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 7. 총잡이들의 여명(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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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차례 달아올랐던 분위기는 금세 다시 가라앉았다. 게빌과 카우보이모자들 또한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웃는 악마’에게 잡혀 있는 인질들을 구하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이 된 데일 리퍼슨에 대한 질책과 분노의 표출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일단 물류 센터의 직원들은 다 빼놨어. 아직 놈들은 안 도착한 것 같더군.”
“그래. 그럼 이제 어떻게 인질들을 구하느냐가 문제인데.”
“단장한테 뭔가 생각이 있는 것 같던데.”
그렇게 밤늦은 시간까지 난장판이 된 사무실의 뒷수습을 마치고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하는 이들.
애쉬는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잠시 다른 생각에 빠졌다.
“일단은 우리가…….”
10대의 나이에 데일 리퍼슨을 꺾었다는 현 단장, 핏빛 악마와 이번에 찾아온 칼잡이 부단장.
얘기를 들어보니 영상에 나왔던 다른 놈들은 모르겠으나, 그 칼잡이 부단장만큼은 데일 리퍼슨이 단장으로 있을 때부터 함께한 녀석이라는 것 같았다.
아마 데일 리퍼슨은 그 녀석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
‘적당한 때에 물어봐야겠군.’
애쉬가 게빌, 그리고 카우보이모자들의 얘기를 듣고 있는 데일 리퍼슨을 보며 생각했다.
이 세상에 떨어진 뒤 주 무기로 검을 쓰는 녀석은 처음 보는 일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신경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여태껏 근접 무기를 사용하는 강적은 몇 만난 적이 없었고, 그나마 그 중에서도 가장 강했던 땅거미 부대의 아뎀은 그게 주 무기도 아니었다.
과연 ‘웃는 악마’의 부단장급 칼잡이는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을 것이며, 자신과 비교하면 어떨까.
인질 구출도 구출이었지만, 그것이 너무도 궁금해 자꾸만 머릿속이 딴 생각으로 가득 찼다.
애쉬가 얼굴도 보지 못한 ‘웃는 악마’의 현 단장과 칼잡이 부단장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깨고 들어왔다.
“……봐, 이봐!”
“음?”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몇 번씩 불러야 대답을 하는 거야.”
“…설마 이번 일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건가?”
카우보이모자들이 상념에서 깨어난 애쉬를 무서운 눈초리로 쳐다봤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가족을 구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매우 심각한 분위기에서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애쉬가 거기에 제대로 집중하지 않는 듯하자 화가 난 것이다.
그들의 마음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었기에 애쉬는 맞부딪치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잠깐 놈들 중 있었던 칼잡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칼잡이?”
“그러고보면 영상에 나왔던 놈들 중 칼을 차고 있는 놈이 있긴 했어.”
애쉬의 말에 카우보이모자들의 눈빛이 오해가 풀렸다는 듯 조금 바뀌었다.
그리고 그 직후 게빌은 애쉬를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일에 말려들게 해서 미안하다. 그리고 네 참전에는 무척이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일단 참전하기로 한 만큼 최대한 집중해줬으면 좋겠다.”
“아, 그래. 집중하지.”
“그럼 대충 틀이 잡힌 계획을 다시 설명해보자면 이렇다. 일단 우리는…….”
게빌은 애쉬를 위해 계획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그가 설명한 계획은 크게 복잡할 것 없이 단순했다.
게빌과 카우보이모자들, 그리고 놈들이 가장 원하는 데일 리퍼슨은 정면으로 ‘웃는 악마’와 대치한다.
그리고 외부인인 애쉬는 물류 센터의 뒤편으로 파고들어 인질들을 구하는 것이다.
“내가?”
“그래. 네가 사용하는 무기는 소음이 없는 만큼 인질들을 구출하기에 무척이나 유리해. 혹시라도 총 소리로 놈들을 자극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설명을 들은 애쉬의 물음에 게빌이 대답했다. 이번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웃는 악마’놈들을 쳐죽이는 게 아니라 인질의 구출. 이것은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한 일이다.
데일 리퍼슨과 게빌, 그리고 카우보이모자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본 결과 이것 이상의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대답한 게빌은 이어서 말했다.
“그 물류 센터는 우리가 관리하던 곳이니만큼 그 내부 구조에 대해서는 아무리 ‘웃는 악마’라고 해도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어. 외부에서 cctv를 통해 인질들의 위치를 확인하기만 하면 일이 더 손쉬워지겠지.”
“5일 뒤 놈들이 인질을 따로 떼어놓지 않고 있다면?”
애쉬가 질문을 던졌다. 게빌의 말대로 ‘웃는 악마’ 녀석들이 인질을 따로 빼뒀다면 가능한 일일 테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애쉬의 물음에 게빌은 입술을 짓씹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놈들과 협상을 해보거나, 인질의 구출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겠지.”
놈들이 원하는 대로 데일 리퍼슨과 관련자들을 내어주고 인질을 받는다는 선택지는 없다.
그렇게 온건히 내보내줄 놈들이었다면 처음부터 ‘리퍼슨 물류’의 사무실을 습격해 그런 학살을 벌이진 않았을 것이다.
애쉬가 말한 그들이 상황에서 찾을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은 오로지 놈들이 인질에게 손대기 전에 녀석들을 처리하는 것 뿐.
그 과정에서 붙잡혀 있는 인질들에게서 희생은 분명 발생할 수밖에 없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모두 죽는 것보다는 적은 수라도 살아남는 게 나았으니.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내부 구조 정도는 익혀둬.”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며 각오를 다지던 게빌은 애쉬에게 하나의 데이터 칩을 넘겼다.
아마 ‘리퍼슨 물류’에서 사용했다는 물류 센터의 내부 구조가 저장된 물건일 것이다.
애쉬는 곧장 그것을 자신의 단말기에 꽂아 확인했다.
그의 구식 단말기 위로 조잡한 입체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애쉬는 자신의 예상보다 규모가 훨씬 큰 것 같은 물류 센터의 모습에 작게 감상을 내뱉었다.
“생각보다 크군.”
“21구역에 위치한 물류 센터는 우리가 소유한 곳 중에서도 최대 규모를 갖고 있는 곳이야. 그만큼 넓은데다 위층으로 가면 구조도 복잡하지.”
애쉬의 목소리를 들은 게빌이 짧게 설명했다.
애쉬는 그 설명을 들으며 홀로그램을 이리저리 돌려봤는데, 확실히 게빌의 말대로 물류가 저장되는 1층을 제외한 2층부터는 그 구조가 다소 복잡해보였다.
지상에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는 1층 정문과 양 옆, 뒤에 나 있는 8개의 문 정도.
지상으로만 지어진 것이 아니라 지하층도 있긴 했는데, 지하로는 오로지 1층 내부에서부터 갈 수밖에 없었다.
‘조금 봐둬야겠는데.’
애쉬가 펼쳐진 내부도를 보며 생각했다.
빌헬름 같은 녀석이 있었다면 굳이 내부 지리를 익히지 않고 진입해도 알아서 안내를 해줬겠지만, 지금은 그런 인재가 없었다.
그렇다고 빌헬름을 이번 일까지 끌어올 수도 없었고.
그렇게 애쉬가 내부도를 바라보고 있을 때, 계획의 입안자이지만 여태껏 조용히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던 데일 리퍼슨이 입을 열어 애쉬를 불렀다.
“자신은 있나, 애송이.”
“…자신?”
그 물음에 애쉬가 시선을 돌려 반문했다. 데일 리퍼슨은 곧바로 이어 말했다.
“그래. 이 모든 계획은 네가 어느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고 있음을 전제로 만들어지고 있다. 관계자도 아닌 네게 모든 걸 맡겨야 하는 게 형편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소음기 따위를 낀다고 해도 소음의 억제에는 한계가 있다. 그랬기에 애쉬에게 역할을 맡기는 것이었는데, 그 중요도가 너무도 크다.
이 계획의 성사 여부는 거의 애쉬 한 명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중간한 실력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 데일 리퍼슨은 애쉬의 입에서 일말의 부정적인 뉘앙스라도 느껴지면 자신이 나설 생각이었다.
약속된 5일이 가기 전에 그가 직접 숨어들어서라도 어떻게든 해보는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꺼낸 말이었으나, 애쉬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시원하리만치 깔끔했다.
“어차피 내가 못하면 아무도 못해.”
자칫 잘못하면 오만하게까지 느껴질 수 있는, 당연하다는 듯한 목소리.
곧 싸우러 가는 상대방이 ‘웃는 악마’임에도 애쉬 론모어라는 해결사는 절대적인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그 자신감만 보면 혼자 모든 일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기세.
데일 리퍼슨은 젊을 적의 자신이 비쳐 보이는 애쉬의 태도에 놀라면서도 물었다.
“애송이, 너는 ‘유성 그룹’ 사건 때도 ‘웃는 악마’와 엮였었지.”
“어.”
“그때 죽을 뻔 했었다고 들었다. 병원에서 한동안 의식을 찾지 못했다는 뉴스도 있었고.”
“그래. 사실이야.”
애쉬는 데일 리퍼슨의 질문에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그가 실제로 죽을 뻔 했던 것은 맞았으니까.
데일 리퍼슨은 그 빠른 대답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런데도 자신이 있다는 거냐?”
데일 리퍼슨은 애쉬가 상대한 ‘악마’가 ‘웃는 악마’내에서의 서열이 어떻게 되는 놈인지 몰랐다. 하지만 유성 그룹만한 초거대 기업의 일이었으니 꽤나 높았을 것은 알았다.
하지만 그 악마가 과연 이번에 온 부단장급보다 서열이 높았을까? 그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장인 핏빛 악마가 직접 왔다면 살아있을 리가 없었고, 부단장급이라고 해도 비슷하리라.
데일 리퍼슨은 자신과 ‘웃는 악마’의 현 단장을 제외하고는 부단장급 악마를 이기긴커녕 제대로 버티기라도 가능한 자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애쉬는 이번에도 한없이 가벼운 태도로 대답했다.
“상성이 안 좋았어. 그래도 다시 만나면 이번엔 금방 끝낼 수 있을 걸.”
물론, 상대가 죽어서 그건 불가능하겠지만.
데일 리퍼슨은 애쉬의 대답을 듣고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저 말을 믿어도 될까?
보통 의뢰였다면 그냥 믿고 넘어갔을 수도 있지만 이번 일은 그렇게 간단히 넘어갈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데일 리퍼슨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애송아, 네가 상대했던 악마는 서열이 몇 위였지?”
“몇 위라고 했더라…. 20위권 하나에, 그것보다 한참 낮은 놈 하나. 그리고….”
5위라고 했던가? 부단장이라고 하던데.
애쉬가 긴가민가 하는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뭐?”
그에 게빌이 놀란 반응을 보였지만, 그보다 더 큰 반응을 보인 것은 질문을 던졌던 데일 리퍼슨이었다.
시가를 탁 뱉은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도저히 못 믿겠군. 따라 나와라, 애송아.”
“뭐야. 지금 한 판 해보자고?”
애쉬가 갑작스런 데일 리퍼슨의 말에 마주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데일 리퍼슨은 자신과 마주 일어선 애쉬를 보며 말했다.
“손대중은 없을 테니 각오해라.”
“얼마든지.”
자신이 믿고 맡길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일이다.
데일 리퍼슨이 앞장섰고, 애쉬가 바로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게빌과 카우보이모자들이 급히 뒤따랐다.
“잠깐, 단장! 애쉬!”
“젠장,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무슨 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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