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53화 (153/230)

〈 153화 〉 7. 총잡이들의 여명(9)

* * *

게빌과 간부급 카우보이모자 셋, 마지막으로 불린 애쉬까지. 모두가 집무실에 모였다.

게빌은 그렇게 데일 리퍼슨에게 호명된 모두가 모인 것을 확인하자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아직 바깥은 정리도 다 안 끝났는데.”

분명 현장을 수습하고 뒤처리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이유겠지?

목이 매달린 직원들의 사체는 아직 바닥에 눕혀진 채 방치되어 있었다. 그들 모두의 사체를 수습하는 것도 다 끝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부른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 게빌의 물음에 데일 리퍼슨은 자신이 들고 있던 단말기를 방 안의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툭 자신의 업무용 테이블 위에 던졌다.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그곳에 쏠렸고, 애쉬는 화면에 떠오른 하나의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화면에는 팔다리가 구속된 채 바닥을 구르고 있는 익숙한 얼굴들, ‘리퍼슨 물류’의 사라진 직원들이 있었으며 그들의 바로 위에는 구속된 직원들을 깔고 앉은 채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고 있는 가면의 괴한들이 있다.

아마 저들이 이번 일을 일으킨 놈들이겠지.

흉수로 예상되는 가면의 괴한들을 본 애쉬는 무척이나 낯익은 느낌에 예전 전 의뢰에서 보았던 놈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놈들인가?’

‘웃는 악마’

‘유성 그룹’의 의뢰에서 그를 죽기 직전까지 몰아넣기도 했던 놈들이다.

그가 겪었던 ‘웃는 악마’와 저들의 공통점이라곤 가면을 썼다는 것 밖에 없었지만, 애쉬는 그럼에도 어쩐지 저들이 ‘웃는 악마’ 같다는 느낌을 자꾸만 받고 있었다.

“…이 짓거리를 저지른 놈들이 보낸 영상인가보군.”

애쉬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게빌이 업무용 책상 위에 놓인 단말기를 보더니 말했다.

그에 데일 리퍼슨은 대답 없이 한번 고개만 끄덕이고는 한 번 확인해 보라는 듯 턱짓했다.

그에 게빌이 집무실에 모인 이들을 대표로 움직여 영상 중심에 떠오른 재생 버튼을 눌렀다.

­ 치직, 탁.

데일 리퍼슨이 시가를 꼬나물고 불을 붙임과 동시에 영상이 재생됐다.

­ 아, 이제 녹화되고 있는 건가?

­ 어. 바로 시작하면 돼.

­ 흠, 괜히 이렇게 영상으로 찍는다니까 조금 긴장되네.

­ 닥치고 빨리 시작해.

­ 알겠어~

영상의 시작은 가면을 쓴 남자들의 잡담으로 시작됐다. 그 끔찍한 일을 벌인 놈들 치고는 무척이나 가벼운 분위기.

저들의 그런 분위기는 그런 짓에 충분히 익숙해질 만큼 수많은 경험이 있다는 것을 반증했다.

애쉬를 비롯한 집무실 내의 모두는 입을 꾹 다문 채 영상에 집중했다.

­ 선물은 잘 받았나 몰라? 보다시피 우리가 당신의 소꿉장난에 끼어들어 난장판을 만든 당사자야. 아마 당신이라면 우리가 누군지, 어디에 소속된 놈들인지 정도는 알고 있겠지.

­ 으읍! 읍!

­ 그동안은 잘 숨어있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운이 안 좋으셨는지 꼬리가 밟히셨네? 우리의 원칙은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거야. 조만간…….

­ 읍읍!

­ 아, 거 사람 말하는데 존나게 시끄럽게 구네.

퍽! 화면의 중심에서 말하던 가면의 남자가 순식간에 품에서 단검을 뽑아 깔고 앉아있던 인질의 머리에 꽂아 넣었다.

칼날이 보이지도 않도록 완전히 박혀 들어간 단검.

수박에 칼이 박히는 것 같은 묵직한 소리가 한 순간 울리고, 어떻게든 자신을 깔고 앉은 남자 밑에서 벗어나려던 인질이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그대로 축 늘어졌다.

사망한 것이다.

그것을 본 애쉬는 작게 미간을 찌푸렸고, 게빌이 분에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베틴…! 이 개자식들이.”

이름이 베틴이었나.

애쉬도 몇 번 스쳐 지나간 적 있는 얼굴의 일반인 직원이었다.

영상은 게빌과 카우보이모자들이 분을 터뜨리든 말든 계속해서 이어졌다.

베틴, 일반인 직원의 머리에 박혔던 단검을 뽑은 가면의 남자는 그것을 시체가 된 직원의 옷에 닦으며 투덜거렸다.

­ 아. 괜히 치울 것만 하나 늘어났네.

­ 야, 여기 잡아온 녀석들 정도는 살려두라고 했잖아.

­ 뭐, 어때. 아직 열 몇 명 남았으니 괜찮겠지. 안 그래, 부단장?

화면 중심에 있던 가면의 남자가 카메라 렌즈 너머의 누군가에게 시선을 향하며 장난치듯 물었다. 그에 한 박자 늦게 대답이 돌아왔다.

­ 한 명 정도는 괜찮은데, 거기서 더 죽이면 곤란해요. 써먹을 곳이 아직 남아있는 인질들이니까요.

­ 알겠다고. 이제 안 죽일게. 아, 아무튼.

부단장이라는 존재에게 대답한 가면의 남자는 다시 카메라 렌즈를 향해 눈을 돌리고는 말을 이어갔다.

­ 약속은 5일 뒤. 지금부터 우리는 여기 벌레처럼 묶여있는 놈들을 데리고 21구역에 있는 당신네 물류 센터로 갈 거야. 거기가 당신이 소꿉놀이 하던 물류 회사에서 다루는 곳 중 제일 큰 곳이었지, 아마?

거기서 얼굴이나 한 번 보자고. 그 유명한 우리 악마님의 얼굴을.

덧붙인 가면의 남자는 단검을 집어넣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경고하듯 말했다.

­ 혹시라도 도망치면 알지? 이미 주변 조사는 다 끝났으니까 꽤나 볼만 할 거야. 그리고 부단장.

­ 예?

­ 넌 할 말 없어? 여기 있는 놈들 중 유일하게 직접 만나본 사람이잖아.

­ 음…. 딱히 할 말은 없는데요.

­ 자자, 그래도 여기 한번 나와서 얘기해보라고. 과거의 추억을 되살리면서.

가면의 남자는 카메라 너머의 누군가를 재촉하듯 불렀고, 떠밀리듯 뒤에서부터 가까워진 발소리의 주인은 곧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 하하, 이거 좀 부끄럽네요.

여우 가면에 잘 빼입은 검은 정장.

부단장이라 불린 남자는 가면 너머로 보이는 얼굴의 윤곽선만 봐도 잘생긴 미남자일 것이 예상되는 놈이었다.

하지만 애쉬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그 녀석의 외모 따위가 아니었다.

‘저건.’

정장 허리춤에 바깥으로 드러나도록 매인 벨트, 거기에 걸려있는 수수한 검 한 자루.

별다른 무장도 보이지 않는데다 요즘 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무기를 확인한 애쉬는 저 남자가 바로 사무실에서 카우보이모자들을 단번에 처리한 당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부단장이라.’

흔한 호칭이긴 하지만, 저 남자를 부르는 그 호칭까지도 ‘웃는 악마’와 닮았다.

데일 리퍼슨에게 이런 영상을 보내온 것을 보면 그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았는데, 전부터 우연찮게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저 남자, 데일 리퍼슨에게 직접 물어야겠지.

애쉬가 시가를 문 채 담배 연기를 내뱉는 데일 리퍼슨을 바라보는 와중에도 영상 속 목소리는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 아, 오랜만에 뵙네요, 단장. 아니, 이제는 전 단장이라고 해야 할까요? 솔직히 저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원칙은 지켜야 하니까요. 더 이상 당신의 주변에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으니 순순히 따라주셨으면 하네요.

괜한 싸움은 없는 게 저희에게도, 당신에게도 이로운 일일 테니까요.

살살 달래기라도 하는 것 같은 말투로 존댓말 하는 목소리는 모두가 영상에 집중해 조용한 집무실 내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뒤로 몇 초 후 영상은 부단장이라는 여우 가면 남자의 목소리를 끝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 그럼 며칠 뒤에 봬요, 단장.

뚝.

여우 가면의 남자가 서있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상이 끝났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의 의문은 풀리지 않고, 오히려 더욱 늘어나기만 했다.

결국 저들은 누구고, 어떤 이유로 이딴 일을 벌였으며, 또 왜 데일 리퍼슨을 아는 것처럼 이런 영상을 보냈는가.

또 그들이 말하는 원칙이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의 연속. 그 모든 것에 해답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단 한 명.

이 영상을 받은 당사자이자 영상 속 부단장이라 불린 남자에게서 단장이라는 호칭을 들은 데일 리퍼슨 밖에 없을 것이다.

애쉬가 뭐가 됐든 대답을 바라며 데일 리퍼슨을 바라볼 때였다.

그의 바로 옆에 있던 게빌이 애쉬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데일 리퍼슨을 향해 달려들었다.

“데일 리퍼슨!!”

나름 친밀한 모습을 보였던 부자 관계 사이에 오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악에 받친 목소리.

달려든 게빌은 멀쩡하지도 않은 손으로 데일 리퍼슨의 멱살을 틀어 올렸다.

“결국…! 결국…!!”

게빌이 저 영상을 통해 풀어낸 의문은 몇 없었으나, 그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이런 일이 벌어진 원인만큼은 알 수 있었다.

멱살을 잡은 손과 뒤로 쭉 당겨지는 멀쩡한 손 쪽의 주먹.

이 자리에 있는 게 애쉬가 아니라 일반인 누구라고 하더라도 곧 일어날 일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데일 리퍼슨은 자신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들어 올린 게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몸에 힘을 풀고 곧 자신에게 찾아들 아들의 정당한 분노를 기다렸다.

“결국 당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어!!”

­ 퍼억!

한 차례 뺨에 꽂혀드는 주먹.

가족과도 같았던 동료들의 목숨을 잃은 게빌의 주먹질은 어느 때보다도 고통스럽게 데일 리퍼슨에게 박혀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게빌은 다시 한번 주먹을 들어 올렸고, 데일 리퍼슨은 이번에도 아무런 저항을 않았다.

그도 자신으로 인해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눈앞에서 멱살을 잡고 있었기에 그런 데일 리퍼슨의 태도를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을 게빌은 오히려 그런 태도에 더욱 분노하여 연달아 주먹을 뻗었다.

“네가…! 네가아아!!”

­ 퍼억! 퍽! 뻐어억!

입 안이 터졌는지 주먹이 꽂힐 때마다 피가 튀어 오르고, 반쯤 뭉개진 코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린다. 하지만 분노에 눈이 먼 게빌은 간부급 카우보이모자들이 말릴 때까지도 멈출 생각을 않았다.

“머, 멈춰, 게빌!”

“진정해!”

“놔! 이거 놔!!”

게빌이 더 이상 폭력을 이어갈 수 없도록 팔다리를 붙잡는 세 명의 카우보이모자들.

그들 또한 원인을 알자 분노한 것은 매한가지였으나 게빌의 돌발행동으로 인해 오히려 조금 이성을 되찾게 됐다.

게빌의 팔다리를 구속해 멈춘 카우보이모자들은 복잡한 눈으로 데일 리퍼슨을 보며 말했다.

“…여기에 관한 얘기는 이 녀석이 좀 진정되면 하지, 단장.”

“이 영상에 대해서 잘 설명해야 할 거야.”

“놓으라고!!”

“넌 좀 가만히 있어!”

간부 카우보이모자들은 게빌을 억지로 끌고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치는 게빌의 목소리가 저 너머에서부터 들려왔다.

철컥.

끌려 나가는 게빌을 보던 애쉬는 문이 닫히고 소란이 조금 잦아들자 다시 돌아 코에서 흘러내린 피를 쓱 훔치는 데일 리퍼슨을 바라봤다.

잠깐 사이 그 중후하던 그 인상에 큰 변화를 남겼다. 입가를 타고 흐르는 선혈과 찢어진 입술.

반쯤 타들어간 시가가 바닥을 구르며 담배 연기를 올리니 한바탕 싸움을 마친 마피아 같은 느낌이다.

애쉬는 제 아들에게 얻어맞고도 아무 말 없는 데일 리퍼슨에게 물었다.

“영상 속 그 녀석들. ‘웃는 악마’지?”

“…….”

“전 단장이라는 걸 보면 당신은 그쪽의 예전 우두머리 정도 되는 것 같고. 그리고 원칙이라는 건.”

탈주자는 모두 척결. 이런 느낌인가?

애쉬는 나름대로 얻은 정보들을 정리해 그런 가설을 내놓았다.

데일 리퍼슨은 최소한 ‘웃는 악마’의 간부급, 혹은 보스였으며 이번 일을 벌인 가면의 남자들은 사라진 자신들의 전 보스를 찾아 파견된 일종의 처형 집단.

그들은 전 보스였던 데일 리퍼슨에게 어떤 용무가 있었기에 인질을 잡아 그를 불러내길 원했으며, 그로 인해 벌어진 일이 지금의 상황인 것이다.

뻔하디 뻔한, 일종의 클리셰 같은 일이었지만 애쉬는 이 세상이 게임 속 세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일이 있어도 이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그런 가설을 내놓은 애쉬를 바라보던 데일 리퍼슨은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도 놈들과 한 번 엮였었다고 했지.”

블러처리 되긴 했으나 칼을 쓰는 모습이 뉴스에 나오기까지 한 대사건이었다. 그 때문에 뒷세계가 한동안 얼마나 시끄러웠던가.

그것을 떠올렸던 데일 리퍼슨은 뒤이어 애쉬가 입 밖으로 꺼낸 가설의 답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래. 내가 ‘웃는 악마’의 전 단장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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