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화 〉 7. 총잡이들의 여명(8)
* * *
“흐흐, 꼬맹이들 상대해 보니까 어때? 피곤하지? 그러니까 그때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지.”
“…애처럼 굴지 좀 마, 게빌.”
“흐흐흐.”
‘리퍼슨 물류’의 사무실이 위치한 빌딩.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이 게빌이 애쉬를 향해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같이 올라가고 있는 케일이 부끄럽다는 듯 말했지만, 신경 쓰지 않는 모양.
정신적으로 잔뜩 지친 애쉬는 그것을 그냥 무시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안 그래도 애들 때문에 피곤해졌는데, 여기 애 같은 놈이 하나 더 있으니 더 피곤해지는 것 같다.
애쉬가 속으로 고개를 젓는 사이 기다리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띵. 1층입니다.
아무 말 없이 오일 라이터의 뚜껑을 딸깍 거리던 데일 리퍼슨이 먼저 올라타고, 나머지 일행이 뒤따라 탄다.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애쉬는 자신의 앞, 입구 근처에 선 데일 리퍼슨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봉사활동 따위를 계속 다니고 있었을 줄이야.’
정말로 안 어울리는 일이다.
애쉬는 첫 만남 때 중압감까지 느껴지던 데일 리퍼슨의 존재감을 떠올렸다.
듣자하니 매 달 한 두 번씩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생필품 지원과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 같은데, 그런 그림이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지가 않았다.
저 중후한 인상에 시가를 물고는 잔뜩 무게감을 잡던 남자가 애들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
물론,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니만큼 놀릴 만한 일은 아니다.
애쉬는 저 남자가 앞으로도 봉사활동을 계속 다닐 수 있도록 며칠 뒤 있을 싸움에 적당히 사정을 둘까 생각했다.
부상이 아주 없을 수는 없겠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만 잘 조절하면 되겠지.
그렇게 그가 잡다한 생각에 빠져있을 때였다.
계속해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안, 그의 코끝이 찡긋 움직였다. 어느 순간 이 엘리베이터 안에 흘러들어온 비릿한 냄새를 맡은 것이다.
그것은 그에게도 무척이나 익숙한 냄새. 애쉬는 그것을 맡자마자 잡생각을 던져버리고 층수를 바라봤다.
33층, 34층. 표기되는 층수는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고, 그럴수록 비릿한 냄새도 진해졌다.
“그 녀석, 많이 컸더라고. 일이 년 만 더 있으면 케일, 너보다 더 크겠어.”
“한창 클 때니까요. 여자애들도 남자애들도 갈 때마다 너무 많이 자라서 놀란다니까요.”
“조용.”
“응?”
애쉬의 짧고 진지한 목소리에 뭔가 계속 떠들려던 게빌이 그것을 멈추고 무슨 일이라도 있냐는 듯 바라봤다.
애쉬의 분위기에 휘말려 게빌은 물론이고 일반 직원들까지 입을 닫자 떠드는 목소리의 활기가 가득하던 엘리베이터 안이 순식간에 적막으로 가득 찼다.
애쉬는 그 안에서 자신의 코끝과 귀에 신경을 집중했다.
‘별다른 소리는 안 들리는데.’
하지만 40층, 41층. ‘리퍼슨 물류’의 사무실에 층수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짙어지는 비릿한 혈향.
전투의 소음 따위는 들리지 않지만 처음에는 다른 층에서 뭔가 일이 일어난 것인가 했던 그도 이쯤 되자 확신할 수 있었다.
‘리퍼슨 물류’의 사무실에 무언가 변고가 일어났다.
애쉬보단 몇 박자 늦긴 했지만, 데일 리퍼슨도 공기 중에 흘러들어온 혈향을 맡았는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반 직원은 안쪽 벽에 붙어라.”
“네? 아, 네!”
아직까지 뭔가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던 케일과 몇몇 일반 직원들이 벽 쪽에 붙어 몸을 숨긴다.
그것을 보던 게빌은 품에서 한 정의 리볼버를 꺼내들었다.
“…피 냄새. 사무실에 무슨 일이 있나본데.”
애쉬는 슬쩍 눈을 돌려 그런 게빌을 봤는데, 그는 아직 멀쩡하지 않은 손 반대 손으로 리볼버를 든 채 몸을 벽에 기대었다.
일반 직원들도 갑자기 변한 분위기에 몸을 굳혔고, 전투가 가능한 인원들은 순식간에 태세를 바꿔 전투 직전의 긴장감이 흘렸다.
유일하게 쉬지 않고 움직이던 엘리베이터는 곧 리퍼슨 물류의 사무실이 위치한 44층에 도착했고, 작은 알림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44층입니다.
스르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화악 지금까지 맡아지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농밀한 피 냄새가 몰려들어왔다. 애쉬는 그에 인상을 찌푸렸다.
“윽. 이 냄새는….”
“피?”
일반인들도 맡을 수 있을 정도였는지 작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엘리베이터 앞에 대기하고 있는 적은 없었지만, 아직 긴장은 풀 수 없다. 데일 리퍼슨이 아무 말도 없이 먼저 움직였다.
뚜벅, 뚜벅.
조용한 복도에 발걸음 소리도 숨기지 않은 채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듯한 무거운 발걸음.
애쉬는 허리춤에 매달린 검 손잡이에 손을 얹고선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짙어지고 짙어지던 피 냄새는 사무실 가까이 도착한 지금은 거의 코에 대고 피를 흘려 넣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정도면 몇 명 수준이 아닌데.’
못해도 수십 명은 되는 인원이 피를 흩뿌린 것 같다.
일반인들이 현장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사무실 안쪽의 모습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거의 피바다가 됐겠지.
그리고 그런 애쉬의 예상대로, 사무실 정문 앞에 도착하자 불투명한 유리로 된 자동 유리문에 검붉은 무언가가 잔뜩 튀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쪽은 불이 꺼져 있고 자동문은 인식센서가 고장이라도 났는지 그들이 앞에 서도 열릴 생각을 않는다.
“……!”
뒤에서 핏자국은 일반인 직원들이 놀라는 기색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런 말없이 이곳까지 걸어온 데일 리퍼슨은 그런 뒤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사무실의 유리문을 걷어차 박살냈다.
쿠웅! 쩌저적!
강화 유리로 되어 있는 문이었지만, 두어 번 걷어차자 충격을 받은 곳에서부터 거미줄 모양으로 금이 가더니 그대로 구겨지듯 쓰러졌다.
문이 쓰러지자 애쉬를 비롯한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사무실 안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반인 직원들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흐, 흐읍!”
툭, 투둑. 툭.
끈적한 물방울들이 떨어지는 소리.
복도에서부터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간 불빛이 보인 장면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너무도 끔찍한 것이었다.
목이 매달린 채 천장에 매달려 있는 수십 구의 인영.
그들에게서 뚝뚝 떨어지고 있는 핏방울은 온갖 서류 따위로 가득한 책상을 적시다 못해 바닥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얼핏 보면 단체로 자해한 뒤 목을 매달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 하지만 오늘 낮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그럴 리가 없다.
이것은 뒤늦게 사무실에 돌아온 이들에게 보이기 위해 ‘전시’해놓은 것이다.
애쉬도 그 처참한 광경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언제까지 그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째서인지 우뚝 멈춰서는 아무런 말도 않고 있는 데일 리퍼슨을 앞질러 질척한 피바닥을 밟고 나아간다. 사무실의 전등을 켰다.
탁.
“우, 우욱…!”
“…….”
“어떤 개…!”
사무실 안의 세상은 온통 피로 물들어 새빨갛다.
그림자로만 보았을 때도 기겁을 하며 신음을 삼키던 일반인들은 구역질을 하며 급히 자리를 피했고, 게빌을 비롯한 카우보이모자들은 욕지거릴 내뱉거나 말을 잃은 채 사무실 안쪽을 바라봤다.
불과 한 발자국.
바깥으로 나가는 복도와 사무실 안쪽은 겨우 한 발자국밖에 차이나지 않았으나 그 한 발자국의 차이로 세상은 둘로 나뉘었다.
목이 매달린 시체와 거기서부터 떨어진 피가 넘쳐흐르는 지옥과 일반인들이 살아가는 세상.
‘화려하게도 저지르고 갔군.’
매복이나 부비트랩 따위가 숨겨져 있기라도 한지 확인한 애쉬가 생각했다.
안쪽까진 더 살펴봐야겠지만,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역시나 대기하고 있는 녀석들은 없는 것 같다.
사무실의 일반인과 뒷세계에 속한 카우보이들을 가리지 않고 이렇게 만들고는 유유히 자리를 떠난 것이다.
지금 이것만 보고는 뭐가 목적인지도 알 수 없었다.
애쉬는 뭐라도 해보라며 아직까지도 가만히 서서 뭘 하는지 모를 데일 리퍼슨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를 불렀다.
“어이, 늙은이. 언제까지 그렇게 서 있을 거야?”
“…애송아.”
애쉬에게 불린 데일 리퍼슨이 서서히 그를 돌아봤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순간, 애쉬는 여태껏 느껴본 적 없는 거대한, 거대한 살의를 느꼈다.
‘이 늙은이.’
그 살의는 분명 애쉬를 향하는 게 아니었다. 아마도 사무실과 직원들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둔 당사자들에게 향하는 것일 터.
하지만 애쉬는 그 살의가 자신을 향하는 것이 아님에도 피부가 저릿저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상대방이 자신보다 강하고 말고를 따지기 이전에 이 막대한 살의의 파동에는 그조차 몸을 움찔 떨 수밖에 없었다.
이게 이 남자, 데일 리퍼슨이 진심으로 누군가를 죽이고자 마음먹었을 때 보이는 살의인가?
애쉬는 긴장과 함께 감탄했다.
데일 리퍼슨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머리에서부터 온정신을 가득 채워가는 분노와 살의를 가라앉히고 있었을 뿐이다.
애쉬와 눈을 마주한 데일 리퍼슨은 그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지금은 너와 떠들 기분이 아니다.”
씹어 내뱉듯 말하는 목소리 하나하나에서 물씬 배어나오는 살의.
저 살의를 받고 있는 게 그가 아니었다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어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애쉬 또한 온갖 사선을 거쳐 오며 수많은 피를 자신의 손에 묻힌 인간이었다.
애쉬는 그 살의의 파동을 정면에서 가볍게 받아내며 대꾸했다.
“그럼 저 안쪽이나 살펴보던가. 이쪽은 알아서 정리할 테니까.”
지금 이곳에 목이 매달린 이들은 애쉬로서도 나름 정이 들었던 사람들이다.
자신이 없을 때라면 모르겠으나 아직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 이런 일이 터졌으니 복수 정도는 해주는 게 마땅하겠지.
애쉬는 먼저 발걸음을 옮기며 게빌과 두셋 정도 있는 카우보이모자들에게 말했다.
“언제까지 가만히 보고 있을 거야. 와서 빨리 내리기나 해.”
“아, 그, 그래.”
“…다들 움직이자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일반인 직원들을 뒤로하고 그나마 시체를 다뤄본 경험이 있는 현장직들이 움직여 목 매달린 사체들을 내렸다.
애쉬를 가만히 바라보던 데일 리퍼슨은 발걸음을 옮겨 사무실의 가장 안쪽, 자신의 집무실을 향해 움직였다.
*
“…어떤 새끼들인진 몰라도 반드시 복수한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쪽은 이상 없어?”
“…없어.”
뒤늦게 도착한 카우보이모자들 여럿이 동참해 사무실을 정리했다.
목 매달린 사체들을 내려 수습하고, 피에 젖은 물건들을 치운다.
창을 열어둔 지 몇 시간이 지났음에도 사무실에서는 피와 사체에서 쏟아진 온갖 오물 냄새가 빠질 생각을 않았다.
날은 완전히 어둑어둑해졌고, 일반 직원들도 조금 진정이 됐는지 피에 젖은 물건 따위를 옮겼다.
“…이상해.”
그렇게 모두가 정리에 힘쓰고 있던 중 사체를 살피던 게빌이 중얼거렸다.
사체에 새겨진 상흔들. 그것은 특징이 너무도 명확하여 단번에 흉기가 어떤 종류의 무기인지 단숨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잠시 상흔을 바라보던 게빌이 애쉬에게 물었다.
“이봐, 애쉬. 이거 창상이지?”
“…어. 칼을 쓰는 놈이 있었나본데.”
애쉬가 대답했다. 애쉬는 현장을 살피고 ‘리퍼슨 물류’ 직원들의 사체들을 모아놓자 이 사무실 안에서 벌어졌을 일들을 대충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적은 저항의 흔적.
벽에는 탄흔 하나 없었고, 목 매달린 사체들은 총을 제대로 꺼내지도 못했다.
대다수의 현장직, 카우보이모자들은 외부 임무를 도는 시간이었기에 사무실에 대기하고 있는 인원은 적었겠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저항 하나 못했다는 것은 이상했다.
분명 초장부터 대놓고 쳐들어온 게 아니라 업무적인 용무가 있는 일반인으로 위장했겠지.
그 이후의 상황도 사체의 상흔으로 대충 알 수 있었다.
몇 안 되는 카우보이모자들은 모두 목과 가슴, 심장이 있는 위치를 깊게 베여 죽었다.
애쉬는 그것을 상기하며 머릿속에서 상황을 그려봤다.
일반인인척 사무실 안쪽까지 들어온 칼잡이. 놈은 어떤 방법으로 카우보이모자들을 자신 근처로 불러들였고, 순식간에 칼을 뽑아 목과 가슴을 베었다.
부채 펼쳐지듯 우수수 쓰러지는 카우보이모자들.
그 뒤는 거의 일반인들밖에 없었으니 무척이나 손쉬웠겠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직원들을 일방적으로 뒤쫓아 사냥한다.
창밖으로 뛰어내릴 수도 없는 44층이란 높이. 어차피 출구는 정문 하나뿐이었으니 그곳만 틀어막으면 생존자가 빠져나갈 걱정도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카우보이모자들을 제외한 일반인 직원들은 대부분 몸 정면이 아니라 뒤편에 상흔이 많았다.
‘그보다 일반인들에게 이렇게 손을 대다니.’
이런 일은 도심부에 속해있는 구역에서는 정말 보기 힘든 일인데.
애쉬가 생각했다.
신고가 들어가서 경, 검찰이 나서면 그 검거율은 무려 90%에 육박한다.
애쉬가 있던 현대 지구에서도 이런 중범죄의 범죄자의 99%는 잡히기 마련이었는데, 그보다 발전한 이 세계에서는 어떻겠는가.
일단 수사가 들어가면 거의 잡힌다고 보면 됐다.
마구잡이로 사람을 쳐 죽이는 것도 경찰이 활동을 못하는 슬럼에서나 가능한 짓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짓을 벌였다는 건 셋 중 하나겠지.
어떻게든 수사를 무마할 방법이 있거나, 걸려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거나,
어느 것도 아니라면 이쪽이 신고하지 않으리라 믿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쪽이 신고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
“…없어.”
“뭐가?”
“사망자의 얼굴을 잘 봐. 뭔가 이상하지 않아?”
“…그러고보니.”
“확실히 적군. 미하일, 펜델, 숀. 그 외에도 여럿 안 보이는 얼굴이 있어.”
마침 애쉬의 귀에 게빌과 카우보이모자들이 떠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고하지 않을 이유가, 있었다.
혹시나 살아있을지 모르는 인질의 존재가.
애쉬가 그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자신의 집무실에서 나온 데일 리퍼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빌, 간부급현장직들은 전부 내 집무실로 와라. 그리고…….”
잠시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듯하던 데일 리퍼슨의 목소리가 뒤늦게 덧붙였다.
“애송이, 너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