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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56화 (156/230)

〈 156화 〉 7. 총잡이들의 여명(12)

* * *

5일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게빌은 자신과 수십의 카우보이모자들을 태우고 이동하는 트레일러 차량 안에서 입을 열었다.

“다들, 마음의 준비는 됐겠지?”

“물론.”

“완벽한 상태다.”

게빌의 물음에 보기 힘들 정도로 긴장한, 또 진지한 분위기의 카우보이모자들이 대답했다.

지금 그들이 움직이는 것은 여타 의뢰를 맡을 때와는 다르다. 동료의 복수를 위한 한 걸음이니만큼 어느 때보다도 무겁고 신중해야 했다.

게빌은 그런 카우보이모자들의 대답에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본격적인 계획에 들어가기에 앞서, 동료들의 복수와 인질의 구출을 위해 남아준 너희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흥. 녀석들은 그냥 동료가 아니라 우리의 가족이라고.”

그러니 이 자리에 함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느 한 명이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했고, 살아남은 이들마저 인질로서 끌려갔다. 그렇다면 가족으로서 함께 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게빌은 든든한 모습으로 각자의 장비를 정비하는 카우보이모자들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여기 있는 대부분이 죽을지도 모른다.’

‘웃는 악마’는 그 악명만큼이나 두려운 상대였다. 끈끈하던 ‘총잡이들의 여명’의 유대에도 불구하고 이탈자가 꽤나 발생했을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맡은 임무는 정면에서 적의 시선을 끄는 것. 더할 나위 없이 죽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상대가 어중간한 용병 따위가 아니라 그 유명한 ‘웃는 악마’라면 더욱.

아마 이 자리에 있는 녀석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웃는 악마’와의 전투가 끝날 쯤이면 자신의 옆에 있는 동료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하지만 그런 계획을 듣고도 원래의 3분의 2가 넘는 숫자가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다.

그것은 게빌과 그의 아버지인 데일 리퍼슨, 그리고 동료들이 함께 만들어간 ‘총잡이들의 여명’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우리가 할 일은 앞서 설명했던 것과 달라지지 않았어. 우리가 해야 하는 역할은 1차적으로 적의 시선을 끄는 것. 그리고 인질 구출 계획이 끝나면 놈들을 쳐 죽이는 거다.”

“그거 간단하니 좋구만!”

“그래. 간단하지. 무척이나.”

게빌은 가라앉은 분위기에 억지로 흥을 돋우려는 동료의 목소리에도 웃지 못했다. 그 또한 지금의 상황에 상당한 압박감을 받고 있었기에.

‘…녀석이 잘 해줬으면 좋겠군.’

게빌은 그저 인질의 구출을 맡기로 한 애쉬의 무운을 빌 뿐이다.

*

트레일러 차량의 운전석 바로 뒤. 데일 리퍼슨과 애쉬는 같은 자리에서 서로의 일을 보고 있었다.

자신의 리볼버를 꺼내 탄약을 채워넣던 데일 리퍼슨은 괜히 애쉬를 한 차례 불렀다.

“준비는 됐나, 애송아.”

“하, 제대로 한 방 먹을 뻔 해놓고 애송이는.”

긴장이라곤 한 터럭도 보이지 않는 애쉬가 자신에게 묻는 데일 리퍼슨의 말에 대꾸했다.

습격이 있던 날 벌어졌던 애쉬와 데일 리퍼슨의 싸움은 결국 끝까지 가지 못한 채 찜찜하게 마무리 지어졌다.

점차 격해지는 둘의 전투에 부상자가 나올 수 있다는 게빌과 참관인들의 판단 때문이었다.

다만 둘은 서로의 실력을 어느 정도 볼 수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양쪽 모두 상대방이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실력자라는 것을 알았을 터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억지로 애송이니 뭐니 부르며 괜한 자존심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애쉬는 그런 데일 리퍼슨을 향해 콧방귀를 뀌곤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 스르릉.

예리한 소리와 함께 새까만 칼날이 모습을 드러낸다.

‘리퍼슨 물류’에 와서 몇 번 사용하긴 했으나 에리히 영감에게 정비 받은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런지 날의 상태는 무척이나 양호했다.

애쉬는 그 어두운 날을 잠시 비춰보다 탁, 다시 집어넣었다.

그가 점검할 것은 오로지 검의 상태와 몸의 컨디션이 전부.

검은 멀쩡했고, 컨디션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 당장 전투에 들어가도 최적의 상태다.

모든 상태 확인을 끝내고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던 애쉬에게 데일 리퍼슨이 뭔가를 건네 왔다.

“받아라.”

“…?”

손가락 반 마디만한 조그만 무선 이어폰.

애쉬는 왜 그것을 자신에게 넘기냐며 그를 바라봤고, 데일 리퍼슨은 그 의문에 답해 설명했다.

“출발 전에 말했다시피 인질들은 모두 한 구역에 모여 있다. 하지만 위치가 바뀌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지. 만약 위치가 바뀌면 실시간으로 CCTV를 체크하고 있는 직원이 알려줄 거다.”

“아, 그런 용도.”

거추장스럽긴 하지만 그런 용도라면 받아둬야지.

그것을 받은 애쉬가 곧장 귀에 맞게 넣었다. 그러자 그것을 알아챈 듯 사무실 쪽 직원이 무전했다.

잘 들리십니까?

“어.”

혹시라도 이변이 생기면 곧장 알려드리겠습니다.

“알겠어.”

애쉬의 짧은 대답을 통해 통신 상태가 양호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끊어지는 대화.

현장에 나서는 이들을 배려하려는지 최대한 용건만 간단히 얘기하고 다른 것은 자제하는 듯했다.

그 뒤로 애쉬와 데일 리퍼슨은 별다른 대화 없이 자신들의 세상에 빠져들었고, 그런 와중에도 계속해서 움직이던 차량은 마침내 목적지인 21구역, ‘리퍼슨 물류’의 대형 물류 센터에 도착했다.

“단장, 도착했습니다.”

“…그래.”

운전기사의 목소리에 데일 리퍼슨이 몸을 일으켰다. 이제 그의 과거의 망령들과 만나러 갈 때였다.

거기에 맞춰 애쉬도 자리에 일어나 내리려는데, 뒤늦게 등을 보이고 있는 데일 리퍼슨의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애송아.”

“응?”

애쉬가 자신을 부르는 데일 리퍼슨의 목소리에 그를 돌아봤다. 그는 차량의 문을 열고 내리려던 움직임을 잠시 멈추고 있었다.

데일 리퍼슨은 자신을 바라보는 애쉬를 마주 보지도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부탁’했다.

“…잡혀 있는 직원들을 잘 부탁하마.”

덜컹.

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데일 리퍼슨은 문을 닫고 나아갔다. 자신의 과거를 마주보기 위해.

그에 애쉬는 어차피 들리지 않을 대답을 중얼거렸다.

“…최선은 다해보지.”

혹시라도 적의 눈에 띌까 그와 함께 하는 인원은 없다.

애쉬는 홀로 터벅터벅 걸어 미리 정해둔 위치로 향했다. 이제 제대로 일할 시간이었다.

*

“후우….”

“긴장 되냐?”

“그래, 이 망할 늙은이.”

게빌은 자신을 놀리는 듯한 데일 리퍼슨에게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무려 그 ‘웃는 악마’다. 여태까지 그가 만나왔던 잡졸들과는 차원이 다른 상대인 것이다.

심지어 ‘웃는 악마’에서도 최상위 간부급이라는 부단장이 왔으니 긴장될 수밖에.

설마 그의 아버지, 데일 리퍼슨은 아무런 긴장도 되지 않는 것일까.

그런 생각에 자신의 아버지를 돌아본 게빌은 어느 때보다도 무거운 표정으로 서있는 그를 볼 수 있었다.

­ 치이익. 탁.

전투 전의 흥분과 긴장으로 가득한 공간에 라이터 소리가 울린다.

데일 리퍼슨은 여느 때처럼 시가를 문 채 불을 붙이고 있었지만 그 눈빛과 움직임 하나하나에서부터 평소에는 찾아볼 수 없던 복잡한 감정이 베어 나왔다.

긴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후회하고 있었다.

젊을 적, 과거의 자신이 벌였던 짓을.

그리고 그런 짓을 벌이고도 일반인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려 했던 어리석음을.

게빌은 평생을 살며 자신의 아버지가 이리도 깊은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기에 조금 놀랐지만, 그러면서도 저 늙은이가 자신과 같은 인간이긴 했구나,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데일 리퍼슨을 쳐다보던 게빌.

순간적으로 두 부자의 눈이 마주쳤고, 잠시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던 아들은 말없이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신경 인터페이스의 연락 기능을 켜고 짧게 말했다.

“그럼 이쪽은 출발한다.”

예. 애쉬 씨 쪽에도 알리겠습니다.

뚝.

직원은 대답과 함께 연락을 끊었고, 게빌은 긴장에 굳었던 몸을 쭉쭉 펴며 입을 열었다.

“다들 가보자고.”

“그래, 가자!”

“‘웃는 악마’가 대수야? 우린 ‘총잡이들의 여명’이다!”

카우보이모자들은 게빌의 목소리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부여하듯 외쳤다. 그러자 그들 또한 긴장하고 있던 것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가장 앞에 선 게빌과 가장 뒤에서 따라 움직이는 데일 리퍼슨.

그리고 수십의 카우보이모자들은 한 몸이 되어 움직였고, 곧 물류 센터 안에 들어가 자신들을 기다리던 ‘악마’들을 볼 수 있었다.

“크흐흐, 많이도 왔네. 어이, 부단장! 저~기 옛날 단장님께서 오셨다는데 인사 해야지!”

“아, 오셨네요. 단장.”

기둥에 등을 기대고 서있던 여우 가면의 남자, 부단장이 기분 나쁘게 웃으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똑바로 새우며 데일 리퍼슨을 향해 인사했다.

그에 카우보이모자들 사이를 헤치고 가장 앞으로 나온 데일 리퍼슨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일. 제일 던컨이라고 했었나.”

“…제 이름을 기억하시네요.”

“그래. 설마 그때 그 애송이가 부단장이 됐을 줄이야.”

“하하….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그보다 단장님은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 모르겠네요.”

‘웃는 악마’의 부단장, 제일 던컨이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리퍼슨 물류’의 사무실에서 그 끔찍한 짓거리를 벌인 놈들의 우두머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태도와 분위기.

상대방은 데일 리퍼슨과 사소한 얘기라도 나누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당사자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데일 리퍼슨은 자신에게 물어진 안부를 무시한 채 품에서 리볼버 한 자루를 꺼내 겨누며 일방적으로 물었다.

“잡소리 말고. 내 직원들은 어디 있지? 애송이.”

후욱. 입 밖으로 뿜어진 담배 연기가 흩어지며 눈앞을 그의 흐렸다.

그 잿빛 안개 속에서 자신만만한 해결사의 얼굴이 보이는 듯 했다.

‘주의는 확실히 끌어주마. 반드시 구해내라, 애송이.’

……아니, 애쉬 론모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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