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 7. 총잡이들의 여명(14)
* * *
“나이스 샷!”
“흐, 지들이 여기까지 오면 어쩔 건데? 이거 한 방이면 그냥 다진 고깃덩이지.”
건물 전체가 뒤흔들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입구 쪽이 폭발하며 뿌연 먼지가 인다.
방 안에서 인질들을 관리하던 두 명의 하위 서열 악마들은 그것을 보며 떠들었다.
“싸움만 잘하는 게 다가 아니란 말이지. 이런 것까지 감안해주면 나도 중상위권 이상은 되지 않을까?”
“헛소리는. 전에 한번 보니까 거긴 진짜 괴물들밖에 없어.”
일반적인 탄환 수십 발 정도는 피하든 쳐내든 막아내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 놈들밖에.
그냥 중위권도 아니고 중상위권, 그러니까 40위권 안쪽 서열의 악마들은 모두 그런 괴물들이었다.
“아무튼 먼지 가라앉으면 뒤처리나 좀 해. 폭발물 흔적 같은 것도 최대한 숨기고.”
“아,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잔소리 좀 하지 마라. 네가 내 상사야?”
“평소에 잘해야 내가 뭐라고 안 하지, 새꺄.”
“아, 됐어.”
알아서 하겠거니 해야지 잔소리는.
동료의 잔소리에 투덜거리며 고개를 저은 가면의 남자는 다시 먼지가 피어오른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 뿌연 먼지로 가득한 입구는 반대편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떤 상황이 와도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앞으로 매고 있던 소총의 손잡이를 잡았다.
설치해둔 폭발물이 터졌으나 생존자는 있을 수 있기에 경계해야 했다.
“으읍! 읍!”
“시끄럽게 좀 굴지마라, 뒈지기 싫으면. 여기서 너 하나 더 죽는다고 달라지는 거 없다.”
폭발에 놀랐는지 입이 틀어 막힌 인질이 내는 소리와 동료의 목소리가 들린다.
입구 쪽을 지켜보던 가면의 남자는 잠시 고개를 돌려 동료 쪽을 바라봤다.
“부단장이 더 죽이지 말랬는데. 죽여도 되냐?”
“뭐, 관심도 없는 것 같던데 하나 정도 사라진다고 다르겠어?”
“것도 그렇긴 한데….”
동료의 대꾸에 말끝을 흐리는 가면의 남자.
‘웃는 악마’내에서도 이번에 함께 온 서열 3위의 부단장은 무척이나 유명했다.
부단장이라는 직위 자체가 굉장히 높은 직위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가 사용하는 무기가 다름 아닌 칼이었으니까.
요즘 같은 시대에 총이 아니라 칼로 ‘웃는 악마’의 온갖 괴물들을 제치고 부단장의 자리까지 올랐다는 것을 보면 그는 괴물 중의 괴물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유명한 부단장의 소문 중에는 그가 ‘웃는 악마’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무른 성격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실제로 그들이 이번 작전에 참가하면서 처음 만나본 그의 성격은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고.
자신보다 한참이나 아래에 있는 20위권 악마의 장난이나 비꼼에도 웃으며 넘어가지 않았던가.
다만 그래도 그는 과연 부단장이 명령을 어겼을 때마저 그렇게 물렁할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 부단장은 ‘웃는 악마’가 아니라 천사라고 불렸겠지.
“야, 그래도 죽이진 마. 느낌이 안 좋으니까.”
가면의 남자가 혹시 모를 동료의 행동을 방지하려 할 때였다.
투두둑.
폭발로 무너진 입구 쪽에서 작은 돌 파편 따위가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터트리고도 살아있는 놈이 있나보네.”
폭발 트랩을 설치했던 가면의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 폭발 트랩은 문을 여는 순간 발동하게 되어 있었는데, 통로 쪽으로 몇 미터까지 폭발물을 쭉 깔아놔서 좀 떨어진 거리에서 건들더라도 폭발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폭발 이후에도 살아남은 걸 보면 동료가 앞에서 터트리는 걸 뒤에서 기다리던 녀석, 혹은 녀석들이겠지.
“이봐, 빨리 나와서 끝내자고.”
가면의 남자는 귀찮게 됐다는 듯 총을 소리가 들려온 먼지 속에 똑바로 겨눴다.
그는 물론이고 함께 있는 동료 또한 서열은 낮은 편이지만 일단 ‘웃는 악마’내에서 서열을 부여받은 이들이다.
부비트랩이나 폭발물 따위를 까는 건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고, 그들의 실력 자체도 일반적으론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편이었다.
가면의 남자와 동료가 뿌연 먼지 속을 경계하자 그 안에서 검은 인영이 얼핏 보이더니 그대로 먼지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했는데, 진짜 이딴 걸 깔아둬?”
잿빛 은발에 진청색 눈동자의 남자, 애쉬가 짜증 가득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폭발의 순간 재빨리 반응해 몸을 뒤로 날렸으니 망정이지,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면 몇 군데 긁히고 속이 울렁거리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애쉬는 먼지 속에서부터 머리칼과 옷가지에 붙은 돌 부스러기 따위를 털어내며 걸어 나왔다.
“…칼?”
그를 보던 가면의 남자가 중얼거렸다. 애쉬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한 자루의 검을 발견한 것이다.
때마침 칼잡이인 부단장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게 더욱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가면의 남자는 그것을 발견한 순간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지만 이렇게 정면으로 마주서게 된 이상 피할 수 없었다.
남자는 총구를 상대방의 머리에 겨눈 후 말했다.
“멈춰. 더 다가오면….”
퍼억!
말하던 가면 남자의 고개 옆을 검은 섬광이 스치고 지나갔고, 직후 수박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인질로 잡혀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답답한 소리도.
“…! 으, 으읍!!”
방금 스쳐지나간 건 뭐였지?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적을 앞에 두고 뒤를 돌아봐선 안 되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남자는 스스로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벡스…!”
뒤를 돌아본 가면의 남자가 외쳤다.
머리에 손잡이까지 꽂혀있는 검 한 자루. 그의 동료는 시뻘건 피를 흩뿌리며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잘 익은 수박이 터지는 것 같던 소리는 그의 동료의 머리가 터져나가는 소리였던 것이다.
팔다리가 묶인 인질들이 창백한 얼굴로 어떻게든 시체에서 멀어지려는 모습을 본 그는 뒤늦게 자신의 뒤를 돌아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래서, 내가 더 다가오면 어쩔 건데.”
“이…!”
콰드드득!!
어느새 그의 목을 붙잡은 손아귀가 단번에 그것을 꺾어버렸으니까.
아무리 좋은 시술을 받은 강화인간이라도 목이 90도 이상 꺾여버리면 살아있을 수 없었다.
“…생각보다 더 시시한데.”
애쉬는 자신의 손 안에서 경련하고 있는 시체를 옆으로 툭 던져버리며 중얼거렸다.
첫 진입부터 별다른 경계도 없었고, 통로 쪽에 이상한 함정과 센트리 건 따위가 깔려있긴 했으나 그게 전부였다.
입구 쪽에 설치해놨던 폭발 트랩이 조금 위험하긴 했지만, 기껏해야 그 정도.
저들 또한 인질의 중요성을 알고 있을 텐데 이렇게 허술하게 막아놓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애쉬는 인질로 잡혔던 직원들의 애처로운 눈빛에 정신을 차리고 움직였다.
“으읍!!”
“알았어. 풀어줄게.”
툭, 투둑. 팔다리를 묶어놨던 구속구가 검날에 닿자마자 간단히 베여 떨어진다. 스물 가까운 직원들은 일 분 남짓한 시간 만에 모두 풀려날 수 있었다.
“고, 고맙습니다. 애쉬 씨.”
“아, 별 거 아냐.”
인질로 잡혔다 풀려난 직원들의 감사 인사에 애쉬가 가볍게 손을 저었다.
말 그대로 별 것도 아니었다. ‘총잡이들의 여명’에서 일반적으로 수행하던 의뢰보다 간단하게 느껴졌을 만큼 말이다.
그들을 모두 풀어준 애쉬는 곧 인이어를 통해 데일 리퍼슨 쪽에 인질을 무사히 구출했단 얘기를 전달하려 했으나, 곧 귀가 허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까 폭발 때문에 어디 흘렸나.’
입구 쪽을 바라보니 피어올랐던 먼지는 슬슬 다 가라앉아 갔지만, 그다지 저곳을 뒤지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애쉬는 인질로 잡혔던 이들에게 말했다.
“일단 여기 두 놈이 갖고 있단 무기 챙기고 잘 숨어 있어.”
“예, 예?”
“보초를 둘 밖에 세워두지 않은 걸 보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도 않아. 그리고…….”
애쉬가 인질로 잡혔던 이들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그들의 꼴은 겨우 5일이 지났다고 하기에는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었다. 씻거나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화장실도 제때 보내지 않았는지 대소변을 바지에 지린 이들이 다수 있었다.
저런 상태를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을 것 아닌가.
이곳에 있는 것으로 저들이 더 위험해진다면 모르겠으나 지금처럼 그의 감각권 안에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다면 차라리 이곳에 두는 것이 나앗다.
“하지만…. 아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무언가 말하려던 직원이 말을 바꿔 대답했다.
애쉬의 말대로 지금 자신들의 꼴을 타인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목숨이 걸린 판에 그런 게 중요할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애쉬의 말에 끝내 고개를 끄덕인 이유.
애쉬는 그들의 눈동자에서 일말의 공포와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여기에 있는 이들은 모두 일반인 직원들. 눈앞에서 인간의 머리통을 검으로 터뜨리고 목을 꺾어 죽이는 장면을 봤으니 그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데일 리퍼슨이나 게빌 같은 이들이 그랬다면 또 모르겠으나, 애쉬처럼 쌓아온 유대도 적은 사람은 두려워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그들의 감정을 확인한 애쉬는 그대로 돌아서서 움직였다.
이해는 한다. 이해는 하지만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었다.
‘저쪽에서 한바탕 해야겠군.’
그러니 이 더러운 기분을 적을 쳐 죽이는 걸로 푸는 수밖에.
*
쿠우웅!!
“…?”
대치하고 있던 데일 리퍼슨, 게빌 일행과 ‘웃는 악마’들. 그들은 일순간 울린 굉음에 신경을 빼앗겼다.
소리가 들려온 곳은 그들이 대치하고 있는 물류 센터 1층에서 몇 층 정도 위쪽으로 예상된다.
‘웃는 악마’의 부단장, 제일 던컨은 놀란 눈치의 카우보이모자들을 보며 말했다.
“아, 저쪽으로 보냈던 쥐새끼들이 단장의 직원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나 보네요. 안타깝게도 트랩을 건드려버린 모양이지만.”
“…뭐?”
들려오는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저 폭발의 규모는 절대로 작지 않았다.
그렇다면 인질을 구하러 간 애쉬와 잡혀있던 직원들 모두가 폭사했단 말인가.
데일 리퍼슨이 눈에 보일 정도로 표정을 굳히고, 게빌이 이번에는 진심으로 저들을 쏴버리겠다는 듯 총을 뽑은 순간 여우 가면의 부단장이 덧붙였다.
“아, 그래도 너무 걱정은 마세요. 저 트랩은 침입자만 저지하기 위한 것이지 단장의 직원들까지 어떻게 하려고 설치된 건 아니니까요.”
“젠장…!”
일순간 안도했던 게빌이 한 박자 늦게 욕지거릴 내뱉었다.
저 말은 곧 그들을 위해 함께 참전했던 애쉬 론모어만이 폭발에 당했다는 것인데, 인질들이 안전하다는 말에 순간적으로 안도했던 자신의 역겨운 감정 때문이었다.
“아무튼, 단장의 직원들은 무사하니 슬슬 결정해주시죠. 저희와 함께 갈 것인지, 아니면 직원들, 그리고 저 친구들과 함께 마지막을 볼 것인지.”
“…….”
숨어들었던 쥐새끼도 잡은 것 같으니 이제 더 이상 기다려주지는 않겠다.
그런 의미로 통보하는 제일 던컨의 말에 데일 리퍼슨이 진심으로 고민했다.
인질들의 목숨을 바치고 저들과 싸워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이 직접 저쪽에 합류하고 모든 것을 끝내야 하는가.
‘망할 애송이.’
고뇌하던 데일 리퍼슨이 애쉬의 얼굴을 떠올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가더니 강적과 부딪힌 것도 아니고 폭발물 따위에 당했다고?
며칠 전 짧은 부딪힘 이후 녀석의 실력은 내심 인정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당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믿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내 눈도 갈 때까지 갔나보군.’
조금 진정한 상태로 고뇌하던 데일 리퍼슨이 끝내 결정을 내렸다.
이곳에서 이들과 부딪히는 것은 의미 없는 희생만을 남길 뿐이다.
이겨도, 져도 그 끝은 파멸이겠지.
그러느니 차라리…….
결심한 데일 리퍼슨이 생각했다.
데일 리퍼슨, 그는 아무래도 자신의 생각보다 더 이 소꿉장난 같은 ‘리퍼슨 물류’와 ‘총잡이들의 여명’을 아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을 위해 자신이 그토록 후회하던 과거로 돌아갈 생각까지 하다니.
“나는….”
“영감. 설마, 아니겠지?”
그의 아들인 게빌이 무언가 불안함을 느꼈는지 물어왔다. 하지만 그쪽에 대답할 말은 없다.
“너희와 함께 가겠다.”
“뭐, 뭐라고?”
“무슨 소리야! 싸워보지도 않고…!”
데일 리퍼슨은 경한 기색으로 울리는 게빌과 카우보이모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여우 가면의 부단장, 제일 던컨이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잘 생각하셨어요. 약속대로 직원들과 아드님, 그리고 저쪽 친구들은 살려 보내드리도록…….”
단장! 인질들의 구출이 끝났어요!! 애쉬 씨와 연락은 닿지 않지만 cctv로 확인한 결과 애쉬 씨가 인질들을 구하고 그 쪽으로 향하고……!
그가 발걸음을 ‘웃는 악마’를 향하는 사이, 인이어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와 제일 던컨의 목소리가 겹쳐 울렸다.
게빌 또한 끼고 있는 인이어를 통해 그것을 들었는지 외쳤다.
“영감!!”
“…그래.”
“예?”
데일 리퍼슨이 게빌의 부름에 답하고, 제일 던컨은 그 알 수 없는 의사 교환에 의문을 표한다.
데일 리퍼슨, 과거 ‘유쾌하게 웃는 악마들’의 단장이었던 그가 현재의 ‘웃는 악마’들을 향해 두 자루 리볼버의 총구를 겨눴다.
그리고 말했다.
“아무래도 너희와는 연이 아닌 것 같군, 애송이들아.”
“무슨.”
끼리릭.
방아쇠를 당기며 금속 긁히는 미세한 감각이 느껴진다. 데일 리퍼슨의 행동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제일 던컨이 칼을 뽑아들었고, 그의 뒤에서 대기하던 악마들이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타아앙!!
그의 총성이 울린 순간, 물류 센터 내부는 순식간에 하나의 전쟁터로 변모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