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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59화 (159/230)

〈 159화 〉 7. 총잡이들의 여명(15)

* * *

­ 타다다당!!

파바박! 격발음과 함께 총탄이 쌓인 물품 따위에 박혀드는 소리가 울렸다.

“젠장! 저게 다 돈인데!”

“그딴 걸 생각할 때냐, 게빌!”

“모르긴 몰라도 이번 일이 끝나면 우린 완전히 파산일 거라고!!”

동료 카우보이모자의 말에 게빌이 진심 반 농담 반으로 외쳤다.

인질로 잡혀있던 이들이 안전히 풀려난 만큼 마음이 조금 편해져 농담 섞인 말을 던질 여유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약간의 심적 여유가 생긴 마음과 달리 현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 퍼엉!

“아악!!”

“핸더슨!! 망할! 핸더슨의 손이 날아갔어!”

“흐하하핫! 이참에 자위 말고는 쓸모없는 그 손 좀 바꾸지 그래!”

“저 새끼들이…!”

그들의 외침을 들었는지 ‘웃는 악마’측에서부터 웃음소리와 조롱이 들려왔다.

급박한 ‘총잡이들의 여명’ 쪽과 달리 무척이나 여유로운 목소리.

그런 태도만 봐도 현 상황이 어느 쪽에 유리한지 알 수 있다.

게빌과 카우보이모자들의 명백한 열세.

‘웃는 악마’는 지금 ‘총잡이들의 여명’을 사냥하듯 천천히 몰아넣고 있었다.

“내 손만 멀쩡했어도 지금쯤 빈 깡통처럼 바닥을 구르고 있었을 놈들이!”

게빌이 분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역시 그 ‘웃는 악마’라는 것일까. 상대방의 사격 실력 또한 숫자가 모자란 상황에서 ‘총잡이들의 여명’을 밀어낼 정도로 뛰어났지만, 그렇다고 멀쩡했을 때의 게빌 자신과 비견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멀쩡한 상태였다면 유리하진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팽팽하게 전선을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처럼 총의 손잡이를 꽉 잡는 것만으로도 손이 덜덜 떨리는 상태로는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게빌은 원래 자신이 사용하던 초대구경 리볼버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

적당히 들고 온 소총의 총구를 내밀어 드르륵 갈긴 그는 잠시 전장에서 눈을 돌려 자신의 아버지, 데일 리퍼슨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영감.’

데일 리퍼슨.

어디 가서 둘째가면 서러울 실력의 총잡이인 그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총잡이.

게빌의 생각대로 그는 부단장을 포함한 수 명의 ‘웃는 악마’에게 포위된 상태로도 팽팽한 접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 터더더더덩!!

“이런!”

총성처럼은 들리지 않는 낮고 둔탁한 소음과 함께 순식간에 쏟아진 탄환들이 공간을 꿰뚫는다.

그것에 노려진 상위 서열의 악마는 감탄인지 낭패인지 모를 목소리와 함께 몸을 던져 그것을 피했다.

그러자 바닥을 구르는 악마를 향해 반대 손에 들린 리볼버가 불을 뿜었지만, 그것은 또 다른 방해꾼에 의해 목표물에까지 닿을 수 없었다.

­ 팅, 티디디딩!

허공을 수놓는 은빛 실선.

어느새 노려진 악마의 정면에 나타나 총탄을 쳐내는 칼잡이, 제일 던컨 때문이었다.

“젠장, 무슨 리볼버를 소총처럼! 고맙다, 부단장!”

덕분에 목숨을 구한 악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온갖 전장을 떠돌아다니며 어지간한 총잡이들은 다 만나본 악마들이었고 또 그런 이들을 상대하는 데는 이골이 났지만, 지금 그들이 상대하는 데일 리퍼슨 만큼은 여태까지 봐왔던 총잡이들과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탄환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목표를 노리고 날아들었으며, 그만큼 치명적이어서 몸을 함부로 움직였다간 총탄에 몸을 내어주기 십상.

한 놈은 방어형으로 강화된 자신의 개조 신체를 믿고 거기에 몸을 맡겼지만, 어떤 방법인지 몰라도 총탄에 구멍이 난 지금은 피와 기계 윤활액 따위를 흘리며 차가운 쇳덩이가 되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것을 본 이후로는 예리한 칼날 위를 걷는 것처럼 한 순간 한 순간이 섬뜩하지 않을 때가 없다.

피하지도, 막지도 못할 때 그들이 믿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 신체 강도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그렇게 악마 하나가 허겁지겁 일어나 포위망을 다시 갖추자 데일 리퍼슨은 뒤편에서부터 자신에게 날아오는 총탄을 피하며 여분의 탄환을 앞으로 촤악 뿌리고 손을 움직였다.

­ 지이이익.

리볼버 실린더가 돌아가는 작은 소리.

그가 앞으로 뿌렸던 탄환은 놀랍게도 그의 손이 움직임에 따라 실린더의 회전에 맞도록 정확히 약실에 자리했고, 손을 한번 튕기는 것으로 약실을 닫은 그는 다시 공이를 당기며 총구를 조준했다.

그 모든 것이 소수점 아래 단위에서도 밑에서나 세야할 찰나에 일어난 일.

데일 리퍼슨은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자세에서도 탄환만 있다면 사격이 끊이기 전에 장전을 완료할 수 있었다.

다만 그것도 앞서 말했다시피 탄환이 있어야 했는데, 최대한 챙기긴 했지만 지금 그에게 남아 있는 일반 탄환은 불과 200발 내외다.

특수하게 제작된 탄환들까지 모두 포함한다고 하더라도 250발이 채 되지 않으니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했다.

그런 점에서 방금 공격이 막힌 것은 꽤나 컸다.

‘그때 그 애송이가 이렇게 컸을 줄이야.’

데일 리퍼슨은 긴장의 기색이 역력한 채 조심조심 다가오는‘웃는 악마’들의 가면을 한 차례 둘러보다가도 자신의 정면에 선 여우 가면의 부단장을 바라봤다.

역시 지금 그에게 가장 큰 방해는 바로 저 녀석.

탄환과 힘을 빼두려는 것인지 공격적으로 나오지는 않으면서 제 동료들이 위험할 것 같으면 순식간에 나타나 방어를 돕고 포위망을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놈이었다.

녀석의 신체능력과 움직임은 크게 놀라운 수준이라 그가 실력을 확인하고자 한 차례 부딪혔던 애쉬 론모어, 그 해결사가 떠오를 정도였다.

물론 당시의 애쉬 론모어 또한 전력은 아니었겠지만, 이쪽의 제일 던컨 또한 당장 온힘을 다하고 있는 느낌은 아니다.

데일 리퍼슨이 두 자루 리볼버를 든 채 매와 같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제일 던컨은 계속해서 검을 치켜 올린 채 입을 열었다.

“실력은 여전하시군요. 아니, 솔직히 이 정도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과거보다 더 대단해지신 것 같기도 하구요.”

“네까짓 게 뭘 안다고 떠들지, 애송이.”

­ 터엉!

데일 리퍼슨은 제일 던컨의 말에 짧게 대꾸하곤 몸을 훽 돌려 자신의 뒤를 슬금슬금 노리던 놈에게 총탄을 선물했다.

첫 발은 일반 탄환. 하지만 놈들은 그것을 구분할 수 없으니 일단 몸을 던져 피한다.

하지만 두 번째 탄환은 다르다.

­ 터어엉!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사고를 가속 시킨다.

엿가락이 늘어지듯 시간이 주욱 늘어나는 같은 감각과 함께 데일 리퍼슨의 눈동자에 붉은 빛이 돌았다.

그의 왼 눈동자를 대신한 인공 안구. 거기에 내장된 시스템이 발동한 것이다.

대기층을 꿰뚫고 나아가는 탄환의 회전수까지 셀 수 있을 정도로 가속한 그의 사고 속도.

그 느려진 시간 속에서 데일 리퍼슨은 왼 눈의 시스템을 통해 발사된 탄환에 명령했다.

방향을 왼쪽으로 틀라고.

그러자 핏.

작은 소음과 함께 탄환이 미세하게 방향을 틀며 그 궤도가 둥근 호선을 그렸다.

“뭇…!!”

느려진 시간 속 땅을 박찬 제일 던컨이 뛰어들기도 전에 방향을 튼 탄환이 자신을 피하기 위해 몸을 던져 아직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인 악마의 턱으로 들어가 그 정수리를 뚫고 나온다.

그 결과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즉사.

뇌수와 핏물이 구멍 뚫린 정수리를 통해 쏟아지는 모습을 확인한 데일 리퍼슨은 자신을 노리는 날아드는 예기를 향해 몸을 돌렸고, 느려졌던 시간이 다시 가속하며 그를 노린 칼날이 지근거리까지 닿았다.

그 시퍼런 예기가 피부에 느껴질 정도.

­ 챙!

하지만 데일 리퍼슨은 자신이 계산한대로 완벽한 타이밍에 리볼버를 들어 올려 그것을 막을 수 있었다.

“느리다, 애송아.”

데일 리퍼슨이 은빛 검과 리볼버를 사이에 두고 눈을 마주본 부단장, ‘제일 던컨’을 향해 비웃듯이 말했다.

확실히 녀석은 ‘웃는 악마’의 부단장이다. 저 반응속도와 칼 솜씨를 보면 어지간한 설계로는 잡기 힘들었다. 방금 쏘아낸 궤도 변경탄환을 사용해도 말이다.

하지만 부단장이 아닌 다른 놈들은 아니었다.

명백한 수준 차이.

데일 리퍼슨을 포위하고 있는 어중간한 악마들과 그가 사는 세계는 차원이 달랐다.

그나마 제대로 반응할 수 있는 놈이라고 해봐야 부단장을 포함한 두셋 정도가 전부였으니 말이다.

­ 그그극.

검과 리볼버를 맞대고 힘 싸움이 이뤄지는 가운데, 제일 던컨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제 판단이 잘못 됐습니다. 생포하겠다는 생각으로 단장을 잡긴 힘들 것 같네요.”

불가능하진 않다. 이대로 계속해서 시간을 끌고 탄환을 소모시킨 뒤라면 생포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소모된 전력을 채우기 위해 찾아온 곳에서 오히려 더 많은 전력을 잃는다면 본말전도가 아니겠는가.

제일 던컨은 자신과 함께 데일 리퍼슨을 포위하고 있는 ‘웃는 악마’들에게 말했다.

“일차적으로 생포는 포기하겠습니다. 가능하면 살려가고, 아니면 그냥 죽여도 좋아요.”

일단 온 이상 어떤 목적이든 하나는 제대로 이뤄야했다.

배신자의 처형, 혹은 전력 보충.

배신자인 데일 리퍼슨이 본격적인 공격에서 운 좋게 살아남는다면 신체를 갈아치우고 재활용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제일 던컨의 명령에 ‘웃는 악마’들이, 그리고 그 중심에 선 데일 리퍼슨이 서로 다른 의미로 웃었다.

“그래, 답답했는데 잘 됐네. 이 늙은이, 이제 그냥 죽여 버려도 된다는 거지?”

“좀 빨리 결정하지 그랬어, 부단장!”

악마들이 신체를 조정하며 본격적인 공격을 준비하고,

“건방진 것들이….”

감히 자신을 생포하려 했다는 말에 데일 리퍼슨이 살기 넘치는 미소를 짓는다.

그들의 싸움은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었다.

*

“대체 얼마나!”

­ 투다다다다!!

벽, 천장, 바닥 할 것 없이 설치된 센트리 건에서 탄환이 비처럼 쏟아진다.

길을 잘못 든 것인지 애쉬가 발들인 방향은 이전에 들어온 방향보다 더 많은 온갖 함정이 공간을 가득 매울 정도로 설치돼있었다.

게다가.

­ 위이이잉. 타다다닥.

쏟아지는 총탄 사이로 기계음과 함께 여섯 개의 다리를 지닌, 사람 머리통만한 로봇이 달려온다.

애쉬는 어지간한 성인 남성이 달리는 것보다도 한참은 빠르게 움직이는 그것을 본 순간 표정을 잔뜩 구겼다.

이전에 통로를 통과하며 몇 번 겪었던 물건이었는데, 저것은 목표물이 일정 이상 가까워진 순간 자폭하는 기능이 있어 지금 같이 총탄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는 검으로 베고 몸을 빼기도 마땅치가 않았다.

그리고 더 문제인 점은 따로 있었다.

­ 타다다다닥!

­ 위이잉!

바로 저 망할 물건이 한 번에 하나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보통 수대에서 십여 대까지 무리지어 달려든다는 것이었다.

‘여기선 안 되겠군.’

연쇄적으로 터지는 폭발을 피할 곳이 없다.

애쉬는 계속해서 쏟아지는 센트리 건의 총탄 샤워에서 몸을 돌려 꺾인 통로 쪽으로 달렸고, 벽과 바닥을 타고 움직이는 자폭드론이 그런 그를 뒤따랐다.

“흡!”

­ 탓!

바닥을 박찬 몸이 날 듯 달려 공간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마침내 센트리 건의 사격을 피할 수 있도록 우측 통로로 꺾은 순간, 애쉬는 그대로 몸을 돌려 자신을 따라온 자폭 머신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 사아악!

금속질로 된 몸체가 종잇장처럼 갈라진다. 애쉬는 자신의 손끝에 베이는 감각이 느껴진 순간 다시 땅을 박차고 몸을 뒤로 날렸다.

그 직후,

­ 콰아아앙! 펑! 퍼벙!!

칼날에 베인 머신과 그 뒤를 따르던 것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며 그의 고막을 터뜨릴 듯 통로를 울렸다.

그렇게 폭발로 인해 먼지가 피어오르자 애쉬는 다시 움직여 군데군데 무너진 통로를 달렸다. 센트리 건의 포화를 넘고, 또다시 나타난 귀찮은 물건들을 지나서.

그리고 점점 부비트랩이나 센트리 건 따위가 뜸해질 때쯤……. 애쉬는 자신의 귀에 들려오는 작은 총성을 포착했다.

­ 투웅. 투두두두.

“저쪽인가?”

쉴 새 없이 총탄을 쏟아내는 소리가 들리더니 무언가 터지는 듯한 폭발음이 이어진다.

이제는 더 이상 그를 방해할 트랩도 없었다.

온갖 함정의 밭을 넘어선 애쉬는 쉬지도 않고 계속해서 움직였고, 곧 ‘웃는 악마’와 ‘총잡이들의 여명’이 교전을 벌이고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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