 피할 수 있는 게 바로 애쉬 론모어란 해결사였다.
그보다 한참은 존재감이 크고, 느릿느릿한 어린애들을 피하는 것 정도야 어려울 것도 없다.
그리고 애쉬는 주변인들의 걱정이 괜한 것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어린애들을 자연스럽게 피하며 물건을 옮겼다.
초인적인 근력과 균형감각. 그리고 기척 감지 능력의 조화였다.
그렇게 지원 물품 상자를 완벽히 옮긴 애쉬였으나 그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와아아….”
“우와, 이 형 힘 진짜 쎄다.”
쿠웅. 육중한 무게가 바닥에 놓이는 소리가 신호라도 되는 듯 몇몇 아이들이 애쉬에게 다가왔다.
그가 놓친 것. 그것은 바로 물품을 옮기는 그를 바라보는 보육원 아이들의 눈이었다.
“뭐야.”
“형! 저도 들어주세요!”
“저두요!”
“나도 올라갈래!”
순식간에 몰려든 꼬맹이들이 애쉬에게 매달리며 소란스럽게 떠들었다.
애쉬는 혼란에 빠진 정신으로 생각했다.
‘…이건 생각도 못했는데.’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는 애들은 애쉬를 경계하는지 다가오지 않았지만, 열 살 밑의 어린 아이들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그에게 붙었다.
이 꼬맹이들이 거슬린다고 떨쳐버릴 수도 없고, 거칠게 대할 수가 없다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애쉬는 게빌을 향해 도움의 눈빛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것은 묘하게 약 올리는 듯한 표정과 그리고 외면이었다.
“애들한테 인기 많네! 온 김에 같이 실컷 놀고 가라고~!”
“…….”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구나.
과거 게빌이 했던 말을 케일에게 알린 것. 지금 저 태도는 그때 일에 대한 복수가 분명하다.
업보는 돌아온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어깨에 태워주세요!”
“저는 높이높이 하고 싶어요!”
“잠깐 기다려, 바지 내려가니까 당기지는 말고!”
애쉬가 끌려 내려가는 바지춤을 붙잡고 다급히 아이들을 말렸다.
순수한 눈망울로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괴롭혀오는 꼬맹이들은 애쉬가 여태껏 겪었던 적들 중에서도 손에 꼽는 난적이었다.
“너 같은 애송이한테 잘 어울리는 모습이구나.”
뒤늦게 보육원 원장과 얘기를 마치고 나온 데일 리퍼슨이 어린애들에게 둘러싸인 그를 보고는 한 말이었다.
* * *
“그럼 돌아올 왔을 때 볼 수 있도록 선물이나 좀 해볼까?”
“너무 소란 피우지는 마. 그래도 도심이라고 시끄러워지면 경찰에 뭐에 귀찮아질 테니까.”
“괜한 걱정은. 우리 부단장님이 계시는데 어때. 안 그래? 우리 친애하는 부단장님?”
하급자인 듯 하지만 경칭을 쓰면서도 비꼬는 듯한 목소리가 울린다. 거기에 부단장이라 불린 인영은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래도 어지간하면 목숨은 빼앗지 않는 쪽으로 하자구요. 아시겠죠? 여러분.”
“오케이~”
“그럼 시작은 지금 바로?”
“네. 바로 출발하죠.”
제 7구역. ‘리퍼슨 물류’의 사무실이 위치한 빌딩을 올려다보던 일련의 무리가 행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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