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7. 총잡이들의 여명(16)
* * *
피잉!
뺨을 스쳐가는 탄환 한 발.
그것을 피하자마자 또 다른 탄환 한 발이 피한 자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는데, 탄속과 그 모양이 심상치 않은 게 가끔 나오는 특수한 탄환 같았다.
아마 저게 처음에 방어형 사이보그를 꿰뚫은 탄환일 것이다.
그것을 확인한 제일 던컨은 바보처럼 정면으로 받아내려 하지 않고 검면으로 슬쩍 흘렸다.
카가각!
그러자 탄환이 그냥 튕겨나가는 것이 아니라 검면을 잔뜩 긁는 듯한 소음과 감촉, 그리고 충격이 검을 잡고 있는 손아귀를 뒤흔든다.
대체 무엇으로 만든 것인진 모르겠으나 일반적인 현상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게 탄환을 튕겨낸 그는 그 직후 측면에서 달려드는 기척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검을 그었다.
사악!
예리한 소리와 함께 허공에 흩어지는 수십 가닥의 머리칼.
다리를 굽혀 몸을 낮추며 검격을 피한 데일 리퍼슨의 붉은 기 감도는 눈동자와 제일 던컨의 여우 가면 너머의 눈동자가 일순간 마주친다.
‘이런…!’
제일 던컨은 그 살기등등한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 낭패감을 느꼈다.
자신을 향해 겨눠진 총구. 반사적으로 휘두른 검을 회수하기엔 늦었다.
그렇다면 ‘그걸’ 사용해야 하나?
제일 던컨이 고민했다. 지금 이 남자, 데일 리퍼슨을 제압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부단장 하나와 여럿의 ‘웃는 악마’를 죽인 칼잡이 또한 이곳에 있다 했으니 거기까지 대비해야 했다. 설령 그게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속전속결로.’
마침 그가 감추고 있는 힘은 인간을 제압하는데 있어 최고의 효율을 보여줬다. 잘못하면 신체가 맛이 갈 수야 있겠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다.
앞서 생각했듯 살아만 있으면 얼마든지 사지를 갈아 끼우고 재활용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을 끊은 것은 데일 리퍼슨에게서 쏘아진 탄환도, 무엇도 아닌 동료의 목소리였다.
“부단장!!”
퍼억!
그에게 총구를 겨눠 올리던 데일 리퍼슨이 갑자기 덮쳐든 서열 29위의 악마와 하나 되어 바닥을 굴렀다.
데일 리퍼슨이 중간에 자신을 붙잡고 있는 녀석을 떨쳐내고 몸을 일으키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위급한 상황을 끝내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어시스트였다.
설마하니 예상도 못했던 도움이 그를 위급한 상황에서 구할 줄이야.
몸을 일으키고 두 자루 리볼버를 들어 올린 데일 리퍼슨과 여전히 그를 포위한 ‘웃는 악마’의 대치.
잠시간의 소강상태에 들자 그 모습이 전투를 시작할 때와 비슷했지만, 분위기는 그 때와 전혀 달랐다.
“십 수 년 전에 패배하고 도망친 개라고 해서 퇴물인 줄 알았더니….”
“괴물 같은 놈.”
‘웃는 악마’ 소속의 악마들이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본격적으로 상대방을 죽여 버리겠다고 나섰으나 바닥을 구르고 있는 것은 오히려 ‘웃는 악마’ 측의 셋.
최하위 서열도 아닌, 40위권 안쪽의 악마들만 모였음에도 이런 피해다.
데일 리퍼슨을 상대하기 위해 모인 일곱의 상위 서열 중 이제 남은 것은 넷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나마 수준 높은 녀석들이 당하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웃는 악마’ 측의 피해도 상당했지만, 그것을 홀로 상대하고 있는 데일 리퍼슨의 상태도 멀쩡하진 않았다.
“후우, 후욱….”
쉬지 않고 움직인 탓에 턱 끝까지 숨이 차올랐는지 헐떡이는 소리가 들린다.
인정사정없이 쏘아진 탄환들은 최대한 피했음에도 그의 몸 곳곳에 박혀든 데다가 치명적이게도 그의 왼손은 예리한 칼끝에 걸려 검지 하나가 잘려나간 상태.
그 손은 사이보그 파츠였지만, 팔 전체를 완전히 개조한 게 아니었는지 지혈되지 않은 상처에서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죽지 않는 눈에는 언제든지 너희를 물어뜯을 수 있다는 맹수의 기세가 드러난다.
분명 상대의 상태는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음에도 전투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은 여전하거나, 혹은 그 이상이었다.
“슬슬 그만하시는 게 어떨까요. 이대로 가면 저쪽이나 단장이나 모두 죽고 끝날 텐데요.”
제일 던컨이 자신들의 전장과는 또 다른 곳, 하위 서열의 악마들과 ‘총잡이들의 여명’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장소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쪽에 있는 게빌과 카우보이모자들 또한 데일 리퍼슨과 마찬가지로 거의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
반 이상이 죽거나 다쳤으며 전투가 가능한 이들 또한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 상황.
‘웃는 악마’ 측 역시 피해는 있었으나 그렇게 대수로운 정도는 아니었다.
어딜 어떻게 봐도 ‘총잡이들의 여명’에 불리한 상황이었으나 데일 리퍼슨은 아무런 대답도 않고 품에서 라이터를 꺼내 잘려나간 손가락 끝을 불로 지졌다.
딸칵.
“끄득.”
화르륵.
피어오른 불꽃에 잘린 손끝이 타들어간다.
작열통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히는 고통이라고 하던가.
하지만 데일 리퍼슨은 이를 악 문채 작은 신음 하나 내지 않고 그것을 견뎠다.
“설마 그 애쉬 론모어라는 녀석을 기다리고 계신건가요?”
제일 던컨이 그런 그를 보며 설득하듯, 혹은 놀리듯 말했다.
과연 그 칼잡이가 여기 온다고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이 상황을 뒤바꿀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해.’
제일 던컨, 그가 속으로 자문자답했다.
아직 제일 던컨 또한 자신의 전력을 다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이곳에 있는 이들의 ‘웃는 악마’ 측의 숫자가 몇이던가.
게다가 상대가 자신과 같은 칼잡이라고?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을 뒤집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제일 던컨, 그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검으로 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고,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결국엔 이길 수 없을 테니까.
“이제 슬슬 탄환도 떨어져 가실 텐데, 순순히 따라오시는 게 서로에게…….”
“…럽군.”
“…네?”
희미한 목소리에 제일 던컨이 되물었다.
데일 리퍼슨은 그런 여우 가면의 눈동자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시끄럽다고 했다, 애송아.”
라이터를 다시 품에 집어넣은 데일 리퍼슨이 짐승과 같은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언제까지 입으로만 떠들고 있을 거냐. 내가 있었던 ‘유쾌하게 웃는 악마들’은 입으로만 떠드는 곳이 아니었을 텐데.”
너는 여전히 그때의 그 애송이다.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데일 리퍼슨의 목소리에 제일 던컨이 가면 아래로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럴 줄 알았다. 그게 당신이니까.
“그럼 충분히 쉬신 것 같으니. 다시 시작해볼까요.”
이번에는 멈추지 않고 어느 한 쪽이 완전히 쓰러지거나, 죽을 때까지.
제일 던컨의 목소리에 같이 숨을 고르던 악마들이 자세를 고쳤다.
휘릭.
여태껏 먼저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던 제일 던컨이 눈을 예리하게 빛내며 달려들어 검을 내질렀다.
데일 리퍼슨은 그것을 뒤로 빠져 피하는 동시에 좌우 양쪽으로 리볼버를 뻗어 방아쇠를 당겼다.
터어엉!!
양측에서 덤비던 두 명이 탄환을 피해 움직였고, 여전히 그에게 공격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뒤의 한 명.
데일 리퍼슨은 그 녀석에게 몸을 돌리며 총탄을 먹여주려 했지만, 그 순간.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고지대에서 날아온 무언가가 놈의 어깨를 강타했다.
데일 리퍼슨은 그것의 정체를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돌 파편?’
어지간히도 강하게 맞았는지 자세가 흐트러진 놈.
어디선가 날아온 파편에 대해 생각하기도 전에 데일 리퍼슨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두 자루 리볼버의 약실을 비워냈다.
터더더더덩!!
순식간에 쏘아진 열 발 가까운 탄환의 세례.
상위 서열의 악마는 어디선가 날아온 갑작스런 파편에 자세가 무너졌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몸을 재빨리 움직이며 탄환을 피하려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의안에서 붉은 빛이 감돌며 쏘아진 탄환 중 숨겨져 있던 특수 탄환 두 발이 방향을 꺾는다.
뒤늦게 그것을 확인한 악마가 경악에 눈을 크게 뜨며 뭐라도 하기 위해 팔을 들어 올렸지만, 그런 것으로 막을 수 있을 만큼 그가 쏘아낸 탄환은 단순하지 않았다.
퍼억!
이마에 한 발, 가슴에 한 발.
방향이 틀어졌음에도 그 파괴력을 잃지 않은 탄환이 맞은 인간의 뼈와 살점을 터뜨리며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머리통이 반쯤 깨부숴진 악마는 눈에서 빛을 잃으며 쓰러졌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일이다.
그렇게 한 명의 악마가 더 쓰러짐과 동시에.
파사사삭.
뒤늦게 깨진 유리 파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 사이에 투욱 무언가 가볍게 착지하는 소음이 끼어들었다.
데일 리퍼슨은 대충 그 정체를 예상하고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뭐하냐는 듯 띠꺼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애송이.”
“그놈의 애송이는. 세계 최고의 총잡이라던 늙은이가 왜 죽어가고 있어?”
잿빛 은발에 진청색 눈동자. 슬쩍 올라간 입꼬리가 재수 없는 해결사.
인질 구출을 마친 애쉬 론모어가 마침내 자리에 도착했다.
*
“죽어간다고? 내가? 헛소리 하지 마라, 애송아.”
데일 리퍼슨이 아직은 어림도 없는 소리라는 듯 애쉬에게 대꾸했다.
분명 전투가 이대로 계속 이어졌다면 죽어간다는 말에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 그의 몸 상태도 점점 최악에 가까워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데일 리퍼슨은 자신의 자존심을 지킬 최소한의 힘 정도는 남아 있었다.
“손가락도 짤리고, 총도 맞았네? 멀쩡한 척 하긴.”
하지만 애쉬는 방아쇠에 중지를 올린 데일 리퍼슨의 왼 손과 그의 몸을 보고 놀리듯 말했다.
데일 리퍼슨이 자존심을 세운다는 건 알았지만, 평소에 애송이애송이 떠들던 남자가 이렇게 돼 있는 걸 보면 그래도 놀리고 싶지 않은가.
“…….”
그런 그의 말에 데일 리퍼슨이 잡아먹을 듯 노려봤지만 어쩔 텐가. 몸도 멀쩡하지 않으면서.
애쉬가 그렇게 데일 리퍼슨을 놀리고 있자 뒤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 애쉬 론모어인가요?”
“그런데.”
남자의 입에서 나온 자신의 이름에 애쉬가 짧게 대꾸하며 돌아봤다.
군데군데 찢어진 정장 차림과 얼굴을 가린 여우 가면. 그리고 손에 들려 있는 은빛 검 한 자루까지.
그가 봤던 영상 속에서 ‘부단장’이라 불렸던 남자였다.
그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적, 애쉬를 보면서도 조금은 반가운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마침 잘 오셨어요. 당신한테도 하고 싶은 제안이 있었거든요.”
“제안?”
“네. 아마 한 번 들으셨겠지만, 저희…….”
“설마 ‘웃는 악마’에 들어오라는 소리냐?”
애쉬가 부단장의 말을 끊고 끼어들어 물었다.
하지만 여우 가면의 부단장은 그에 불쾌한 기색도 드러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신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부단장이 하나 당했다는 소리도요. 그런 실력을 지니셨으니 만큼 한 차례의 검증 후 저희의 예상과 다르지 않다면 최고의 대우를 약속드리겠습니다.”
“검증? 그건 누가하는데.”
설마 네가?
애쉬가 비웃듯 말했다.
너 따위가 나를 검증할 수 있겠느냐. 그런 의미가 명백한 말투와 태도였다.
웃기지도 않는다는 목소리로 물었던 애쉬는 곧 장난치듯 가벼운 태도로 말을 이었다.
“어디 한번 붙어보기나 하자고. 네가 날 이기면 웃는 악마든 우는 천사든 들어가 줄 테니까.”
물론, 가능하다면 말이야.
애쉬가 도발적으로 말했고,
“…그걸 원한다면 얼마든지.”
여우 가면의 부단장이 애쉬의 도발에 응했다.
스르릉.
“그래? 그럼….”
대답과 함께 애쉬의 허리춤에서 새까만 검신의 칼 한 자루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윽고 반짝이는 은빛의 검과 새까만 칠흑의 검이.
칼잡이와 칼잡이가 서로를 보고 마주섰다.
둘은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살기를 띤 눈으로 웃었다.
애쉬가 입을 열어 말했다.
“어디 실력이나 한번 볼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