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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62화 (162/230)

〈 162화 〉 7. 총잡이들의 여명(18)

* * *

‘어째서 저렇게 웃는 거지?’

대체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거냐…!

빗나간 검을 회수한 제일 던컨은 생전 처음 느끼는 생소한 감정에 휩싸인 채 생각했다.

지금의 상황은 어디까지나 그에게 유리하다. 상대방은 이미 수차례 검에 찔린 채 피를 흘리고 있었고, 이쪽은 상처하나 없이 멀쩡한 상황.

게다가 지금은 그저 신체 능력과 갈고 닦아온 검술만 사용했을 뿐이지 진짜 전력을 다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에 사로잡혀갔다.

‘설마 벌써 내 움직임을 읽기 시작했다고?’

그럴 리 없다. 그런 게 가능한 인간이 있을 리가 없어.

그게 가능하다면 그것은 인간도, 그들 ‘웃는 악마’처럼 이름뿐인 악마도 아닌 ‘진짜 악마’라고 해도 좋을 존재일 것이다.

‘아니, 우연이야. 우연이여야만 한다.’

제일 던컨이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 우연일 것이다. 그저 운이 좋아서 피한 것일 터다.

상대방이 정말 운이 좋아 피한 것인지, 아니면 그의 불길한 기분처럼 읽고 움직이는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했다. 끊임없이 공격을 이어가며 돌아오는 반응을 다시 살피는 것이다.

제일 던컨은 회수한 검을 들어 올렸다.

이제부터는 그가 평생 동안 쌓아올린 모든 것을 펼쳐낼 것이다. 이것에까지 제대로 반응한다면…….

아니, 그럴 리가 없으니 더 떠올릴 것도 없다.

자꾸만 드는 생각을 부정한 제일 던컨은 그대로 검을 찔러갔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가면 안에 숨겨진 자신의 표정이 보기 힘들 정도로 일그러져 있다는 사실을.

­ 쇄애액!

검이 공간을 격하며 눈을 곧장 찔러 들어온다.

그 경로가 얼마나 올곧고 빠르던지 검이 순간이동한 것처럼 보였을 정도다.

피를 흘리면서도 소름끼치도록 웃고 있던 애쉬가 한층 예리해진 칼끝을 피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방금 전처럼 완벽히 피하지 못해 눈가에 붉은 선 하나가 그어져 핏방울이 흘렀다.

그것을 본 제일 던컨이 내심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소리쳤다.

‘역시!’

애초에 처음부터 눈을 정확히 꿰뚫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저 적의 움직임을 보기 위해 테스트하듯 찔러본 것 뿐.

그는 이 한 번의 공격으로 알 수 있었다. 상대방, 애쉬 론모어는 그의 움직임을 읽기 시작한 게 아니었다. 그저 운으로 한 번 피했던 것이다.

제일 던컨은 그 사실에 무의식적으로 안도하며 연달아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그가 극한까지 집중력을 끌어올렸기 때문일까.

그를 상대하는 애쉬의 몸에는 안 그래도 많던 상처가 조금씩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얼마 가지 않아 끝낼 수 있다.’

제대로 된 피해는 처음 옆구리를 찌른 것 정도밖에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전투의 유지력에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었고, 온 몸에 생겨난 작은 상처 하나하나에서 흘러내리는 핏방울들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인간의 혈액은 한정되어 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이상 떨어진다면 몸은 점차 차갑게 식을 것이었으며, 피를 공급받지 못한 신체는 말단부터 천천히 굳어갈 것이었다.

이렇게 시간만 끌어도 상대방은 무너지고, 그는 계속해서 ‘세계 최고의 칼잡이’로서 자리를 지킬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애쉬를 밀어붙이던 그는 어느 순간 움직임을 뚝 멈추며 중얼거렸다.

“……시간을 끈다고?”

“뭐라는 거야?”

그 작은 목소리를 들은 애쉬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물었지만, 지금 제일 던컨의 머릿속에 그런 목소리가 들어올 공간은 없었다.

제일 던컨은 충격에 빠진 채 생각했다.

‘나는 어째서 시간을 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는 분명 상대보다 뛰어나다.

신체 능력은 분명 상대보다 부족할지언정 그가 쌓아온 세월과 기예는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저 검술 하나의 뛰어남으로 상대방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무의식적으로 싸움을 피하고 시간을 끌고자 했다.

그것은 어째서인가.

그것을 찰나를 쪼개고 쪼갠 시간 동안 고민하던 제일 던컨은 순간 깨닫고 말았다.

‘설마 나는 두려워하고 있나?’

저 칼잡이, 애쉬 론모어에게 질 것을?

저 남자에게 자신의 움직임을 읽히고 파훼당할 것을 두려워하나?

‘절대, 절대 아니야.’

나와 내 검에 대한 믿음은 겨우 이 정도가 아니란 말이다.

제일 던컨은 어느 순간 찾아온 깨달음을 어떻게든 부정하고자 했으나 끝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공격이 처음으로 빗나간 순간 흔들리고 말았다.

피에 젖은 채 웃고 있는 저 남자의 모습에 자신이 아는 어떤 존재를 비춰보고 말았다.

그 자신이 존경하며 경외하는 ‘단장’을.

그 사실을 인정하자 제일 던컨은 자신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나오는 것을 느꼈다.

“하, 하하…. 하하하…….”

그의 정면에 서있는 애쉬 론모어가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지만 이미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다.

그의 입에서 나온 허탈한 웃음 직후에 찾아온 것은 그보다 더 큰 분노였으니까.

‘대체….’

그것이 한심한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인지, 아니면 그런 감정이 들게 한 상대방에 대한 분노인지도 확실치 않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하나 알 수 있었던 것은, 지금 그는 자신으로 하여금 이런 감정이 들게 한 상대방을 죽여 버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피하지 않는다.

시간을 끌지 않는다.

정면으로 부딪혀 철저하게 도륙 낸다.

평소 ‘웃는 악마’내에서도 무척이나 온건한 성향으로 유명한 그였지만, 지금만큼은 이 자리에 있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악마를 가슴에 품었다.

안 그래도 날카롭던 눈빛에 잔혹성이 더해진다. 그 또한 ‘웃는 악마’.

어쩌면 이런 모습이 그의 진짜 내면이 드러난 모습일지도 몰랐다.

‘죽인다. 철저하게,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

*

갑자기 상대방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여우 가면의 부단장, 제일 던컨의 분위기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역시나 그와 마주하고 있던 애쉬였다.

한층 더 거칠어진 분위기. 이전까지의 느낌이 그저 한 자루의 날카로운 검이었다면 지금은 그 칼날이 상대방의 피륙을 찢어발기기 위해 삐죽삐죽 갈라진 톱날검처럼 변했다.

“그래, 더 보여줄 게 있지? 빨리 들어오라고.”

하지만 애쉬는 여전히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말했다.

그 또한 뇌가 무언가에 절여진 것처럼 이 상황에 푹 빠져 있었다. 상대방이 보여주는 기술에 취해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았다.

지금의 그는 며칠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사막을 걷다 오아시스를 발견한 여행자와 같았다.

한 마디로 완전히 눈이 돌아간 상태라는 것이다.

그만큼이나 상대방, 제일 던컨이 보여주는 모든 것이 그에게 큰 충격이었으며 무엇보다도 달콤한 생명수처럼 다가왔다.

‘재밌어, 너무 재밌어서 미칠 것 같아…!’

일순간 분위기가 변한 상대방이 검을 내질러온다.

그것을 막아내기 위해 들어 올린 자신의 검과 상대방의 검이 부딪히는 순간, 상대방의 검은 물 흐르듯 검면을 타고 그의 복부를 노렸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예상했던 바.

애쉬는 자신의 배를 살짝 찌른 그것을 가볍게 걷어내며 다시 한번 보았던 것, 그리고 손으로 느꼈던 것을 곱씹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지옥의 아귀가 머릿속에 들어차기라도 한 듯 탐욕스럽게 상대방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나는 바보였다.’

애쉬는 상대와의 공방을 이어가며 자기 자신을 자책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식한 베기, 멍청하기 짝이 없는 찌르기, 어리숙한 흘리기.

이렇게 다른 칼잡이와 검을 맞대자 지금까지 그 자신이 마구잡이로 휘둘러왔던 검의 움직임이 너무도 조잡하고 한심해보였으니까.

아,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는데.

아, 그때는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아, 그때는…….

새로은 세계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보는 눈이 달라졌고, 그의 몸을 움직이던 본능의 알고리즘 또한 변해갔다.

그것은 일종의 진화였다.

탐욕스럽게 집어삼킨 것을 자신의 것으로, 자신의 몸으로 바꾸어 흡수하며 나아가는 과정.

그저 우월한 신체능력으로만 찍어 누르듯 사용했던 검에 하나의 흐름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

그 변화의 과정과 결과는 명확했다.

“이렇게, 하는 거였지!”

­ 카가가각!

“…!?”

부딪힌 두 개의 칼이 순식간에 얽혀든다. 서로의 검을 타고 올라가며 그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목을 노리는 움직임.

어느 한 쪽이 더 빨랐다면 분명 반대편에 위치한 상대의 손목, 혹은 손가락을 잘라냈겠지만 지금은 양쪽 모두 상대에 비해 우세하지 않았다.

동시에 서로의 손을 노리던 둘은 거의 같은 순간 팔을 뺐는데, 그 순간 가면에 가려진 제일 던컨과 애쉬, 검을 맞대고 있는 서로의 표정이 엇갈렸다.

“프흐, 하하, 하하하핫! 됐다!!”

‘어떻게…!’

애쉬가 보인 기술.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인 검술이라곤 아무것도 모르던 그가 지금 이 자리에서 배워 즉석으로 따라한 것이었다.

그것도 수십 년 간 기술을 갈고 닦아온 제일 던컨과 맞서는 게 가능할 수준으로.

물론, 기술 자체의 디테일이나 수준은 확연히 떨어졌기에 우월한 신체능력으로 밀어붙인 편이긴 했으나, 몇 번 보지도 않은 복잡한 기술을 단번에 따라한 것은 그 의미가 매우 컸다.

설마 여태까지 날 속인 건가?

사실 저 녀석은 상당한 수준까지 검을 다룬 진짜배기 칼잡이였고, 그 실력을 감추다 이제야 꺼내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어.’

제일 던컨이 생각했다.

사실 그도 상대가 실력을 숨겼을 리 없다는 것을 안다.

실력을 숨긴다고 해도 저 정도로 온갖 상처를 입고 과다출혈이 걱정될 중상까지 받을 필요는 없었으니까.

다만, 제일 던컨은 그저 부정하고 싶은 것이었다. 지금 그의 앞에서 자신이 직접 본 장면을.

“…있을 수, 없어.”

한 인간이 쌓아온 수년, 수십 년의 세월을 단숨에 뛰어넘어버리는 불합리한 존재가 있을 리가…….

‘아.’

…아니, 있었다. 그런 존재가.

제일 던컨은 자신이 눈앞에서 본 것을 부정하다가도 문득 한 존재를 떠올리고 말았다.

‘웃는 악마’의 현 단장.

겨우 10대의 어린 나이에 괴물 같던 전 단장, 데일 리퍼슨을 꺾고 그들의 우두머리가 된 전율적인 핏빛 악마가.

‘이 남자가 그런 단장과 동류라고?’

그렇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이 해결사가 그 핏빛 악마와 같은 불가해의 존재란 말인가.

그런 건…….

그런 건….

“있을 수 없어.”

이 세상에 그분과 같은 존재가 더 있을 리 없다.

그것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불경이다. 그분에 대한 모욕이다.

그 자신이 함부로 재단하는 것조차 오만하고 멍청한 생각이었다.

“있을 수 없어…!”

“아까부터 혼자 뭐라고 떠드는 거야. 더 안 해? 이게 끝인가?”

혼자 중얼거리는 제일 던컨을 향해 애쉬가 놀리듯 말했다. 뭐라도 있으면 더 꺼내보라는 듯이. 더 재밌는 건 없냐는 듯이.

피투성이인 상태로도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넨 애쉬였으나, 제일 던컨은 이제 그의 말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그는 오로지 한 생각에 잡혀 있었다.

저 남자가 자신들의 단장과 같은 존재일 리가 없다. 그것을 이 자리에서 증명해야한다.

­ 파아악!!

“죽어라!!”

제일 던컨이 갑작스럽게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체력 배분을 생각하지 않은 폭발적인 돌격.

절제됐던 여태까지의 움직임과 달리 저돌적이라고 해도 좋을 그 모습에 애쉬는 조금 당황했지만, 그러면서도 더 재미있어지겠다는 태도로 외치며 마주 달려들었다.

“이젠 그 웃기지도 않은 존댓말도 갖다 버린 거냐!”

­ 콰아앙!

두 자루 검이 맞부딪히자 무언가 폭발하기라도 하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대기가 울린다.

제일 던컨의 목소리는 어째서인지 격분한 듯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 검 끝의 예기가 사라졌다는 것은 아니었다.

더 거칠게 몰치며, 더 빠르게 움직이고, 더 강하게 내려찍는다.

이전도 까다로웠지만 힘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그 기예를 뽐내는 검의 움직임에 애쉬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았다.

다만 그런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더 잘 보인다!’

들어가는 힘이 커지는 만큼 움직임도 커졌고, 당연히 그의 눈에 보이는 동작도 더 뚜렷해졌다.

애쉬는 그 모든 것을 눈 안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도 그는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그냥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보다는 차라리 달려 나가고 있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었다.

스스로도 느껴질 정도의 가파른 성장세.

매 초, 매 초가 지날 때마다.

저 칼날을 한 번 한 번 받아낼 때마다 그의 몸에 흐름이 진하게 새겨진다.

상대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와 박혔고, 그것을 모두 인지한 애쉬는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그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흡수했다.

처음 만난 칼잡이이자 최고의 적수 중 하나가 될 ‘웃는 악마’의 부단장은 그의 선생이 되어 거친 수업을 쉴 새 없이 몰아쳤다.

그리고 마침내….

­ 파아아악!

군데군데 이가 나간 은빛 칼날이 머리를 쪼갤 듯 내려쳐오지만 애쉬는 그것을 검면으로 흘리며 오히려 앞으로, 상대의 품 쪽으로 파고들었다.

모든 것이 그가 머릿속에 그렸던 그대로다.

드디어 처음으로 수 싸움에서, 기술적인 싸움에서 우위를 잡은 것이다!

전신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신이 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애쉬가 어느 때보다도 생명력이 넘쳐나는 눈동자를 빛냈다.

그리고 파고든 기세 그대로 힘을 실어 손잡이 부분으로 가면이 가리고 있는 제일 던컨의 턱을 강하게 가격했다.

­ 퍼어억!

“……!!”

마침내 그는 높은 곳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듯했던 제일 던컨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었다.

­ 쩌저적!

애쉬에게 가격당한 충격에 하얀 여우 가면이 깨져나가며 제일 던컨의 몸이 나가떨어졌다.

아무리 손잡이로 타격했다곤 하나 맞은 부위가 턱이었고, 그 손잡이를 쥔 게 애쉬 론모어라는 초인이었다.

일반인이었다면 분명 머리가 깨져 그대로 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충격에도 제일 던컨은 완전히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은 채 물러섰다.

하얀 가면 조각이 떨어지고, 애쉬의 예상대로 잘생긴 미남형 얼굴이 드러난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그 얼굴에는 더할 나위없는 충격이 깃들어있었다.

‘내가, 밀렸다?’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밀어붙이고 있었는데, 밀리기 시작했다.

이것 또한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는데, 그런 일이 다시 한번 일어난 것이다.

다행히 가면이 깨부숴졌을 뿐, 치명적인 뇌진탕 따위가 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대신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할 정도의 분노가 그의 정신을 뒤집어놓았다.

지난 수십 년의 세월이 부정당하는 느낌.

단장에 대한 자신의 충성과 경외가 시험받는 느낌.

그것은 여태껏 모든 것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뤄왔으며, 최고의 성과만을 만들어온 그에게는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제일 던컨의 머릿속이 오로지 탁한 살의로 가득 찼다.

일반인조차 느낄 수 있을 섬뜩한 기운이 그에게서 뿜어져 나왔으며, 그것을 바로 앞에 있는 애쉬가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다시 한번 격변한 분위기에 애쉬는 뭔가 더 나올 게 있냐며 몸을 긴장시켰고, 제일 던컨은 자신의 은빛 검을 들어올려.

­ 피싯!

제 손목을 깊숙이 그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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