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63화 (163/230)

〈 163화 〉 7. 총잡이들의 여명(19)

* * *

뭐하는 거지?

애쉬가 갑작스런 그 자해를 보며 생각했다.

가죽장갑을 끼고 있는 손. 그 아래 드러난 손목을 칼로 깊숙이 파고드는 칼날.

붉은 피가 은빛 검신을 타고 흘렀지만 제일 던컨은 그에 상관없이 자신의 손목을 베는 것도 모자라 날을 좌우로 움직이며 그 상처를 벌렸다.

그렇게 어느 정도 상처가 벌어지자 검을 회수했는데, 애쉬는 그 뒤에 놈이 하는 짓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뭔.”

갑자기 장갑에 둘러싸인 손가락을 잔뜩 벌어진 상처에 쑤셔 넣더니 뭔가를 찾기라도 하듯 헤집는다.

안 그래도 너덜너덜할 정도로 벌어졌던 상처를 손가락이 헤집고 있으니 피가 튀는 것은 당연했다.

그 하얀 얼굴에 피를 튀기며 자신의 손목을 들여다보던 제일 던컨은 마침내 자신이 찾던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손끝으로 집어 바깥으로 주욱 당겨 뽑았다.

­ 휘릭!

끝이 피의 붉은 색으로 물든, 다소 굵은 흰 선 같은 것이 수십 센티미터 이상 길게 뽑혀 나온다.

몸에서 거대한 기생충이라도 뽑아내는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애쉬는 순식간에 뽑혀 나온 선, 그 끝에 달린 것을 명확히 봤다.

‘…연결 단자?’

선의 굵기에 맞게 직경이 2센티가 넘어가는 그것은 조금 생소한 모양이긴 했지만, 애쉬도 한 번에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크기가 좀 크긴 하지만 그가 아는 것처럼 어딘가에 연결해서 데이터를 송수신하거나 전력을 움직이는 단자 선이었다.

애쉬는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대체 몸속에 어떻게 저런 걸 담고 있는 거지?’

척 봐도 선의 굵기만 1센티가 넘고, 겉면에도 특수한 코팅을 해뒀는지 광택이 심상치 않다.

그것이 어디에 쓰는 어떤 물건인가를 따지기 애쉬가 직접 상대해본 바 상대방은 강화인간이 아니던가.

‘웃는 악마’의 부단장인 저 남자는 사이보그의 몸으로 절대 나올 수 없는 매끄럽고 가벼운 움직임을 보였었다.

사이보그라면 얼마 갖고 있지도 않은 피도 저렇게 흘리고 있는데다 실제로 발걸음 소리에서도 그렇게 육중한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았고.

강화인간은 사이보그처럼 완전히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게 아니었다.

뇌가 멀쩡하고 에너지만 충분하다면 팔다리가 잘려나가든 몸통이 반쪽이 나든 움직일 수 있는 사이보그와 달리 일단은 심장이 멈추거나 목이 꺾이거나 피를 많이 흘려서도 죽을 수 있는 ‘인간’인 것이다.

일반인보다 내구도가 높고 신체능력이 강하다지만 인간인 이상 몸속에 저렇게 굵은 선 따위를 숨기고 다닐 수는 없었다.

애쉬가 그런 의문을 가지는 사이, 제일 던컨은 피를 줄줄 흘리는 손목에서부터 이어진 단자 선을 그대로 자신이 들고 있는 검 손잡이 밑 부분에 연결했다.

­ 달칵.

연결 단자가 맞물리며 단단하게 고정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 틱, 티디딕.

제일 던컨의 몸에서 작은 정전기가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머리칼이 한 올 한 올 일어선다. 그리고 검은색이었던 그 눈동자가 점차 빛을 내뿜으며 시퍼렇게 변했다.

누가 봐도 심상치 않은 모습의 변화.

그것을 지켜보던 애쉬는 한 발짝 자리에서 물러섰다. 당연하지만 겁을 먹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바닥을 타고 그의 몸까지 찌릿찌릿해지는 정전기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변화. 그것을 지켜보던 애쉬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검으로 이기는 건 포기하고 진화라도 하는 거냐?”

머리칼은 정전기에 붕 떠올랐고, 눈은 이제 시퍼렇다 못해 하얗게 타오르고 있다.

전신에서는 티딕, 티딕 하고 전류가 흐르고 있는 게 육안에 보일 정도였으니 이제는 완전히 강화인간이라고도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애쉬의 목소리를 들은 제일 던컨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인간이 아니라 창작물 속에서 나오는 초월적인 존재처럼 보이는 그 모습에 애쉬는 묘한 압박감을 받았지만, 그것을 티내지 않고 검을 들어올렸다.

‘어디 간 좀 볼까.’

뭔지는 몰라도 어차피 끝을 봐야하는 상대다.

애쉬는 제일 던컨의 은빛 검을 타고 흐르는 전류를 보며 어지간하면 검을 오래 맞대지 않기로 하고 한 걸음씩 다가갔다.

“…죽여주마.”

그런 애쉬를 바라보던 제일 던컨이 이를 가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것까지 꺼낸 그는 절대로 상대방에게 질 수 없다.

‘프로젝트 제우스’.

사이보그의 몸에 들어가는 일반 배터리보다 그 용량이 수십에서 수백 배 이상 높은 초대용량 배터리와 전력 통제 시스템을 넣고, 그 전력 자체를 무기로 쓰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계획.

다만 그것은 지속성과 전력을 사용하는 신체의 내구성, 그리고 배터리의 휴대성을 비롯한 인간의 통제 능력 부족으로 인해 실패에 가까운 성과만을 남기고 개발이 폐지된 프로젝트다.

하지만 그렇게 실패한 이후 수년이 지나 ‘회사’에서 그것을 구매 및 재설계하여 완전히 새롭게 완성시켰는데, 그 유일한 성공작이 바로 ‘제일 던컨’이라는 강화인간이자 사이보그인 존재였다.

전신을 오로지 프로젝트에 최적화된 강화 신체와 개조 파츠로 바꿔야 했으며 그 개발 비용은 말 그대로 상상도 할 수 없을 엄청난 금액이 소요됐다.

그럼에도 ‘회사’는 그것을 강행했는데, 거기엔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문제가 됐던 휴대성과 지속성은 세상에 공개되지도 않은 자신들만의 기술로 만들어진 물건으로 충당했으며, 신체의 내구성 또한 마찬가지.

제일 던컨의 뇌를 제외한 전신을 모조리 갈아치우는 것으로 해결했다.

마지막으로 ‘회사’의 입장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런 기술이 아니라 복잡하고도 복잡한 시스템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인간의 존재였는데, 그것 또한 제일 던컨이라는 ‘웃는 악마’ 소속의 천재로 인해 채워졌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지금의 모습.

지속적으로 내부 전류를 흘려내 접근을 막고, 검 같은 전도율 높은 금속이 맞부딪히면 순식간에 적을 감전시킨다.

애쉬가 처음으로 상대했던 서열 5위, 곤충형 드론을 사용하는 ‘웃는 악마’의 부단장은 물론 평범한 인간과 강화인간, 사이보그를 가리지 않고 무엇을 상대로도 강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독액의 존재 때문에 특히 인간과 강화인간의 천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면, 이쪽은 전기라는 특성상 사이보그나 애쉬 같은 근접 상대의 천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검을 맞대면 그대로 전류에 감전될 것이라는 것은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애쉬와 제일 던컨 또한 바보가 아니었고, 그런 만큼 싸움의 구도는 바뀔 수밖에 없었다.

“도망밖에 못 치는 거냐!”

­ 쇄애액!

“흥.”

얼굴을 찔러오는 검을 고개를 기울여 피한 애쉬가 검을 내지르며 도발 같지도 않은 도발에 코웃음 쳤다.

검에 닿지도 않았는데 검신과 가까웠던 뺨 쪽 피부가 저릿저릿해질 정도다. 저딴 걸 정면에서 받아내면 어떻게 될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순식간에 흘러들어온 전류에 근육이 마비되겠지.

그의 몸은 분명 어지간한 강화인간보다 온갖 내성이 뛰어났지만, 과연 그게 감전에까지 적용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처럼 0.1초를 다투는 전투에서 아주 잠깐의 틈이라도 생긴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지지직. 듣기만 해도 섬찟 해지는 소리와 함께 푸른 전류를 휘감은 은빛 검이 날아든다.

애쉬는 상체를 뒤로 넘기며 그것을 피하고 그대로 텀블링 하듯 몸을 뺐다.

이제 상대방의 움직임도 거의 눈에 익었다. 단순히 익은 정도가 아니라 여태껏 보였던 모든 기술을 대충 따라할 수 있을 정도.

하지만 그럼에도 애쉬는 깊은 실망감과 함께 아쉬움을 느꼈다.

‘실망이군.’

분명, 분명히 지금 상대방의 일검은 저 빌어먹을 전기를 두르기 전보다 치명적이었다. 부딪히기라도 했던 아까와 달리 지금은 검을 맞대지도 못했으니까.

그럼에도 애쉬는 마음 한편에서 계속 팽팽했던 긴장감이 늘어지는 것 같았다.

결국에는 이런 녀석도 과학 기술에 몸을 맡기고 거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것이 더 편하니까, 그저 어떻게든 닿기만 하면 감전된 상대방을 단숨에 찍어 누를 자신이 있었으니까.

여전히 움직임은 대단했지만 손짓 하나, 발짓 하나에서부터 그런 의지가 느껴지는 것 같아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진심으로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웃는 악마’의 부단장, 여우가면이 단순한 강자가 아니라 자신과 같은 칼잡이였기에 그런 것이었는데, 지금의 그는 애쉬와 같은 칼잡이가 아니었다.

그저 무기로 검을 이용하는 사이보그인지 강화인간인지, 아니면 전기 포X몬인지 모를 녀석이 됐을 뿐.

그렇다면 이제 그가 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녀석에게서 훔친 기술로 놈을 죽인다.’

그냥 검에 전기를 두른 정도라면 앞선 전투로 한층 발전한 애쉬에겐 놈을 꺾을 자신이 있었다.

애쉬는 눈을 돌려 자신을 노려보는 형형한 백광을 마주봤다.

멋대로 훔쳐 배운 것이긴 하지만 놈도 일종의 스승이라면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추해져버린 스승을 마무리 짓는 것은 제자인 그가 해야 할 일일 터다.

“죽어!!”

­ 촤아악!

순식간에 달려든 제일 던컨이 검을 대각으로 넓게 휘두른다.

애쉬는 이번에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자신을 향해 칼날을 날려오는 상대방을 향해 마주 덤벼들었다.

‘잘 보라고. 네가 사용하던 기술이니까.’

오른 다리의 근육이 폭발하듯 땅을 박차고,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그의 몸이 쏘아져나갔다.

일단 땅을 박차고 나면 중간에 정지나 방향 전환 따위가 불가능했기에 일정 이상의 상대에게 보이기에는 오히려 위험한 움직임.

하지만 그럼에도 과감히 움직인 애쉬는 자신을 향해 그어지는 칼날에 대고 검을 쥔 손목을 회전시켰다.

그리고 생각했다.

검과 이어진 굵은 전선을 노리는 것은 너무 뻔했기에 제대로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우월한 신체 능력을 기반으로 최단 시간 내에, 최소한의 접촉으로 검을 튕겨낸 뒤 곧장 목을 노린다.

­ 채앵!

그런 그의 계획대로 손 안에서 회전시킨 검은 대각으로 그어지던 은빛 칼날을 더 손쉽게 튕겨냈다. 앞의 공방에서 상대방이 보여줬던 기술이 그의 손에서도 나온 것이다.

검과 검이 맞닿는 순간 찌릿한 느낌이 손끝의 감각을 마비시켰지만, 그 정도는 어디까지나 상정 내.

자신이 노린 상황이 펼쳐지자 그 진청색 눈을 빛낸 애쉬는 상대방의 검이 튕겨나가며 크게 벌어진 품으로 파고들어 곧장 목을 향해 검을 수평으로 베어 들어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상대방과 눈이 마주쳤는데…….

‘…?’

커다란 틈이 생겨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제일 던컨의 새하얗게 백열하고 있는 눈은 오히려 그것을 노렸다는 듯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애쉬였지만, 그렇다고 검을 멈출 생각은 없다.

애쉬는 오히려 검에 더 힘을 더하며 강하게 베어갔고, 제일 던컨은 거기에 반응하여 발을 굴러 몸을 띄웠다.

피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목이 아니라 덜 치명적인 어깨와 팔뚝, 그보다 깊숙이 본다면 몸통이 검에 베이도록.

그리고 그와 동시에.

­ 찌직. 치지지직!!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정전기가 눈에 띄게 굵어지더니 몸을 중심으로 줄기줄기 뿜어졌다.

전력 방출.

그의 몸체 내부에 존재하는 대량의 전류를 무차별적으로 방사하는, 그가 부단장 급과의 서열전에서도 상황이 나오지 않는 이상 몇 번 보이지 않았던 기술이었다.

애쉬는 그것을 보며 눈을 크게 떴고, 자신의 새까만 칼날이 제일 던컨의 몸을 파고드는 순간, 마주 자신의 몸에 스며드는 전류의 폭풍에 참을 수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으그아아아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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